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판윈대] 1만시간을 채우다(1)

멍애(외교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0.19 10:36:41
조회 78 추천 1 댓글 1
														


28e48772b58339f73ceb8fe64e82766a75083a911a0cd972e2cbfdbc0064285f72cc6f736713f48e0fed70d8dede18f3



판윈대 : 1만 시간이 됐다.

고등학생 시절, 수능으로 바빠야 할 우리의 커리큘럼에는 이상한 시간이 있었다. 수요일 7교시에 위치한 명사강의라는 시간이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

한 번은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세일즈맨이 왔는데, 계단을 오르는 세일즈맨을 보며 내 친구는 옆에서 엔더맨이라고 말했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누군가가 쌓아놓은 집의 블록을 슬쩍 빼가는 녀석 말이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맞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팔다리는 기묘할 정도로 길었고, 얼굴은 홀쭉 패여 있었으니까. 스티븐 잡스나 워랜 버핏 같은 이미지를 기대했건만, 그런 건 없었다. 췌장암으로 죽기 직전의 스티븐 잡스도 저 사람보다는 생기가 있었을 것 같다.

세일즈맨? 차라리 장의사가 더 어올리지 않을까? 게다가 둘은 모두 양복을 입고 다닌다는 공통점도 있다. 연단에 올라선 세일즈맨은 별 거 아니라는 듯 가방을 옆에 척, 내려놓았다. 맨 앞에 앉은 나는 그 가방에 프라다라고 써진 걸 똑똑히 보았으며, 휴대폰에 검색한 결과 그 가방이 760만원짜리라는 것 또한 알게 됐다.

명품이라고 해서 꼭 멋진 건 아니군. 저 가방을 봐, 문방구에서 55천원 주고 산 것 같잖아.’ 난 그렇게 생각했고, 이 생각은 내 인생에서 한 생각 중 가장 쓸모 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적어도, 명품에 대한 환상은 죄다 깨졌으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학생 여러분.”

그 남자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그 목소리마저 실망스럽다고 느꼈다. 어쩌면 저렇게 다 실망스러울 수 있지?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나는 기묘한 경험 속으로 빠져들었다.

뭐랄까, 그것은... ‘실망감과 기대감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 남자가 얼마나 더 실망스러워질지, 저 남자가 얼마나 더 개판을 칠지. 기묘하게도 나는 그의 실망스러움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남자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가 오늘 말씀드릴 것은... 1만 시간의 법칙입니다.”

뭐든지 1만 시간을 노력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세일즈맨은 마치 무언가를 팔 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 광경을 참으로 기묘하다고 느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내가 그에게 무엇을 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

손 대지 마.”

나는 다 낡아빠진 빈폴 가방을 들어올렸다.

내 거라고.”

이 자식은 무슨 빈폴을 프라다 다루듯이 하네.”

옆에서 친구가 낄낄거렸다.

그거 네가 고등학교 때 들고 다니던 거 아니냐? 15년 된 가방.”

엄마가 사 준 거야.”

누가 들으면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겠어.”

친구라는 말은 취소다. 개자식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저리 꺼져.”

말 안해도 그럴 거야.”

친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잠시 후, 골목 너머로 한 남자가 등장했다. 누가 봐도 아직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당근마켓인가요?”

.”

기타 파시는 거고요?”
물론이죠.”

친구가 씩 웃으며 기타를 내밀었다. 학생 녀석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기타를 위아래로 훑었다.

... 여기 줄 감는 부분이 좀 닳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에요. 원래 그런 거예요.”

친구가 설명했다.

스트랩 라인은 살짝 닳아 있는 편이 오히려 마찰계수가 늘어나거든요. 오히려 연습할 때 도움이 돼요.”

... 정말요?”

음악 잘 모르시는구나.”

스트랩 라인? 마찰계수?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다.

이 개자식이 되는대로 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살게요. 이십오만 원 맞죠?”

아뇨, 이십일만 원만 내세요.”

이 말은 당연히 개자식이 아니라 내가 한 말이다.

싱글벙글 웃는 녀석을 보니 왠지 배알이 뒤틀린 것이다.

줄 감는 부분 하자 있는 거 맞아요.”

...”

그러자 학생 녀석의 눈이 변했다.

그러면 저, , 다음에 살게요.”

잠깐만요!”

개자식의 말과 다르게, 학생녀석은 그대로 우다다 달려 도망가 버렸다.

뭐 하는 짓이야?”
뭐가.”

어떻게 잡은 호구인데.”

개자식이 따져물었다. 어깨가 1cm정도 위로 치솟았다. 팔다리가 유달리 길쭉한 이 친구와 내가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까? 아마 십중팔구는 박살이 날 테다.

미래형으로 쓸 필요는 없었다. 나는 실제로 박살이 났다.

개새끼.”

개자식은 나에게 침을 퉤, 뱉고 갈 길을 가 버렸다.

개새끼가 누군데? 개자식이야말로 개새끼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린 아이에게 기타를 속여 팔고, 그 어린아이가 기타를 치다 어른이 되고, 서른 세 살이 되고, 또 다른 아이에게 기타를 넘겨 주고...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치미는 광경이 아닌가.

씨발놈.”

나는 다시 연습실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오늘의 연습 할당량은 5시간 21분이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1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가족과 완벽하게 손절해야 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24 - -
329821 헬스트레이너가 말해주길 맥도날드에서 제일 건강한버거가 더블쿼파치랬음 [5] 피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08 0
329820 이거저임 [11] Lui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72 0
329819 서브웨이 먹을때 빵 파달라고하고 오믈렛 넣는거 국룰... Iri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22 0
329818 씨발씨발 기울어진 운동장 레전드.jpg [6] 순애누렁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10 1
329816 얘 이름이 가브릴 아니었어? [3] ㅇㅇ(219.254) 21.10.20 44 0
329815 핀볼겜 무료 10연 감질나서 4500돌 꼴박했다 [2] ㅇㅇ(182.221) 21.10.20 26 0
329812 여배우중에 애가 제일 이쁜거같은데 특이취향인가 [1] ㅇㅇ(218.144) 21.10.20 44 0
329811 서브웨이 개인강의 받아서 이제주문개잘함ㅋㅋ [3] 피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56 0
329810 2차대전 이전 폴란드 그것도 웃겼는데 [4] ㅇㅇ(118.235) 21.10.20 48 0
329809 러시아 혁명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2] ㅇㅇ(119.149) 21.10.20 50 0
329807 머임 빌환 왜 이렇게 올라온거임 [3] Lui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54 0
329806 좆악새끼 왜 절필안하냐 ㅇㅇ(118.235) 21.10.20 21 2
329804 오싹오싹 멈춰!<--효과없는 이유.jpg [4] 순애누렁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75 0
329803 서브웨이 먹어야쥐 피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8 0
329802 내가 이해력이 딸려서 그러는데 실베 이 글 [1] TS기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27 0
329799 vr이 과도기적인거라고 해도 써보면 ㄹㅇ 미쳤어 [1] 김해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31 0
329797 TS미소녀기녀잠입파트입갤ㅋㅋㅋㅋㅋㅋ [2] 어사일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38 0
329794 누구의 응원으로 힘내는 사람은, 그 응원으로 힘빠짐 KIM쓰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9 0
329793 훌쩍훌쩍 입시미술 탈락촌...jpg [4] 순애누렁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89 0
329791 실베 개인증 진짜레전드네 ㅋㅋㅋ [14] Lui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48 0
329790 내 글이 망해서 선작이 또 1 깍였구나 [1] 죄 악(218.55) 21.10.20 21 1
329789 롤 전챗삭제되니까 겜끝나면 ㅈㄴ 흥미진진하네 [2] (홈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27 0
32978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 말 줬같이 하네 KIM쓰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22 0
329785 아니겠지만 누구 강간하러가는데 힘내라고 해주셈이라는 말에 응원할순 KIM쓰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51 0
329784 신데렐라 동요에 1980년대 란 가사 잇는거 약간 소름끼치는데 [4] 루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240 0
329782 애들아내핸드폰바떼리가맛이갔다 [1] Embri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8 0
329781 합스버거 저사람 왜 유동닉쓰는거임 근데 [3] Lui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33 0
329780 여성의 가슴을 상품화.jpg [2] 명구[진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77 0
329779 n [1] 김해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7 0
329778 합스버거가 전역이 한달밖에 안 남았다고????? [1] goza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2 0
329775 폭동진압~ 부릉부릉~ 재일교4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6 0
329774 요즘따라 프랑스 혁명때쯤 대체역사 많이 나오는듯 [1] 프란츠(117.111) 21.10.20 14 0
329773 오큘러스퀘스트2 써보니까 알았다 페이스북에 투자해야한다 ㅇㅇ [3] 김해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27 0
329772 지금 롤에 전챗 없음??? 외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0 0
329771 슬더스 오메가덱으로 즐겜했네 ㅋㅋㅋ [5] 가을걸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29 0
329769 근데 로아 골드 하락하는거 라이트 유저들 한테는 좋겠네 명구[진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32 0
329767 댓글하나로 감정조정당함 [2] 김해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48 1
329765 폴란드는 어려서 나라를 잃고요~ [2] 어사일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63 0
329764 바르샤바 얘기 나왔으니 어쩔수 없지 재일교4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4 0
329763 마크잘알 팡갤러 잇음??? ㅇㅇ(115.143) 21.10.20 10 0
329761 1990년도 별로 안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외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9 0
329760 저 전역 한 달 남은 슈퍼짬킹인데 지금 ts해서 ts전역하면 [5] 프란츠 (117.111) 21.10.20 37 0
329758 싱글벙글 페라리 출고 1일차 사고촌.jpg [4] 순애누렁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72 0
329757 신년 레베카 개꼴리네 [1] 아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33 0
329756 난 자짤은 안쓰지만 자동짤방설정을 해둔다... [1] ㅇㅇ(223.62) 21.10.20 10 0
329755 오늘 만든 빵 [7] (홈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24 1
329753 1980년대가 뭐냐??????? 외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3 0
329752 에길 뺑뺑이칠 핀볼팸 구함 137 420 [2] 궤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10 0
329747 이거 이런 식으로 뭉뚱그리니까 좀 그렇네 [1] TS기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33 0
329746 우효 ㅋㅋㅋㅋㅋ 노에네떳냐 [3] 혜.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20 42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