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베를린의 충고

ㅇㅇ(210.100) 2025.08.30 05:02:02
조회 55 추천 0 댓글 0

기원전부터 역사를 기록하는 유럽의 도시들이 즐비하지만 베를린은 13세기에야 역사책에 등장할 정도로 연륜이 짧다. 그러나 이 젊은 도시는 어떤 곳보다 도시의 흥망성쇠가 압축적으로 전개되었으며, 특히 20세기에는 도시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겪는 듯 숨 가쁜 역사를 기록한다. 제국의 붕괴와 민중의 봉기, 극심한 불황과 나치의 창궐, 그리고 전쟁과 패전으로 이루어진 파괴와 분단 등등….   베를린은 20세기 세계사의 핵심이었고 격변의 현장이었다. 급기야 1989년 11월 9일, 급작스럽게 독일의 통일이 발표되면서 이 도시는 여태껏 변화한 것보다 더 큰 변신을 앞두게 된다. 통독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바로 그날 저녁 다임러 벤츠와 소니의 합작법인은 베를린 장벽이 관통한 유서 깊은 포츠담광장 지역의 재개발을 발표하였다. 이 거대 자본은 통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이미 알았던 것일까? 그들은 신속하게 통일 독일의 새로운 수도 중심부 개발을 진행하였고 후지산을 닮았다는 지붕을 씌운 거대 상업건축을 21세기가 되기 전에 만들어 내고 만다. 투기자본의 냄새가 짙었다. 이 대형 개발사업을 두고 영국의 한 건축잡지는 ‘자본이 붕괴시킨 역사 도시의 참극’이라 했고, 더러는 ‘건축 지성의 학살’이라며 맹비난하였다.



이 일은 통일된 베를린의 도시 건축을 총괄할 한스 스팀만이라는 건축가가 등장하기 전에 시작된 것이다. 1991년에 베를린 총괄건축가로 임명된 그는 ‘비판적 재건’이라는 개념으로 베를린의 도시를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초고층의 도시는 그가 가진 구상의 반대편이었다. 역사에 바탕을 둔 베를린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그가 정한 원칙이었다. 건축의 밀도와 높이, 형태와 재료까지 규제하며 상업자본과 개발업자의 욕망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빌바오미술관 건축가로 유명한 프랑크 게리의 기발한 작품도 한 건물의 내부에 갇혔고, 서울의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만든 자하 하디드의 우주선 같은 건축의 흔적을 이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다.

대신에 베를린 장벽이 지나갔던 자리는 그대로 보존되거나 기념광장과 기념공원으로 남았으며, 잘 조직되었지만 낙후된 동베를린의 공공영역들은 조심스레 재생되었다. 도시의 공공성을 우선 강조하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기억들을 공유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실현하게 된 베를린은 드디어 ‘교환과 명상의 메트로폴리스’라는 명예를 얻으며 21세기 최고의 건축 도시로 각광받게 된다.

기민당 시장 시절에 발탁되었으나 2001년 사회당의 보베라이트 시장이 취임한 이후 더욱 도시의 공공적 가치를 드높이는 일에 몰두한 이 총괄건축가는, 엄격한 제한을 받아야 했던 수많은 개발업자와 영웅적 건축을 만들고 싶은 건축가 모두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막대한 공공투자로 베를린 시 재정이 어렵게 되자 그를 향한 공격이 더욱 드세져 결국 사임하고 만다. 15년간 베를린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사임이 불러온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그가 물러난 직후 착공된 신공항 사업이 온갖 부실과 부정, 사기, 배임 등 총체적 문제를 나타내며 좌초한 것이다. 결국 보베라이트 시장도 물러나면서 각종 개발사업은 봇물 풀린 듯 쏟아져 나왔다.



지난 1월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내 건축전시회를 개최했던 에데스갤러리의  한스위르겐 관장의 안내를 받아 최근에 지어진 건축물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터질 듯한 용적, 꽉 막힌 통로, 주변에 군림하는 형태, 투기자본의 전형들이 동베를린 지역의 비어진 땅들을 채우고 있었다. 포츠담광장 개발은 그나마 큰 광장과 여러 공공영역을 두고 있었건만, 이 새로운 투기자본이 만든 건축은 공공성을 처절히 배반한 모습이었다. 한스위르겐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언젠가 너희도 통일되면 개발세력들이 북쪽의 땅들을 유린할 게 뻔하니 대비해야 한다고.




viewimage.php?id=20a4c332e0c021&no=24b0d769e1d32ca73ce880fa11d02831314381a88393e0627f82058130e3c5db7891e8182c83764665882b872d5c76ed023f694fedef3e72e0e7a8df589583f63a64




드디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역사적 순간은 역시 도둑처럼 왔다. 엊그제 지방선거에서도 정부의 평화정책은 압도적 지지로 나타났으니, 이제 남북관계는 빠른 속도로 빈번한 교류와 다각적 경협의 단계로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걱정이다. 최근 들어 비무장지대 부근의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는 소식도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대형 설계사무소와 개발회사들이 특별팀을 꾸려 북한 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수십 년간 통제사회였으므로 그들의 도시 공간 구조도 통독 전의 동베를린만큼, 어쩌면 보다 더 잘 조직되어 있을 게다. 이 순전한 땅을, 악다구니 같은 우리의 도시풍경을 만든 투기자본이 또 환칠할까  걱정인 것이다. 기우일까?


2018. 6. 16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순간의 말실수로 이미지 타격이 큰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5/09/01 - -
AD 가전디지털, 신학기 페스타! 운영자 25/08/29 - -
2885535 하루 한 번 헤르미온느 찬양 헤르 미온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58 0
2885508 포켓몬 작화 잘 나온것 같다. 한편으로는 부럽다. 넥도리아(220.74) 08.30 40 0
2885498 Rust 빠돌이 양산을 토대로 재단 설립 돈벌이 목적인가? 나르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43 0
베를린의 충고 ㅇㅇ(210.100) 08.30 55 0
2885471 Ada 소개: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나르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49 0
2885467 잣 같은 사람들 있는 회사 때려치고 이직 성공. 프갤러(59.16) 08.30 59 0
2885463 깃허브에 영상 다운로더 만들어서 올리면 잡혀가? [1] 프갤러(106.241) 08.30 69 0
2885462 Ada, Rust: '논리적 정확성' vs '메모리 무결성' 나르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68 0
2885461 러스트 특) 자바가 널리 사용되기까지 불과 2년 걸렸습니다. 나르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55 0
2885459 잠이 안 온당..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76 0
2885458 나이 먹음 먹을수록 메이플이 질리고 재미없어지는듯... ㅇㅇ(223.38) 08.30 36 0
2885456 우크라이나 영토 마음대로 협의하는 트럼프와 푸틴, 한반도도 이렇게 당하나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39 0
2885452 좆같네 진짜 ㅇㅅㅇ 잠이 왜 안오지 하... ㅇㅇ(223.38) 08.30 44 0
2885444 러스트는 게임 개발에 적합한 언어가 아닙니다. 나르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71 0
2885441 . [1]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70 0
2885437 냥덩아 문재인 찢재명 김정숙은 욕안하누??? 뒷통수한방(1.213) 08.30 60 0
2885436 김건희 집사 게이트③ '사면초가' 카카오 모빌리티의 30억 투자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48 0
2885434 쿠팡 대리점 내부 자료 입수 ③ "임원 상대로 유흥업소 접대" 녹취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45 0
2885433 김건희 집사 게이트 : 카카오는 정말 몰랐나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0 45 0
2885431 금주하면 인생 달라짐 ?? 피곤에서 벗어날 수 있음?? ㅇㅇ(223.38) 08.29 45 0
2885430 나님 탈갤합니당❤+ [6]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147 0
2885428 선거 두 번만 치르면 30대남 40대 되고 [1]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64 0
2885426 내가 권력가지고 돈가지면 제일하고싶은게 권력자들 재벌들 썰어죽이는거 ㅇㅇ 뒷통수한방(1.213) 08.29 47 0
2885424 비가 와도 내 방은 덥다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40 0
2885423 디아블로 개발자 노조 결성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45 0
2885421 모기 있는듯..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77 0
2885420 내란당은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기가 마치 빈 것처럼. 넥도리아(220.74) 08.29 49 0
2885419 공기가 애매하게 축축한..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70 0
2885418 기안84 수상한 건 프갤러(211.210) 08.29 51 0
2885417 벌렁벌렁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79 0
2885416 김완선 - '가장무도회'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42 0
2885415 빌게이츠 방한 [2]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108 1
2885414 나님이 괴물을 만든걸까..?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52 0
2885410 뀨❤+ [1]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99 0
2885409 [애니뉴스] 귀인환등초 20화 스토리 감상 및 분석 프갤러(121.172) 08.29 37 0
2885408 나님 누엇어양❤+ [1]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97 0
2885405 [애니뉴스] 사이트 복구 안내 프갤러(121.172) 08.29 39 0
2885402 오늘의 발명 실마리: DOS에서 VESA VBE 2.0, 3.0 에뮬 [3]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59 0
2885401 미국에도 러스트무지성 빠는놈들 많아? [4] 밀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84 0
2885400 UEFI에서 CSM 없이 도스 지원 biefircate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39 0
2885397 흠.. 절묘하군.. [2]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96 0
2885393 내가 rust 쓰는 이유 [6] 프갤러(119.201) 08.29 118 1
2885392 와 진짜 ai 맡기니깐 생산력이 말도안된다 [1] ㅇㅇ(221.146) 08.29 88 0
2885390 문재인 이재먕 보유국은 사용하는데 왜 이준석보유국은 사용안함??? [1] 뒷통수한방(1.213) 08.29 53 1
2885388 러스트 엄청 빠는 입장이지만 솔직히 추천할게 못됩니다. [2] 프갤러(27.172) 08.29 123 0
2885387 러스트 배우기 어려움? 프갤러(220.79) 08.29 51 0
2885386 r&d예산 세계최고 또 증액 경재성장률은 씹운지 ㅋㅋㅋㅋ 뒷통수한방(1.213) 08.29 41 0
2885385 후스넘버 개인정보 털렸다는게 무슨 말이죠?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44 0
2885384 애널의달성 2./4//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62 0
2885382 아이유 이효리 손절 배척? 불화설? 진실은? [1]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9 98 0
뉴스 '은수 좋은 날' 김영광 vs 박용우, 가방 하나에 얽힌 두 남자의 쫓고 쫓기는 운명! 숨 막히는 추격전 속 치열한 심리전 ‘갈등 고조’ 디시트렌드 10:0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