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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현승 선수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이 기사때문인데 한번 읽어봐

롯갤러(59.20) 2024.06.18 11:40:49
조회 374 추천 1 댓글 0
														

좀 긴데 읽어봐봐 박현승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딱 알게 되는 기사였음

평범하고 특징없던 선수가 꼴데 팬들 덕에 화려한 올스타전에 나가는 이야기임


박현승·채태인, 두 남자의 올스타전

스포츠2.0 | 기사입력 2007-07-30 18:21

7월 17일과 18일 부산과 춘천에서는 프로야구 1,2군 올스타전이 열렸다. 박현승(35,롯데)은 1군 올스타, 채태인(25,삼성)은 2군 올스타다. 부산과 춘천은 특별한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도시다. 승용차로는 5시간이 넘게 걸리며 심리적으로도 먼 거리에 있다. 박현승과 채태인도 서로를 잘 모른다. 그러나 축제를 맞는 마음이 같다면 어디서 경기를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눈을 통해 2007 올스타전을 바라봤다.


1군 올스타 박현승(왼쪽)과 2군 올스타 채태인(오른쪽).(사진 이휘영,선원익)


도시의 밤


박현승 부산의 여름은 뜨겁다. 7월 초에 개장하는 부산의 해수욕장은 전국에서 모여든 피서 인파로 넘쳐난다. 야구열기는 그 이상으로 뜨겁다. 부산팬들은 야구를 광적으로 사랑한다. 홈팀 롯데가 부진해도 한결같은 응원을 보낸다. 다른 팀 선수들은 부산에서 야구를 하는 롯데선수들이 복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자식들아, 내가 오면 맨날 지냐”라는 스탠드의 욕설이 들려올 때면 미안한 마음에 모자챙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런 열기의 중심에 서있다. 나는 박현승이다. 1995년 롯데에 입단해 12년째 한 팀에서만 야구를 하고 있다. 내일(7월 17일)은 홈구장인 사직구장에서 올스타전이 열린다. 전야제가 오늘밤(7월 16일)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다.


나는 동군의 올스타로 경기에 나선다. 처음에 기자가 취재 요청을 했을 때는 망설였다. 나는 말주변이 없다. 성격도 내성적이다. 언론을 통해 크게 드러난 적도 없다. 무엇보다 나를 고민에 빠뜨린 건 ‘나는 정말 스타인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었다.



군복무로 쉰 1998년을 빼고 지난해까지 프로 11년 통산 타율은 2할6푼2리에 58홈런이다. 타율 3할을 넘긴 적은 1997년(.301 19홈런) 딱 한 차례였다. 그게 최고성적이다. 운 좋게 감독 추천 선수로 그해 올스타전에 출전한 게 마지막이었다. 제대한 뒤 1999년부터 이상하게 방망이가 맞지 않았다. 3할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이런 내가 스타인가.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처음으로 팬투표를 통해 올스타가 됐다. 투표 집계를 보니 22만 9,535표다. 20만 명이 넘는 팬이 내게 표를 던진 것이다. 양준혁(삼성, 24만 8,390표)과 2만 표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팀 내 정수근(20만 8,204표)이나 강민호(21만 9,602표)보다도 내가 얻은 표가 많다니.



광안리 바닷바람이 내 얼굴을 휘감았다. 그래 나는 올스타다. 떳떳하게 전야제 분위기 속에 뛰어들었다.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 가수들이 노래하며 춤을 춘다. 이런 쇼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채연과 민효린 등 여자 가수들을 실제로 보니 예쁘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전야제가 끝나고 행사장을 빠져 나오는데 소녀 두 명이 “박현승이다”고 외치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밤에도 나를 알아보는 팬이 있다. 그러나 올스타전이라고 특별히 긴장할 나이는 아니다. 늘 그래왔듯이 침착하자.



채태인 춘천은 겨울에 무척 추운 곳이다. 여름 한낮의 태양 빛이 뜨겁지만 밤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공지천의 새벽 안개에 차가운 물방울이 맺혀 있다. 춘천에서 경기는 올해 처음이다. 그것도 올스타전이다. 물론 2군 올스타전이다. 공식 이름 퓨처스 올스타전으로 미래의 스타들을 위한 무대로 포장돼 있다.



나는 2군 올스타 남부리그의 선수 채태인이다. 야구팬들이 2군을 잘 모르듯이 내 이름도 익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난 1999년 부산상고 에이스와 4번 타자로 고교 무대를 주름잡았다. 또래 타자들은 직구로 쉽게 윽박질렀다. 부푼 꿈을 안고 2000년 미국에 진출했다.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꼭 성공하자고 다짐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너리그 팀에서 기량을 쌓아갔다. 초기에는 인정도 받았다.



두산에서 2001년 나를 지명하면서 5년 뒤 보자고 했는데 난 “보긴 뭘 봐. 난 메이저리거가 될 거야”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내가 던진 시속 145km는 마이너리그에선 평균 구속이었다. 무언가 하나라도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두려움에 제구력만 집중적으로 가다듬었다.



(왼쪽)7월 17일 사직구장에서 박현승이 팬들에 둘러싸여 있다. (오른쪽)채태인이 7월 18일 2군 올스타전에서 웃고 있다.(사진 이휘영,선원익)


그런데 2002년 스프링캠프 때 어깨가 아팠다. 사실 어깨는 고교 때부터 좋지 않았다. 고3 동계훈련 때 어깨가 이상했는데 미국행을 위해 참고 던진 게 화근이었다. 후유증이 미국 땅에서 나타났다. 공을 던지는데 바늘이 찌르듯이 어깨가 따끔거렸다. 어깨 근육 6개가 심하게 찢어졌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재활하자는 마음뿐이었다.



(박)찬호 형과 맞대결을 벌이는 날은 오지 않았다. 한국행을 결심했다. 2005년 7월 보스턴에서 방출됐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해외 진출 선수 특별지명을 통해 지난 4월 삼성과 계약했다.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과거의 일은 잊은 지 오래다. 2군 올스타는 팬투표로 뽑힌 게 아니다. 감독 추천을 받았다. 그래도 난 기쁘다. 감독님들의 눈에 들었기에 경기에 나갈 수 있다.



1군 올스타전 전야제가 열리던 날 기자에게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 특별히 한 게 없었다. 친구들과 놀다 들어와 TV를 보다가 잤다. 2군 올스타전에는 전야제가 없었다.



축제의 시작


박현승 올스타전의 아침이 밝았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나답지 않게 긴장이 된다. 어젯밤 사진을 같이 찍은 장면이 어른거린다. 오랜만에 맞는 익숙지 않은 아침이다. 10년 동안 다른 선수들의 올스타전을 구경만 했는데 오늘은 내가 TV에 나온다.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마음 푹 놓고 열심히 해요”라고 격려한다. 아내(이은지,35)는 좋은 사람이다. 대학 때 만나 1997년 결혼했는데 이해심은 변함없다. 원정경기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는 데도 싫은 소리 한마디 안한다.



그래서 집에 오면 아들(민혁,8)과 많이 놀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받아쓰기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했던 것을 아들에게 하는데 낱말을 불러주고 어떻게 썼나 맞춰보는 것이 즐겁다. 아들도 엄마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가족을 뒤로 하고 사직구장으로 향했다.



경기는 오후 5시에 시작인데 3시간 전부터 많은 팬이 사직구장을 둘러쌌다. 입장권은 발매된 지 30분 만인 오후 2시 30분에 매진됐다. 경기장 안에 들어섰는데 다른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평소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취재진과 카메라가 치열한 보도 경쟁을 한다. 경쟁자였던 각 팀의 스타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앉아 있다.



그런데 득표수는 내가 많은데 양준혁과 강민호 쪽에 기자들이 몰려 있다. 나도 내가 스타성이 없다는 것을 안다. 팬들은 내 플레이에 특징이 없다고 지적한다. 타격이 정확한 것도 장타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깨가 강하거나 수비가 좋은 것도 아니다. 발도 느리다. 나도 인정하는 이야기들이다. 1998년 이후 시대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투수들의 공이 빨라졌다. 군복무를 마치고 타석에 들어섰는데 1997년같이 방망이가 돌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갖다 맞히는 타격에 신경을 썼다.



시간이 흐르고 난 버텨낼 수 있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꾸준히 내 몫을 했다. ‘가늘고 길게 사는 남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길게 가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군 올스타 선수들이 소개된다. “2루수 박현승” 1루 스탠드에서 큰 박수가 나왔다. 그러나 (이)대호의 이름이 불렸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문득 가족에게 한 번쯤은 멋진 트로피를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난 프로에 와서 한 번도 개인 타이틀을 받아본 적이 없다. ‘최우수선수’라는 받아쓰기를 아들과 한번 할 걸 그랬다.



채태인 2군에도 개인 타이틀은 있다. 그러나 인정 받지 못한다. 2군에서 홈런 50개를 쳐도 1군 무대에서는 같은 숫자를 보장할 수 없다. 나의 올시즌 전반기 2군 기록은 37경기 출전에 타율 3할(130타수 39안타)과 6홈런이다. 그러나 1군에서 치른 5경기에서는 5타수 무안타에 삼진만 4개다.



(왼쪽)박현승은 2007올스타전에서 동군의 2루수로 선발출전했다. (오른쪽)채태인은 2군 올스타전 남부리그의 지명타자로 나섰다.(사진 이휘영,선원익)


5월 11일 현대전에 나선 첫 타석이 아쉽다. 9회 1사후 대타로 나섰는데 커브를 노렸다. 그런데 초구 커브를 놓치자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송신영 선배에게 삼진을 당했다. 5월 19일 LG전 때는 박명환 선배와 만났는데 그런 마구 같은 슬라이더는 머리털 나고 처음 봤다. 당연히 삼진. 난 곧바로 교체됐다.



야구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하시는 아버지(채효종)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대학 때까지 야구를 했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 온 뒤 점점 말수가 적어지셨다. 오늘 올스타전에 아버지는 오시지 않는다. TV로 보시라고 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춘천 의암구장에 도착했다.



경기장 외벽에 ‘퓨처스 올스타’라는 안내 문구가 크게 걸려 있다. 조금은 실감이 난다. 팬서비스도 있다. 고기를 구워 시식도 하고 돼지를 그리면 돼지저금통을 준다. 관중들은 경기장을 마음대로 들락날락 한다. 무료 입장이기 때문이다.



의암구장의 좌석은 8,140석이다. 외야에는 천연잔디가 깔려 있다. 오늘 들어온 관중은 3,500명이란다. 의암구장은 깨끗하다. 그런데 이런 좋은 야구장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3시간에 3만 원이다. 서울에서는 농구장 하나를 대관하는 데도 2시간에 10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경기 시작 전 행사는 조용하게 진행됐다. 1군 올스타전에는 초대가수로 손담비도 나왔는데 춘천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만 쭉 서있다. 1군 올스타전에 들어간 비용은 5억 원인데 2군은 5천만 원이라니 10분의 1수준이다.



내 이름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지명타자 채태인” 순간 깜빡했다. 그렇다. 난 이제 투수가 아닌 타자다. 온라인게임 <마구마구>에도 내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슬러거>에는 채태인이 타자가 아닌 투수로 나온다. 최근에 바뀌었다. 게임이 나를 알아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내가 소개됐지만 박수 소리가 크지 않았다.



관중석의 아기는 우유병 꼭지를 빨고 있다. 경기장 안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 관중석으로 사인볼을 던지자 관중들은 순간적으로 열광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파울볼이 나오자 조금 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잠자리채가 대거 등장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 춘천의 야구열기는 대단했다. 이런 데에서 경기가 많이 열려야 한다.



올스타전


박현승 “이런 경기가 평일에도 한 번쯤은 나와야지. 관중이 꽉 차고 좋잖아.” 삼성 선동열 감독의 말이다. 나도 계획을 조심스럽게 바꿨다. 아내와 아들이 경기장에서 나를 응원한다. 이런 경기라면 한 방을 날리고 싶다. 배터스 박스에서 연습 스윙을 하는데 힘이 들어간다.



올스타전에서 나의 타순은 1번이다. 타석에 많이 들어설 수 있는 타순이지만 올스타전에서는 두 번째 타석까지 안타가 없으면 교체된다. 초반에 승부를 내야 한다. 나의 원래 타순은 고정돼 있지 않다. 1번도 쳐봤고 3번 타순에도 서봤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9번 타자가 어울린다. 상하위 타순을 연결하면서 승리에 기여하는 역할이 내겐 맞다.



올해는 3번 타자로 나서 초반에 좋은 활약을 했다. 규정타석에는 미달이지만 타율 3할4푼2리(161타수 51안타)에 14경기 연속 득점 신기록(4월 11일~26일)과 역대 4위인 25경기 연속 안타 기록(4월 11일~6월 20일)도 세웠다. 그러나 5월 6일 삼성전에서 안지만의 투구에 오른 손목에 금이 가면서 상승세가 꺾였다. 아직도 완벽한 상태는 아니다. 나의 야구인생은 이상하게 이런 경우가 많았다. 잘된다 싶을 때 꼭 발목이 잡혔다. 이것이 내 실력인지 운이 없는 것인지 나도 의문이다.



1회초 서군의 선발투수 류현진을 맞아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돌렸다. 2구와 3구는 모두 볼. 볼카운트 1-2의 배팅 찬스다. 4구째를 힘껏 밀어 쳤다. 그러나 우익수 플라이로 잡혔다. 1회말 2루수로 수비를 보는데 유격수 박진만(삼성)은 맨손으로, 3루수 김동주(두산)는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가 출루를 허용했다.



(위)박현승은 언제나 뒤에서 팀에 보탬을 주는 선수다. (아래)하늘 위로 폭죽이 터져 올스타전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사진 이휘영)


올스타전이니까 멋을 부릴 수는 있다. 난 멋 부리는 플레이와 친하지 않다. 난 올스타전에서도 유격수 땅볼 때 습관적으로 1루 뒤쪽으로 베이스 커버를 들어갔다. 이런 경기에서 꼭 필요한 동작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몸에 적응이 됐다.



3회초 2사 1루에서 두 번째 타석을 맞았다. 투수는 김수경(현대)으로 교체됐다. 이번만큼은 큰 타구를 치고 싶다. 1996년 정규시즌 때 김용수(LG)선배에게 끝내기홈런을 쳤던 순간을 떠올렸다. 초구부터 3구째까지 모두 공략했지만 3루수 땅볼이었다. 최선을 다해 1루로 뛰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4회초 전광판에는 내 이름 대신 고영민(두산)이 새겨졌다.



채태인 2회초 의암구장 전광판에 있는 내 이름에 불이 켜졌다. 드디어 첫 타석이다. 올스타전에서는 두 번째 타석까지 안타가 없으면 빠진다. 초반에 승부를 봐야 한다. 모든 것을 잊고 타격에만 전념하자. 여기서도 밀리면 안 된다. 미국에서 나와 같이 운동을 했던 헨리 라미레스(플로리다)와 케빈 유킬리스(보스턴)는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난 한국프로야구 2군선수다. 아직도 불현듯 드는 이런 사치스런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 현실은 현실이다. 북부리그의 선발투수는 이대환(상무)이다. 1회초 김문호(롯데)에게 홈런을 맞는 것을 봤다. 나는 첫 타석에서 초구를 그냥 보낸 뒤 2구째 변화구를 받아쳐 중전안타를 만들었다.



시작은 좋다. 1루 베이스 위에 섰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씩 나왔다. 후속 6번 타자 전현태(한화)의 타구는 1루 쪽으로 크게 튀는 땅볼, 2루에서 충분히 살 수 있는 타구였는데도 나는 2루를 향해 먼지를 내며 슬라이딩을 했다. 무조건 일단 살고 보자. 후속타자들의 범타로 홈을 밟지는 못했지만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며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렇다. 야구는 즐겁게 하는 것이다. 3회말이 끝난 뒤에는 홈런레이스에도 참가했다. 하필이면 내가 부담 백배인 첫 번째 도전자다. 관중들이 좌타자인 나를 보더니 우측 외야석으로 우르르 이동한다. 야구가 무엇인지를 아는 팬들이다.



의암구장은 작은 구장이 아니다. 좌우측은 98m, 중앙은 120m다. 7아웃이 될 때까지 공을 칠 수 있다. 공을 잘 보기 위해 모자를 뒤로 눌러쓰고 선글라스도 뒤에 꽂았지만 고전했다. 아웃카운트 한 개를 남겨두고 1개의 홈런에 그쳤다.


여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가까스로 몸쪽 높은 공을 때려 우측 펜스를 넘겼다.



KBO 이진형 홍보팀장이 “채태인 선수, 발동이 늦게 걸리네요. 모두 박수 보내주세요”라며 흥을 돋우었다. 한 개를 더 쳐 3개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경쟁자였던 조평호(현대)와 타이를 이룬 뒤 서든데스까지 가서 우승트로피를 넘겨줬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4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 윤동건(LG)의 초구를 노려 우월 장외홈런을 터뜨렸다. 홈런레이스 패배를 만회하는 통쾌한 홈런이었다. 6회초에도 중전안타를 기록해 3타수 3안타가 되자 내가 MVP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8회가 넘어가자 확신이 들었다. 3-3 동점을 이룬 9회말 실점하면 안 된다고 우리 팀 투수 이석만(경찰청)의 어깨를 주물렀다. 이제 누군가 나 말고 더 이상 드라마를 쓰면 안 돼. 괜스레 초조하면서 절박했다.



축제가 끝난 뒤


박현승 경기에서 빠져 더그아웃에서 올스타전을 봤다. 잠시 흥분됐었는데 안정을 되찾았다. 경기는 즐거웠다. 야구를 오래하다 보니 별것을 다 봤다. 서군 이택근(현대)은 5회말 올스타전 최초로 그라운드홈런을 기록했다.



우익수 박한이(삼성)가 직선 타구를 뒤로 빠뜨리며 3루주자 이종범(KIA)과 타자주자 이택근이 모두 홈에 들어왔다. 공수가 교대되고 더그아웃에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박한이는 사직구장에서 조명에 공이 가려 몇 번 공을 놓친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치명적인 실수겠지만 올스타전에서는 용서가 된다.



(왼쪽)채태인은 2군 올스타전 MVP에 선정됐다. (오른쪽)이날 양 팀은 3-3 무승부를 기록했다.(사진 선원익)


경기는 동군이 6-3으로 이겼다. 동군이 1-2로 뒤진 7회초. 1사 1루에서 정수근이 정민철(한화)에게서 역전 우월 2점홈런을 빼앗은 게 승부에 결정적이었다. 정수근은 홈런을 치고 1루와 3루를 돌면서 관중석을 향해 함성을 유도하며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을 흉내 냈다. 녀석은 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쇼맨십이 무엇인지를 안다.



나에게는 그런 면이 없다. MVP는 정수근이 됐고 이대호(5타수 4안타)와 강민호(3타수 3안타)는 7안타를 합작하며 안방잔치를 만들었다. 롯데 타자 가운데는 나만 조용했지만 후배들이 뛰어난 활약을 펼쳐 보인 것에 만족한다. MVP가 발표되자 옆에 있던 정수근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그렇다. 나는 언제나 뒤에 서있다. 그러나 눈은 앞을 본다. 이제 선수생활은 얼마 남지 않았고 내가 다시 올스타에 뽑힌다고 장담할 수 없다. 뜨거운 여름날 홈구장에서 치른 올스타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강병철 감독이 경기가 끝난 뒤 기자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박)현승이가 특징이 없다고 누가 그러나. 언제나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가장 특징 있는 선수 아닌가.” 감독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를 올스타로 뽑은 팬 여러분 고맙습니다.



채태인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다. 온몸이 떨렸다. MVP 발표만 남겨놓았다. “2군 올스타전의 MVP는….” 더그아웃에 있던 최동원 감독님이 먼저 말했다. “당연히 채태인이지 뭐.” 거의 동시에 장내 아나운서도 내 이름을 불렀다. “채태인 선수, 어서 나와주세요.” 예상은 했지만 실감이 안 났다. 갑자기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 후회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5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도 생각났다. “야구가 잘 안된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늘 힘을 주는 친구다.



그동안 겪었던 설움을 떨쳐버리며 MVP 피켓을 번쩍 들어올렸다. 취재진도 몰려들었다.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2군 올스타전 MVP라는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나의 야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의 목표는 2군이 아니다. 한국프로야구는 1군이 중심이다. 어서 빨리 1군에 올라가 친구인 (오)승환이, (김)태균이와 함께 야구를 하고 싶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말자. 이제 타자로 돈 지 겨우 6개월이다. (이)승엽이 형도 투수에서 타자로 바꾼 뒤 갑자기 성공한 것은 아니다.



경기 전 이름으로 3행시를 지어달라는 돌발 질문이 떠올랐다. 한참 고민 끝에 내가 내놓은 답은 '채'태인은 '태'양을 향해 '인'내하고 있습니다였다. MVP 트로피를 챙겨 씩씩하게 의암구장을 나서는 내 가슴은 뜨겁다.



박현승


1972년 9월 12일생ㅣ내야수


178cm/ 80kgㅣ우투우타


대연초-대천중-경남고-동아대-롯데(1995년)


2007년 성적: 46경기 타율 3할4푼2리 12타점



채태인


1982년 10월 11일생ㅣ지명타자


178cm/ 80kgㅣ좌투좌타


대신초-대동중-부산상고-보스턴(2001년)-삼성(2007년)


2007년 성적: 2군리그 37경기 타율 3할 6홈런 27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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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2.0 제 61호(발행일 07월 23일) 기사


부산·춘천=심현석 기자(hssim@sports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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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7164 팁) 무툴석은 윤고나황보다 순번이 높다 [3] ㅇㅇ(175.211) 00:49 176 0
15777163 다음주 범두전 예매했는데 장마라 [6] 롯갤러(117.123) 00:49 137 0
15777162 그냥 유격수는 포기해라 [2] ㅇㅇ(118.235) 00:49 85 0
15777161 하이라이트 보는데 홍종표 약간 이정후 닮았는데 ? ㅇㅇ(223.39) 00:48 19 0
15777160 일반적인 헤퍼슬 <<< 뛰는거 보다 느림 [2] 롯갤러(106.102) 00:48 248 11
15777159 고승민>>>>나승엽이면 개추 ㅋㅋㅋ [1] 롯갤러(223.39) 00:48 95 2
15777158 토요일경기 예매했는데 우취될 줄 알았더니 롯갤러(118.218) 00:48 64 0
15777156 KT는 이강철 안 자르겠지? [2] ㅇㅇ(223.39) 00:48 208 0
15777155 어제오늘보고왔는데 기분좋음ㅋㅋ [9] 우에하라대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48 423 20
15777154 생각보다 나성범 최형우가 별로 안무서웠음ㅋㅋㅋ [4] ㅇㅇ(61.101) 00:48 135 0
15777153 이정훈은 40먹은 최형우도 보는 좌익도 불가능임? [8] ㅇㅇ(59.19) 00:47 150 0
15777152 숨은거인 - 김동혁.jpg [2] ㅇㅇ(118.235) 00:47 257 17
15777151 홍어 만날때 얘없는게큼 [5] ㅇㅇ(211.104) 00:47 286 0
15777150 뉴탯티즈 거른다 쳐도 예수님 war 압도적이네 ㅋㅋ [3] 롯갤러(223.38) 00:47 227 3
15777149 존나 멋진형들 롯갤러(211.234) 00:47 60 2
15777148 돡) 그래도 이말은 결국 사실이 된거네? [2] ㅇㅇ(223.38) 00:47 376 12
15777147 튼동 양아들은 확정됐네 [1] ㅇㅇ(113.131) 00:47 537 20
15777146 손호영도 괜찮다고 해놓고 3주 아웃 ㅇㅇ(223.39) 00:47 88 1
15777145 역시 이긴날에는 무툴석패야 제맛이지 [1] ㅇㅇ(118.235) 00:47 81 6
15777144 튼동 이번에 가을야구 가면 오야지가 강백호 쏘냐 [2] ㅇㅇ(211.192) 00:47 81 1
15777143 지금 진꼴빠 잘 던지고 있는 거지? [3] 롯갤러(211.234) 00:47 109 1
15777142 쥐)이대형 해설 크보 goat냐? [5] 롯갤러(1.228) 00:47 131 1
15777141 고승민 괜찮다는데? [2] ㅇㅇ(211.234) 00:47 405 6
15777140 고승민 근데 터지면 정말 멋지게 갈거 같다 롯갤러(223.39) 00:46 90 0
15777139 우리 드디어 뼈기혁-우친문 뒤를 잇는 박승욱이란 유격수 생긴거임? [2] 롯갤러(211.244) 00:46 68 0
15777138 아 내일 제발 비안왔으면 ㅇㅇ(223.39) 00:46 42 0
15777137 투수는 결국 멘탈이 좋은애들이 잘하네 [1] 롯갤러(118.235) 00:46 100 0
15777136 수의대는 진짜 안 되는 건가 나한텐 무리인가 [1] 김도연24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46 96 1
15777135 툴석이 유격 굴려서 못씀? ㅇㅇ(14.34) 00:46 26 0
15777134 아니 유격수자리에서 1루까지 송구가 물수제비면 [1] ㅇㅇ(1.238) 00:46 135 0
15777132 해퍼슬 자체가 속도내기 위해 하는게 아님 ㅇㅇ(118.235) 00:46 55 0
15777131 곰보탁주 듀오 3~4년 정도 더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1] ㅇㅇ(119.198) 00:46 65 0
15777130 김태형이 오기전까지 대주자의 가치를 물로봤음 [2] ㅇㅇ(175.200) 00:46 354 24
15777129 강백호 요즘 포지션 어디봄? [2] 롯갤러(106.101) 00:45 95 0
15777128 대체선발 못구해온게 올 시즌 가장 큰 패착이 될듯 [1] ㅇㅇ(211.200) 00:45 86 1
15777127 부상 글 올린놈 글삭했네 롯갤러(106.101) 00:45 51 0
15777122 ㅋㅋㅋㅋㅋ김민석 2군에서 유격박자 ㅇㅈㄹ 롯갤러(118.219) 00:45 57 0
15777120 트레이닝 파트도 갈아야함 [2] ㅇㅇ(223.39) 00:45 107 4
15777119 툴석이 ㅅㅂ 포텐은 넘치는게 맞는데 [5] ㅇㅇ(223.39) 00:45 225 0
15777118 김재윤이 4 58인데 김원중이 4 60부터 시작아니냐?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44 1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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