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탁아, 정말 남을 거야...? 내가 가는데?"

리사가 말했다.

응디탁은 모니터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마우스를 딸칵거렸다.

응디탁은 리사의 일베 의혹 이후 하루종일 입을 열지 않았다.

"같이 떠나자."

"......"

응디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리사는 입술을 깨물고 가방을 들쳐맸다.

방을 나가기 직전,

머리를 쓸어넘기며 마지막으로 응디탁을 쳐다본다.

말 없는 뒷모습.

리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내리깔고 방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그때 응디탁이 말했다.

"하나만 묻자."

응디탁이, 기계처럼 감정 없이 속삭였다.

리사가 돌아보았다.

"니 성질머리 받아줄 사람이 필요해서 나 찾는 거냐. 리사."

"무슨......"

"상의도 없이 멋대로 떠난다고 하고...

그러고는 나더러 같이 가자고 하고."

응디탁이 일어나서 리사의 눈을 마주했다.

리사는 응디탁의 눈에서, 전에 보지 못한 격동을 읽었다.

"넌 날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겠지."

"디탁아......"

"가라."

응디탁이 의자에 앉아 다시 마우스를 쥐었다.

리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디탁아... 응디탁!"

고해성사하듯 가슴을 부여잡고,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한 것들을 속에서 가다듬었다.

입 밖에 내면, 그 간절함이 빛바래 버릴까봐.

"디탁아... 난 그냥 게임만 하고 싶어.

단순하게 진짜 로아만 하고 싶어."

"......"

"그동안 갤질 하면서 느꼈어.

항상 사람들이 날 바라본다는 거.

이젠 늦었어... 예전으로 돌아가기엔...

항상 주목 받고 살아야해."

"......리사."

리사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응디탁의 손가락이 떨렸다.

"난 그냥 단순히... 너와 로아하고 싶어.

둘이서... 즐겁게, 아무 생각 없이."

리사의 눈에 차오른 물기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나한테는 이제 응디탁, 너 뿐이야."

"리사야..."

"니가 다른 새끼랑 로아하는 거...

그딴 거 보고 싶지 않아."






그녀의 고백에 응디탁의 표정이 무너져내렸다.

응디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사가 들쳐맨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응디탁이 리사를 끌어안았다.

응디탁은 어린애처럼 자신을 찾는

리사의 어깨를 보듬으며 눈을 감았다.

그의 눈에서도 물방울이 떨어져내렸다.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들끓는다.

응디탁은 흐르는 눈물 속에서 웃었다.

[리사야.]

[다들 모르고 있어...]

[나야말로.... 너 아니면 안된다는 걸.]

[처음 너와 만났을 때, 본능적으로 느꼈었지.]

[너로 인해 난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응디탁이 리사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같이 떠나자. 리사야."

"디탁아..."

포르쉑은 문 바깥의 벽에 기대어,

둘의 속삭임을 듣고 있었다.

"녀석들......"

포르쉑은 말없이 걸어 나가며 전화를 했다.

"도우너... 길드장 새로 뽑아야 되겠다..."

[왜? 무슨 일인데? 또슈 그만둔데???]

"그야..."

포르쉑은 생각했다.

무어라고 표현해야 하나.

저 둘의 관계를, 자신의 조악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픽 웃고 말았다. 악역은 익숙하니까.

"알잖아. 내 시선에서 out."

[이 새끼......]

둘이 떠나는 날.

각자의 길드에 인사하고 떠나는 둘의 뒷모습을 보면서,

포르쉑은 미소지었다.

햇살이 따갑다.

우끼끼파라다이스와 메타몽에서의 마지막,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로스트아크 어딘가에서

저 둘을 다시 만나는 날이 오겠지.

"저 새끼들을 저렇게 놔둘 수 없지."

문득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그 둘을 따라가고 있었다.

"아...안돼...!!!!!!"

포르쉑이 소리쳤다.

PVP의 (병)신 천년군주가,

무한나선을 그리며 차츰 그 둘의 등을 향해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역시 틀년군주야ㅋㅋ 가차 없죠."

뒤에서 지켜보던 고추잎수아 커플이 낄낄댔다.

포르쉑은 천년군주의 심판의 창에

허물어지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 미안하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