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태일(太一)의 별 방위에 따라 제사지내는 것은 실로 온당하지 못한 것이다. 고려 때에 해동 천자(海東天子)라고 잠칭(僭稱)한 까닭으로, 중국에 조림(照臨)한 별을 망령되게 금년에는 어느 방위로 옮겼다고 이르고 곳곳에서 제사지냈는데, 천하로서 본다면 우리 나라는 하나의 나뭇잎과 같으니, 어찌 동·서·남·북을 나누어서 제사지낼 수 있겠는가. 중국에서 서방이라 하여 제사지내면 우리 나라에서도 서방이라 하여 황해도에서 제사지내는 것이 옳겠는가. 너희들은 그것을 의논하여 계문(啓聞)하라."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세종22년 2월 23일

세종은 태일에 제사하는 유래가 해동천자(海東天子)를 참칭(僭稱)한 고려 때부터라고 거론했다. 참칭이란 분수에 넘치게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고려 때 해동천자라고 스스로를 높여 불렀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제한적 ‘직서’ 원칙은 실제 적용에 들어가서는 예외를 늘려 ‘황제’ 위호만큼 민감한 황제제도의 핵심적인 제도에까지 확대되었다. 그것을 처음 적용한 《수교고려사》의 편찬 과정에서 고려 황제가 내린 ‘대사천하(大赦天下)’를 ‘대사경내(大赦境內)’로 개서하자는 신료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세종은 ‘천하’를 삭제하고 ‘대사’로만 서술하게 하였다. 즉, 개서는 아니지만 삭제하는 직서의 예외 대상을 확대하였다. 실제로 《절요》나 《고려사》에는 고려 군주가 내린 ‘대사천하’의 기사는 한 건도 남아 있지 않다. 이로써 고려의 ‘천하’나 ‘번(藩: 만주에 있던 고려의 제후국들)’ 등등 황제제도의 핵심에 준하는 사실들도 대부분 삭제되고,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파편화된 기록들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파편화된 기록들이나마 남게 된 것도 세종 31년 이후 명 나라의 위협이 현저하게 감소하게 된 《고려사》 편찬 단계 이후에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