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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과 소련을 멸망해서 구해준 사연...JPG
미국은 1차 대전, 2차 대전 참전해서수많은 파병과 지원을 보냈었다소련과 중국도 그 예외는 아니었는데그 규모를 알아보도록 하자루즈벨트 대통령은 1940년 12월 19일 중국에 대한 2,500만 달러의 군사 지원을 승인하여 중국이 P-40 추격 항공기 100대를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1941년 늦은 봄까지 미국은 중국이 지상 및 항공 장비를 모두 확보할 수 있도록 대출 임대 자금으로 1억 4500만 달러 이상을 할당 했습니다.중국은 당시 변변한 공군전력이 없어서충칭대공습 같은 사건으로 일본공군에게 일방적으로 내내 쳐발리다가미국의 P-40 전투기 지원 덕분에 겨우 구사일생함P-40 100대 이외에도 P-66 전투기 82대, P-43 전투기 41대를 중국에 제공하였고이는 중국공군 대다수의 전력이 되었으며 일중전쟁 당시 절대적인 희망이 되었다. 이를 통해 그나마 중국 전역이 점령당하지 않고 고기방패 나마 버틸수 있는 근간이 됨또한 미국은 미 제14공군을 통합한 미중연합공군(CACW, China American Composite Wing)을 창설하여지나전선(중국전선)의 일본군 비행장들을 폭격하고 상당수를 파괴하여 중국을 멸망에서 구해줌당시 미국이 중국에 지원한 것들은M3 전차 100대트럭 25,000대야포 2,053문소총 305,000정기관총 100,000정철모 146,000개폭격기 151대전투기 679대수송기 120대훈련기 43대식량 33,000톤기타 지원금액 8억 4,500만 달러애초에 중국은 2차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까지도자력으로 일본에게 승전하거나 승리하지 못하며왕징웨이 친일정부에 통치당하다가미국의 일본 원자폭탄 투하로 해방 됨이번엔 소련을 볼까독소전쟁 시기 소련의 칼로리 섭취 절반이 서방 랜드리스에서 나왔다.전시 동안 이루어진 접촉과 특히 무기대여법에 따른 인도 물자는 미국이 매우 뛰어난 경제-기술력을 지닌 나라라는 널리 퍼진 인식을 확인시켜주었다.측근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스탈린 조차 미국과 영국이 "무기대여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1941-42년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에 독일에 대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민간인들에 갈 의복과 다른 소비재 대부분은 관료들이 착복했다. 조금 남은 것들이 호의에 고마워하는 수령자들에게 떨어졌다.실패한 제국 1권,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저 82~83p===============스탈린 조차소련이 전쟁에서 승리한건 미국 영국 덕분이라고 인정한 사안소련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1944년에 무기대여 물자는 소련 GDP의 10%, 즉 456억 루블을 차지했다.미국 원조의 실제적인 기여는 구체적인 결정적 영역에서는 훨씬 더 컸다.예를 들어 무기대여 물자는 소련의 트럭과 자동차의 55%, 트랙터의 20.6%, 공작 기계의 23%, 자동차 엔진의 42%를 감당했다.또 소련 알루미늄의 41%, 아연의 19%, 니켈의 25%, 수은의 37%, 주석의 99%, 코발트의 57%, 몰리브덴의 67%, 스테인리스 강철의 24.3%, 항공 휘발유의 18%, 천연 고무의 100%, 에틸렌 주정의 23.3%, 글리세린의 38%도 공급했다.게다가 미국산 식품, 신발, 스튜드베이커 트럭은 소련군이 스탈린 그라드에서 베를린으로 진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실패한 제국 1권,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354~355p====독소전쟁 당시 대규모 산업단지와 농업단지를 상실한 소련이 체제를 유지할수 있었던건 랜드리스 덕분소련군의 기계화, 차량화 또한 미국의 랜드리스 지원이 막대했다.1944년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의 기동포위와 베를린으로의 진격도 미국 랜드리스에 의한 것이후 소련은 돈 없다며 미국에게 럔드리스 빚 안 갚다가2006년 러시아때 원금의 2.6%인 2.4억 달러만 갚고나머지는 미국이 전부 탕감시켜 줬다. 사실상 무상원조반면 일본의 도움도 있었는데일본이 신생국가 중국공산당에 수십년간 ODA 지원함중국의 발전은 실은 "일본에도 크게 지원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아는 중국인은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중국의 Q & A 사이트 지식乎는 최근 "일본에서 이렇게 도움을 받았건 믿고 싶지 않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정부 개발 원조 ( ODA )를 소개하는 게시물을 게재했다.기사 중국인 필자는 1979 년 부터 약 40년 동안 일본이 중국에 총 3 조 6000 억엔을 넘는 규모의 원조를 실시하고 왔다는 많은 중국인이 모르는 진실을 전하고있다.중국인 필자는 일본이 중국의 어느 도시에서 어떤 프로젝트 를 얼마나 금액을 걸고 도와 왔는지 목록으로 소개하고있다. 많은 철도의 건설 · 확장 · 전자 항구 건설, 수력 발전소 건설, 병원 · 공장 · 공항 건설 등 인프라 정비에서 악단의 악기 제공과 백신 접종 확대 계획에 대한 지원 등도 포함 있다. 모두 중국인 생활에 직결되는 것 뿐이다.중국에서는 " 중국인이 생활 할 수있는 것은 공산당 의 덕분"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지만, 일본이 이만큼 많은 도움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많은 중국인 은 지금도 모르는 상태이다.중국인 필자는 또한 예를 들어, 약 20 년 전에 귀주 지방의 농촌 일본의 원조로 만들어진 물탱크와 수도 시설이 지금도 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은 "다른 수리 시설은 사용할 수 없게되었지만, 이것은 지금도 사용할 수있다. 하지만 누가 만들 었는지는 모른다"고 있다고 소개했다.또한 일본의 원조로 건설 한 충칭의 모노레일도 지금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장소가 있지만, 당시 중국에는 모노레일 기술이 없어 일본의 기술 지원이 없으면 만들 수 없었던 것을 알기 중국인은 거의 없다 그렇다.중국의 현대화를 지원했다 "최대 원조국 '로 일본은 거액의 ODA 원조를 해왔는데 많은 중국인 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너무 부자연 하지 않을까. 중국인 은 기사의 중국인 필자가 말하는 "믿고 싶지 않다"사실을 더 알아 주었으면 것이다. (편집 담당 : 무라야마 켄지) ( 이미지 사진 제공 :123 RF)즉 마오쩌둥 대약진운동으로중국인 7000만명 집단아사 되며쓰레기 철강제철로 변변한 기술도 산업도 전무하던 시기에중국의 근대화를 촉진시켜 주고 지원해줬던게 일본국
작성자 : ㅇㅇ고정닉
르노의 원메이크 대회 역사에 관하여
밑에 르노가 GT3 만들었다는거 보고 씀 르노는 프랑스의 대중차 기업으로써 고성능 차량과는 거리가 먼 기업임 하지만 여타 프랑스의 대중차 기업이 그렇듯(푸조, 시트로엥 등) 모터스포츠에 참여한 역사가 엄청나게 길고 큰 족적을 남겼음 이번 글은 르노가 이상하리만치 집착한 원메이크 레이스에 대해 다뤄보려고 함 르노가 원메이크 레이스를 존나게 많이 차렸다 보니 뭐가 시초인지 정보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위키피디아에 목록을 정리해둔 글이 있었음 시초는 1966년 르노 8 고르디니 컵. 첫 우승자는 로버트 미수엣(발음이 헷갈림)이라고 함 이 대회는 프랑스에서만 열리다 1969년 스페인에서도 개최됨 스페인에서의 첫 우승자는 살바도르 카넬라스. 르노 8이 단종되거 대체되는 대회로 르노 12 컵이 있었음. 다만 정보가 부실하고 비교적 평범한 차였으니 패스하고 그 다음 대회 차량인 르노 5 터보 컵을 보자. 참고로 1974년부터 영국에서도 대회가 열렸고 넬 맥그레스가 3연챔+1챔을 먹었다. 이탈리아에서도 1975년부터 대회가 열림. 스위스에서도 1978년 대회가 열리기 시작. 르노 5는 평범한 FF 소형차인데, 우리에게 이 차가 유명한 이유는 다들 알 것임 바로 5 터보라는 트림 때문. 알다시피 FF 차량이 베이스인데 엔진을 미드십에 쳐박고 뒷바퀴를 굴리는 정신나간 차량은 랠리에서 미친 활약을 선보여서 유명함. 이 차로 원메이크 대회를 열며 대회 인지도가 올라갔고, 미국에서 원메이크가 열린 것도 이 때부터. IMSA 르노 컵이라는 이름으로 1982년부터 열렸음. 그리고 시간이 흘러...(중간 내용은 알아서 찾아보도록 하셈) 르노는 다시 한 번 레이스만을 위한 이상한 차를 만들기로 함 바로 2000년 르노 5의 후속 르노 클리오에 V6 엔진을 심기로 한 것.(사진은 도로용, 페이즈 2) 그냥 평범하게 6기통 엔진을 앞에 실었다면 화제가 안 되었겠지만, 르노는 이번에도 엔진을 뒤에 싣고 뒷바퀴를 굴리게 하는 미친 짓을 저지른다. 이 때 남미에서도 원메이크 컵이 열리고, 독일에서도 열리는 등 대회가 더 커짐. 그리고 2005년, 르노는 이전까지 진행하던 메간 쿠페 컵과 클리오 V6 컵을 대체할 새로운 차를 내놓는데...(클리오 컵은 다시 평범한 FF 클리오로 대체됨) 바로 이 차 되시겠다. 르노 원메이크에서 R.S. 01 이전까지 최상위 티어를 담당하게 되는 르노 스포트 메간 트로피인데, 클리오 V6처럼 엔진을 미드십으로, 뒷바퀴를 굴리는 MR 쿠페가 되었음. 차량 관리는 마녜티 마렐리가 맡았고, 엔진은 르노 벨 사티스에 들어가는 V6을 튜닝해 320마력까지 올려서 얹었는데, 사실 이 엔진은 닛산의 VQ35DE다. 뭐냐면 SM7 3.5와 같은 엔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엔진 튜닝도 닛산의 니스모가 맡았음. 그리고 메간이 풀 체인지를 거치게 되자 메간 트로피도 새로 나왔는데 생각보다 디자인이 잘 뽑혔다. 엔진은 동일한 VQ35DE를 니스모가 튜닝해 355마력까지 올렸고, 구동 방식은 동일한 MR임. 걸윙 도어까지 달려서 보면 생각보다도 더 멋있다. 워낙 디자인이 잘 뽑힌 덕에 이 차 양산 좀 해주세요!! 양산하는 김에 GT4 호몰로게이션도 채워서 대회 팍팍 나가면 좋잖아! 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르노는 우리 원메이크만으로 충분할 거 같은데? 양산은 돈도 많이 들고 그래서 힘들 듯? 하면서 거절해 버렸다. 사실 로드 버전을 만들어 버리면 저 정도의 과격한 바디킷과 걸윙 도어는 빠질 가능성이 높고, MR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메간에는 이미 고성능 트림인 R.S. 275가 있어서 굳이? 싶었을 가능성이 높다. 몇 년 뒤 메간이 페이스리프트와 풀 체인지를 거치며 메간 트로피를 사용하는 대회는 끝나고, 메간 베이스의 원메이크 레이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짐. 그래서 르노는 원메이크 최고봉 레이스인 르노 트로피 컵의 명맥을 잇고자 새로운 차를 만드는데... 바로 이 차, 르노 스포트 R.S. 01 되시겠다. 디자인은 2010년 나온 콘셉트카 르노 드지르를 기반으로 마침 자사가 내놓은 플래그십 중형차인 탈리스만(SM6)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이식했다. SM6이 다 까여도 디자인은 안 까이는 만큼 역시 디자인은 나온 지 9년차인 지금도 이쁘다. 엔진은 닛산 GT-R의 VR38DETT를 550마력으로 조정해 미드십에 탑재했고, 섀시 개발엔 달라라가, 파워트레인 설계엔 니스모가 참여했다. 한편 르노가 지금까지 아예 만든 적이 없던 태생부터 MR인 차인데다 이렇게 잘 빠진 차를 오로지 원메이크 대회에만 투입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로드 버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함. 왜냐? FIA-GT3 호몰로게이션 조건엔 공도용 버전이 200대 이상 판매되어야 했기 때문임. 근데 르노는 이번에도 공도용 버전은 없다고 못을 박아버림.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으나, 대신 르노는 FIA-GT3 공인이 아닌 다른 GT3 대회는 나가도 되잖아? 라며 뉘르부르크링 24시와 같은 대회에는 참여함. SP-X 클래스로 참여해 최고 기록은 2등. 이후로 르노는 더 이상 원메이크 전용으로 차를 만들지 않았고 알핀 브랜드를 부활시킨 후에는 A110 원메이크와 클리오 컵만 열고 있음. 참고로 A110 원메이크는 한국에서도 열었는데, 한국에 A110은 단 100대만 수입해 팔았다는 점이 웃긴 점이다. 글이 존나 길고 장황하며 내용도 영양가가 없지만, 이걸 끝까지 읽어준 갤러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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