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요즘 기준으로 무작정 깎아내려서는 안됨.


현실은 삼국지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를 운영하고 이끌어나가는데는 반드시 권위가 필요함.


특히 전근대 국가들의 경우 행정력이 근대국가와 비교하기도 민망할 수준이기 때문에 굉장히 강력한 권위를 필요로 했고, 그 강력한 권위로 즐겨 활용되던 게 대부분 종교였음.


고려는 불교를 기반으로 하려고도 했지만 불교는 상당히 어려운데다가 국가에게 권위를 부여하기에는 사실 잘 맞지 않음. 그러다보니 고려도 유교를 지배이념화하려고도 했었지.


그런데 성리학 이전의 유학은 국가가 강력한 권위를 갖게 한다는 목적에는 형이상학적 논변의 부재로 인해 설득력이 다소 떨어졌음.


물론 성리학 이전에도 꾸준히 유학에 형이상학적 논변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그 결과물들은 논리적으로 다소 부족하거나 국가의 권위 강화와는 동떨어진 것들이었음.


그래서 고려말의 학자들이 주목한 게 형이상학적 논변을 가지고 국가의 권위를 정당화 해주는 성리학이었고 조선은 성리학을 적극 도입해 국가의 통치를 정당화했음.


만약 그 결과물이 당시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가혹하고 퇴행적인 정치였다면 "조선은 유교 탈레반 국가다"라는 주장을 수용할 수 있음.


그러나 과거 맹아론자들이 주장하던 만큼은 아닐지언정 조선은 전근대국가치고는 상당한 발전을 이뤘을 뿐 아니라, 조일, 조청전쟁이라는 연속된 전란도 일단은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였음.


성리학을 지배원리로 삼은 조선의 통치가 당시 기준으로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이야기임.


물론 이렇게 종교적인 믿음을 기반으로 한 사회는 결코 근대로 들어설 수 없음. 어쩌면 근대국가의 코어인 민족도 또 다른 형태의 종교적 믿음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종교만큼 인식을 구속하지는 않음.


다들 아다시피 서구와 달리 여러 우연과 필연이 겹쳐 조선은 종교적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음. 중국은 물론이요 일본에 비해서도, 조선 사회는 이른바 개항기 이전부터도 상당히 정체되어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음.


그렇지만 그들과 뒤쳐졌다고해서 조선을 쓰레기로 매도할 수는 없음. 그들만큼은 아닐 지언정 조선사회에는 퇴행의 시대가 아니라 발전의 시대였음.


그 발전의 중요 요인 중 하나는 분명히 그토록 욕 먹는 성리학, 정확히는 성리학의 강한 영향을 받은 지배체제임. 그렇기에, 조선을 현대 사회에서조차 발전이 아닌 퇴보를 만들어낸 탈레반과 같다 매도할 수는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