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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ing
평소 실제 몸무게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어?! 그렇게 많이 나가는 걸로 안 보이는데 거짓말 하지 말아라."이 한마디를 양분 삼아 "난 뚱뚱하긴 하지만 보기 흉할정도는 아니다"라며 정신승리하며 버텨온지 30년.어느날 한밤중 유리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고 흉하다는 생각이 들게 됨.곧장 퇴근후 회사 헬스장에서 다이어트 시작.2024.07.01 다이어트 시작. 사실 인생 최대 몸무게는 125키로인데 그때 사진은 없네아쉽게도 자기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은 없어서 셀카사진같은게 하나도 없음.30살 먹은 나의 과거 사진이라고는 고등학교 장난시던 시절 사진뿐임식단 - 평일 식단은 탄수화물 최대한 거르고 거의 닭가슴살 아니면 닭다리살 위주였고 고기만 처먹으니까 변비옴.변비? 채소가 좋은거 아닌가? 란 생각들어서 양배추도 먹었음. 평일은 극단적인 식단이었지만 일요일은 먹고싶은걸 최대한 많이 자제력 없이 먹었음.양배추 채썰어서 계란이란 섞어서 양배추전? 해먹으면 식단도 되고 변비킬러임 심지어 양배추는 얼마나 처먹든 이득임맛이 없다고? 넌 아직 덜 굶은거다. 운동- 초반 두달간은 런닝머신에서 속도10 2분 달리고 속도6으로 3분 휴식 으로 딱 12번 반복해서 1시간 채웠다.어느정도 할만하다 싶을때 달리는 시간이랑 휴식시간 비율을 조금씩 바꾸다가13으로 10분 달리기 가능할때 상남자스럽게 유산소 유기함.이후 회사 헬스장에 있는딱 이정도 파워랙이랑 덤벨.선생님은 오직 유투브 뿐.근력운동 시작하면서 단백질 챙겨먹음 단. 하루에 150그람 이상 안 넘기려고 조절함.대신 일요일 자유식단은 그대로 하루 3치킨도 해봤음.다이어트 시작하고 세달만에 야비군 작계 뜨고 어?! 전투복 헐렁해졌겠다 싶었지.뒤지게 헐렁함. 여기서 자신감 존나 뿜뿜옴그렇게 꾸준하게 아무리 운동하기 싫어도 일단 헬스장으로 출석하고출석한김에 덤벨 몇번 들기를 반복하고 나서 현재.체중계 처음사고 잰 몸무게가 108임다이어트 초반엔 몸무게 매일 쟀는데 반년쯤 지나니까 몸무게 신경안쓰고 그냥 몸이 어느정도 변하는 것 같은데? 싶은 느낌으로 눈바디만 확인함바지사이즈 44 > 32 그리고 유일하게 자랑 할만한게 팔뚝 뿐임어케 끝낼지 모르겠네. 아무튼 아직도 운동은 계속하는데 대충 정해둔 최종 목표는 바디프로필 한번찍어보고 싶은 마음은있음.
작성자 : 다갤러고정닉
北 서울대병원 대학살, 이제야 '학살'로 인정..후속 사업 추진
https://news.nate.com/view/20250331n01053 [단독] 北 6·25때 서울대병원 1000명 총살…진실화해위 이제야 '학살' 인정 : 네이트 뉴스 한눈에 보는 오늘 : 사회 - 뉴스 : 6·25전쟁 당시 서울대병원에서 북한 인민군이 우리 부상 군인과 민간 환자 1000여 명을 살해한 사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후문에 세워진 위령비.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라는 제목이 붙은 이 위령비는 1963년 6월 20일news.nate.com1. 북한군이 서울대병원의 민간인+부상병 1000여명을 집단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1950년 6월 28~29일에 있었던 사건.2. 당시 학살에는 북한군 뿐만 아니라, 남한내 암약하는 극좌 반한(反韓) 친북 세력도 가담하여 북한의 학살에 부역했다.2. 정부 기구인 진실화해위는 과거에는 이 사건을 외면했다.3. 그러다가 이번에 공식적으로 '북한군에 의한 학살'임을 인정하고4.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 실시, 관련 지원사업 실시, 북한에 의한 사과 및 보상 요구, 국제인권기구에 보고서 제출 등 외교활동 을 추진한다고 함.- 국군·어린이·환자·보호자 1000명 학살… 인민군의 '서울대병원 만행'을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06/23/2022062300136.html오늘 그씨에 나온 기사 내용거물 간첩 송두율 윤석열 대통령 빨리 탄핵하라고 주문 [현장] 국군·어린이·환자·보호자 1000명 학살… 인민군의 '서울대병원 만행'을 아십니까? 1950년 6월28일, 남침 사흘 만에 서울에 진입한 인민군은 곧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쳐들어갔다. 인민군은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등 1000여 명을 학살했다. 23일 오전 서울대병원의 충혼탑에서 이들을 추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서울대병원 학살 추념식, 23일 병원 내 충혼탑서 거행 서울대병원학살사건 72주기 추념식이 23일 오전 11시부터 고교연합 여고국 주최로 병원 내 충혼탑 앞에서 열렸다. ...www.newdaily.co.kr1950년 6월28일, 남침 사흘 만에 서울에 진입한 인민군은 곧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쳐들어갔다. 인민군은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등 1000여 명을 학살했다. 23일 오전 서울대병원의 충혼탑에서 이들을 추념하는 행사가 열렸다.서울대병원 학살 추념식, 23일 병원 내 충혼탑서 거행서울대병원학살사건 72주기 추념식이 23일 오전 11시부터 고교연합 여고국 주최로 병원 내 충혼탑 앞에서 열렸다. 고교연합여고국·세계어머니연합·간호사회·참바른세상·세계한인애국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50여 명은 이날 추념식을 통해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추념식 취지와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을 설명하기에 앞서 안정선 고교연합 여고국장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충혼탑을 가리키며 “이 탑은 1963년 7월29일 한국일보가 ‘전국 반공애국유적 부활운동’의 일환으로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안 국장은 “그동안 학살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서울대병원 주관으로 매년 6월5일 이곳에서 위령제를 열었다. 2014년부터는 행사를 통합해 매년 6월28일 전후로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면서 “무려 1000여 명이 숨진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이 이상하게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서울대병원학살사건… 보도연맹사건 촉발한 6·25 첫 전쟁범죄안 국장에 이어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의 유족이 당시 상황에 관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풀어놨다. 안 국장의 이야기를 포함해 설명하자면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은 6·25전쟁 과정에서 처음 발생한 학살이자 전쟁범죄였다.인민군은 남침 사흘 뒤인 28일 서울에 진입했다. 인민군은 이날 미아리고개를 넘어 서울로 진입한 뒤 종로구에 있던 서울대병원으로 쳐들어갔다. 오전 8시 무렵이었다. 당시 병원 점령에 나선 것은 ‘서울 근위 류경수105땅크사단’의 전신인 제9땅크여단이었다.인민군이 병원을 점령하려 하자 병원 경비를 맡았던 국군 1개 소대와 부상병 가운데 총을 들 수 있는 사람 80여 명이 병원 뒷산으로 가서 저항했다. 국군 소대는 남모 소위, 부상병은 민모 중사가 지휘했다. 하지만 이들은 중과부적으로 모두 사살당했다. 이후 인민군은 병원으로 들어와 국군 부상병을 무차별 학살했다.당시 서울대병원에는 서부전선에서 부상당한 국군 장병 수백 명이 치료받고 있었다. 인민군은 처음에는 병실을 돌며 국군 부상자를 확인한 뒤 총으로 먼저 쏘고 총검으로 확인사살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번거롭다고 생각했는지 나중에는 국군 부상병을 병실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무차별 사격해 살해했다.인민군은 이것마저 귀찮다고 여겼는지 나중에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만 보면 죽였다. 정신병동 입원 환자와 소아과 병동의 어린이, 그리고 보호자들까지 살해했다. 인민군은 이후 병원을 샅샅이 뒤져 숨어 있던 환자 등을 끌어내 10여t의 석탄더미 속에 생매장했다.증언 내용 가운데 충격적인 대목은 당시 인민군 앞잡이들이 전쟁 전 월북한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민군 군의관이 돼 병원으로 들어와 국군 부상자, 반공 성향의 의사와 간호사, 직원 등을 분류해 주며 학살을 도왔다고 한다.자신의 이모로부터 서울대병원학살사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최롱 씨는 “당시 (서울대병원) 의료진 40%가 남로당(남조선노동당)이었다고 한다”며 “이들은 인민군이 쳐들어온 뒤 완장을 차고 다른 의료진에게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전했다.“같은 해 9월 서울이 수복된 뒤 미군이 서울대병원 학살 현장을 정리했는데 당시 수습한 유골만 1000여 구였다”고 소개한 최씨는 “이 가운데 국군은 적어도 400~500명은 되지 않았겠나 하는 것이 이모님의 추측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남로당 의료진은 다른 의료진에게 “서울대병원 학살에 관해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는 협박도 했다. 인민군은 학살을 숨기려 했는지 6·25 발발 직후 병원 환자 명단과 진료기록을 모조리 없애버렸다고 한다.보도연맹사건 촉발한 서울대병원 학살과 서울 시내 학살당시 우리 정부는 서울대병원학살사건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에 진입한 인민군이 좌익세력의 도움으로 군인·경찰· 공무원·교사와 그 가족을 찾아내 집단학살하고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이에 정부는 당시 관리 중이던 ‘보도연맹’ 조직원들을 제거했다. 인민군이 우리 국민을 무차별 학살하지 않았다면 ‘보도연맹사건’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작성자 : JackFED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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