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혁 선배님께.


선배. 제이예요.
지난 편지 이후로도 시간이 꽤 흘러서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어요.
커져만 가는 것 같았던 분노와 죄책감에서도 조금씩 벗어나고 있어요.
아빠도.선배도. 제 곁에서 사라진 그 날 이후로 저를 괴롭히던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수천번 했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조차 선배에게 죄송한 일인 거겠죠.


시간이 기억을 지워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실체없는 슬픔과 분노가 아닌, 점차 뚜렷해져가는 지난 날들에, 이제 제가 뭘 해야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선배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앞서네요. 처음에는 선배에게 의도를 가지고 다가간게 맞지만 선배를 만난 그 이후로는 다 진심이었어요. 하지만 미안함 뒤에는 더 큰 고마움이 따라오는게 바로 선배예요. 저와 같은 처지, 저와 같은 복수심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선배는 결국 저와 우리 모두를 끄집어내어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저도 선배 손을 잡을 준비가 언제나 되어있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선배는 단단한 사람이니까
저는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을게요.
작은 상처들이 곪아서 터지지 않도록, 언젠가 돌아올 선배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마지막 문장 있는데 안보여서 못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