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한 남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의 침대에 누워 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거액의 보상금을 어디에 쓸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IT 관련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 환자의 이름은 진 나오토시였다.
올해 1억 명이 시청한 게임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고 불리는 게임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을 차지한 작품은 '엘든링'이었다.
이 게임을 개발한 프롬소프트는 2019년에도 '세키로'를 통해 게임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을 차지했다. 게임어워드에서 한 회사가 올해의 게임상을 2번 받은 것은 프롬소프트가 최초다.
프롬소프트는 1986년 11월에 설립됐다. 설립자는 진 나오토시 대표. 회사명은 마음에 드는 것이 떠오르지 않아 코볼(프로그램 언어) 매뉴얼을 뒤적이다가 프롬 명령어가 눈에 들어와 결정하게 됐다.
프롬소프트의 첫 출발은 공공기관이나 다른 회사로부터 하청을 받아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로 인해 소프트웨어 개발을 의뢰하는 곳이 줄어들었고 완성된 소프트의 품질보다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의 분위기 덕분에 외부 하청을 받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이에 진 나오토시 대표는 이용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소프트에 대해 생각했고 소니가 출시하려는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해 알게 됐다. 이윽고 이용자에게 직접 팔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프롬소프트는 게임회사로 전직했다.
하지만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게임을 개발하게 됐으니 여러 문제가 튀어나오는 것 당연했다. 게임 기획서를 써 본 적이 없고 그래픽 디자이너도 없었다. 하지만 진 나오토시 대표는 원래 PC와 메가드라이브로 게임을 즐겨왔고 게임 개발도 한 경험이 있었으며 3D 그래픽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게임 개발에 흥미를 갖게 됐다.
프롬소프트가 게임 개발로 눈을 돌리던 1990년대 초반에는 닌텐도가 압도적으로 강력했고 3DO가 출시됐으며 세가의 새턴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개발되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소니는 게임기 사업에 막 참여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프롬소프트가 플레이스테이션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소니가 가장 친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짜끼리 같이 해보자는 열의가 느껴졌고 이에 플레이스테이션으로의 참가를 결정했다.
프롬소프트의 첫 작품 '킹스필드'는 1인칭 3D 던전 롤플레잉 게임이다. 3D로 게임을 개발한 것도 그래픽 디자이너가 없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으로 해결할 수 있는 3D 그래픽을 메인으로 사용하게 됐다. '킹스 필드'는 진 나오토시 대표가 과거 플레이했던 던전 롤플레잉 게임 '위저드리'의 영향을 받은 게임으로 1994년 출시됐다. 이 게임은 어두운 던전과 불친절한 설계, 그리고 어려운 난이도를 가진 매니아적인 요소가 가득한 게임이다.
프롬소프트는 이때부터 불친절하고(사실은 게임 개발 경험 부족과 디자이너의 부재가 원인이겠지만) 다크하며 어려운 매니아적인 요소를 가진 게임으로 출발했다. '킹스필드'는 당시에는 흔치 않은 1인칭 던전 게임으로 매니아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튜토리얼도 없고 난이도도 높아 악평과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악평을 한 게이머들은 너무 어렵고 게임 플레이가 불친절하다고 불평했고 매니아들은 도전 욕구를 자극하며 1인칭 던전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장르가 신선하다며 칭찬했다.
소니도 프롬소프트의 '킹스 필드' 기획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킹스 필드'와 같은 게임이 존재하지 않았고 게임 업계의 초짜인 프롬소프트가 제대로 된 기획서를 가져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6~7명의 적은 인원이 4개월여 만에 완성한 '킹스 필드'는 나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6개월 후에는 2탄도 출시된다.
특히 6개월만에 2탄을 출시한 것은 당시로서도 상당히 놀라운 사건인데, 당시 진 나오토시 대표는 2가지의 원인으로 빠른 개발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하나는 개발 인원이 작았기 때문에 의사 결정이 빨랐고, 프롬소프트는 원래 업무용 소프트를 개발할 당시부터 체계적이며 하드하게 개발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킹스 필드'는 1996년에 3탄까지 출시됐고 이후로도 여러 플랫폼으로 출시됐다.
'킹스 필드'가 시리즈로 성공한 이후에는 하드코어한 메카물 '아머드 코어'를 개발했다. 진 나오토시 대표는 PC로 사무용 소프트를 만들던 시절에도 메카닉을 만들며 가지고 놀았을 만큼 메카물을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고 그 결과가 '아머드 코어'였다. '아머드 코어'는 일본의 유명 메카 애니메이션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던 가와모리 쇼지를 영입해 디자인을 맡기는 한편 다양한 파츠의 조합을 통해 특징이 전혀 다른 메카닉을 완성할 수 있는 등 메카 매니아가 좋아할만한 요소로 가득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꾸준하게 시리즈로 탄생했고 올해 게임어워드를 통해서도 오랜만에 부활을 알렸다. 이 게임의 매니아들은 여전히 이 게임의 부활에 대해 열광하고 있다. 소울라이크라는 장르를 통해 급격하게 늘어난 프롬소프트의 팬들도 함께 기대하고 있다.
'킹스 필드와 '아머드 코어'는 괜찮은 반응을 얻으면서 프롬소프트는 게임 매니아를 위주로 하는 고정 팬을 확보했다. 이후에도 '에버 그레이스'나 룬', '메탈 울프 카오스', '무라쿠모', '오토기' 등 매니아적이면서 독창적인 게임을 만들면서 프롬소프트는 자신만의 팬을 거느린 게임회사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리고 2004년, 이상하게 성장한 이상한 게임 회사에 이상한 신입사원이 입사했다. IT 기업 오라클에서 근무하다가 '이코'를 한 후 게임을 개발하겠다며 프롬소프트에 찾아온 사람. 지금은 프롬소프트의 대표를 맡고 있는 미야자키 히데타카였다. 그는 '아머드 코어' 팀에 합류하여 '아머드 코어' 시리즈를 개발했고 1년차에 '아머드 코어 라스트 레이븐'에서 기획자로, 2년차인 2006년에는 '아마드 코어 4'의 디렉터를 담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한편 소니와 프롬소프트의 관계자가 함께 한 자리에서 '킹스 필드' 시리즈의 신작은 안만드나 하는 질문에 프롬소프트측에서 공동 개발을 제안하면서 신규 던전 게임의 개발이 시작됐다. 이 게임은 2009년 '데몬즈 소울'로 탄생하게 됐다. 디렉터는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담당했고 '킹스 필드'시리즈처럼 던전을 탐험하며 몬스터를 물리치는 게임으로 디자인됐다. 난이도가 아주 높아 일반 적들조차 물리치기 어려웠고 다크한 분위기와 프롬소프트 특유의 불친절함이 남아 있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너무 난이도가 높고 매니아적인 게임이었기에 SCEA는 미국 출시를 포기했다. 당시 SCE의 대표였던 요시다 슈헤이는 이 게임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쓰레기'라는 평가를 내렸다. 조무라기조차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함과 다양한 함정, 그리고 불친절한 시스템 등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쥐어 뜯을 수 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과거 '킹스 필드'처럼 매니아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조금씩 게이머의 입소문을 통해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게임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1982년 미국의 록밴드 저니는 'Open arms'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이 곡은 조너선 케인이 밴드 더 베이비스 시절에 작곡했던 노래였다. 하지만 당시 베이비스의 보컬리스트 존 웨이트는 'Open arms'라는 곡에 대해 우울한 쓰레기라는 평가를 내렸고 이후 이 곡은 저니에 의해 재탄생했다. 저니 멤버 역시 밴드에 어울리지 않는 발라드에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으나 이 곡을 함께 완성한 보컬리스트 스티브 페리가 공연장에서 불렀고 관객들에게 어마어마한 반응을 얻어냈다. 이후 이곡은 저니를 대표하는 노래가 됐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있다. 이처럼 분야는 다르지만 'Open arms'와 '데몬즈 소울'은 쓰레기라는 평가를 받으며 외면받았으나 대중들에 의해 진가를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당시 게임업계는 나날이 상승하는 개발비 때문에 게임 플레이를 친절하고 쉽게 만들어 많은 사람이 게임에 참여하도록 설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데몬즈 소울'은 그와 완전히 반대 노선인 말도 안되는 난이도를 가진 게임을 통해 게이머의 도전 욕구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 게임의 성공 이후 프롬소프트는 이른바 소울라이크 게임의 대명사가 되는 '다크 소울' 시리즈를 탄생시켰고 이후 '데몬즈 소울'의 북미 판권을 놓친 것을 아쉬워한 소니는 이후 '블러드 본'을 공동 개발했다.
또한 닌자를 주인공으로 했던 '천주'의 시리즈로 준비했던 '세키로'를 통해 2019년 게임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을 차지했다. '다크 소울'과는 또 다른 시스템과 재미를 통해 어렵지만 독창적이고 중독성이 강한 게임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세키로' 이후에는 소울라이크 게임을 오픈월드로 구성한 '엘든링'을 통해 2022년 또 다시 게임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을 차지했다. 이로써 프롬소프트는 게임어워드에서 최초로 2번의 올해의 게임을 차지한 최초의 게임회사가 됐다.
프롬소프트가 게임 업계에 미친 영향은 아주 크다. 남들이 쉬운 게임을 만들 때 어려운 게임을 만들었고 대중성이 강한 게임을 만들 때 대중성이 없는 매니아 게임을 만들었다. 정 반대의 노선을 걸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게임에 열광하는 매니아를 양산시켰다. '엘든링'은 상업적으로도 1600만장 이상을 판매하며 소울라이크 장르가 대중성이 없는 게임이라고 평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프롬소프트의 차기작은 올해 게임어워드에서 공개한 '아머드 코어' 신작이 있다. 이 게임 역시 일부 매니아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으나 어렵고 복잡한 조작으로 악명이 높은 게임이다. 소울라이크 장르로 인해 버프를 듬뿍 받은 프롬소프트가 대중성이 없는 메카닉 게임을 대중적인 게임으로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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