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로스트아크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로스트아크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넥스트 페스트 게임 15개 짧은 후기 멍냥핫도그
- 90년대 학생 ㅗㅜㅑ.jpg 딱정벌레
- [추억 회상] 기억남는 국내 이어폰 회사들을 알아보자 ㅇㅇ
- 싱글벙글 자기의지로 4번 월북한 일본인 일리아스
- 동해 석유 시추를 반드시막아야하는 이유.blind 야갤러
- 전남친 찾아와 때리고 성폭행…영상도 있는데 '불구속' 띤갤러
- 인도네시아 모험 se01 (1) - 일단 반둥으로 ㅇㅇㅇ
- 6월 14일 시황 우졍잉
- [J+A] 채상병母 편지에 여야 다른 반응.. 책임 떠미는 사단장-대대장 정치마갤용계정
- 전역한 곳 한바퀴 돌기. ㅇㅇ
- 도넘은...쿠팡....ㅇㅂㅈ시작...jpg 메좆의야짤타임
- 6월 개발 일지 2 봄네코
- 이혼 후 연금 도축 폭증..여자가 다 가져가.news ㅇㅇ
- "무한리필 사주는게 사람 무시하는건가요?".jpg ㅇㅇ
- 싱글벙글 ㅈㄴ 불쌍한 포켓몬.jpg 파바라기
일본 초밥 장인집에서 계란초밥 만드는 과정
130년 넘은 초밥 장인집 계란 초밥이 뭔 대수라고 생각하지만 경력있는 사람만이 계란 초밥을 만들 수 있음 새우와 어묵을 갈아서 계란과 섞는다 표면이 울퉁불퉁하지 않게 다듬으면 아래쪽 불은 아주 약하게 켜놓고 위에는 숯불을 들고 표면을 아주 골고루 천천히 익힌다 숯불을 들고 몇시간을 있어야하니 온 몸은 땀범벅 카스테라 비슷하게 빵빵해지면 완성 (히힣 잘만들었죠?) 스시 장인이 균일한 크기로 썰고 밥과 합치면 속은 꽉 차고 담백한 계란초밥(타마고야끼) 완성 계란초밥은 수십년을 초밥 외길로 살아온 장인이 단 한번도 메인 메뉴에서 바꾼적 없는 유일한 초밥이다
작성자 : Patronus고정닉
[단독]이재명 재판, '이화영 유죄' 재판부 배당..민주, 기피신청 검토
- 관련게시물 : 시이바알 / 이재명 ‘대북송금’ 재판, 이화영 유죄 재판부가 맡는다제3자 뇌물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대표 재판 맡을 판사가 정해졌는데요.이화영 전 부지사 1심 유죄 판결을 내린 그 판사가 배정됐습니다.쌍방울이 북한에 건넨 돈은 경기도가 낼 돈을 대납한 거고, 최종 결재권자가 이 대표라고 인정했던 판사죠.무작위로 배정된 거라는데, 민주당은 대책을 강구 중입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제3자 뇌물' 혐의를 다룰 재판부가 정해졌습니다.수원지법은 오늘 신진우 부장판사가 있는 형사 11부에 사건을 배당했습니다.이 재판부는 지난 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9년 6개월 중형을 선고했습니다.쌍방울 대북 송금을 "이재명 경기도지사 방북 사례금"이라고 판단한 재판부입니다.수원지법 관계자는 "법원 전산시스템 통해 무작위로 배정된 것"이라며 "다른 고려는 없다"고 밝혔습니다.하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 입장에선 가장 피하고 싶은 재판부를 만난 겁니다.실제로 이화영 전 부지사 선고 이후 편파적이라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습니다.박찬대 원내대표 역시 "이 전 부지사 판결 미국에서 나왔더라면 판사는 탄핵이나 파면"이라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앞서 신 부장 판사는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된 은수미 전 성남시장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고 대장동 사업가 김만배 씨 재판도 맡아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이재명 대표 첫 공판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대북송금 사건을 이미 한 번 심리했던 재판부인 만큼 재판이 빨리 진행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7431이재명 대표를 어제 기소한 검찰은 재판 준비를 착수했는데요.핵심은 이재명 대표가 쌍방울 대북송금 사실을 알거나 지시했느냐죠?검찰은 도지사 직인이 찍힌 공문을 증거로 제시할 예정입니다.앞으로 열릴 이재명 대표 재판 최대 쟁점은 '이 대표가 대북송금을 알았느냐'입니다.검찰은 공소장에 당시 경기지사 직인이 찍힌 방북요청 공문이 그 증거라고 적시했습니다.2019년 11월 경기도가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에 보낸 공문입니다.'민족협력사업 협의와 우호증진을 위한 경기도 대표단 초청 요청'이란 제목에, "도지사를 대표로 하는 경기도 대표단의 초청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적혀있습니다.경기지사의 직인도 찍혀있습니다.경기도는 같은 해 5월부터 6개월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이유를 바꿔가며 이같은 방북요청 공문을 보냈습니다.당시 이재명 경기지사의 업무지시도 증거로 제출됩니다.2018년 7월 "실국장 전결사항 중 중요사항은 도지사에게 사전보고"토록 했고 "특히 평화정책 사업은 별도 정기 보고 및 월 1회 추진상황 제출"이라고 한 부분입니다.보고체계상 이 대표가 대북사업 관련 내용을 모를 리 없다는 게 검찰 판단입니다.하지만 이 대표 측은 공문에 도지사 직인이 찍혔어도 알았거나 지시한 증거는 아니라고 반박합니다.이 대표 측은 조만간 변호인단을 새로 꾸린 뒤 재판 준비에 나설 계획입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7432민주당은 오늘 이화영 부지사 재판을 두고 “정치 재판 이거나 무능한 재판” 둘 중 하나라며 맹비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 판사가 이재명 대표 판사로 배정되자 기피 신청을 검토 중입니다.이화영 전 경기부지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가 이재명 대표 재판을 맡는다는 소식에 민주당 내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한 민주당 의원은 "매우 편파적으로 판결한 판사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며 "일단 기피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다른 변호사 출신 친명 의원은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오늘 오전 민주당 정치검찰 사건조작 특별대책단은 이화영 재판 판사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이재명 대표도 나섰습니다.SNS에 "내가 전과자인 조폭출신 부패사업자와 짜고 800만불을 북한에 줬겠냐"고 올렸습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검찰의 이 대표 기소를 소가 웃을 일이라고 했습니다.민주당은 국회 법사위에서 법원을 상대로 이화영 판결과 관련해 현안 질의를 할 예정입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7433Q1. 이재명 대표 사건이 이화영 전 부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에 배당이 됐어요? 법원이 관련사건을 감안해서 지정한 겁니까?그건 아닙니다.재판부 배정은 전산에서 무작위로 정해집니다.수원지법엔 부패전담 재판부가 형사11부와 형사14부, 2개뿐입니다.공교롭게도 1/2 확률로 이화영 전 부지사에게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한 재판부가 배정된 겁니다.Q2. 그런데 이 재판부, 이화영 부지사 판결을 하면서 대북송금을 경기지사 방북 대가라고 했단 말이죠. 영향이 있을까요?말씀하신 대로, 이 재판부는 쌍방울 대북 송금의 상당 부분을 방북 대가로 판단했습니다.앞으로 재판에서 뇌물 혐의를 따지려면 쌍방울이 북한에 준 돈에 대가성이 있는지를 가려야 합니다.그런데 이 재판부는 "200만 달러는 경기도지사 방북과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전달된 돈"이라며 "북한 상부에 대한 사례금"이라고 판단했습니다.재판부가 이런 판단을 내린 만큼 이 대표에게 유리하진 않다는 분석도 나옵니다.Q2-1. 유리하진 않다. 민주당에서는 재판부 배정부터 문제를 삼겠군요?네, 이화영 전 부지사 판결은 외환 밀반출 혐의이고,이 대표는 뇌물 사건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기초적인 사실관계는 같은 잣대로 보고 있습니다.판사 출신이자 국회 법사위 간사인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이 전 부지사 1심 선고 이후 "이런 재판은 30년 법조 생활 동안 듣도 보도 못했다"며 "절차도 엉망, 결과도 오판" 이라고 비판했습니다.결국, 이 대표가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며, 재판부를 바꿔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점쳐집니다.Q3. 만약에, 이 대표가 재판부를 바꿔달라고 요구한다면, 실제로 바뀔 수도 있습니까?기피신청이라고 하죠.판사가 사건 당사자와 관계인이거나,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될 때 피고인이 재판부를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건데요.하지만 재판부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지는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판사들 얘기를 들어봐도, 단순히 공범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는 이유로 재판부를 바꾸긴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습니다.다만 재판 지연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재판부 기피신청을 하면, 교체 여부가 정해질 때까지 재판이 중단되기 때문입니다.실제로 지난해 이화영 전 부지사도 재판부가 공정하지 않다고 교체 요구를 하면서 심리가 두 달 넘게 지연된 적 있습니다.Q4. 수원에서 재판부 바꾸는 게 어렵다면 아예 서울 법원으로 옮겨달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법조계에선 오히려 담당을 서울로 옮겨달라는 요구가 더 현실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지금도 이재명 대표는 일주일에 3번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죠.이 대표가 서울에서 재판을 한꺼번에 받는다면, 아예 법원을 바꾸는 셈이 됩니다.결과적으로 이화영 전 부지사에게 중형을 선고한 재판부를 피할 수 있습니다.지난해 9월, 이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검찰은 대장동 개발비리 말고도 수원지검이 수사하던 대북송금 혐의도 함께 넣었습니다.이 대표 입장에선 검찰이 먼저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한 적이 있으니, 재판도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냐 주장이 가능한 셈입니다.만약 이 대표가 사건을 서울로 이송해달라고 요구할 경우, 최종 판단은 대법원이 하게 됩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7434
작성자 : 정치마갤용계정고정닉
흥선대원군은 과연 전통건축의 구세주인가?
요즘 글을 거의 안쓰고 있는데, 경복궁 관련해서 말들이 많길래 경복궁을 중건한 인물인 흥선대원군에 대해 말해보려 함.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흥선대원군에 대해 별 악감정이 없으며 오히려 그가 시행한 여러 개혁정책들은 꽤나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함. 하지만 그는 경복궁 중건이라는 큰 실수를 했고, 결과적으로 이것으로 인해 고종에게 권력을 넘겨주게 되었음. [광화문과 북악산] 다만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오로지 문화재와 건축에 국한된 부분이지 이것으로 흥선대원군에 대한 비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님. 역사에 가정은 없기에 그가 집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문화재들이 지금 남아 있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음. 다만, 흥선대원군에 대해 경복궁을 중건했다는 사실만으로 치켜세우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함. [안동 호계서원, 산청 덕천서원, 안동 묵계서원, 밀양 칠탄서원. 사진 : 문화재청] 흥선대원군이 실시한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서원철폐령이었음. 서원은 조선시대에 지방권력을 틀어쥐고 갖은 횡포를 부리고 있어 지방 관아에서도 어쩔 수 없이 놔두고 있었음. 특히나 세도정치기 삼정의 문란 등으로 백성들의 삶이 극도로 궁핍해져 가고 있던 상황에, 서원의 악행은 묵과할 수 없던 부분이었음. 따라서 흥선대원군은 47개소의 서원을 제외한 모든 서원을 훼철시킴. 정책적 측면을 떠나 문화재적 가치로만 접근하자면, 성리학을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에서 서원은 궁궐 다음으로 권위 있는 건축물이었고, 또한 그 수도 많았기에 당시에 1000개소가 넘던 서원을 극소수만 남기고 모조리 없앴다는 것은 조선 건축의 한 뿌리가 사라진 것과도 같음. 훼철 이후 여러 서원들이 재건되었는데, 그 면모를 살펴보면 입지나 배치가 훌륭한 곳들이 많아 대원군에 정책에는 수긍하면서도 50년만 더 버티지 하는 생각도 들긴 함. 특히나 한국전쟁 중 서울 근교의 우저서원, 파산서원, 사충서원 등 남아있던 47곳 중에서도 소실된 것이 많은 점은 더욱 안타까움. [경복궁 흥례문]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복궁임. 경복궁은 1592년 소실된 이후 몇몇 왕들이 찾기는 했으나 270년간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음. 반대로 말하자면 조선 초기 궁궐의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었음을 뜻함. 조선 초기는 경복궁-창덕궁 양궁 체제로 운영되었는데, 태종의 경우에는 창덕궁에서 주로 머물렀으나 세종 등의 경우에는 경복궁을 선호하였음. 따라서 경복궁에는 조선 초기, 특히 세종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음. 세종조 집현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많은 과학적 성과들의 흔적이 1865년까지 경복궁에 남아 있었는데, 옥루, 앙부일구 등이 설치되어 있던 흠경각과 일영대, 천문관측을 하는 장소였던 간의대 등이 남아 있었음. 그러나 경복궁 공사가 시작되며 이것들은 모조리 헐리고 말았음. 이를테면 간의대 옥석의 경우에는 근정전 뜰의 품계석으로 쓰였음. 또한 정조실록에 따르면 정조가 "(전략) 우리 나라에서 제일 웅장한 건축인데 지금껏 우뚝 솟아 있어 마치 영광전과 흡사하다."고 하였으며 같은 기록에서 경복궁 터를 다녀온 호조판서 심이지가 보루각 터를 둘러보았으며 흠경각은 들보와 서까래가 썩었다고 했는데, 이는 1794년의 기록임. 이 흠경각은 광해군 때인 1613년 재건한 것인데, 당시까지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임. 다만 효종조 잠시 언급되었다가 이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광해군이 폐위된 이후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던 것 같음. 물론 정조 때에도 이미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던 것 같지만, 중건 시점이 이로부터 70년 뒤이니 남아 있었을 가능성도 있음. [경복궁 경회루] 흔히 조선 초기 경회루에 대해서는 돌기둥에 용 조각이 있었음에 주목함. 성종조에 조각된 이 돌기둥은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다가, 중건 시점에는 48개 중 3개만 서 있고 나머지는 무너져 있었다고 함. 중건 시점에서 용 조각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돌기둥들이 화재로 상해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서 계체석으로 썼다고 적혀 있음. 아마도 경회루 기단의 돌들이 검게 변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돌기둥들을 깎아 재사용한 것으로 보임. 물론 불에 탔다고 하더라도 조각은 분명 남아 있었을 것임.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다른 용도로 재사용되었기에 그 모습을 알 길이 없음. 현재의 돌기둥들은 삼청동과 송계별업 등지에서 새로 떼어 와 제작한 것들임. 가끔 가다 용 조각은 오래되서 지워진 것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정보임. 한편, 경복궁을 재건하던 당시 근정전과 경회루의 기단과 월대는 다시 제작되었음. 당시 기록을 보면 외형은 약간 손상이 있었으나 돌을 뜯어내니 안쪽은 물이 스민 흔적이 없이 완벽했다고 함. 기단 안쪽을 채우던 돌들은 그대로 사용했다고는 하나 월대와 기단은 새롭게 조성한 것으로, 조선 전기의 흔적이 아님. [경희궁 흥화문과 숭정전. 사진 : e뮤지엄]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손실은 바로 경희궁임. 경희궁은 비록 직전 왕들인 헌종-철종조(1834-1864)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나, 헌종 이전의 순조를 비롯하여 인조, 숙종, 영조 등 많은 임금들이 애용하던 궁궐이었음. 지금은 터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 후기에는 창덕궁과 경희궁 두 궁궐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남아있었다면 큰 역사적 가치를 가졌을 것임. 그러나, 경복궁을 중건하며 부재를 충당하기 위해 경희궁이 헐리게 되었음. 따라서 경희궁은 위 사진과 같이 5개 전각을 제외한 모든 건물들이 사라졌음. 막상 헐고 나니 상한 목재가 많아 대부분 사용하지 못했다고 함. 경희궁은 이후 망국 이전까지 이따금 군사를 사열하는 등의 장소로 쓰이다가 망국 이후 남은 건물들은 모조리 팔려나가고 그 터에는 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섰음. 숭정전은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지금은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고, 정문인 흥화문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의 신사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쓰이다가 해방 이후 그 자리에 들어선 신라호텔의 정문으로도 오래 서 있었음. 흥화문은 1988년이 되어서야 경희궁으로 되돌아왔으나, 옛 터에 구세군 건물이 들어서 있어 원래 자리는 되찾지 못했음. 참고로 박석 갖고도 시끄러운 거 같은데, 내 추정으로는 임란 이전까지는 박석이 없었을 것으로 보임. 현재 경복궁 내에서 박석이 사용된 장소는 근정전 앞마당뿐임. 그런데 영건일기에 따르면 경희궁과 안현(안국동고개. 현재 광화문에서 안국역으로 넘어가는 길)에 깔려 있던 박석들을 싸그리 철거해서 들고 왔고, 그것도 모자라 강화에서 새로 떼어 왔다고 함. 애초에 박석은 바닥에 까는 돌이니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 한들 굳이 철거한 후 다시 깔 필요는 없어 보임. 중건 이후 고종은 30년도 안되는 경복궁 생활 동안 멀쩡한 침전 놔두고 구석에 들어가서 살다가 아관파천으로 경복궁은 이후 또 다시 폐허가 되었음. 군주의 위상을 세우겠다고 엄포한 고종은 또 다시 궁궐 공사를 시작했고, 여기에 더불어 평양의 풍경궁이나 안동별궁을 비롯해 각종 토목공사를 벌였음. 경운궁은 완공된 지 1년만에 전소되어 중층 중화전 건물을 단층으로 재건하는 촌극을 벌였고, 풍경궁은 완공도 못 한 상태에서 일본군이 러일전쟁 중 점거하여 돈낭비로 그쳤음. 언젠가 고종의 토목공사 욕심에 대하여 제대로 다루게 된다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음. 어쨌든 이번 글에서는 경복궁 중건이라는 대역사를 벌인 흥선대원군에 대해 알아보았음.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된 경복궁이 없는 서울을 상상하기 어려움.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원군을 찬양하는 것은 동전의 한쪽 면만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음. 더군다나 그 역사적 맥락으로 살펴봤을 때, 경복궁 중건은 결과적으로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끈 시발점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경복궁이 갖는 의미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19세기 조선에 그대로 대입하여 흥선대원군을 평가하는 것은 크나큰 잘못임. - dc official App
작성자 : BABO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