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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미국 파인애플의 역사...jpg
오래 전 남아메리카 파라나-파라과이 강 유역에서 자라나던 과일이 있었다.. 남미 일대에서 나나스(맛좋은 과일)이라고 불리던 과일은 자연과 인간에 의해 점점 북상하여 멕시코와 카리브 해 일대까지 이르렀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곳곳에서 재배가 이루어져 1493년 신대륙을 탐험하던 콜럼버스도 우연히 이 과일을 접한 뒤 스페인으로 가져왔는데 콜럼버스: 원주민들은 나나스nanas라고 부르던데 우린 이걸 piña de Indes(인디언의 솔방울)이라고 부르죠? 스페인인들: 아나나스(ananas)? 피냐(piña)? 아몰랑 아무거나 씁시다! 이후 북아메리카의 영미계 탐험가들은 이걸 솔방울의 모양에서 따서 Pineapple이라 부르게 된다 당시 신대륙 종자라면 무엇이든지 호기심에 넘쳐 수집하던 스페인인들은 이 기묘한 과일에 관심을 보이고 그것을 재배하기 위한 최적의 생산지를 찾아다녔다 16세기는 스페인 함대가 전세계를 구석구석 싸돌아다니던 시절... 스페인 선원들은 괌, 짐바브웨를 포함해서 파인애플 종자를 가는 곳마다 뿌려댔고 태평양의 한적한 섬 하와이에도 그렇게 파인애플이 도착 일년 내내 따뜻한 하와이의 기후에서 파인애플은 나름 잘 자랐지만 여러 소규모 부족들이 난립하는 하와이에서 대규모 재배가 이루어지진 않고 있었는데.. 1795년 하와이 통일왕국이 성립되었지만 여전히 파인애플은 주요 수출물도 아니었고 어차피 그거 배로 실어날라봐야 푹푹 찌고 습한 환경에서 상하기 일쑤였다 당시 하와이의 주력 작물은 사탕수수였는데 19세기 전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수요증가가 이루어지던 설탕의 원료 19세기 중반부터 미국으로부터 많은 이민자들이 하와이로 몰려오기 시작했고 설탕 플랜테이션을 미국 출신의 이민자들이 차지하면서 이들은 플랜테이션을 기반으로 하와이의 주요 산업들을 독점하며 그 재력을 바탕으로 정계에까지 진출해 사회지도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칼라카우아 왕 대에 이르면 미국,유럽 출신 사업가들이 대놓고 폐위 협박까지 할 만큼.. 하와이 왕도 개길 수 없는 세력이 되어 있었다 백인 유력자들의 기득권을 제한하려는 여왕의 움직임을 눈치챈 백인 유력자들은 공안위원회를 결성하고 미국 해병대를 상륙시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1893년 1월 17일 공안위원회는 민병대까지 동원하여 여왕을 강제로 폐위 미합중국에 편입을 요청했는데 당시 대통령이었던 클리블랜드가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하와이 공안위원회는 샌퍼드 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시켜 하와이 공화국을 선포하게 된다 하와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던 시기.. 미국에서 파인애플의 인기는 계속해서 상한가를 치고 있었고 1893년 천조국에서 파인애플을 원통으로 돌려 깔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었는데 1분에 4개의 파인애플 껍질을 깔 수 있었다 아직 냉장기술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터라 맛좋은 파인애플을 장기보관하는 방법으로 통조림이 선호되었고 이 기계의 발명으로 파인애플 통조림 산업이 활기를 띈다 이 시기 미국 파인애플 통조림의 주요 원료는 카리브 해 인근 국가에서 수입해 오고 있었는데.. 주요 파인애플 산지였던 플로리다 농부들이 거세게 반발 플로리다 농민들: 이 씨발!! 미국 파인애플 놔두고 외국꺼 쓰는 이유가 뭡니까 대체! 사업가: ?? 뭐래 단가가 싸니까 그렇잖아 미친놈들아 억울하면 가격을 낮춰!! 플로리다 농민들: 거대 자본주의가 사람잡는다~ 가격 후려치기 때문에 농민들 다죽겠다 보다 못한 미국 정부가 수입 파인애플에 대해 35%의 관세를 매겨버리고 통조림업자들은 관세 때문에 값이 오른 카리브산 파인애플을 더 이상 이용하기 힘들어져 미국 현지의 통조림 생산공장들은 수지가 악화되어 줄줄이 문 닫고 사업가들은 파인애플을 현지조달해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할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아나선다.... 한편 비슷한 시기 1896년 새로운 미국 대통령으로 윌리엄 매킨리가 취임 하와이 공화국은 다시 한번 러브콜을 보내는데 샌퍼드 돌: 미국응디가 그렇게 따뜻하다는데 우리도 좀 넣어주면 안 됩니까 윌리엄 매킨리: 안될거 뭐있노? 클리블랜드와 달리, 매킨리는 팅기지 않았고 1898년 하와이는 속주형태로 미국에 합병된다(아직 정식 주 아님)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 공화국 대통령이었던 샌퍼드 돌이 총독으로 임명되고 동시에 하와이 농산물에 대한 관세가 철폐 하와이에서 파인애플 통조림 산업을 할 경우 1. 관세가 없어서 카리브해 파인애플보다 유리했고 2. 하와이 원주민과 해외 이주민의 값싼 노동력으로 파인애플 경작이 가능 3. 하와이 속주정부로부터 싼 값에 농장&공장부지를 살 수 있었던 등 지원이 많음 여러모로 개이득 미국 사업가들이 하와이로 몰려들어 파인애플 농장과 통조림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갓 하버드대 농학부를 졸업한 22세의 젊은이 제임스 돌 그도 파인애플 사업에 대한 꿈을 품고 차곡차곡 모아둔 돈을 갖고 하와이로 왔는데... 전직 공화국 대통령이자 현직 하와이 총독인 샌퍼드 돌이 사촌형이었다 제임스 돌은 모아둔 돈으로 하와이 주정부로부터 64에이커의 파인애플 농장부지를 구입 사촌형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사업준비에 착수한다 우여곡절 끝에 1901년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Hawaiian Pineapple Company)를 창립하게 되고 당시 하와이에서 파인애플 재배업은 대성황을 이루었는데 하와이에서 재배되던 Smooth cayenne종이 통조림 가공용으로 제격이었고 기후가 파인애플 재배하기에 딱딱 좋았고 경쟁지이던 플로리다에 서리가 자주 끼었던 데다가 파인애플 품질이 하와이산에 비해 좋지 않았다..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신생회사였지만 크게 두 가지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성장해 나갔다 1) 광고 공격적인 광고전략으로 미국 본토에까지 파인애플 통조림을 대대적으로 선전 라디오&신문을 이용해서 파인애플이 생소한 미국인들에게 인지도를 높여주고 2) 기술개발 1911년 1분에 100개의 파인애플을 돌려깔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자 통조림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미국으로 더 많은 파인애플이 실려나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파인애플을 접하고 달콤새콤한 맛에 이국적인 정취가 곁들여졌고 소화에도 좋아 파인애플만 보면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거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22년에 이르면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세계 최대의 파인애플 유통기업으로 등극 하와이 주정부로부터 다시 여의도 면적 27배에 달하는 땅을 사들여 사업을 확장했는데 이 때 회사의 주요 경작지였던 라나이 섬에서만 세계 파인애플 생산량의 75%가 쏟아져 나왔다 바야흐로 파인애플 사업계의 정점으로 군림하던 시기 그렇게 돈다발을 쓸어담으며 잘나가나 했는데.. 1929년 대공황이 터져버리고 당장 먹을 양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파인애플 통조림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파인애플 소비량은 바닥을 치게 되어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의 실적은 급격히 악화되고 그동안의 무리한 사업확장&실적악화로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1932년에만 500만 달러의 적자를 내면서 파산 직전에 이르렀고 경영자였던 제임스 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지켜보던 Castle&Cooke사에서 지분을 21% 추가로 매입하면서 지배권을 장악한 뒤 제임스 돌은 쫓겨나게 되고.. 하와이안 파인애플 컴퍼니는 사실상 Castle&Cooke사의 계열사나 다름없게 되어 청운의 꿈을 품고 파인애플 사업을 개척했던 한 젊은이의 외길인생은 여기서 끝이 난다 그래도 Pineapple=Dole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이후 생산되는 주요 파인애플 제품에는 Dole이라는 이름이 계속 들어가게 된다 한편 castle & cook 사의 자금지원으로 여유가 생긴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구상할 필요가 있었는데 통조림은 아직 냉장기술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는 유용했지만 이제는 통조림 위주였던 파인애플 제조업에도 변화가 필요했던 것 이미 1920년대에도 가정용 냉장고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사진은 100만개가 팔려나간 모니터탑 냉장고) 1928년 프레온 제조기술이 발명되면서 냉장기술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되는데.. 경영진은 냉장보관이 필요하고, 시원하게 먹으면 좋고, 운반 및 가공이 편리하고 누구나 먹기 쉬운것을 알아냈다 파인애플 주스!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곧바로 파인애플 주스의 대량양산에 착수했는데 마침 1933년에 금주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칵테일 제조용으로 파인애플 주스가 무지막지하게 팔려나가게 되고 대박을 치게 된다 이 기회를 포착한 경영진은 미국 전역에 라디오와 항공기를 동원한 대대적인 주스 광고를 선보여 1936년에 마침내 적자를 탈출하고 회사경영을 정상적으로 돌려놓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미국은 경제호황을 누렸고 쑥쑥 늘어나는 파인애플 제품 매출량 속에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는 안정적인 매출을 올려 1961년 마침내 Castle&Cook은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를 완전히 인수했는데 Castle&Cooke사는 이후 필리핀에서 바나나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1968년에 스탠더드 프루트 회사(바나나 제국에 등장했던 그 회사임)마저 합병해서 델몬트와 쌍벽을 이루는 바나나 업계의 제왕이 되어 1991년에 Dole Food Company로 이름을 바꿔 오늘날 우리가 대형마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 Dole 회사가 된다 엄밀히 말하면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가 Dole로 이어졌다기보다는 더 큰 회사(Castle & Cooke)에 흡수당해서 지금에 이른 것이지만 하와이에서 일어난 일련의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총독 사촌형이 탄생했고 그의 후원 아래 사업감각으로 파인애플 사업을 일궈내어 한때 하와이를 세계 파인애플 생산량 3/4를 책임지는 생산기지로 만들어냈던 한 사업가의 이름이 우리가 먹는 파인애플과 바나나에 남겨진 것을 보면 이런걸 알고 먹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오늘날 하와이는 예전의 파인애플 생산기지로서의 명성은 무색해진 지 오래 돌의 현지 통조림 공장은 수익악화로 1991년에 문을 닫았고 델몬트마저도 생산기지를 2008년 이전했다 그렇지만 하와이 곳곳에 남아있는 파인애플농장과 관광지들은 한때 화려했던 파인애플 생산지로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작성자 : 설윤아기고정닉
막장 윤석열, 국힘 발의 법안도 거부권 행사
- 관련게시물 : 尹,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이승만 이후 '최다'- 관련게시물 : 野 8개 법안 강행 시도 vs 與 거부권 예고.. 연금개혁 합의는 불발얘 진짜 뭐냐? - 항카 이제는 국힘 법안도 아묻따 거부권이라네?https://m.inven.co.kr/board/webzine/2097/2267571 막장 윤석열, 국힘 발의 법안도 거부권 행사 | 웹진 인벤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466 국힘 주도 정부도 발의한 ‘농어업 회의소법‘농림부 장관, 안건심사 할 때 아무말 없더니거부권 행사한다고 하자 갈등유발하는 법 한우법도 여야 발의해 통합 조정했지만 거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4개 법안에 대해 29일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가운데, 여당 의원이 주도해 여야가 함께 발의한 m.inven.co.kr오이게에서 보고 알음 ㅋㅋㅋㅋ - dc official App- 尹, 사상 초유의 4개 법안 무더기 거부권..타협 없는 무시의 정치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4개 법안을 29일 거부했다. 이 같은 '무더기 거부'는 전례 없는 일이다. 이날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법안은 자동폐기됐다.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취임 이후 14회로 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치다. 거대 야당은 의석수로 밀어붙이고, 소수 여당은 설득과 타협을 외면하고, 대통령은 국회 결정을 무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22대 국회를 앞두고 기대가 아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농어업회의소법, 한우산업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4개 법안과 함께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세월호참사피해구제 및 지원 특별법은 여야의 큰 이견이 없어 그대로 공표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를 최소화할 방침이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을 포함해 10차례로 늘어난 터라 거부권 카드를 또 꺼내기엔 정치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법안을 동시에 거부하는 건 우악스럽게 비칠 수도 있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각 법안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에 야당과 입장 차가 큰 전세사기특별법과 민주유공자법은 거부하더라도 농어업회의소법과 한우산업지원법은 절충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반대 입장으로 기울자 윤 대통령은 4개 법안을 거부하며 호응했다. "당의 호위무사가 되겠다(20일 윤 대통령)", "당과 대통령실은 공동운명체(28일 정진석 비서실장)"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한덕수 총리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앞서 4개 법안이 왜 부당한지 조목조목 짚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법안,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부작용이 우려되는 법안들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거부권 건의 배경을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주택도시기금이 투입돼 무주택 서민이 피해 본다'(전세사기특별법), '유공자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민주유공자법), '국가 재정에 의존하는 관변화가 심화된다'(농어업회의소법), '여타 축산 농가와 형평성에 어긋난다'(한우산업지원법)고 덧붙였다. 당장 민주당은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 첫날부터 채 상병 특검법을 앞세워 대통령실과 여당을 다시 압박할 방침이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행정부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입법에 대해서는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맞섰다.'법안 강행처리→거부권→재의결·폐기'의 답답한 수순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윤 대통령은 야당과 소통하며 민생 입법, 개혁 입법을 처리하는 정치적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조만간 22대 국회에 대한 메시지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다른 야당 대표와의 만남과 소통 타이밍은 아직 저울질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803995- ‘거부권 악순환’ 계속되면 레임덕 불가피…국정운영 암초로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야당 주도로 통과된 4개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21대 국회 마지막 날을 극한 대치로 마무리했다.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도 야당 단독 처리와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이 이어지며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이후 최다 거부권 행사라는 불명예 기록을 경신하며 정치적 부담이 누적된 데다, 재표결 가결 시에는 급격한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이 불가피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농어업회의소법, 지속 가능한 한우산업을 위한 지원법 등 전날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5개 법안 중 4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공포한 법안은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특별법 개정안뿐이다. 윤 대통령은 4건의 거부권을 추가로 행사하면서 임기 2년을 갓 넘긴 상태에서 14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미 1987년 민주화 이후 당선된 대통령 중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 스스로 거부권 악순환을 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계속된 거부권 행사를 4·10 총선 민심을 거부하는 행태로 판단하며 ‘강 대 강’ 대치를 예고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야권 의석수가 192석으로 더 늘어나는 만큼 ‘야당 주도 법안 처리→윤 대통령 거부권→국회 재표결’의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재표결 시 여당에서 8표만 이탈해도 거부권이 무력화된다. 한 국민의힘 당선인은 통화에서 “출구가 없다”며 “재표결이 이뤄질 때마다 8표가 어디로 갔느냐 따지는 상황이 22대 국회 내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1개 법안을 수용한 것은 ‘선택적 거부권 행사’를 강조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야당 단독 처리 법안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누적된 거부권에 따른 부담을 인식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거부권 악순환은 결국 국정운영에 암초가 돼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거부권 행사 누적은 불통, 일방 이미지를 강화한다. 22대 국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재표결에서 가결될 경우엔 ‘정치적 탄핵’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한 국민의힘 당선인은 통화에서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또 지방선거 같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대통령의 뜻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의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언제까지고 거부권을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적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당 일부에서는 근본적 해결책으로 의원내각제 등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은 “결국 여소야대가 되면 국정운영이 힘들어진다. 의원내각제를 해서 여소야대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299240 - [경향 사설] 거부권 남발된 21대 국회, 정치 없는 나라 미래 없다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야당 주도로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민주유공자법 등 4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들 법안은 21대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자동 폐기됐다. 거대 야당의 입법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충돌한 ‘정치 실종’ 국회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21대 국회는 마지막까지 국민을 실망시켰다. 여당은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을 막겠다고 국회 상임위를 보이콧했다. 이 때문에 민생 법안,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법안도 이번 국회 종료와 함께 무더기로 폐기됐다. 부모 육아휴직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모성보호 3법’(남녀고용평등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 개정안),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일명 ‘구하라법’ 등이 대표적이다. 그야말로 ‘무정치 4년’이었다.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극한 대치로 일관했다. 민주당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입법을 밀어붙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책임에 비할 바 아니다. 국민의힘은 동의하지 않은 법안에 대해선 토론할 생각은 접어두고 반대만 했다. 그러곤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최소화해야 할 거부권 행사를 임기 2년 만에 14번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거부권 행사가 가장 많았던 노태우 대통령(7번)보다 두 배 많다. 삼권분립을 무용지물로 만들 작정인지 묻게 된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거야와의 대화를 포기한 정부·여당이 국정을 제대로 할 리도 만무하다. 30일 시작되는 22대 국회도 걱정스럽다.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비롯해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최종 부결된 법안들을 재발의할 계획이다. 그 와중에 윤 대통령은 108석 여당에 대통령 거부권을 대야 협상 카드로 쓰라고 독려했다. ‘야당 단독처리→대통령 거부권→재투표’ 대치가 무한 반복될 판이다. 이러다간 여야의 갈등·대립으로 저출생·기후변화·양극화 대응 같은 미래 의제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국회는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대의기관이다. 여야는 싸울 땐 싸우더라도 토론과 설득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사회 발전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막중하다. 국회가 정치 아닌 정쟁의 늪에 빠져 있으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치 없는 나라’에 미래도 없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새기길 바란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299169- 윤버지 거부권 난사의 소식 ㅋㅋㅋㅋ먹자 ㅋㅋㅋ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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