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오면

나는 거울 앞에 선다

내가 아니다

나였던 것의 껍데기다

단단한 흉곽, 커진 삼두, 갈라진 복직근

그 아래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검은 구멍 하나

그게 나였다

형들아,

우리는 철을 사랑했다

사랑은 원래 무거운 거니까

잡으면 손이 베이고

들다 보면 허리가 끊긴다

근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

이건 사랑이 아니라 벌이었다

감정을 대신해 중량을 들고

외로움 대신 데드를 하고

누구도 안아주지 않으니까

벤치를 누웠다

그렇게 하루,

이틀,

수백일이 지나고

나는 사람 흉내 내는

무표정한 근육의 짐승이 되었다

거울은 진실을 비추는 게 아니다

형들아, 거울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준다

그 안의 나는 웃고 있지만

사실은 울고 있었고,

사실은 사라지고 있었다.

운동 좋다

인생도 어느 정도는 철학이다

단백질은 의지요, 중량은 신앙이다

우린 매일 헬스장에서 기도한다

하지만

기도만으론 구원받지 못한다.

너 자신을 사랑해라

이 말이 구리다고?

그래, 구리다.

근데 진심이다

너의 근육은 대단하지만

그 밑에 너 자신이 없으면

그건 조각상이야.

움직이는 석상일 뿐이야.

가끔은 중량을 내려놓고

너 자신을 들어 올려봐라

그게 더 어렵다

벤치보다

스쿼트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그게 진짜 훈련이다

- 지하를 다녀온 헬창, 너에게 말을 건다

“살덩이를 키우며 너 자신을 잃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