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실패를 웃으며 씹는 법 – 소소한 철학적 취미"
1. 인간, 선하지 않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지 않다. 이 단순하지만 무거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우리는 비로소 인간 본성에 대해 명징한 시선을 가질 수 있다. 세상은 우리가 배우고 자란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며, 그 이기심은 본능과 사회적 조건이 교묘히 얽혀 강력한 힘으로 작동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얼마나 견고한지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서 선한 행동이 나온다고 해도 그 바탕에는 자기 만족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한 ‘희생’이라기보단,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해지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내가 선하다’라는 믿음은 결국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환상일 뿐이다.
더 냉철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은근히 쾌감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의 본질이다. 인간은 다른 누군가가 불행을 겪는 순간, 잠시나마 ‘나보다 못한 존재가 있음’을 확인하며 안도한다. 이 안도감은 도덕적 양심의 가면 아래 숨겨진 인간 본성의 냉혹한 일면이다.
2. 남의 불행, 나의 아침 모닝커피
남의 실패는 내 하루를 시작하는 모닝커피와 같다. 새벽의 쓴맛처럼, 그 고통스러운 소식은 내 정신을 깨우고 현실을 선명하게 만든다. 아무리 내 삶이 힘들어도, 누군가가 더 처참한 상황에 빠졌다는 사실은 내 마음속에 미묘한 평화를 가져다준다. 그 평화는 위안이라기보다 ‘상대적 우위’에서 오는 쾌감이다.
사회적 성공, 인간관계, 심지어 인생의 작은 승부에서조차 나는 남의 실패를 구경하면서 ‘나는 아직 괜찮다’고 중얼거린다. 그 순간, 나의 모든 좌절감은 잠시 봉인된다. 불행의 등급표에서 남이 더 아래에 있을 때만이 내 위치가 빛난다. 이런 현실이 잔인하고 비루해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한 인간의 본성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이 ‘모닝커피’는 심리적 방어기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로서 꼭 필요한 감정이다. 타인의 실패가 없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불안해하며 지쳐버릴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라도 타인의 불행에 관심을 기울이고, 거기서 위로받는 것이다.
3. 위선과 허세 – 공감의 쇼
오늘날,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공감은 쉽게 말해 ‘쇼’가 되었다. 누군가의 비극적인 사연이 SNS에 올라오면, 우리는 빠르게 ‘좋아요’와 ‘공감’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면 깊숙이선 그 고통을 자기만족의 재료로 삼는다.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마음이 넓고 따뜻하다”라는 메시지를 자신과 타인에게 증명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공감’의 감정은 대부분 허세에 불과하다. 그 진정성 없는 연민은 ‘내가 선하다’는 착각을 부추기고, 진짜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는 회피한다. 이중적인 태도는 도덕적 위선이며, 사회적 가면놀이다.
더 심각한 점은, 이런 위선적 공감 문화가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도구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실제 고통을 마주하는 대신, 우리는 감정적 자극에 중독되어 더욱 많은 불행과 비극을 소비한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독이자 병폐다.
4. 고통의 음색과 미학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고통과 감정을 담은 울음소리, 분노의 떨림, 절규하는 목소리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건 거짓말이나 위선으로 점철된 일상과 달리, 감정이 날것 그대로 분출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울음과 한숨, 터져 나오는 감정의 파열음은 인간이 가장 본능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그래서 매혹적이다. 우리의 뇌는 이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에서 깊은 쾌락과 연결된다. 그것은 진실과 연대의 순간이며, 동시에 인간의 짐승 같은 본능이 노출되는 시기다.
더불어, 이런 감정의 소리는 때로 ‘성적 매력’으로 소비된다. 음성학적으로 목소리가 떨리고 파열음이 섞인 순간, 우리는 그것을 ‘진짜’라고 인지하며, 감정적 깊이에서 오는 독특한 매력을 경험한다. 슬픔과 고통이 때로 관능적인 경험으로 변질되는 이 현상은 인간 본성의 복잡함과 아이러니를 여실히 보여준다.
5. 타인의 몰락, 사회적 콘텐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타인의 몰락을 소비하는 사회다. 리얼리티 쇼, 인터넷 고발, 온라인 신상털이, 그리고 연예인의 사생활 폭로는 모두 ‘몰락의 즐거움’을 팔고 있다. 이 콘텐츠들은 클릭 수와 화제성을 노리고, 더 자극적이고 더 참혹한 사건을 갈구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순간적인 우월감을 맛본다.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 거야”라는 자기 확신과 함께, 우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다. 이 악순환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할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한, 이 몰락의 콘텐츠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도 한다. 남의 실패를 이야기 거리로 삼고, 함께 비난하며 웃는 순간, 우리는 공동체 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가짜다. 그 속에서 진짜 인간애나 연민은 자취를 감춘다.
6. 결론 – 당신도 나도 선하지 않다
인간은 선하지 않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다. 우리는 서로의 실패를 보고 웃으며, 거기서 위안을 얻는다. 그것이 본능이며, 숨길 수 없는 진실이다.
이 잔인한 본성을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위선자가 된다. 하지만 그것을 솔직히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인간답게 산다. 남의 실패에서 오는 쾌감, 공감이라는 허울 아래 숨은 이기심, 그리고 진짜 감정의 파열음까지 모두 우리의 일부이다.
오늘도 누군가 무너진다. 그 소식을 들으며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 만약 속으로라도 ‘다행이다, 내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면, 당신도 나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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