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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추억 은어 루어낚시 조행기 1편
https://youtu.be/W66U8q1-Ga4설명이나 사견이 존나 깁니다그리고 앞으로도 존나 길어집니다편하신대로 보십쇼금어기를 제외하고 5월21일~8월 31일까지 낚시가 가능한 강원도 은어낚시1년에 100일 남짓 가능하고 시즌이 짧은 장르다강원도 해산은어는 8월 중순부터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시즌이라서 올해는 빡세게 준비 ML대에서 MH대로 스펙업을 하고루어는 틈틈이 채워뒀는데역시 시즌때는 원하는 색상 구하기가 어렵다미리 더 사둘걸...바늘도 7호~9호까지 여러가지 준비했지만턱 없이 부족했다7~8월이 되면 은어 바늘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움찾는 사람은 많고 파는곳은 적다 그래서 인기가 많은 제품은 항상 품절..은어 바늘은 소모가 많이 심한데밑걸림이나 바위에 몇번 쓸리면 바로 교체해야 하는 수준이고바늘이 얇아서 샤프너로 갈아서 쓰는것도 몇번 못씀바늘 1개에 1000~2000원 꼴바늘값도 만만치가 않다하루 종일 낚시하면 적어도 바늘 10개 이상은 그날 쓰고 버린다고 보면 된다20개 버리는 날도 있고 그럼다행히 현지 낚시방에 바늘이 그럭저럭 남아 있어서대부분 여기서 충당했다경력이 20년은 무슨,, 40년이 넘는 현지 은어 놀림낚시 조사님들도 계셔서필드와 낚시 정보도 얻어 들은건 덤이다ㅎㅎ저는 은어 이제 2년차고 산천어 16년 했어용 하니까 얼마나 뉴비 같았을까ㅋㅋㅋㅋ8월 12일은 비가 제법 내렸고 13일 오전까지 비가 내렸다계류에서 산천어랑 야쓰 한판 조지고시작은 계류가 아니라 중류권으로 나왔다오후 6시에 도착해버린 은어 포인트처음가는 장소인데 너무 늦게 왔다철수하는 놀림 조사님께 상황을 들어보니 오전에 4팀 정도 이미 다녀간 포인트고 지금은 거의 안나온다고 하셨다첫날은 상황만 보기로 하고싱킹,바이브레이션+8.5호 바늘로 빠르게 탐색하기로 했다은어 크기보다 바늘이 너무 컸다 살이 벌어져서 랜딩하다가 털릴뻔 했다내일이면 광복절이고 이만한 사이즈가 나올 시기가 아닌데....이상하다강원 영동지방 가뭄이 심각해서 그런거 같다올해는 가뭄으로 어도가 막혀서 하천의 상류인 계류까지 소상이 막힌 장소이고계류까지 소상해야 잘먹고 크게 자란다(수온도 낮고 바닥이 더 깨끗하고 이끼가 좋으니까)은어가 봄에만 소상하는건 아니다해산은어는 6월,7월 여름에도 바다에서 뒤늦게 소상하는 개체들도 있다개체마다 산란시기나 부화 기간이 달라서 그렇고여름에 소상하는 개체들은 수온이 높아서 바다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져서 더 작다고 한다그대신 하천 상태가 좋다면 이녀석들도 쑥쑥 자라는데올해는 장마나 태풍이 없다보니 비가 내려서 이끼가 적당히 씻겨나가고 새로 자라는 연한 이끼가 없고은어가 먹기 힘든 뻣뻣한 이끼만 깔려있다 보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못 큰거 같다이러쿵 저러쿵 첫날은 이렇게 탐색 종료8월 15일 광복절전날 밤새고 13시간 가까이 낚시 다녀서 늦잠자고 오후 3시에 지각돼지열병 울타리 때문에 진입로 찾는게 일이다근처에 지류가 있어서 차가운 물이 계속 유입되는 장소다당연히 이런 필드는 은어 놀림조사님들이 포진해 있다놀림낚시는 장대가 아무리 짧아도 길이가 7m 이상이고 8~9m를 많이쓴다그래서 공략 범위가 기본 20m 이상이니까 최대한 넓게 벌리고20~30m는 떨어져서 이삭 줍기나 해봐야겠다시작은 서스펜딩 미노우로 탐색은어 사이즈 가늠이 안되니까 7.5호~8.5호까지 천천히 바꾸기로 했다1시간 정도 가볍게 탐색 큰 반응은 없었다바이브로 교체해서 상목에서 공격성 좋은놈 찾아보기로 한다미노우는 공격성이 약할때 천천히 공략하면서 탐색하기 좋고 채비 조작성이 많이 요구되지만 밑걸림 걱정이 거의 없다바이브는 공격성이 강한 녀석들만 대부분 반응을 해주고 탐색이 빠르고 운용은 쉽지만 밑걸림이 매우 심하다 상목에 넣자마자 여울에서 올라와서 때리는게 보였는데걸린 위치가 안좋은거 같기도 하고 바늘이 제대로 안박힌건지...참 아쉽다이후에도 몇번 은어가 때리긴 했으나 이상하게 걸리지 않았다이날은 다이와 스페셜 킵 8호 바늘을 테스트 해봤는데걸리는 속도는 느리지만 털림에 강한 바늘이고바늘 끝이 장축으로 긴편이라서 격류가 아닌 이상 루어는 그렇게 잘 걸리는 바늘은 아닌거 같다지각생의 말로다현지 놀림 조사님들과 잠시 얘기를 나눠보았는데최대어가 20cm정도라고 하시니 8월 사이즈를 기대할 장소는 아닌거 같다그래도 은어 루어낚시 하기에는 흐름도 일정해서 미노우 굴리기는 편한 포인트였고바이브는 호박돌이 많아서 밑걸림으로 꽤나 애를 먹었다개체수도 나름 눈에 띄였지만 먹자리를 덜 잡은게 많이 보였다물론 오전에 갔으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내년 6~7월에는 자주 찾지 않을까 싶다철수하면서 작년에 찾아두었던 포인트들도 돌아보는데공사와 가뭄으로 망가진 장소도 많고 은어가 없다바닥에 이끼가 짙은 돌 투성이다다음에는 어디로 가야할까 막막하다....주말동안 사람이 최대한 없는 장소가 어디일까...올해는 은어가 소상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집에서 5분거리 계류로 왔다이날은 필드 탐색 위주로 하고 내일 쇼부 보기로 한다있기는 있다 근데...자리를 덜 잡았다먹자리도 설명이 매우 긴편이라 추후에 설명 하겠음은어가 싸우지도 않고 사이좋게 다닌다니들은 좀 싸워라ㅇ?평화주의자 같은 은어는 잡기 어렵다놀림낚시도 그렇고 루어도 마찬가지다먹자리 잡은 녀석도 겨우 하나 발견했다겨우 한마리...일단 내일 해보자 어쩔수 없다8월 17일 수온 25도이쪽은 물도 없고 열대야도 심해서 아침 새벽이나 오후나 올해는 매번 이런식이다은어는 냉수성 어종은 아니지만 20~24도가 가장 활성도가 좋았다경험상 낚시가 그나마 가능한 수온은 26도가 마지노선인거 같더라바이브로 잠깐 반응보고 흐름도 약해서 바로 다이와 플랫미노우로 바꿨다활성도가 별로고 탐색 시간을 오래 봐야할거 같다흐름에 태운 상태로 작은 트위칭으로 바위에 비비고 5초이상 스테이를 주면서 5분이상 길게 봤다트위칭주고 뒤로 밀려가는 루어를 살짝 때렸는데안걸렸다...걸고나서 털린거면 이해라도 하는데이런 경우가 꽤 많았던터라,,바늘 종류? 호수? 길이?뭐가 문제인지 알수가 없으니땀은 비오듯이 흘리는데 머리는 아프고 돌아버리겠다또 안걸렸다비늘만 걸려나왔다 바늘이 제대로 안박혔다는 소리다원인은 몇가지 있다첫번째 바늘 날이 무뎌진 경우=안박히는게 당연하다그래서 계속해서 안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바로 바꿔야한다 오늘은 주의깊게 보지 못했던거 같다두번째 바늘 종류가 포인트에 적합하지 않았다세번째 은어 비늘과 피부가 단단하다소상초기인 5월 6월에는 살이 연하고 증수인 상황에서는 은어의 비늘과 피부가 매우 연하다즉 바늘이 매우 잘 박히고(랜딩중에 살이 쉽게 벌어져서 털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잡기도 쉽다 반면에 갈수기나 고수온에는 비늘과 피부가 딱딱해진다7월 중순이 지나면서 체급도 부쩍 커지고 비늘도 커진다 시즌 막바지인 지금은 은어 피부가 무척이나 단단해서 바늘 끝이 굉장히 날카로운 바늘이 필요하다2연꽝이다여기도 글렀다날 한번 제대로 잡아야겠다새벽 5시뒷집 고양이들이 아침부터 반겨준다가는날이 장날이라고구름끼고 바람이 터졌다흠...가는길에 루어랑 바늘도 보급하고-43000원오전 7시 포인트 도착현지 조사님들이 8월초에 많이 털어갔다, 고기가 많이 빠졌다, 내림하고 있다얘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산천어 다니면서 14년만에 찾아간 포인트라서 감회가 새롭다수온도 21도 물색도 투명하고 바닥도 좋고 아주 좋다오늘은 뭔가 될거같다또 지랄 시작반응은 좋고 은어가 툭툭 치는데 왜 안걸리지??속 타기 시작바람 터지고 개판났음아 카메라...그렇게 오전내내 죽쒓다바이브 쓰기 좋은 장소도 아닌데 몇번 재미봐서 그런가미노우 잘만 썻는데 왜 바이브만 고집했는지 모르겠다밑걸림 지랄나서 저렇게 운용도 제대로 못한게 대부분오후에는 우연히 갤럼 만나서 가이드 하기로 했다물론 내가 ㅈ밥이라 꽝칠게 뻔해서 은어 루어낚시 프로 센세한테 sos콜 날려서 도움도 구해봄ㅋㅋ장비랑 채비는 다 빌려드리고 이러쿵 저러쿵뭐가 좋을지 맞춰보는중오후에는 미노우 위주로 굴리고시간이 짧아서 오전내내 지지던 포인트만 긁다보니결론은 꽝이다이후에는 계류낚시 대화들 나누다가 5시쯤 철수했다시간이 더 있었고 포인트 발품을 팔았으면 어땟을까 싶다복귀도 하셔야 하는데 멀리서 와준 갤럼 괜히 고생만 시킨게 아닌가 싶었지만;;기회되면 한번 뵙고 싶었던분이라 굉장히 즐거운 만남이였음https://youtu.be/VbLmBoCciwc2일뒤그동안 쌓인 피로가 터지고 뻗음점심에 도착오늘은 어떻게든 잡고만다수온 24도 수량도 많이 빠졌다오늘은 미노우도 섞어쓰고 발품 팔면서 빠르게 다녀보기로전에 갤럼하고 잠깐 탐색했던 장소인데은어가 많이 안보이던 장소라서오늘은 잔잔한 장소는 빠르게 넘기고 쌘통 찾아보기로 함?엄 영상 용량 맞춘다고 컷편집함걸린지 몰랐던 이유가 보통은 덜커덩! 하는데바늘끝에만 살짝 걸린 상태로 상류로 냅다 째버려서라인보고 눈치챔아드레날린 터지면서 손 떨리고저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큰 녀석도 아니지만힘 좋았으니 개추은어가 왜 계속 안걸렸는지 몇가지 의문이 해결됐음첫번째 은어 체급보다 바늘이 너무 작았다8호로 걸어냈는데 이때까지 8호~8.5호를 주로 썻음그런데 9호를 써야지 확실하게 잘 걸리는 크기였음놀림낚시는 8~8.5호면 채비 시스템으로 저정도 사이즈도 충분하고 바늘이 잘 박힘그러나 루어는 기본적으로 흐름이 좋아야 잘박히고흐름이 약하면 바늘 끝에만 살짝 걸려서 후킹이 필요한 경우도 많음그래서 잘 걸리게 하려면 바늘을 크게 쓰는 방법밖에 없음8월 비늘과 피부가 단단한 지금 시기에는 놀림낚시보다 바늘을 0.5~1호는 더 크게 쓰는게 좋음두번째 바늘 종류의 선택이 잘못됨태축 바늘을 주로 썻는데 가장 두껍고 무거운 바늘임 태축은 대점용(25cm이상)이나 격류용임이번에는 우연히 용도에 맞는 필드였고 8호 중축이였으면 살 벌어져서 또 털리지 않았을까 싶다여태껏 태축으로 잔잔한곳 비비고 있었으니 당연히 잘 안걸렸겠지이후에는 해도 저물고 늦어서 시마이ㅈ간이 미안해ㅠㅠ1편은 3연꽝 처박은거부터 솔직하게 그대로 씀원래 고기 못잡는놈이 혀가 기니까 이해 해주길 바람50장 넘어가서 용량이랑 영상 수정하고 계속 하다보니까 5시간 걸림..2~3편 넘어갈거 같은데 개소리말고 정리 좀 해보겠음
작성자 : 고정닉이라능고정닉
한 게임에 12년을 갈아넣은 미친 개발자 이야기
미숙한 폴리곤 덩어리의 모델링들, 물리 엔진을 다루고 있지만 어딘가 어리숙한 듯한 마우스 포인터와 다분히 실험적으로 느껴지는 아마추어의 개발 일지 같은 영상들..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지금과 비교해 척박했던 초창기의 유튜브에 올라온 기록들이었다.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간단한 모델링 작업마저 누구라도 약간의 학습과 강좌로 조금만 손품을 팔면 그럴 듯해 보이는 습작들을 노출하고, 또 과정 자체로 수익을 얻기도 하는 시대가 됐지만,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이 더 컸던 2000년대 중반의 초기 유튜브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이 채널은 그저 알고리즘을 비웃으며 무심히 ‘관심 없음’ 버튼을 누를 법한,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무명 개발자의 발자취 같은 채널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평범해 보였던 이 채널에는 별안간 평소 업로드하던 영상들과는 결이 다른 동영상이 한 편 올라오게 된다.이 어수룩하게 생긴 캐릭터들이 칼을 부딪히고 싸우는 알 수 없는 영상의 제목은 ‘Kenshi - Free Roaming RPG’. 당시로선 생소하기 짝이 없는 합성어였고, 영상은 한 게임의 엉성한 초기 프리뷰에 가까웠다.그러나 훗날, 이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영상은..누적 230만 장을 판매한 ‘켄시’라는 게임의 기원으로 회자되며, 영국 브리스톨의 평범한 게임 개발자였던 크리스 헌트는 인디 게임 역사에서 가장 유구한 성공 신화 중 하나가 된다.이 수염이 인상적인 사람은 크리스 헌트다.기묘한 포즈와 표정을 취한 사진은 성공한 인디 개발자의 특징이라도 되는 걸까?그의 생애에 대해선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가 레딧의 AMA에서 밝힌 답변들을 정리해 보았을 때, 그는 어릴 적부터 프로그래밍 책을 붙잡고 프로그래밍을 독학한 것이 관련 교육의 전부이며,단지 여러 게임과 창작물들에 매료되며 자랐을 뿐이었다.그에겐 항상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지만, 고작해 봐야 추상적인 컴퓨터 코드를 작성할 줄 아는 것이 전부였다.그는 18살 쯤이 되어서야 ‘게임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이 정도가 공개된 그의 개인적인 삶의 거의 전부이다. 마치 의도적으로 빈 칸을 남겨 둔 사람처럼 성장 과정이나 교육 배경, 사회적 환경 같은 것들이 전부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빈 칸은 오히려 그가 만든 게임인 황량하고 비정한 황무지를 배경으로 하는 켄시와 닮은 것 같은 기분을 주기도 한다.그는 자신 스스로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꿈꾸는 게임과 세계에 대해서는 끝없이 말했다. 켄시는 가혹한 게임이다. 과거 찬란했던 문명이 남긴 재앙적인 손실만이 가득한 적대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황무지에서,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생존해 내야만 하고, 누구도 지식이나 길을 대신 가르쳐주지 않는다.플레이어는 이 세계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게임은 그런 착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게임은 잔혹하게도 느껴진다. 세상은 그들에게 무관심하며, 굶어 죽고, 노예로 잡히고, 팔다리가 잘리고, 턱없이 강한 적에게 잡아 먹히거나 두들겨 맞으며 바닥을 기어야 한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 가는 내러티브 중심의 RPG도 아니며,비교적 최신 게임임에도 요즘의 게임들처럼 플레이어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레벨 디자인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대신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플레이 한다면, 언젠가 플레이어는 스스로 시스템의 허점이나 틈을 찾아 살아남고,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 서서..자신이 만든 허약하기 그지 없던 캐릭터가 그 모든 역경에 맞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는 순간을 맞닥뜨리는데,이 과정은 켄시 유저들에게 있어 다른 어떤 게임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한다.크리스 헌트는 이에 대해 5월 인터뷰에서 말했다. “켄시는 ‘꾸준히 노력하고 발전하고 훈련한다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철학적 이상을 담은 게임입니다. 그것은 제가 꿈꾸는 세상이기도 했기 때문에, 직접 그런 완벽한 세계를 만들어 냈습니다.”하지만 이런 이상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그의 개발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었다.프로그래밍은 할 줄 알았지만, 사운드는 어떻게 만들며,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움직이고, 3D 모델링은 무엇으로 구현하는가? 그런 걸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가진 거라곤 평생 게임을 해 왔다는 경험과 그것을 곧장 실전으로 전환시키는 무모함 뿐이었다.하지만 모두에게 그렇듯이 좋은 게임을 만들기 이전에 그는 스스로를 부양해야 했다. 그는 게임을 개발하면서도 한편으론 먹고 살기 위해 정말 다양한 일을 했다. 이케아 카트 배달원, 계산대 직원, 공장 라인 노동자, 프리랜서 프로그래머, 전단지 아르바이트까지....정규직으로 일을 한다면 분명 안정은 있었지만, 정규직으로 주 5일 내내 일을 하며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에게 있어 게임을 만드는 일이란 남는 시간에 틈틈이 하는 부업이 아닌 본업이 되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경비원 일이었다. 12시간씩 2교대로 이틀을 일하고, 나머지 5일을 전부 개발에 투자하는 방식.그래서 그는 주말 밤에는 야간 경비원으로 일을 했고, 평일에는 쉬거나 개발하며 당시에 쉽게 구할 수 있던 Ogre 엔진에 여러 아이디어를 쏟아 냈다.이렇게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꾸준히 이어진 7년 간의 집착적인 개발 끝에 크리스는 홀로 RPG의 초기 버전을 만들었고, 그 때 즈음에 동앗줄같은 기회가 찾아 오게 된다. 2013년, 밸브가 자사 플랫폼인 스팀에 ‘그린 라이트’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그린라이트(Greenlight)란 인디 제작자가 직접 자신들의 게임을 올리고, 커뮤니티 투표로 생사를 결정짓는 시스템이다.당시 기준으로는 말 그대로 유일무이한 대형 게임 플랫폼에서 인디에게 적극적으로 문을 열어 준 최초의 제도였다. 헌트와 같은 개인 개발자들과 인디 스튜디오들은 당연히 너도 나도 이 기회를 잡기 위해 그린 라이트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했고, 그 수는 수천 개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린라이트 제도와 ‘커뮤니티가 가능성 있는 게임을 발굴한다’는 취지는, 봇들이 출품된 게임의 투표를 조작한다거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게임들이 우후죽순 등록되어 제대로 된 심사가 마비되어 버리고 마는 과정으로까지 훼손돼 금세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다행히, 켄시는 그 이전에 그 중에서도 프로젝트 좀보이드, 크라이 오브 피어 등의 지금까지도 플레이되는 걸출한 게임들과 함께 그린 라이트에서 최대의 관심을 받은 첫 출시작들 중 하나로 나란히 소개되며 RPG 팬층으로부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관심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초기 버전이던 켄시의 외형은 투박했고, 시스템은 거칠었지만, 방대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와 소드 펑크라는 독특한 단어로 소개되는 이국적인 세계관이 구축돼 있었다. 정교하게 짜여진 오픈 월드와 팩션 메카닉, 기존 게임의 친절하고 사려 깊은 시스템 대신 배경의 가혹함을 전면에 내세운 설계는흔한 대자본 게임들과는 물론 다른 인디 게임들 사이에서도 크게 도드라져 보였다. 게다가 실시간 정지가 지원되는 RTS 장르와 RPG가 결합되었다는 독특한 게임 매커니즘은 두 장르의 팬들에게 큰 흥미를 유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 때부터 크리스는 켄시를 위한 개발팀을 꾸릴 자금과 여유가 생기게 된다.그린 라이트와 얼리 억세스에서의 수익으로 프로그래머와 아티스트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자신이 전부 홀로 해야만 했던 일들을 분담하고 나눌 수 있게 되면서, 크리스의 팀은 Lo-Fi Games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 그 무렵부터, 서구권의 인디 게임계에서도 그의 게임과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고, 영국에선 인터뷰를 요청하는 웹진과 매체도 생겼다. 작업물이 주목받기 시작함과 동시에 늘어나는 관심과 수익으로 인한 개발 자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에 따라 여동생 나탈리에게 켄시의 세계관의 글쓰기와 얼리 억세스로 얻은 수익을 정산하는 회계 업무를 맡기며, 본격적으로 개발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그는 그 때부터 자신의 야심을 게임에 유감 없이 쏟아 부었고, 현재의 팬들이 아는 켄시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켄시에서 플레이어는 영웅도, 예언받은 자도 아닌 아무 특장점 없는 무일푼의 떠돌이로 시작한다. 복수해야 할 악역이나 숙적도, 따라야 할 운명도 없다. 따라서 그저 황무지 한복판에서 굶어 죽거나,맞아 죽거나,잡아 먹히거나, 노예로 끌려가며 버티는 동안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언젠가 자신을 짓누르던 강대한 압제자에게라도 맞설 만큼 강해지고, 뜻에 함께하는 동료들을 모아 분대를 세우고, 결국 자신만의 도시까지 건설할 수도 있게 된다.이런 구조는 RPG이면서도 이머시브 심(Immersive sim)이고, 동시에 샌드박스이기도 한,정확한 분류조차 힘든 기형적 구조였으며,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게임이었다. "정해진 미션도, 주인공 보정도 없이 플레이어가 스스로 목표를 만든다"라는 오픈 월드 게임으로선 비현실적인 플레이 과정은 그야말로 크리스 헌트가 평생 꿈꿔 온 게임이었고, 그가 자신의 꿈을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제가 켄시를 만들게 된 이유는 ‘내가 꿈꾸던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평생 게임을 하면서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고, 그 모든 것을 하나의 디자인으로 결합했습니다.”게임의 오픈 월드는 크리스의 포부만큼이나 광활하게 설계됐다. 작은 팀이 만드는 방대한 규모의 월드 맵에 AAA급 게임들처럼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지역을 끝없이 채워 넣는 건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한계는 오히려 켄시의 미학이 되었다. 《매드 맥스》나 《소년과 개》와 같은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구세계가 묻혀 있는 끝없이 펼쳐진 텅 빈 사막과 모래 폭풍만이 몰아치는 멸망 이후의 황무지.자칫 개발력의 한계로만 보일 수도 있을 맵의 황량함은 운 좋게도 가혹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게임의 기본 테마에 딱 맞아 떨어졌고, 크리스와 그의 여동생, 그의 팀이 수작업으로 작업한 인물들과 장소, 팩션들이 플레이어를 주시하고 빈 자릴 채우며 자연스럽게 완성된 세계처럼 보여졌다.이렇게 켄시의 세상은 미학적인 선택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이유로도 크기에 비해 황량했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은, 수십 개의 서브 퀘스트나 물음표 마커, 플레이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미리 준비된 영화 같은 컷신이 아니라,플레이어가 게임의 세계와 상호 작용하며 직접 만들어 가는 여정 자체의 생기로 가득 채워지게 될 것이었다.그리고 2018년 6월, 크리스 헌트가 처음 방 한 켠에서 유튜브에 투박한 제작 과정을 올리며 켄시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던 그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12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켄시는 정식 버전 1.0을 출시하며 얼리 억세스의 끝을 알렸다. 출시 직후 켄시를 본 RPG와 오픈 월드 게임 팬덤들의 유저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게임은 낯설었고, 거친 그래픽에, 여러모로 구식이었으며, 요즘 나오는 게임이라기보단 2000년대 초반의 PC 게임과 같은 날것의 향수를 풍겼다. 조잡해 보이는 게임의 외관, 흔한 인트로나 컷신은 커녕 튜토리얼조차 없고 보상 체계나 편의성은 개나 준 듯한 모습은 처음에는 쉽게 당혹감을 불러 일으켰으며특유의 호불호 요소들로 인해 혹평과 찬사를 동시에 받는 혼돈 속에 출시했지만, 그 자체의 독특한 게임 플레이 철학과 완성도를 인정 받아2025년의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출시 초기의 불안정함을 극복하고 반향적인 인기와 충성도 높은 팬층을 확보하고독특한 경험을 원하는 RPG 팬들에게 언제나 컬트 명작으로 평가받게 되었다.“언뜻 보기에 켄시는 정신병적이고 뒤틀린 실험처럼 보입니다. 게임 엔진은 시스템을 간신히 지탱하고, 그래픽은 끔찍하게 느껴지며 버그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Kenshi가 몇 년 동안 플레이해 본 게임 중 가장 즐겁고, 압도되며, 몰입도 높은 게임 중 하나라고 평가합니다.”-GrimdarkMAGAZINE2010년대에 황금기를 맞은 게임 산업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이전 세대보다도 더 복잡해지고 고도로 산업화되어 더 이상 한 명의 개인이 언더도그마 서사처럼 밑바닥부터 성장해 재능을 펼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만 여겨 진다.유력 퍼스트 파티 게임들의 개발비는 천정부지처럼 치솟기만 할 뿐이고, 개발사들은 새로운 시도나 실험, 모험을 ‘리스크’로 치부하며 일제히 회피하게 되었다. 창의성이나 작가적인 고집보다는 안전과 예측 가능성을 우선하는 방식이 표준이 된 것이다.특히 한국에서는 이런 길은 더더욱 존재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여진다. 게임 산업은 과도하게 안정성과 수익성 중심으로 굳어졌고, 거대 퍼블리셔와 기업들을 중심으로 고착화된 구조는 견고해 보인다.이런 환경에서 실험적 시도라거나 고집스러운 열망, 창작자로서의 아집 같은 것들은 쉽게 시장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때로는 그저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모두가 크리스 헌트처럼 아집과 집착을 끌어 안고 고독한 장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켄시는 결점이 많은 불친절한 게임이고, 크리스 헌트 역시 완벽한 개발자는 아닐 것이다.다만, 그가 개발자로서 겪은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창작자로서의 끈기와 열정, 작품에 대한 고집과 애정들이야말로,하등 필요가 없는 것 같고 업신 여겨지더라도 잊어선 안 될 창작의 가장 오래된 형태가 아닐까?
작성자 : flotsam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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