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여드름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여드름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트럼프, 러시아에 관세 전쟁 선포 ㅇㅇ
- 30대부터 친구관계가 급변하는 이유 ㅇㅇ
- 파티에 왜소증 환자 고용했다는 라민 야말 논란 근황...JPG ㅇㅇ
- 와들와들 섹트하다 에이즈 걸린 만 18세.JPG ㅇㅇ
- 인천.공항서 총기 소지 중국인 검거ㄷㄷ ㅇㅇ
- 해외여행을 기피한다는 일본 Z세대의 속마음 ㅇㅇ
- 북한산성입구-북한산 백운대-한강 다녀옴 ㅇㅇ
- 사회주의 밑바닥에서 자본주의 꼭대기까지 ㅇㅇ
- 싱글벙글 최근 실시한 고속도로 암행단속의 결과.jpg 전국민면허몰수
- 일본의 현존하는 닌자.jpg 네거티장애
- IT 전공자들 싹 다 망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VWVWV
- 여자친구가 계속 거부하는 만화..manhwa 123
- 싱글벙글 한신포차 간 백종원 ㅇㅇ
- 싱글벙글 축복받은 땅도 옛말이 된 미국과 사막화 ㅇㅇ
- 조선시대 사람들이 2층 집을 안만든 이유 ㅇㅇ
디올의 뮤즈, "럭키"에 대해 알아보자.araboza
오늘도 시발 향수 얘기보다 섹드립에 여념이 없는 우리 향붕이들이 모두 알고 있는 디올의 향수 럭키. 이 향수 이름은 실제 인물이자 디올 역사에 매우 중요했던 모델 루 시 다우파르를 뜻한다노. 루시 다우파르가 누구였으며 디올과 무엇을 하였기에 향수까지 나 왔을노?오늘은 루시 "럭키" 다우파르의 삶과 죽음에 대해 알아보자.araboza(루시 “럭키” 다우파르가 태어난 모르비앙 지역)독일이 1차대젖 배상금 못 내겠다고 배째라 선언을 한 1922년, 루시 다우파르는 모르비앙의 생모데 마을이라는 개깡촌에서 태어났다.루시 다우파르의 부모는 마을의 소작농이었다. 굶주림 때문에 루시를 버리고 파리 남쪽의 발 드 루아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세 살이었던 루시만 고향에 남아 다섯 살때부터 동네 빵집에서 잡일을 했다. 아기 때부터 이미 인생이 꼬여있었다.(싸튀충은 어디가고 여성들만 남았냐)루시는 열 살 때 홀로 기차를 타고 부모를 찾아갔다. 거기서 열여섯 살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살았다.열여섯 살 때 동네 이상한 남자를 사귀었다. 남자는 애만 싸지르고 도망갔다.루시는 부모님 동네에서 멀지 않은 샤르트르의 카톨릭 기숙사에 강제로 보내졌다. 사회 밑바닥 여성들을 갱생시키는 시설이었다.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종종 매를 맞았다.(20세기 초, 여성시설의 재봉 수업)현대의 역사학자들은 20세기 초까지 있었던 카톨릭 여성 갱생시설을 아동노동, 강제노동, 노예노동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시대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이곳에 입소한 여자들은 애미 없는 고아거나 창녀 출신이거나 최하층 빈곤여성이었다. 이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재봉틀을 돌렸다.하지만 이곳의 경험이 루시 다우파르의 훗날을 바꾸었다. 여기서 배운 재봉 기술을 통해 패션계와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1940년, 독일군을 피해 탈출하는 파리지앵들)루시는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기숙시설을 탈출해 독일군이 점령한 파리로 갔다. 거기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같이 공장에서 일했다.남편은 루시와 결혼한지 반 년만에 실종됐다. 이번에는 자발적 싸튀충이 아니었다.루시는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았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재봉 알바를 했다.(메종 아녜스 드레콜의 이브닝 드레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루시는 재봉 알바를 계기로 아녜스 드레콜의 피팅 모델이 되었다. 전쟁 때문에 파리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모델이 될 수 있었다.당시 모델이 하는 일은 옷을 입고 서있는 게 전부였다. 루시는 예쁘지는 않았지만 키가 크고 목이 길었다.아녜스 드레콜은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실 드레스를 만들던 대단한 회사였다. 나중에 2차 대전의 영향으로 망해 없어졌다.(디자이너 마기 루프)아녜스 드레콜 파리 지점을 경영하던 디자이너 마기 루프는 자신만의 컬렉션도 만들고 있었다. 엄청난 부자이자 거액 상속녀였던 그녀는 전쟁 중에도 패션 제품을 계속 생산했다.독일군의 파리 점령 중에도 고급 패션을 만들던 디자이너 하우스는 마기 루프, 에르메스, 로샤스, 니나 리치, 자크 파뜨 등 소수에 불과했다.루시는 마기 루프의 소개로 다른 디자이너들의 피팅 모델 알바도 했다. 그러다가 자크 파뜨와 독점 계약을 하고 정식 패션 모델이 되었다.(자크 파뜨의 드레스를 입은 루시 다우파르. 이래보여도 20대 때다.)자크 파뜨는 피에르 발망, 크리스찬 디올과 함께 전후 오뛰꾸뛰르 패션 삼대장으로 일컬어지지만, 생전에는 발망, 디올과 격이 다른 거물이었다.자크 파뜨는 온가족이 유명한 예술가나 작가인 집안 출신이라 예술계 핵인싸였고 대단히 부유했다.루시가 자크 파뜨의 모델이었던 당시, 자크 파뜨에서 일하던 견습 디자이너가 지방시, 발렌티노, 기 라로쉬 등이었다.같은 시기 피에르 발망은 로베르 피게의 조수였고 발망의 친구인 디올은 그냥 덤으로 딸려있는 두번째 조수에 불과했었다.(당시의 일반적인 패션 모델. 오른쪽이 자크 파뜨)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부유하고 우아한 사람들이 다시 파리에 돌아왔다. 젊고 예쁜 20대 초반 여성들이 오뛰꾸뛰르 모델 일을 차지했다.종전 후 루시는 몇 년간 극도의 빈곤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미 거의 퇴물이었다.원래부터 좆나 못생겼던 데다 어린 시절부터의 고생으로 폭삭 삭은 그녀는 일거리를 거의 구할 수 없었다. 위 사진에서 자크 파뜨의 평범한 모델과 루시의 면상만 비교해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당시 루시에게는 아이가 벌써 넷이나 있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다 달랐다. 남자들은 애만 싸지르고 도망가거나 실종되었으므로, 루시 혼자 아이 넷을 돌봐야 했다.(루시 다우파르와 크리스찬 디올)루시가 다시 찾은 일자리는 이제 갓 독립해 쥐좆만한 옷가게 하나 가지고 있던 하꼬 디자이너의 모델이었다.크리스찬 디올이라는 이름의 하꼬 디자이너는 미신을 믿는 또라이였다. 항상 부적을 지니고 다녔던 그는 점성술로 사람 만나는 날, 외출해도 되는 날, 집에만 있어야 하는 날을 정하는 사람이었다.디올은 전쟁 기간 유명 디자이너들의 모델이었던 루시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녀를 “럭키"라고 불렀다.세 살 때 부모에게 버림 받았던 가난한 시골 계집이 루시 “럭키” 다우파르라는 레전드 모델이 된 순간이었다.루시의 인생 마지막 순간이자 그녀의 불꽃 같은 전성기가 시작된 순간이기도 했다.(1949년 루시 “럭키” 다우파르가 처음 등장한 디올 패션쇼)패션계 역사는 모델 루시 “럭키” 다우파르의 디올 시기 이전과 이후가 뚜렷하게 다르다. 사실상 루시로부터 “패션쇼” 가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그렇다.루시는 고급 드레스를 사러 온 부유층 고객들 앞에서 음악을 틀고 당당한 표정으로 걸었다. 사진 속 팔과 손의 독특한 포즈를 자세히 봐라. 루시 이전에는 패션계에서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루시가 없던 1948년의 디올 콜렉션 발표회)“패션쇼” 이전에는 디자이너가 새로 만든 콜렉션을 공개하는 발표회가 있었을 뿐이다.모델은 옷을 입고 고객들 앞에 멀뚱멀뚱 서있다가, 뒤로 돌아보세요 하면 뒤로 돌고, 그저 옷을 보여주었다.고객들은 옷만 보았다. 아무도 모델을 기억하지 않았다. 모델보다 옷이 돋보여야 했기 때문에, 모델은 기억에 남지 않아야 했다.(특이한 포즈를 취하는 루시 “럭키” 다우파르)그랬던 것을 루시는 당당하게 걷고, 워킹 사이에 특이하지만 인상에 남는 포즈를 취하고, 다시 걷고, 다시 포즈를 취하는 “쇼”로 만들었다.옷보다 모델이 돋보이긴 했지만, 루시의 디올 패션쇼는 여느 디자이너들의 발표회와 다른 것을 보여주었다.그저 옷을 보여주는 현장이 아니었다.루시의 디올 패션쇼는 전쟁이 끝난 세계의 아름다움과 약속된 미래의 풍요로움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좆밥 디자이너였던 디올의 이름도 루시와 함께 세계에 알려졌다.(디올 드레스를 입은 루시 “럭키” 다우파르. 뭔가 다른 아우라가 느껴진다.)루시가 서른 두 살이 되던 해인 1954년, 그녀는 세계 최초로 모델 노동조합을 설립했다.노동조합이지만 회사에 맞서 싸우는 일을 하는 데가 아니었다. 잘 나가는 모델 조합원들과 후원자들에게 걷은 돈으로 빈궁한 모델들을 돕는 일을 했다.빈궁했던 모델들이 잘 나가게 되면, 그녀들이 낸 돈으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모델들을 다시 돕는 구조였다.갑자기 아프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모델들이 루시가 설립한 노조의 도움을 받았다.이러한 상호부조 형태의 사회제도가 현재는 연금이나 건강보험, 사회연대기금 등으로 정착되어 있다. 루시의 시대에는 법제도가 없거나 미비했기 때문에, 그녀는 뒤질 때까지 법률적인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디올 드레스를 입은 루시 “럭키” 다우파르)서른 여섯 살에 은퇴한 루시는 모델 학교를 설립했다. 모델처럼 걷는 법, 몸을 관리하는 법, 눈썹부터 손가락 끝까지 세세하게 포즈를 잡는 법을 가르쳤다.작게 시작했던 모델 학교는 이후 패션계의 유명한 모델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지금은 루시처럼 걷는 “워킹”이 패션 모델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그녀는 마흔한 살의 이른 나이에 암으로 죽었다.(디올 럭키)디올의 향수 “럭키”는 모델 루시 “럭키” 다우파르에게 헌정된 향수다. 그녀는 디올의 뮤즈이자 미신의 대상이었고, 디올 패션을 일으킨 장본인이다.향수 “럭키”는 생전에 은방울꽃을 부적으로 지니고 다녔던 크리스찬 디올의 미신에서 영감을 받았다. 은방울꽃을 메인으로 하는 가볍고 순결한 향기다.하지만 사회 최저층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았던 루시의 생애나, 패션 모델로서 당당하고 특출났던 그녀의 이미지를 닮지는 않은 것 같다.모델들의 보돕보였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사회적 리더로서의 모습도 담겨있지 않다.은은하고 깨끗하지만, 은은하고 깨끗하기만 한 이 향수는 프랑수아 드마쉬라는 거장 조향사의 작품임에도 다소 심심한 평작으로 평가된다.(디올 럭키 에스프리)럭키 에스프리는 드마쉬의 뒤를 이어 디올 조향사가 된 외노자 새끼가 만든 좆망작이다.외노자는 오리지널 럭키에 흙냄새와 인돌릭한 땀냄새 등을 더했지만, 이 향수에 어울리지 않는 인공적인 단내를 너무 두텁게 넣어버려서 개쳐망했다.애 딸린 못생긴 흙수저로 시작해, 세련된 패션의 미래를 보여준 레전드 모델이 된 럭키.진정으로 그녀를 닮은 향수는 언제쯤 나올 수 있을노? [시리즈] 향수의 역사 시리즈 · 남자향수의 럼향에 대해 araboji· 유명 조향사들의 헤어스타일을 알아보자.araboja· 사라져버린 전설의 레전드 향수 썰 푼다 (feat.난교)· 향수를 사랑했던 아르누보 예술가의 그림· 싱글벙글 끌로에 이야기· 망트 라 졸리의 슬픈 역사를 알아보자.araboza· 칼리스 베커와 향기의 민주주의 그리고 빨통· 칼 라거펠트 비하인드 스토리· 입생로랑 향수가 유명해진 계기· 후방) 우비강의 역사 ~귀족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레뱅 게르부아에서 ㄹㅇ로 있었던 사건.true· 팬데믹 기간 중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향수· 향수산업이 이집트에 만들어준 수십만 일자리· 향긋향긋 향수 디스커버리 세트의 역사· 오우드와 장미 이거 정보· 오리엔탈 향수의 뜻과 초기 오리엔탈 향수· 미국 창녀는 어떤 향수를 뿌릴노?· 향수에 관한 넷플릭스 드라마· 좋 바바토.스 아티산의 짧은 역사· 향붕이 영화 추천한다 (feat.겔랑)· 향수업계 호구 남편 넘버원· 뚜왈렛이란 무엇일노· 2010년대 초반이 향수업계 정점이었던 이유.eu· 향긋향긋 버버리의 운지· 향수에 관한 각종 통계· 몽롱한 환각성 향기, 다투라 이야기· 최초의 부지향수· 아키갈라우드,,,, 헤응· 샤넬 19번· 싱글벙글 옛날 향붕이들이 쓰던 향수촌· 일제시대... 향수...
작성자 : 안태우고정닉
스압)) 선동과 날조가 진행중인 왁물원.jpg
최근 올라온 왁물원의 한 인기글나무위키가 편향적이라며 최근 삭제된 이세돌 문서들을 나열하였다.나무위키에 익숙하지 않는 원주민들에게"타 그룹과 차별한다." "문서를 편집하면 차단당한다."라며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데...저 문서들이 진짜 왜 삭제됐는지 한 번 하나하나 알아보도록 하자.참고로 나무위키는 삭제된 문서의 내용을 볼 수 있으며,삭제에 대한 토론이 있다면 토론내용도 전부 열람할 수 있다.먼저 가장 눈에 띄는 음악 문서들가장 음악 작업이 활발한 사람 중 한명인 징버거를 먼저 살펴보았다.이게 해당 문서의 전체 내용이다.모니터 하나에 다 담길 정도이다.자세히 보면 '오리지널' 곡만 정리되었기 때문에 음악 활동에 비해 내용이 적은 것.이렇게 내용 자체가 적은 단독 문서는 상위 문서로 통폐합되거나, 토막글로 간주되어 삭제될 수 있다.실제로 해당 문서는 징버거 개인 문서에 통합되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고,삭제된 것이 아닌, 검색하면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다.그나저나 왁물원 글쓴이는 "다른 방송인"들과 비교하라고 하는데,혹시 모르니 홀로라이브, 플레이브, 스텔라이브를 기준으로 문서들을 검색해보았다.홀로라이브의 경우 이세돌과 마찬가지로 본인들 문서에 정리된 것을 볼 수 있다.음악 활동량이 엄청 많은 아티스트는 내용도 방대하기에 음악 부문만 단독문서로 정리되어있다.이마저도 오리지널과 커버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정리한 것도 볼 수 있다.스텔라이브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제 1년밖에 안된 멤버조차도 10개가 넘는 수록곡의 내용이 있기에, 내용이 방대해서 문서를 개별화한것을 볼 수 있다.이쪽도 또한 오리지널과 커버를 나누지 않았다.즉, '오리지널' 문서는 오리지널 곡들을 묻으려는 게 아니라, 내용 자체가 적어서 상위문서로 통합한 것 뿐이다.그리고 노래방 수록 목록 문서는...내용이 이게 전부이다.따라서 삭제된 것이 아닌, 버츄얼 그룹에 하나로 통합하였다.비교할 필요도 없이, 홀로라이브와 스텔라이브도 같이 목차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이 음반 틀 문서는 더욱이 볼것도 없는게...그냥 이름만 바뀐 것 뿐이다...음악 관련 문서들은 이러하니, 다른 주제의 문서들도 보도록 하자.특이하게 커뮤니티 규정 문서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왜 이런 문서들이 존재하는지부터 역으로 궁금하지만,편견을 버리고 일단 다른 그룹도 이러한 규정 문서가 있는지 살펴보았다.본인들의 문서에 방송 규정만 목차로 간단하게 정리한 것 외에는별다른 커뮤니티 규정들은 찾을 수 없었다.그렇다면 이세돌 커뮤니티의 규정에는 무언가 특별한게 있어서 그런것일까?해당 문서들에는 단순히 커뮤니티 규정을 복붙한 내용밖에 없다.말 그대로 문서로 남길 이유가 없기에 삭제된 것 뿐이다.나무위키에서 규정을 검색해보려는 사람들은 그냥 커뮤니티에서 직접 찾자...이번엔 케미 문서이다.케미는 멤버 조합에 따른 애칭을 뜻하는 것으로보인다.일단 이세돌 케미 문서는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삭제된 것은 위에 보이는 '틀'을 그냥 표로 바꾸면서 '틀 문서'만 삭제된 것이다.틀이란, 위처럼 여러 항목들을 문서나 목차에 하이퍼링크시켜 찾아가기 쉽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비교 대상인 플레이브도 이러한 케미 문서가 있다.다른 점은 '틀의 여부'인데, 해당 틀의 역할은 하이퍼링크이다.즉, 저 표에 있는 모든 단어들이...이런 식으로 개별 목차로 연결된다는 뜻이다.하지만 이세돌 케미 문서는 이러한 목차 자체가 없을 정도로 서술량이 매우 적기에, 틀이 필요가 없어서 삭제한 것 뿐이다. 비유를 하자면 3층짜리 건물에 5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없앤 것 뿐이다.케미 문서 자체는 삭제되지 않고 여전히 볼 수 있다.다음으로 볼 것은 응원법 문서이다.삭제된 문서에는 비교적 유용한 정보들이 담겨있다.그러나 목차에서도 보듯이 내용 자체가 매우 적어 보인다.삭제 토론에서도 또한 내용 자체의 보존은 필요하지만,단독화할 필요가 없기에 해당 음악 문서에 추가하는 것으로 통합하였다.따라서 해당 곡을 검색하면 응원법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정리되었다.그렇다면 다른 그룹은 어떨까?플황답게 노래가 몇 배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이 정도 양의 응원법이라면 단독문서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반대로 스텔라이브의 경우에도 내용 자체가 적어서 상위 문서로 통폐합된 것을 볼 수 있다.이런 작업 또한 이세돌 문서들보다 네 달 먼저 선행되었다.다음으로 볼 것은 굿즈 문서인데...규정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왜 단독문서로 남겨놓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다른 그룹도 그런가 해서 비교하기 위해 검색해보았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다.문서의 내용 또한 규정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복붙한 수준이다.이마저도 삭제되지 않고 이세돌 행사 문서에 통폐합 하는것으로 토론이 이루어졌다.즉, 비교 대상인 홀로, 플레이브, 스텔은 없는 굿즈 상세 정보를 이세계아이돌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셈이다.이번에는 왁물원 게시판 문서이다.당연하지만 비교 그룹은 커뮤니티 문서 자체가 없기에 게시판 문서도 없다.그래도 왁물원은 60만명이나 되는데 문서로 남겨야할 이유가 있지 않을까?별다른 내용 없이 일기장처럼 끄적인 내용이다.그나마 '타 커뮤니티에서 유행하였다'라는 서술이 의미있을 뿐이다.이것 또한 인터넷 밈으로 판단하여, 삭제되지 않고 왁물원 문서에 옮겨졌다.종합적으로 보면,문서의 내용이 적어서 상위문서로 통합되거나, 정말로 필요성이 없어서 삭제된 것 뿐이다.이세돌을 음해하거나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그렇다면 왁물원 이용자들을 상대로 선동과 날조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여기서 반전인 점은 해당 왁물원의 글쓴이이다.나무위키 삭제 항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더욱 놀라운 점은 해당 글쓴이는 불과 얼마전에...왁물원에 팝업 테러글을 최초로 올린 사람이다.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저 글의 사진 파일을 원본 파일로 저장하면 출처가 수직고소갤러리가 나온다...진짜로 선동과 날조는 누가 하고 있는 것일까...추후에라도 왁물원 이용자들이 현 실태를 볼 수 있게 해당 분석글을 남깁니다- 와들와들 실시간 굴천지들....반응.....JPG우왁굳 손절!!!
작성자 : ㅇㅇ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