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마스터플랜의 망령

ㅇㅇ(121.169) 2025.07.02 07:28:16
조회 64 추천 0 댓글 0

1972년 7월15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11층짜리 서른세 동의 아파트가 들어선 주거단지를 폭파하여 철거시킨 일이 일어났다. 2차 대전 전쟁영웅의 이름을 따 “프루이트 이고”라고 부르며, 새 시대 새로운 주거를 목표로 1955년에 지은 이 단지는, 가장 좋은 삶터로 평가되어 여러 건축상까지 받았던 바 있었다. 

그러나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천편일률적 공간이 갖는 무미건조함으로 인해 그 속의 공공공간이 무법지대로 변하면서, 각종 폭력과 마약, 강간, 살인 등의 흉악범죄가 창궐하게 되었고, 흑백간의 주민갈등까지 유발하여, 이 주거단지는 도시에서 가장 절망스럽고 공포스러운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불과 17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시범죄의 온상이 된 이곳을 주정부는 폭파로 청산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건축가 챨스 젱크스는, 이 날은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한 날이라고 기록하였다.




모더니즘은 19세기말, 시대적 가치를 상실하여 세기말의 위기에 몰린 사회가 퇴폐와 향락에 이끌리며 문화가 퇴행하던 시절,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을 꿈꾼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찾은 시대정신이었다. 그들은 전통적 양식과 역사적 관습에 억눌린 인간의 이성을 회복시키고 합리적 가치를 최선으로 내세우며 우리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좋은 제품의 대량공급을 목표하며 통계에 근거하여 찾은 표준화라는 방식은 그들의 유용한 수단이었고, 사물을 조직화하고 환경을 체계화하며 수요와 공급을 정량화하는 방식은 그들이 목표하는 사회의 구성원리였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에 대한 과신이 문제였다. 도시를 예를 들면, 땅을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등으로 칠해 상업지역 주거지역 공업지역으로 나눠서 차등하였고, 도로는 도로의 폭과 속도를 제한하며 서열화하고, 도심과 부도심 변두리로 전체를 나누며 계급적으로 만든 도시계획을 과학적 합리라고 신봉하였다. 심지어는 오래 살았던 동네마저 이 도시계획도를 들이대며 재개발하였으니, 이게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viewimage.php?id=28a5c434e4ed36a379ee&no=24b0d769e1d32ca73fe883fa11d028313b52c5650cf177f0238701297c7cc433a9d24fed4bf766b2d1cba45572c5135923f24c7e323bb9ffdf443631e3c0faf6ee19






특히 세계대전 직후 세계의 도시가 개발의 열망에 휩싸이면서, 이 마스터플랜은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져 전세계 방방곳곳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표준적 평면을 가진 집단화된 아파트들, 통계에 의거한 공공시설의 획일적 배분, 빠른 통행만을 우기는 교통계획, 직선화된 길, 각종 주의 표식 등, 어느새 공동체는 사라지고 각 부분의 적절한 배분을 중요시하는 집합체만 남는 도시가 양산 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신도시가 만들어지자, 프랑스 철학자 르페브르는, “이렇게 철저히 프로그램화된 거주기계에서는 모험도 낭만도 없으며, 우리 모두를 구획하고 분리하여 서로에게 멀어지게 한다.” 며 질타했다. 실상 도시의 범죄는 전통적 도시에서 보다 훨씬 증가하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계층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갔다. 모두가 급조된 환경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그 프루이트 이고 주거단지가 폭파되어 사라진 것이다. 모더니즘이 20세기의 유일한 시대정신이라고 믿었던 건축가와 도시학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마스터플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모더니즘과 마스터플랜이 간과한 것은 인간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가치였다. 그들은 모든 인간을 집단으로 파악하고자 했으며 개체의 다양성을 묵과하였다. 뿐만 아니라 모든 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장소성을 무시하였고, 그 역사적 맥락과 자연적 환경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래서 산이 있으면 깎고 계곡이 있으면 매웠으며 산악이든 평지든, 대륙이든 섬이든, 모든 곳에 똑 같은 조감도를 걸어 미래를 단호히 예견했지만 결국 모두 거짓이었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데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하루의 계획을 조리 있게 짠다고 해도 수시로 마음이 바뀔 수 있으며, 선과 악을 머리 속에 아무리 구별해도 우리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그 혼돈의 와중에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모든 땅은 얼마나 다 다른가. 기후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며, 생태와 주변이 부분마다 다르고 무엇보다 살아온 역사가 다 다르다. 그 다 다른 땅을 똑 같은 도형과 무늬로 뒤덮으며 한 가지 삶을 강요한 그 마스터플랜의 방법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했다. 어쩌면, 기후변화나 사회의 갈등과 분쟁 등,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재앙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사회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은 마스터플랜의 망령으로 인한 결과 아닌가.




바야흐로 서양에서는 이제,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의 삶을 존중하며 오히려 비움을 그리고, 자연과 화해하는 나눔을 그리는 데, 우리의 이 땅에서는 이미 폐기된 마스터플랜의 망령에 사로잡혀, 비움과 나눔이 가득했던 우리의 정겨운 옛 도시와 아름다운 산하를 유효기간이 훨씬 지난 표준도면으로 여전히 난도질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프루이트 이고”의 폭파가 떠오른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이번주 설문은 탈모 걱정 없어 보이는 머리숱 금수저 스타는? 운영자 25/07/14 - -
AD 여름특가 최대93%할인! 1위 해커스원격 운영자 25/07/01 - -
1623320 2회차 실기러들 좆빠지게 열심히해라 [1] 까치날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15 141 0
1623319 소좆) 중계기 3가지 설치기준 ㄱㄱ [1] 자갤러(221.165) 07.15 68 0
1623318 좋았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갤러(169.212) 07.15 73 1
1623317 소전은 저번 시험이 재앙이고 대체로 소기보다는 훨 쉽네 자갤러(121.161) 07.15 40 0
1623316 형들 첫 실기인데 정답 적을 때 [1] 자갤러(118.220) 07.15 71 1
1623315 소좆 7일전사 5개년 1회독 했는데 [1] 자갤러(121.156) 07.15 75 1
1623314 형님들 자갤러(119.192) 07.15 53 0
1623313 결국에 이새끼는 "신" 이네 [1] 자갤러(115.88) 07.15 298 8
1623312 사실 기사시험은 거대한 음모가 아닐까? 자갤러(223.39) 07.15 107 0
1623310 ox 퀴즈 자격증이란 말 존나 웃기네 ㅋㅋ ㅇㅇ(175.212) 07.15 55 0
1623309 24시 비대면 급전 20-500 빌려드립니다 ❗+ 자갤러(211.234) 07.15 45 0
1623307 산안기 파열판 문제 어케 구분해 [10] 자갤러(223.39) 07.15 180 0
1623306 역시 자격증계에선 전기만이 지고하다 ㅇㅇ(121.184) 07.15 111 0
1623304 그냥 19일 얼른돼라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15 103 0
1623302 그런데 기사도 아니고 고작 산업기사에 이럴정도야? [4] ㅇㅇ(39.7) 07.15 202 1
1623301 산안산기 필답 공부어캐하냐 시그마(1.226) 07.15 77 0
1623299 산안기 왤케 긴장되냐... 안외워지는거 빼곤 다 외웠는데 [2] 자갤러(123.214) 07.15 154 0
1623297 와 무수기득 비추테러 역대급이네 자갤러(211.36) 07.15 52 0
1623296 전산기 과평 뚫릴 줄 알고 설레발 친 토목충들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15 242 10
1623295 소좆) 정온식 스포트형 감지기의 열감지방식 5가지 ㄱㄱ [3] 자갤러(221.165) 07.15 90 0
1623294 모두들 고개를 숙이거라!! ㅇㅇ(222.118) 07.15 101 1
1623293 무수기들 비추수 실화냐? 자갤러(211.36) 07.15 49 0
1623292 3회차 필기 공고 ㅇㅇ(125.190) 07.15 111 0
1623291 전산기 과평 계엄 해제 ㅋㅋ ㅇㅇ(49.174) 07.15 118 1
1623290 과평 계엄 해제된건가 포주나(110.70) 07.15 82 0
1623289 소좆 산기랑 기사랑 문제차이큼?? [1] ㅇㅇ(1.242) 07.15 67 0
1623288 산안기 디지게 어렵네 [1] 자갤러(110.11) 07.15 139 0
1623287 큐넷에서 응시가능 자격으로 뜨면 가능한거야?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15 60 0
1623286 품경기 인강 듣는데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1] 자갤러(210.104) 07.15 32 0
1623285 빡대가리 과평 2트 내일 결과 나온다 [3] kingDD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15 90 2
1623283 하루 1년치 씩만 풀어도 ㅇㅇ(121.153) 07.15 100 0
1623281 3회차 필기 접수 알려줘요 [16] 자갤러(61.253) 07.15 194 1
1623280 소방(전기) vs 산업안전 [3] ㅇㅇ(39.7) 07.15 128 0
1623279 불안하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15 49 0
1623278 나 31살인데 이 자격증으로 어디 갈 수 있냐.. 이직 마렵다.. [11] ㅇㅇ(211.234) 07.15 272 0
1623277 아 나 좆됐다 지금까지 작업형 공부함ㅅㅂ [7] ㅇㅇ(223.39) 07.15 195 3
1623276 폴리좆 좆문대 현실 [2] ㅇㅇ(223.39) 07.15 71 0
1623272 전산기대첩 결국 웃는건 전기인들이었다 [5] 자갤러(211.36) 07.15 206 12
1623271 산안산기 특 자갤러(59.4) 07.15 109 0
1623270 전산기 과평 무산됬다 ㅈㅈ [3] 자갤러(211.36) 07.15 270 5
1623268 정처기) 내가 하는 공부법 [2] 자갤러(125.180) 07.15 193 2
1623265 친구년 왜 씨발 병2신짓하노? [18] 자갤러(106.101) 07.15 979 12
1623264 산안산기 25년 1회차 때 본 사람 있음? [5] ㅇㅇ(119.199) 07.15 133 0
1623263 어차피 과평 알빠노 [1] 자갤러(211.234) 07.15 79 0
1623261 산안기 파북 필답 2014년이상 만 보고있는데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15 68 0
1623260 기계는 과평에 다 함락된거임? [4] ㅇㅇ(118.235) 07.15 140 1
1623259 산안산기 공부하는 게이들 이 문제 외웟냐?? [6] ㅇㅇ(121.184) 07.15 207 0
1623258 산안기 필답 몇점 받아야 합격권임? [2] 자갤러(112.187) 07.15 156 0
1623257 전산기과평 반대될거같다..끝난듯 [3] 자갤러(211.36) 07.15 227 9
1623256 전산기 과평풀리고 대전기시대 열리면 재밌을듯 Brasch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15 45 0
뉴스 '견우와 선녀' 추영우, 목숨 건 ‘악귀’ 봉수와 위험한 거래 디시트렌드 07.15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