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권택경 기자] 동물에게는 아픈 걸 숨기는 습성이 있다. 포식자가 득실대는 야생에서 다치고 병든 모습을 드러내는 건 자신이 쉬운 사냥감이라는 걸 알리는 실수이기 때문이다. 야생성이 희석된 반려동물이라도 이 본능은 그대로 간직한 경우가 많다. 아파도 티를 안 내고, 말을 못 하니 보호자가 알기가 쉽지 않다. 도저히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한 이후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야생에서 생존을 위해 체화한 본능이 반려동물로서의 삶에서는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반려동물 가구가 증가와 더불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한 최근에는 기술로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기술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결합한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이다. 우주라컴퍼니 심용주 대표도 AIoT 기술이 반려동물 의료체계 나아가서는 반려동물 보험 시장에 가져다줄 변화에 주목했다.
반려동물 헬스케어 스타트업 우주라컴퍼니 심용주 대표. 손에 든 건 내년 1월 양산 예정인 웨어러블 기기 신제품이다
AIoT 활용한 웨어러블에 동물행동학 접목해
우주라컴퍼니를 창업한 심용주 대표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브라질 상파울루경영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남미 전문가로, 인기 경제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동시에 서울대 수의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고양이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SBS TV동물농장에 출연한 인물이기도 하다. 브라질에서 경영학 공부를 할 때부터 키워왔던 창업의 꿈을 반려동물 분야에서 펼치게 된 게 우연은 아닌 셈이다.
심 대표는 “반려동물 치료가 힘든 원인은 중 하나는 진단과 문진의 어려움으로 인해 의료 행위 개입 자체가 늦어진다는 데 있다”면서 “전문가에 의한 지속적 관찰이 필요한데, 전문가가 가정에 상주할 수 없으니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AIoT”라고 설명한다.
우주라컴퍼니의 제품은 말하자면 집에 상주하는 ‘동물행동학자’다. 첫 제품인 ‘캣모스(Catmos) 더 벨(The Bell)’은 고양이의 활동량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웨어러블 기기다. 사람이 차는 스마트워치에 유사하지만 목에 차는 목걸이 형태다. 기기에 기록된 데이터를 동물행동학 이론에 따라 분석해 보호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연동 앱을 통해 알려준다.
현재 활동량 기반 최소기능제품(MVP)이 출시된 상태며, 내년 1월 양산 예정인 신제품은 좀 더 정교한 행동 분석이 가능하다. 제공=우주라컴퍼니
물론 AIoT 웨어러블 기기를 펫 헬스케어에 활용하는 시도를 우주라컴퍼니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심 대표가 보기에 기존 제품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동물에 대한 이해나 배려 없이 만든 듯한 제품이 많았다. 심 대표는 “예를 들어 체온과 심박을 재는 형태의 제품은 털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질뿐더러, 밀착해서 착용해야 해 반려동물들이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활동량이 많은지, 적은지만 보고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제품 또한 반려동물에게 채우는 만보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우주라컴퍼니가 내세우는 차별점은 동물행동학의 적용이다. 심 대표는 “동물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려면 동물행동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정형행동’의 사례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목적 없는 행동을 지속, 반복하는 걸 말한다. 우리에 갇힌 동물이 이유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동물행동학적 분석 없이 단순히 활동량의 총량만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면 정형행동을 이상 증세로 인식하지 못한다. 총량이 아니라 패턴을 봐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는 게 심 대표의 설명이다.
신제품 시연 장면. 센서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기계학습시켜 고양이 행동을 세부적으로 분류할 수 있게 했다. 제공=우주라컴퍼니
다만 아무리 동물행동학을 적용해 분석한다 해도 활동량이라는 한정된 데이터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주라컴퍼니는 현재 한층 더 발전한 신제품을 준비 중이다. 신제품은 가속도 센서, 각속도 센서, 지자기 센서 등을 탑재해 훨씬 다양하고 정교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수집된 데이터는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분석해 식음, 배뇨와 배변, 걷기와 달리기, 스크래칭, 수면 및 휴식 등으로 세분화해 기록하고 이를 일일 보고서 형태로 정리해준다.
이처럼 동물의 행동을 세분화해 인식할 수 있는 건 각 동작에 해당하는 센서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기계 학습시킨 덕분이다. 현재도 정확도 80% 이상으로 이미 높지만 앞으로 제품이 상용화되며 데이터가 축적되면 더 개선될 전망이다.
높은 반려동물 손해율도 AIoT가 해법
우주라컴퍼니의 신제품은 내년 1월 양산을 앞두고 있다. 이와 함께 내년 미국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에도 출품해 이름을 알릴 예정이다. 하지만 단순히 제품을 소비자에게 많이 판매하는 데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반려동물 보험을 효율화할 수 있는 솔루션을 보험사에 공급하는 게 우주라컴퍼니의 목표다.
국내 반려동물 가구 수는 적게는 300만, 많게는 600만으로 추산되지만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은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제한적인 보장 내용이 불만이고, 보험사는 보험사대로 높은 손해율이 불만이다. 심 대표는 “대부분 질병이 중증으로 악화한 이후에야 병원을 찾다 보니 치료비가 높을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보험 손해율도 높아지는 것”이라며 “웨어러블 기기로 조기 치료를 유도하면 자연스레 치료비 부담과 보험 손해율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우주라컴퍼니 심용주 대표
심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AIoT를 활용한 행동 기반 보험(Behavior Base Insurance)이다. 자동차 보험 분야에서는 ‘주행습관 기반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개념 보험이다. 이를테면 난폭한 운전 습관을 지닌 가입자에게는 더 높은 보험료를, 안전운전을 하는 가입자에겐 저렴한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를 반려동물 보험에 적용하면 보호자가 반려동물 건강 관리와 생활 습관 개선에 더 주의를 기울일수록 저렴한 보험료를 부과하는 형식의 보험도 설계할 수 있다. 현재 이러한 보험 상품의 유용성을 입증하기 위해 삼성화재와 메리츠 화재의 보험을 중개 판매하면서 데이터를 확보하는 단계다.
최근 우주라컴퍼니에겐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생명보험사도 자회사를 통해 반려동물 보험을 판매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봤다. 손해보험사만 반려동물 보험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던 기존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법무부가 지난해 7월 입법 예고한대로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 재산이 아닌 생명체로 규정하는 민법 개정안까지 통과된다면 앞으로 반려동물 보험 시장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그만큼 우주라컴퍼니가 협업할 대상도 훨씬 늘어난다.
스타트업 행사에서 회사를 소개 중인 심용주 대표. 제공=우주라컴퍼니
우주라컴퍼니는 아직 아직 초기 스타트업이지만 유망성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LG사이언스파크, KDB산업은행 등 국내 다양한 기업 및 기관들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고 있다. SK텔레콤 또한 ‘트루 이노베이션’을 통해 우주라컴퍼니를 지원하고 있다. SKT와의 사업 연계로 구독 서비스인 ‘T우주’에 입점하며 판로를 확보했고, 혁신 사업 부문에서도 긴밀히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심 대표는 “앞으로 우리 솔루션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형태로 판매하며 글로벌 시장에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구독 모델 서비스 또한 동물심리학에 기반한 반려동물 용품, 먹이 큐레이션 분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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