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함박눈이 내리던 날 주홍빛 가로등 아래 서 있었어요. 손이 다 얼었어요. 날파리 몇 마리가 머리위를 분분히 날고 있었는데, 집 앞 담벼락이었어.

어린데 춥고 무섭고. 누군가 날 해치러 다가오면 난 어떻게 해야하나. 아니 사실요. 이러다가 죽는게 아닌가 엄마는 언제쯤 날 데리러오나. 아빠랑 아직도 싸우나.

집기 부서지는 소리나 누군가의 비명보단 이게 더 낫나 아닌가. 아니 사실요. 이러다가 죽는게 아닌가 엄마는 언제쯤 날 데리러오나.

저 멀리서 스쿠터 소리가 들려요. 옆 집 아저씨가 왜 이러고 있냐고 묻지도 않고 날 자기 집으로 데려가요.

와 모든것이 다르다. 이 훈기와 따듯함. 자신의 장난감을 내어주는 내 또래의 아이들. 난 맨날 같은옷만 입고 그러는데.

저는요 그때부터 악종이 되었어요. 피우면 불행과 우울을 뿌리게 될 악의 종자가 되어버렸어요.

행복보다 상실과 불행 공포를 먼저 배우는 바람에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만 만드는 공허한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난 누구한테 상처주는게 얼마나 나쁘고 못된짓인지 잘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상처주곤 미안함에 밤 잠 못이뤄도 결국 상처주는 인간이 되었어요.

스러지라 말 해요. 아. 그래도 죽진 않겠다. 그 시절을 결국 이겨내고 현재와 지금에 와 있으니 그렇게 되지는 않겠다.

그러면 저는 원하는 걸 말 해놓고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모순된 인간. 바보 멍청이가 되겠군요.

꽃 많이 피웠는데. 봄인데. 나는 언제던, 어디서든 삭막한 바람 몰아치던 그 겨울날. 주홍빛 가로등 아래 서 있는 사람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