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라는 말이 나에게 남아 있었다.

과거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나는 해맑게 웃고 있었고

주위에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손은 엄지모양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짧은 순간의 만남이라면 어렵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은 순식간에 변하지 않기에, 짧게 좋게 만나고 짧게 헤어지면, 

그 사람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것 같았다.

그런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계단을 올라가듯,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이 추억에서 저 추억으로.

잊혀진 인연으로. 사라진 사람으로...

나는 그때의 나를 사랑했다. 

인연을 거치며 나는 철저히 변해갔지만

그 짧은 인연들 속의 나를 사랑했다.

나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 사람에게 그렇게 기억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구차한 변명이겠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내가 그렇게 기억되기를 바랬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았는데

어두컴컴한 방, 생기없는 눈과 마주하고 말았다.

그렇게 살아왔더니 나에게 남아있는 건

어두컴컴한 방과 생기없는 눈 뿐이었다.

나는 분명히 그때의 나를 사랑하며 살아왔는데

지금의 나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다.

인연이란건 추억이란건, 마치 씨앗 같아서

어느 순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피어내 자라난다.

내가 그쪽을 주시하지 않아도

그 인연이란 싹이 거대하게 성장해 내 순간을 가득채운다.

그런데 그 싹에 아무런 물도 주지 않은채 시들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 싹만의 고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미 변해버린 나와, 좋은 사람으로 추억되기를 바랬던 나와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와, 여전히 싹을 피운채 기다리는 당신이 있다.

나에게는 분명 어느것도 고통이겠지만

분명 나만의 고통이 아닐 것 이기에

이제 나는 싹이 어떻게 크게 될지 두려워 하면서도

물을 뿌릴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