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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도 꿈과 낭만을 쫓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
https://youtu.be/TopdlAgjdA4쥬라기 공원 3에 등장해 엄청난 임펙트를 남겼던 스피노사우루스이 영화 하나 때문에 스피노는 순식간에 티라노의 맞수로 취급받으며 엄청난 유명세를 떨치게 됨. 지금도 검색창에 티라노만 쳐도 VS 스피노가 자동완성될 정도이니 그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음. 오늘은 바로 이 스피노를 발굴한 독일의 고생물학자 에른스트 슈트로머 폰 라이헨바흐 남작에 대해 설명하겠음슈트로머 남작은 1871년 6월 12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남그가 속한 슈트로머 가문은 신성로마제국 시절부터 명문가 취급을 받던 귀족 가문이었음아버지 오토는 뉘른베르크 시장이었고형 프리드리히는 유명한 역사가이자 철학자였으며조상 울만 슈트로머는 독일 최초의 제지공장을 설립한 이였으니 말 다한 셈.아무튼 이런 금수저 명문가에서 태어난 슈트로머는 학자, 그것도 고생물학자의 길을 걸음.1911년 슈트로머는 이집트에서 고대 육식 공룡의 화석을 발견함.바로 그 유명한 스피노의 화석이었음.화석을 발굴하는데 성공한 슈트로머의 발굴팀은 신나게 발굴 작업에 들어가는데문제는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거임.그가 이집트에서 화석을 발굴하는 동안, 이집트의 지배권이 오스만에서 영국으로 넘어감.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1914년엔 1차대전이 발발.슈트로머의 탐사대는 졸지에 적국 한복판에 떨어진 셈이 되었음.독일인이었던 슈트로머는 영국군에게 체포되었지만다행히 얼마 못 가 풀려나 영국의 감시 하에 화석 발굴을 계속할 수 있게 됨.이 과정에서 남작은 장티푸스, 만성 이질, 말리라에 걸려 죽을 뻔했음심지어 발굴 도중 사고가 일어나 다리까지 부러짐. 그럼에도 불구, 남작의 탐사대는 근성으로 화석을 발굴해전후 독일로 귀환하는데 성공함.이후에도 슈트로머는 여러 차례 이집트를 재방문해 화석 탐사를 이어갔으며1931년에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를,1932년에는 아이깁토사우루스1934년에 바하리아사우루스를 발견하는 성과를 냄.비록 바하리아사우루스는 21세기에 들어서 의문명으로 처리되었지만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와 함께 발견된 화석-남작은 이것도 카르카로돈토인 줄 알았음-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카르카로돈토와 별개의 종으로 확인되어올해 2025년에 타메리랍토르로 명명됨.그러다가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남작에게 새로운 위기가 닥침남작 본인은 나치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했고 평범한 학자였기에 나치 시대에도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었음. 하지만 전쟁에서 독일이 밀리며연합군의 폭격이 심화됨 이에 위기감을 느낀 남작은 자신의 화석들이 전시된 뮌헨 자연사박물관의 관장이자 나치당원 겸 SS 대원이었던 고생물학자 카를 테오도어 뵈를렌을 찾아감남작은 뵈를렌에게 자신의 화석 표본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송시켜줄 것을 요청했지만 뵈를렌은 다른 전시물들의 이송도 벅차다는 이유로 남작의 요청을 거절함. 나치당원인 뵈를렌이 나치당을 지지하지 않는 남작을 고깝게 여겨서그의 요청을 일부러 거절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확인되진 않았음. 실제로 당시 전시라 다른 물자의 이송이 급해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화석들이 후순위로 밀린 게 사실이기도 하고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던 남작은 히틀러에게 편지까지 써가며 지원을 호소했지만그가 쓴 편지가 히틀러에게 전달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한데다설사 전달되었다고 한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임. 결국 남작의 예감은 적중,1944년 4월 24일에서 25일 이어진 영국 공군의 뮌헨 공습으로박물관은 전소, 남작이 피땀 흘려 모은 표본들은 모조리 유실됨.현재 박물관에 전시된 스피노의 화석 표본은 사진과 기록을 토대로 만든 레플리카임자신이 피땀 흘려 발굴한 화석들이 모조리 잿더미가 된 것도 모자라남작에겐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음. 당시 남작에겐 세 아들이 있었는데(장남 울만, 차남 게르하르트, 삼남 볼프강)셋 다 징집되어 최전선에서 복무함 이중 울만과 게르하르트는 전사했고 볼프강은 소련군 포로가 되서 굴라그에서 유형생활을 해야했음그런데 남작에겐 볼프강이 전사했다는 통지서가 보내져서1950년 볼프강이 독일로 귀환할 때까지 남작은 엄청난 고통을 겪음.비록 막내는 살아서 돌아왔지만본인이 발굴한 화석들이 잿더미가 되고자식 2명이 전사하고조국 독일이 두 번이나 전쟁에서 패해 나라가 2개로 쪼개지는 꼴을 본 남작은1952년 12월 18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함. 여담으로 뵈를렌은 전후 나치당원이자 SS였다는 이유로 뮌헨 대학교에서 해고됨.이에 그는 브라질로 가서 교수 일을 하며 고생물학 연구를 계속했고1969년 독일로 귀환해 몇 권의 고생물학 관련 저서를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됨.그는 브라질에서 거주하는 동안 고생물학 연구에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되어 1970년 브라질 레시페 대학교 명예 학위를1972년 브라질 지질학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았고 1985년 브라질 고생물학회로부터 은메달을 수여받으며 잘 살다가 그해 사망함. 남작은 죽었지만 그가 고생물학계에 남긴 족적은 너무나도 큰 것이었기에 2000년 미국 고생물학자 조슈아 스미스는 남작에 대한 경외의 뜻을 담아 자신이 발굴한 용각류의 이름을 '파랄리티탄 슈트로머'로 망명함. 아이러니하게도 파랄리티탄의 화석은남작이 아이깁토사우루스를 발견한 곳 근처에서 발견되었음.현재 파랄리티탄은 백악기에 생존한 용각류 중에서 아르헨티노사우루스 다음으로 가장 거대한 용각류로 추정되며2014년 독일 ZDF 방송국은 남작의 생애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함.비록 남작의 인생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었지만그가 발굴한 화석들은 전 세계 잼민이들과 어른들의 동심과 낭만을 자극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낳았으니그의 인생은 진실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작성자 : zbv1945고정닉
Ivan Gren class: 소련 해군의 재건을 위해
[시리즈] 소련 · 쌍동선으로 항공모함 만들기 · 컨테이너선으로 항공모함 만들기 · 소련 해군의 강습상륙함 이야기 · 소련 해군의 상륙전 이야기 · Tu-128: 이걸 어디다 써먹냐 · Tu-128: 분명 시작은 좋았는데 · Tu-128: 존나 크니까 존나 멀리 날거야 · Tu-128: 땅은 넓고 빈틈은 많다 · 소련의 정신나간 잠수상륙함 이야기-후편 · 소련의 정신나간 잠수상륙함 이야기-전편 · 소련이 정찰기 만들다 망하는 이야기 · 소련이 정찰기 만들다 때려치우는 이야기 · 이란이 소련 영공침범하는 이야기 소련 멸망 이후, 러시아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아니, 그냥 좆됐다 소련 해체의 여파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러시아는 이게 한때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국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몰락하며 GDP 순위가 세계 20위권 밖으로 밀려남과 동시에 1인당 GDP가 1,3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참고로 1인당 300가 1,300달러면 당시 IMF로 휘청이던 대한민국의 15%, 개발도상국인 필리핀과 비비는 수준으로, 그냥 진짜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국방비가 대한민국한테 따잇당하는 상황에서 군대, 그중에서도 돈먹는 하마인 해군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리가 없었고, 러시아 해군은 계획중이던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전부 취소됨과 동시에 급속하게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경제가 복구된 이후인 2025년에도 러시아 해군은 소련 해군의 25% 수준인데다 소련 시절 대형함들을 그대로 우려먹는게 현실이니 뭐... 러시아판 고난의 행군을 찍어버린 90년대에는 이게 더 심해서 소련 해군의 최중요 전력으로써 63척이 운용되었던 SSBN의 경우,경제난이 극에 달했던 1995년에는 태평양/북방함대에서 항해가능한 SSBN이 단 2척 뿐이었을 정도로 좆망했고 1992년까지만 해도 약 1,100대의 전투기/폭격기를 운용하며 미해군에 심각한 위협으로 평가받았던 러시아 해군항공대는 불과 10년만에 전체 전력의 80%가 줄어들었다. 인적자원 문제도 심각했는데, 60,000명에 육박하던 해군항공대 인원은 2001년 기준으로 35,000명으로 줄어들었고, 584명의 해군항공대 조종사들 중에서 전투기 '조종'이 가능한 이들은 불과 156명, 야간비행이 가능한 조종사들은 단 77명 뿐이었으며 1999년에도 24시간이었던 '연간' 비행시간은 21.7시간으로 바닥을 기었다. 참고로 한국 공군의 경우 '07~'11년 사이에 평균 비행시간이 137시간, 미군은 189시간이다 그리고 보통 2선급 전력으로 분류되는 상륙함들 또한 이런 경제위기에서 직격타를 제대로 맞았다. 소련 상륙부대의 최중요 전력이었던 이반 로고프급은 3척이 모두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폐기되었고, 엘리게이터급은 14척 중에서 10척이, 로푸카급은 27척 중에서 13척이 퇴역했다. 대충 전체 전력의 40%가 넘는 상륙함들이 소련 붕괴와 함께 사라져버린 것.... 참고로 소련군 상륙교리의 한축을 담당하던 LCAC(공기부양정) 전력은 아예 삭제되어버렸는데, 소련 헤체와 동시에 급속도로 붕괴된 소련 해군은 GUS급 32척, 칼마르급 ~20척, 제이란급 14척, 무레나급 10척, 주브르급 5척을 퇴역시켰고, 90년대 러시아 해군에게 남아있는 LCAC들은 20척 미만의 주브르급과 제이란급이 전부였다. 이렇게 러시아를 신나게 말아먹은 주범은 바로 임기 내내 알콜중독자처림 보드카를 달고 살았던 러시아 연방의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었다. 그는 분명 '91년에 소련 공산당 보수파들이 일으킨 8월 쿠데타를 시민들과 진압할 때까지만 해도 러시아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정치인이었으나, 이때 탱크한테 뺑소니를 당해 정신이 이상해졌는지 (여담으로 옐친은 진짜 음주운전 뺑소니로 사람을 죽여봤다) 그래프에서 보이듯....러시아 경제를 완전히 말아먹었다 1992년 러시아 GDP 성장률이 -15% 정도였으니 뭐... 그래도 사람은 좋았다면 그럭저럭 해먹을수 있었겠지만 1993년에 옐친과 입법부 사이의 갈등으로 일어난 러시아 헌정위기를 무력으로 진압해버리고 부정축재로 어마어마한 국가재산을 횡령했으며 굳이 체첸까지 쳐들어갔다 온갖 추태를 보여주는 등 그의 수없이 많은 실책들은 러시아 국민들이 옐친에 대한 지지를 완전히 철회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1998년 옐친의 지지율은 단 2%, 비호감도는 89%를 기록했다. 도데체 무슨 개지랄을 해야 지지율 2%가 나오는걸까...? 그저 대단할 따름이다...... 결국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아버림과 동시에 알코올 중독으로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된 옐친은 1999년 8월에 전직 KGB 요원이었던 블라디미르 푸틴을 총리로 임명해 국정을 위임한다. 블라디미르 푸틴....당시 47세였던 그는 러시아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원하는 인물이었다. 우선, 자꾸 기어오르는 체첸인들을 2차 체첸전을 통해 성공적으로 짓밟으며 극심한 경제난으로 지쳐있던 러시아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줌과 동시에 총리 임기를 시작한 푸틴은 2000년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53.4%의 득표율을 기록, 러시아 연방의 제 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푸틴이 집권한 뒤 러시아 경제는 상승가도를 달렸다. 00년대의 고유가 붐에 편승하여 러시아는 천연자원(LPG/석유 등)을 서유럽에 적극적으로 수출하며 외화를 벌어들였고, 2007년에는 1994년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GDP를 추월하고 2011년에는 GDP 2조 달러를 돌파하는 등, 러시아의 경제는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소련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러시아 해군도 미뤄뒀던 건함계획들을 풀가동시키기 시작했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2,000톤급 호위함인 스테레구시급 30+척으로 기존에 운용하던 그리샤급(1,000톤급/86척)을 4,400톤급 호위함인 고르쉬코프급 30척으로 크리박급(3,500톤/40척)을 소련 시절에 건조되었던 구식의 순양함들인 소브로멘니급(8,000톤/21척) 우달로이급(7,570톤/13척) 슬라바급(11,490톤/3척) 키로프급(28,000톤/3척)들은 20,000톤급 핵추진 구?축함인 리데르급 12척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었다. 거기다가 단 1척만이 운용중인 쿠즈네초프급에 더해 배수량 100,000톤짜리 슈퍼캐리어인 슈토름급 핵추진 항공모함 8척을 건조해 배치한다는 원대한 계획까지 세워놨다. 뭐 망상은 자유잖아? 당연히 상륙전력 또한 보강할 계획이었고, 그 첫타자가 바로 만재배수량 6,600톤의 이반 그렌급이었다. 러시아 해군은 이 배를 11척 건조하기로 계획했고, 2004년 12월에 선박의 건조가 시작되었다. 선체는 건조기간과 개발비를 줄이기 위해 Project 1171...그러니까 1964년부터 1975년까지 총 14척이 건조되어 소련군 상륙전력의 일익(一翼)을 담당한 엘리게이터급 전차상륙함을 기반으로 상부 구조물과 내부를 현대화, 체육관과 병사용 식당, 더욱 편안한 선실을 설치하여 승무원들의 거주성을 높였고, 5,200마력의 가스터빈 과급기가 장착된 16기통 10Д49 디젤엔진 2기를 탑재해 최대 18노트(33km/h)까지 가속이 가능했다. 전작보다 배수량이 1,000톤 가까이 늘어난 만큼 웰독 크기도 더욱 커져서 최대 300명의 해병대나 전차 13대/IFV&APC 36대를 탑재할 수 있었고, 보급 없이도 최대 30일간 항해가 가능했으며, Ka-27/29나 Ka-52 공격헬기까지 운용할 수 있도록 헬기 격납고까지 설치한 이반 그렌급은 확실히 소련 시절에 운용하던 낡아빠진 LST들보단 훨씬 진보된 모습이었다 무장 또한 현대화되었다. 기존에 운용되던 엘리게이터급이나 로푸카급은 대공무장이 기껏해야 57mm 함포나 수동으로 조작해 발사하는 맨패드따리라 아예 대공능력이 없다시피했지만, 이반 그렌급에는 팔마 CIWS 2기가 장착되어 적 전투기의 위협으로부터 최소한의 방어를 제공했다. 기존에 잘 써먹던 코르티크 CIWS에서 미사일을 제거하고 레이더와 사통을 초음속 미사일에 대항할 수 있도록 교체한 팔마는 AK-630이나 코르티크에도 사용된 Gsh-6-30의 포신을 늘리고 분당 발사속도를 5,000발으로 조정한 AO-18 6연장 게틀링건을 장착, 200~4,000m 거리에서 300m/s(마하 0.9+)의 속도로 비행하는 표적을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었다. 또한, 사거리 20km의 9M22 로켓 40기를 탑재한 A-215 그라드-M MLRS 1기가 탑재되어 상륙군에게 즉각적인 화력지원을 제공할 예정이었으며, 도데체 왜....자꾸 상륙함에 함포를 올리는지는 모르겠지만 AK-176M 76mm 함포 1문이 장착될 예정이었다. 이게 예정대로 건조됐냐고? 당연히 아니었다.
작성자 : 우희힝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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