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생산직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생산직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캐나다,미국 여행기 3편-캐나다 퀘벡.webp 눈부신계절에
- 볼카노프스키 세미나 간략후기 발성은김범수처
- "옆으로 가라고 XX" 폭언…지팡이 짚은 어르신, 결국 열차서 내렸다 ㅇㅇ
- 싱글벙글 한국와서 맘스터치에 중독된 일본 유학생 ㅇㅇ
- 강형욱이 왜 문제인지 분석 못한 강아지.jpg ㅇㅇ
- 5월 12일 시황 우졍잉
- 배스킨라빈스 핑크스푼 수거 프로그램 반응 ㅇㅇ
- '연어 술파티' 박상용 대검서 6시간 징계심의…朴 "충실히 소명" 민민.
- [단독]“기관실 공격당하고 있다”…나무호 피격 직후 긴급 무전 KUJ
- 우승 퍼레이드 구경하고 옴 ㅇㅇ
- 대기업 초과이윤,국민배당금으로 배급해야 ㅇㅇ
- 삼성노조 파업이냐 타협이냐 '막판 협상' 그르르릉
- 텔레그램 '청담사장' 380억대 마약 유통 혐의 50대 男, 구속 송치 ㅇㅇ
- 넣었을 때 속궁합이 좋으면 여자가 보인다는 반응.jpg ㅇㅇ
- [단독] "죽일 생각밖에 없어" 폭행 이후 김창민 감독 가해자 인천유나이티드
태평양 최악의 사기꾼에서 정글의 국왕이 된 남자
태평양 남쪽 부건빌 섬은 독립전쟁으로 초토화된 채 아직도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섬의 한가운데에는 한 때 태평양 남쪽에서 폰지 사기로 수천억 원을 쓸어담다가, 수배된 이후 부건빌로 돌아와 국왕에 즉위하며 신민들을 거느리는 남자가 살고 있다. https://youtu.be/xTlUKMhsFss?si=6Syz8bIZzzbwKqd3 이 세상에 사기꾼은 넘쳐 나고 국왕도 아직은 있지만, 사기꾼에서 국왕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남태평양의 부건빌 섬에서 태어난 한 남자는 파푸아뉴기니를 비롯한 주변 일대에서 3000억 원에 달하는 폰지 사기를 벌였고, 수법이 들통나자 추종자들과 함께 밀림 깊숙히 숨어들어 자신만의 왕국을 세웠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부건빌의 국왕을 자처하며 기거하고 있다. 이것은 태평양 최악의 사기꾼에서 정글의 왕이 된 노아 무싱쿠의 기괴한 이야기다. 부건빌은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지역의 솔로몬 제도 근방에 위치한 섬이다. 크기는 9,348 제곱km로 경상남도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고, 인구는 현재 37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서방 세계에 그 존재를 알린 프랑스인 루이 앙투안 드 브갱빌을 따라 부건빌이라고 불리게 된 이 섬은 19세기 말 독일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세계대전의 참상은 이 외딴 섬까지 번졌다. 독일인들은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쫓겨났고, 호주인들이 독일령 뉴기니를 차지하면서 그 자리에 들어섰다. 시간이 흘러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인들이 이 섬을 점령했으며, 미군이 섬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거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부건빌 지역은 이후 호주령 파푸아뉴기니라는 단위에 묶인 채 호주의 지속적 통치를 받았다. 그러다 1961년, 섬의 운명을 통째로 바꾸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 서양 지질학자가 섬의 정중앙 팡구나에서 구리와 금은으로 가득한 매장지를 발견한 것이다. 머지않아 호주의 광업 거인 리오 틴토가 이 매장지를 매수했고, 너비는 2km에 깊이는 450미터에 달하는 당대 가장 거대한 인공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지구 최대의 구리 매장지로 꼽히던 팡구나 광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광산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광산은 혼자서 파푸아뉴기니 전체 GDP의 12%, 수출의 45%를 담당하며 뉴기니 본토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고, 뉴기니는 이를 기반으로 1975년 호주로부터 독립했다. 문제는 이 수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였다. 리오 틴토와 파푸아뉴기니 정부가 거의 모든 이익을 차지했고, 주민들에게는 고작 1%만 분배 되었다. 호주에서 온 숙련공들과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었는데, 이들은 오히려 원주민들을 하대하며 분란을 일으켰다. 설상가상으로 광산이 일으킨 환경 피해가 극심해 여러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질병에 시달렸다. 1988년, 마침내 반란이 발발했다. 부당 대우를 참지 못하던 부건빌인들은 리오 틴토 내부 사정을 알던 노동자 프랜시스 오나를 중심으로 뭉쳐서 반란을 일으켰다. 광산 곳곳의 사보타주를 시작으로 대대적 항쟁이 벌어졌다. 부건빌 국민들은 백인들이 쓰던 총기와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일본도를 비롯한 세계대전기의 유물들을 꺼내들어서 리오 틴토 사원들과 파푸아뉴기니 치안 부대를 제압하고 쫓아냈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파푸아뉴기니는 해상 함정과 헬리콥터들을 동원해서 부건빌에 해상 봉쇄를 가했다. 외부와의 거래가 차단되면서 각종 식품과 의약품, 연료 등의 수입 물자가 끊겼고, 부족 간 갈등이 종종 불 붙으면서 안 그래도 분열된 반군 단체들은 틈만 나면 서로 싸웠다. 열악한 전쟁과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면서, 총 20만 명의 부건빌 주민 중 최대 2만 명이 사망했고 6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부건빌 주민들의 항전 의지는 확고했다. 이들은 물자가 끊기자 섬의 토착 코코넛을 극한까지 활용하며 아득바득 버텼다. 사람들은 코코넛으로 배를 채우고 갈증을 달랬으며 기름을 짜내고 반창고를 만들었다. 거주지를 수리하거나 새로 만들고, 코코넛을 태워 모기를 쫓아내고, 심지어 디젤 연료를 추출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임의로 댐을 건설해서 전기를 얻고 전통적인 관개 농업을 부활시키며 자급자족에 성공했다.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섬에 지상군을 재투입 했으나, 반란군은 지형 지물을 영리하게 활용해 항전을 이어갔다. 파푸아뉴기니의 총리는 비장의 카드로 남아공 용병 부대를 동원할 계획을 세웠지만, 오히려 자국민과 군부의 격렬한 반발을 맞았다. 결국 1998년 휴전이 선언되었고, 2001년 부건빌에 자치 정부를 수립하고 향후 독립에 대한 국민 투표를 진행한다는 합의가 체결되었다. 그러나 정작 반란을 시작한 프랜시스 오나는 이 제안을 반대했다. 그는 부건빌이 이미 승리한 상태에서 파푸아뉴기니와 어정쩡하게 타협할 필요가 뭐가 있는지 의문을 표했고, 자신과 같은 강경파들을 배제하려는 타 지도자들의 움직임에 분노했다. 오나는 일부 추종자들을 이끌고 모든 것의 시작인 팡구나 광산 근처로 이동한 다음, 자체적인 자치 구역을 선포하며 독립 세력을 꾸렸다. 이렇게 부건빌이 전쟁의 참화로 시름을 앓고 있을 무렵, 파푸아뉴기니 본토에서는 한 부건빌인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노아 무싱쿠는 1964년 부건빌 남부에서 출생했다. 스스로를 14대째 막내로 소개하는 그는 어린 시절 복음주의와 기복 신앙에 충실한 개신교 분파인 오순절 신앙에 감화되었다. 엘리트인 무싱쿠는 파푸아뉴기니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정치의 기술을 공부했다. 무싱쿠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이후 뉴기니 본토와 호주와 미국 등을 전전하며 고이율을 보장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에게 네 스스로가 해답이 되라고 명했고, 그는 그대로 파푸아뉴기니에 복귀했다고 한다. 무싱쿠는 1990년대 초에 자신의 고향 부건빌에 대한 일종의 신화를 창조해냈다. 그에 의하면 원래 부건빌 원주민의 선조들은 파파알라라는 왕국을 세웠고, 오늘날 부건빌 사람들은 이 왕국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신생 파파알라 왕국은 국제 금융 시스템 자체를 뒤바꾸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싱쿠가 사업을 펼칠 기회는 1997년 태국 바트화 가치 폭락을 시작으로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금융 위기가 발생하며 찾아왔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의 경기 침체는 태평양을 건너 파푸아뉴기니까지 번졌고, 그 해 뉴기니의 경제성장률은 -6%를 기록했다. 경제적 혼란 속에서 사기극이 판을 쳤는데, 당시 파푸아뉴기니 GDP의 7% 정도가 이런 사기극들로 들어갔다고 한다. 무싱쿠는 자신의 피라미드 회사 "U-Vistract"를 설립해 '새로운 금융'을 선보였다. U-Vistract의 실상은 투자자들에게 매 달마다 100%의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전형적인 폰지 사기였다. 신규 투자자들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지급하다가, 이런 구조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시점에 지불을 중단하는 것이다. 무싱쿠가 달랐던 점은 바로 정치와 종교를 엮었다는 점이다. 그는 부건빌과 뉴기니, 호주와 기타 멜라네시아인들에게 종교적인 기복 신앙을 설파하면서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무싱쿠의 카리스마와 번영의 약속에 혹한 이들은 단순 투자자가 아닌 광신적인 추종자들이 되었다. 무싱쿠는 더 나아가 새로운 정부를 선포하고 심지어 자체적인 달력마저 제작했다. U-Vistract는 파푸아뉴기니 뿐만 아니라 남태평양에서 가장 성공한 폰지 사기가 되었다. 정확한 계산은 힘들지만 2억 3천만 달러, 한화로 거의 3500억에 육박하는 돈이 U-Vistract 연관 계좌들로 흘러들어갔다고 추정된다. 무싱쿠는 개인용 제트기를 구매하고 각종 행사를 개최하면서 부를 과시하고 더 많은 이들을 끌어들였다.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제도, 피지의 공직자들마저 이 사기극에 혹했다. 무싱쿠는 그러다가 선을 넘고 말았다. 파푸아뉴기니 수도 한복판에 있는 옛 은행 건물을 매입해 명실상부한 국가 공인 금융 기관 행세를 시도한 것이다. 드디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눈치챈 파푸아뉴기니 당국이 개입해 U-Vistract 연동 계좌들을 동결하기 시작했다. 무싱쿠는 이웃한 솔로몬 제도로 도주한 다음 다시 정식 가짜 은행을 설립하려 했다. 특히 솔로몬 제도는 당시 종족 갈등과 경제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 자신이 위기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무싱쿠의 주장은 파푸아뉴기니에서처럼 먹혀들어갈 뻔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호주의 개입 덕분에 무싱쿠의 두번째 사기극은 빠르게 진압됐다. 호주와 파푸아뉴기니는 집요하게 무싱쿠의 금융 자산들을 추적하며 동결시켰고, U-Vistract에 투자했다가 회수하지 않은 대다수 투자자들은 돈을 되찾지 못하게 되었다. 국제적인 수배범으로 전락한 무싱쿠는 자신의 고향 부건빌의 밀림으로 후퇴하기로 결심했다. 부건빌에도 그의 사기극에 넘어간 이들이 많았다. 무싱쿠는 자신이 파푸아뉴기니를 비롯한 국제 금융 시스템과 반기독교적 세력에게 탄압 받고 있어서 돈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으나, 새로운 금융 체계를 설립해 이 난국을 타개하고 투자자들을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절망에 빠져있고 매몰 비용이 너무 컸던 여러 피해자들은 무싱쿠의 황당한 주장에 혹해 그를 더욱 열렬히 지지하게 되었다. 이 당시 먼저 밀림에 은거해있던 프랜시스 오나는 이미 반란의 지도자에서 사뭇 다른 존재로 변신한 상태였다. 오나는 자신에게 암이나 에이즈를 비롯한 다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놀라운 주술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부건빌의 국왕으로 선언했다. 무싱쿠는 이런 오나와 손을 잡기로 결심했고, 마침 무싱쿠와 동창 사이던 오나는 무싱쿠의 협력 제안을 받아들였다. 2004년 5월 17일, '프랜시스 도미닉 다테란시 도마나아'는 대관식을 올리며 '메카무이'의 국왕으로 정식 즉위했다. 파파알라의 대공(이때는 오나의 우위를 인정해 스스로를 대공으로 칭했다) 무싱쿠, 혹은 데이빗 페이 2세 본인이 직접 어패류로 만들어진 왕관을 그의 머리 위에 씌웠다. 메카무이 왕국이 부건빌의 군사를, 파파알라 왕국이 경제를 담당해 공동으로 국정 운영을 하기로 결론이 났다. 이 황당한 광경에 실망한 오나의 추종자들이 대거 이탈했지만, 적잖은 이들은 여전히 오나와 무싱쿠를 지지했다. 두 왕국의 주도권은 항상 무싱쿠에 있었다. 그는 오나를 감언이설로 속여서 판단력을 흐트리며 실권을 휘둘렀다. 무싱쿠는 추종자들이 여러 건축물을 세우게 만들었고, 신민들 사이에서는 엄격하고 종교적인 규율이 도입되었다. 쌍둥이 왕국은 부건빌 자치 정부의 홍역과 소아마비 백신 보급 프로그램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이 정당한 부건빌의 지배자라고 주장했다. 무싱쿠는 피지에서 다섯 명의 용병을 고용해 보디가드로 삼을 뿐만 아니라 자치구의 병력 양성이라는 중책도 맡겼다. 무싱쿠의 노력으로 500명이 넘는 왕실의 군대가 꾸려졌다. 부건빌 자치 정부는 이 쌍둥이 왕국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직접적인 강경책을 취하기도 힘들었다.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건빌에 또다른 군사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무리수일 뿐만 아니라 독립이라는 대의에도 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정부 관계자들 중에도 U-Vistract 투자자들이 분포해 있어 이들의 이해관계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 7월, 메카무이 국왕 프랜시스 오나는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말라리아였지만 그 배후에 음모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무싱쿠는 오나가 메카무이 왕국을 자신에게 상속했다고 주장하며 오나의 지지자들을 대부분 흡수했다. 그는 스스로를 대공에서 국왕으로 격상하며 KING이라고 새겨진 왕관을 어디에서부터 장만해 대관식을 치루었다. 2006년 5월, 파파알라 왕국의 병사들이 부건빌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 한 명이 칼에 찔렸고 동네 파출소 한 곳이 불탔으며 무싱쿠 휘하 병력 두 명이 사로잡혔다. 부건빌 정권은 파파알라 왕국에게 무장을 내려놓으라고 협상을 시도했지만, 페이 2세는 이를 거절했다. 그해 11월, 무장한 전직 독립군 병사들과 두 명의 경찰관들이 한밤중에 파파알라 왕궁을 습격했다. 이들의 기습 작전으로 왕실 근위대 4명이 사망했고, 공격 측은 1명의 사망자와 2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러나 무싱쿠 본인은 턱에 총알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도주하는데 성공했다. 공격자들이 목표를 놓치고 만 것이다. 한 달 간 산속에서 은거하다가 귀환한 무싱쿠는 추종자들 사이에서 순교자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암살 미수 사건으로 파파알라 국왕의 권위는 외려 더욱 강화된 것이다. 무싱쿠의 암살자들과 부건빌 정권의 정확한 관계에 대해서는 밝혀진 적이 없다. 확실한 것은 부건빌 정부는 이후 다시는 무싱쿠를 제압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무싱쿠는 분쟁 지역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쫓는 국제 기관들로부터 안전을 얻었다. 그러나 파파알라의 국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사업을 어떻게든 이어나가기 위해 적극적인 팽창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는 해외에서 뜻밖의 우군들을 찾았다.스스로를 '제프 대공'으로 소개하고 다니던 호주의 사업가 제프리 리처즈는 중앙 정부의 권한을 사실상 부정하는 자유지상주의적 '주권 시민 운동'의 신봉자이자 마이크로네이션을 창립해 주권자를 자청하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2004년 무싱쿠의 정식 초청을 받아 자신의 친우 제임스 네스빗 '경'과 함께 파파알라의 고문으로 고용되었다. 무싱쿠는 자문료로 부건빌의 광물 자산에 대한 지분을 제안했다고 한다. 개인 제트기로 팡구나에 착륙하면서 화제가 된 두 백인은 무싱쿠의 대관식 이후까지 그를 보좌하다가 2006년 부건빌의 수도에서 정부에 체포당해 결국 추방되었다. 그러나 대공과 네스빗 경은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 그들은 파파알라의 국기와 우표를 디자인하는데 도움을 줬고, 결정적으로 제한적으로 연결되는 위성 인터넷 시설을 설치했다. 인터넷은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개선했을 뿐만 아니라, 무싱쿠가 다시 한번 자신의 사업을 세계 곳곳에 선전할 기회를 제공했다. 무싱쿠는 자신의 설교와 열병식 같은 희귀 자료들을 인터넷에 공개했고, U-Vistract와 비슷한 자체적 금융 (사기) 웹사이트인 IBOM을 제작하기도 했다. 외국인들은 드디어 국왕을 인터넷으로마나 접할 기회를 얻었다. 동시에 무싱쿠는 2009년 파파알라 왕국의 자체적 화폐인 '부건빌 키나(BVK)'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부건빌이 아직도 파푸아뉴기니의 화폐를 쓰고 있는 사실이 주권 침해의 증거라면서 BVK를 부건빌 전역의 공식 화폐로 선언했다. BVK는 팡구나 광산에 매장된 구리와 금은을 기반으로 가치가 보증된다는게 무싱쿠의 주장이었다. 기약 없이 폐쇄되고 운영권도 없는 광산에 기반한 이 화폐는 그럼에도 무싱쿠의 추종자들과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통용되었고, 놀랍게도 소수의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오늘날 세계 화폐경제는 금이나 은 같은 실물이 아니라 정부의 신용으로 그 가치가 담보되는 피아트 화폐 체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일부 경제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을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은 이 체제 자체의 취약성을 비판하거나 정부들의 권한 자체를 부정하면서 그 대안으로 이라크 디나르화나 청나라 시절 채권 등이 진정한 자산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이를 수집해왔다. 이 반-피아트 리버테리언들에게 있어 무싱쿠의 BVK는 그 가치가 광물 자원 덕분에 보장되는 좋은 투자처였다. 곧 무싱쿠의 IBOM을 지원해줄 단체가 등장했다. 역시나 자유지상주의와 주권 시민 운동 사상에 영향 받은 '인터넷 카탈로그 클럽'(ICC)은 25달러의 가입비를 낸 사용자들이 서로 사이트 내부 토큰을 이용해서 거래를 하거나 상술한 청나라 채권 같은 옛 금융 자산들, 혹은 차용증이나 국제 어음 같은 자산에 달러로 투자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달러를 투자하는 것은 쉬워도, 이를 회수하려고 했을때는 대게 ICC 내부 토큰으로 상환받는 상당히 수상한 곳이었다. ICC 지도부는 무싱쿠의 BVK를 눈여겨봤다. 특히 무싱쿠는 자신의 IBOM에 투자한 이들이 최대 월 75%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는 점이 이들의 구미를 당겼다. 2011년 그들은 파파알라 왕국과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ICC 회원들은 상술한 수단들(차용증, 국제 어음, 망국의 화폐 등)을 BVK로 환전한 다음 파파알라 은행의 계좌에 투자하고, 그 대가로 ICC에 450 달러의 수수료를 냈다. ICC는 조약 체결 이후 IBOM을 운영하면서 무싱쿠와 BVK를 홍보하고 나섰다. 무싱쿠는 추가 투자금의 유치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로부터 인정 받았다는 선전을 할 수 있었다. 최소 1500명은 넘어가는 수많은 세계 시민들이 BVK에 새롭게 투자했다. 이들은 무싱쿠의 추종자들과 비슷하게 조만간 국제 금융 체제가 붕괴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일부는 자기 지인들까지 꼬드기면서 막대한 자금을 BVK 계좌에 넣었다. 더 나아가 무싱쿠를 직접 찾아와 BVK를 현금으로 매수하거나 그에게 조언을 해주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한 일본인은 과거 부건빌에서 전사한 진주만 공습의 설계자 야마모토 제독의 영혼이 자신을 불렀다며 무싱쿠를 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IBOM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무싱쿠는 점차 자신이 얻고 있는 이익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BVK 계좌에 흘러들어간 돈은 대부분 달러나 다른 정식 화폐가 아니라 차용증, 국제 어음, 망국의 채권 같은 것들이었고, 페이 국왕은 이것들이 과연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ICC가 수수료로 건당 450 달러를 버는 동안 자신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무가치한 서류들을 모으고 있었으며, 태평양 최악의 사기꾼인 자신이 도리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분노한 데이빗 페이 2세는 2015년 몇 개의 칙령을 반포해서 ICC를 국제 사기 집단으로 규정하는 한편 IBOM을 폐쇄하며 그와 연계된 모든 BVK 계좌를 동결시켰다. 이제는 ICC측이 당황할 차례였다. 막대한 수익을 기대하던 투자자들은 ICC에 항의하거나, 다른 무싱쿠의 지지자들처럼 언젠가는 계좌 동결이 해지되어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 것이라는 기약 없는 믿음을 시작했다. ICC 수뇌부는 오히려 자신들이 미국 측에 신고해서 거래를 중지시켰다고 주장하고, 투자자 회원들에게 또다시 내부 토큰이나 다른 방식을 통해 보상해야 했다. 파파알라와 ICC의 협업은 그렇게 두 사기꾼 세력들이 서로 가짜 돈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들이 진짜 거래를 한다고 착각하다가 한 쪽이 진실을 깨달았을 때 파국을 맞이하는, 사기꾼들이 서로에게 사기를 치다가 양쪽 모두 분노하는 웃지 못할 촌극으로 끝났다. ICC와의 협력 실패 이후 침울해진 파파알라의 국왕은 한동안 잠잠해졌다가 최근 들어 다시 활발해지고 있는 듯 하다. 2023년 그는 BVK를 40개의 다른 화폐로 전환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고 선전했다. 그 앱은 얼마 안 가서 서비스를 종료했고, 앱을 개발한 인도인들은 수고비를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무싱쿠는 곧 국제 금융 질서가 무너질 것이며 자신의 시스템이 그 잿더미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IBOM에 투자했던 일부 해외 투자자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게 새로운 가상 화폐를 홍보하는 동시에 BVK 판매를 계속하는 중이다. 데이빗 페이 2세는 작년부터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고 조만간 계좌 동결을 해지해 투자자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노라 선언했지만, '서류와 법률과 의료적 문제' 때문인지 투자액 배당의 기한은 끝없이 미뤄지기만 하고 있다. 2019년, 부건빌 주민들은 마침내 독립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율은 87%에 찬성률은 98%로 나와 부건빌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이 찬반 투표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2027년 완전 독립을 목표로 하는 부건빌 정부의 계획에 큰 장애물이 되었다. 양측은 독립과 관련해서 협상을 지속 중이지만, 2027년이 다가오는 와중에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부건빌의 팡구나 광산은 지정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건빌 정부는 독립 이후 국가 발전을 위해서 팡구나 광산을 재개장 하려고 하는데, 여기에 묻힌 막대한 자원이 미국과 중국을 끌어들였다. 두 나라는 모두 비밀리에 독립국 부건빌의 광산을 통해 이익을 얻을 준비를 하고 있고, 부건빌 주민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작년 부건빌 대통령 선거에서도 친미 대통령이 친중 야권을 물리치는 등 미중 패권 경쟁 역시 부건빌에 다가오고 있다. 이렇듯 부건빌이 대내외적으로 격동의 시기를 보내는 와중, 수천 명이 넘는 신민들을 거느리고 있는 무싱쿠의 파파알라 왕국은 정부에게 골칫거리다. 그를 제압하는 것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고 독립을 반대하는 파푸아뉴기니 정부에게 명분을 줄 것이나, 그를 방치하는 것 역시 국가가 영토 내에서 주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꼴일 뿐더러 그의 국제 사기극 때문에 외교적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팡구나 광산의 재개장 역시 그 일대를 다스리는 페이 2세의 협조가 없으면 난관을 겪을 것이다. 이런 절묘한 상황 속에서 데이빗 페이 2세는 여전히 신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군림하고 있다. 그의 신민들은 U-Vitract와 BVK가 언젠가는 해지되어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고, 제프 대공을 비롯한 그의 해외 지지자들도 별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무싱쿠의 재무장관은 자신이 섬기는 국왕이 천 년은 더 살 것이며 그가 반포하는 칙령들도 천 년 후를 내다보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했다. 제프 대공은 조만간 무싱쿠가 배당금을 지급할 때 자신은 수 조 달러를 얻게 될 것이며 이를 이용해 부건빌을 부흥시키겠노라 선언했다. 이들은 왜 아직도 무싱쿠를 신뢰하고 신봉하는 것일까? 일부는 그저 원금이라도 언젠가 회수할 수 있으리라는 실날 같은 희망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싱쿠에 현혹되어 현실을 부정하거나 심지어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산다. 데이빗 페이 2세가 당장 내일이라도 계좌를 해지하는데 성공하는 순간, 그들은 모두 백만장자, 억만장자, 아니 조만장자가 된다는 것이다. 외부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허황된 광신이지만, 그들에게는 세상 이치의 진리요 삶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 지속되고, 무싱쿠 본인이 사망하지 않는 한, 부건빌 정글 깊숙한 곳에 세워진 파파알라 왕국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참고 자료 https://harpers.org/archive/2024/11/the-island-king-sean-williams-bougainville/ https://www.occrp.org/en/feature/meet-the-south-pacific-ponzi-king-with-a-bogus-bank-and-a-global-fan-club Braithwaite, John, Hilary Charlesworth, Peter Reddy, and Leah Dunn. “The Cost of the Conflict.” In Reconciliation and Architectures of Commitment: Sequencing Peace in Bougainville. ANU Press, 2010. https://time.com/archive/6670466/jungle-fever-3/ https://www.journeyman.tv/film_documents/2668/tran/ https://www.pngaa.net/Library/KingAndI.htm
작성자 : 라파헤고정닉
위시리) 로엔히 C.Dully 시음회 리뷰
로엔히 시음회에 왔습니다.로엔히 방문은 이번이 3번째인데요, 특히 이번 시음회 라인업이 어마무시했기에 더욱 큰 기대를 품고 왔습니다.로엔히의 아이돌님의 갈라쇼를 실컷 구경했습니다.로엔히 가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굉장히 개냥이에요.겁나 귀엽습니다.오늘의 시음주들입니다.- 블렌디드 몰트 에드링턴 25년 1999 빈티지 (맥캘란, 하이랜드파크, 노스 브리티쉬 블렌딩)- 블렌디드 몰트 25년 셰리 오크 2000년 빈티지 (맥캘란에 하이랜드파크 티스푼)- 블렌디드 몰트 번사이드 36년 1989 빈티지 (발베니 36년 티스푼)- 아일라 싱글몰트 27년 (라프로익)- 깔바도스 크리스찬 드루앵 페이도쥬 15년 카로니 럼 캐스크- 그로페랑 쁘띠 샹파뉴 52년 1967 빈티지로 총 6병입니다.C.Dully 시음회에는 C.Dully의 창업자인 크리스티안 덜리씨가 직접 와주셨습니다.크리스티안 덜리 셀렉션은 2019년, 크리스티안 덜리씨가 위스키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하이퀄리티 위스키와 대체 불가능한 좋은 캐스크를 선별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습니다.브랜드 모토는 보이다시피 '위스키 애호가에게, 위스키 애호가가' 입니다.크리스티안 덜리씨는 03년에 아일라 섬을 방문하면서부터 위스키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위스키를 탐구하기 시작한 건 08년도 부터입니다.이때 스코틀랜드와 유럽의 위스키 행사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탐방하면서 다양한 보틀들, 특별한 보틀들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하며 03년부터 지금까지 9000병 이상의 바틀들을 테이스팅 했다고 합니다.이 여행을 통해서 업계의 거장들을 만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그때 마신 바틀들을 보여주는데요포트 엘런이나 블랙 보모어(그때는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브로라 등등이 있습니다.진짜 개맛있겠다.그리고 C.Dully 에서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일 파스칼 가일 씨입니다.2014년에 알게 된 이후로 둘 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파스칼 씨는 1990년대 이후부터 위스키에 빠져든 진성 위스키 애호가이며 크리스티안 씨가 위스키에 대한 경험이나 테이스팅 노트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굉장히 중요하고 100% 신뢰 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합니다.창립하게 된 에피소드 하나를 말해주는데요.예전에 스위스에서 브로라의 하이 엔드급 희귀 바틀을 하나 구했다고 합니다.이걸 그냥 둘만 나눠 마시긴 아깝고, 더 사긴 어렵고 해서 어쩌나 싶다가 주변에 위스키 애호가들을 하나씩 모아서 이 바틀을 하나 더 구했고, 이걸 나눠 마시는 행사를 주최했다고 하는데 이게 큰 인기를 끌어서 이탈리아,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 비행기를 타고 참석할 정도였다고 합니다.이제부터 본격적인 크리스티안 덜리 셀렉션에 대한 설명입니다.여러 시음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주제였는데, 위스키의 품질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반면 가격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 모든 참석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고이는 크리스티안 덜리씨가 본격적으로 독립병입 사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위스키 애호가들의 입맛에 맞는 뛰어난 위스키, 증류주들을 엄선해 병입하여 동료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술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지상과제라고 하며, 이를 위해 각 국을 1년 내내 본인들의 기준점에 맞는 훌륭한 스피릿을 찾아 각국을 여행하며, 처음에는 싱글몰트 스카치에 집중했으나 이젠 뛰어난 품질과 풍미 면에서 위스키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만한 다른 증류주들도 찾고 있다고 합니다.대표적으로 이야기 했던 것이 꼬냑인데요.위스키 애호가들이 마셔도 직관적이고 맛있게 느낄 수 있는 꼬냑을 찾아 병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하며, 이에 어떠한 속임수도 쓰지 않고 정직하게 공급하기 위해 칠 필터링, 색소첨가, 꼬냑의 경우 부아제 등 그 어떤 첨가물도 없이 오크통에서 나온 그대로를 병입한다고 합니다.본인과 파스칼이 직접 돈을 내고 구매할 만한 제품이 아니면 병입을 하지 않는게 철칙이랍니다.브랜드의 로고는 덜리 가문의 문장을 사용했고, 아래쪽에 있는 사인은 이 바틀이 크리스티안 덜리의 기준점을 충족했다는 증거로써 들어간다고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퀄리티가 제 1원칙이며, 지금은 다양한 스카치와 버번, 코냑, 아르마냑, 깔바도스, 럼 및 피노 데 샤랑트 등 온갖 스피릿을 병입하고 있다고 합니다.아래쪽에 처음 언급했던 C.Dully 셀렉션의 브랜드 모토도 보이네요.이 철학은 바틀 디자인에도 들어갔는데 위스키 애호가들이 한 손에 집기 편한 사이즈의 유리병을 선택해 어떠한 증류주를 넣어도 따르기 편하고 잡기 쉽게 설계했으며,어떤 술장에 들어가도 좋은 디자인이기 때문입니다.라벨 역시 본인들은 투명성을 굉장히 중요시하기 때문에 라벨에 법적인 최고한도 내에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그리고 가장 장점인 부분은 역시 코르크인데요.코르크의 최악의 장점은 위갤 념글에도 자주 올라오지만 바사삭입니다.시간이 지나면 삭아서 쪼개지고, 꺼내다가 박살나고, 아주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 유리로 만든 코르크를 사용하는 것으로 손가락으로 살짝만 밀면 딸깍 하고 빼기 좋은 편의성과 장기보관에도 문제없는 마개를 선정했다고 합니다.드디어 대망의 시음타임.본격적인 시음타임에 앞서 테이블에 세팅 된 초콜릿을 설명해줬는데요.이 초콜릿은 크리스티안 씨가 스위스에서 직접 사온 초콜릿인데, 크리스티안 씨는 입을 리프레쉬 할 때 커피와 초콜릿을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특히 이 초콜릿은 볼리비아에서 자연적으로 다 익어 떨어진 카카오를 60시간 이상 저어줘서 만든 초콜릿이며 미슐랭 레스토랑에 납품되는 최고급 초콜릿이라고 하네요.첫번째 시음주,에드링턴 블렌디드 25년 1999 빈티지입니다.올드 스타일의 클래식한 셰리 위스키 타입이며 언제 어느 때 마셔도 마시기 좋고 편한,친구들과 나눠마시기 좋은 이지 드링킹 타입으로 블렌딩 했다고 합니다.사용된 원액을 맥캘란, 하이랜드 파크, 노스 브리티쉬 입니다.N - 89.50버터 스카치 캔디카라멜 마끼아또, 다크 초콜릿구운 헤이즐넛졸인 건포도, 럼레이즌민트, 로즈마리적포도 주스오래된 신문P - 89.90직관적인 에스프레소다크 초콜릿, 토피넛오렌지 마멀레이드진한 꿀더스티한 먼지말린 과일(사과칩, 건포도, 건프룬)넛맥, 올스파이스밑에 은은하게 깔리는 탄닌쫀디기 → 약간 호박엿, 당귀, 조청 같은 뉘앙스.F - 89.70다크초콜릿, 카카오닙스카라멜 마끼아또다크 포레스트 케이크오렌지필총평 - 마시기 부담스럽지 않고, 이지 드링크라는 말을 왜 꺼냈는지 알 것 같다.굉장히 직관적인 커피와 초콜릿의 향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이 다음은 블렌디드 몰트 셰리 오크 25년 (맥캘란 티스푼)N - 90.50산미 있고 신선한 포도와 과실향잘 익은 무화과. 체리기분 좋은 향목(香木)적사과 졸인 잼오렌지잼제비꽃 등의 화사한 플로럴밑에 부드럽게 깔리는 다크초콜릿에스프레소넛맥과 약간의 시나몬P - 90.50직관적인 산미와 감미적포도, 포도잼반건조 무화과신선한 자두, 체리마멀레이드약간의 넛맥과 시나몬카카오닙스F - 90.00다크 초콜릿, 중강배전 로스팅한 커피원목 가구오렌지필체리, 포도잼오크의 탄닌목을 살짝 따뜻하게 데우는 스파이스총평 - 비교를 위해 에드링턴 25년을 다 마시지 말고 남겨두라고 했는데 둘의 캐릭터성이 확연하게 달라서 좀 놀랐다.에드링턴 쪽이 커피와 초콜릿을 위시로한 묵직한 노트라면 이쪽은 화사하고 발랄한 노트들로 구성되어 마시는 내내 기분 좋게 음용할 수 있었다.번사이드(발베니 티스푼) 36년N - 91.50굉장히 밝고 화사한 향.진한 꿀에 절인 과일들의 느낌.헤더 허니갓 깎은 신선한 홍옥, 배파인애플, 망고, 멜론 등 열대과일의 트로피컬한 느낌살구 등 핵과류의 노트은은하게 깔리는 시트러스우디, 가죽P - 89.90진한 꿀달콤한 우드, 탄닌토피넛 → 버터 스카치 캔디사과, 배열대과일 → 패션후르츠, 멜론토칭한 바나나 브륄레오렌지필가죽, 후추F - 89.90바나나꿀, 몰트토피넛우드, 가죽후추사과와 배총평 - 향은 정말로 압도적인, 밝고 화사하며 과실의 향이 인상적으로 휘몰아치는데 팔레트는 화사하다기보단 묵직하고 차분한 계열이라 좀 놀란 위스키.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향에서 느껴지는 노트들이 팔레트로 그대로 왔으면 좋았을 거 같긴 하지만 묵직한 쪽도 맛있다.아일라 싱글몰트(라프로익) 27년N - 91.00장작 훈연약간의 페놀릭한 향풍부한 과실향(사과, 배)과 꿀열대과일 → 파인애플, 패션후르츠레몬주스청포도, 노란 계열의 플로럴은은하게 깔리는 Earthy팔각P - 91.00장작 훈연약간의 메디시널패션후르츠, 파인애플사과, 배꿀처럼 진한 단맛청포도고소한 몰트, 카라멜레몬필F - 91.00길고 확실하지만 강하지 않게 끌리는 장작 훈연패션후르츠,레몬사과, 배꿀총평 - 칵독병 겨울과 비슷한데, 좀 더 훈연향이 두터워지고 전체적인 구조감이 묵직해진 위스키.라프로익의 메디시널한 특징들이 상당히 깎여서 언뜻 쿨일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숙성임에도 훈연향이 상당히 살아있는 편이나 그게 과하지 않고, 다른 노트들과 조화를 이루는 부분이 좋다. 덜리 25년 라프 마셔봤냐고 질문이 들어왔는데 안 마셔봐서 모르겠지만 메디시널을 적당히 깎아내고 부드러운 훈연향과 과실향을 잘 살려낸 웰메이드 피트 위스키.깔바도스 크리스찬 드루앵 페이도쥬 15년 카로니 럼 캐스크N - 89.30부드럽게 깔리는 에스테르사과잼에 레몬즙 많이 넣은 향배열대과일 → 조금 과숙된 파인애플, 바나나데메라라 설탕, 데메라라 시럽시나몬과 흑설탕 넣고 볶은 사과 필링깔바도스 특유의 미묘한 마른 침냄새P - 89.60홍옥, 부사시나몬 → 맥도날드 애플파이 필링데메라라 설탕배약간의 민트, 후추은은하게 깔리는 에스테르 (파인애플)애플 사이더약간의 우드 탄닌F - 89.50사과, 배카라멜, 데메라라 설탕파인애플, 조금 과숙된 바나나우디, 바닐라총평 - 안 그래도 에스테르가 강한 깔바도스를 에스테르가 강한 럼 캐스크에 숙성해서 역시너지가 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좋은 방향의 시너지가 난 술.크리스티안 씨한테 질문했을 땐 지난주라고 했는데 나중에 로엔히 대표님께서 다시 설명해주시길 시음회 날 아침에 개봉했다고 한다. 에어링 이후의 퍼포먼스가 굉장히 좋을 것 같은데 이건 1병 살 것 같다.그 날 시음회의 최고숙성그로페랑 52년 쁘띠 샹파뉴 1967 빈티지N - 91.50적포도, 청포도제비꽃, 장미수졸인 배, 꿀자몽, 오렌지적당히 깔리는 미네랄리티약간의 타바코다크초콜릿은은하게 깔리는 낙엽과 흙P - 91.00약간은 오일리한 질감혀에 감겨드는 카라멜진한 사과패션후르츠, 망고적포도를 껍질과 씨앗까지 씹어먹은 느낌얼그레이 티후추, 타바코부드러운 에스테르은은한 미네랄리티오크 탄닌F - 91.50포도, 사과 주스카라멜과 견과류포도 줄기후추미네랄리티가 은은하게 깔림길게 이어지는 패션후르츠,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약간의 흙내음총평 - 왜 위스키 러버가 좋아할만한 꼬냑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꼬냑과 위스키의 즐기는 방법론이 조금 다르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꼬냑은 향만 좋고 맛은 밍밍한 술이다 라는 오명을 쉽게 받는데 이건 직관적으로 혀에 감겨들면서도 화사한 맛이 복합적으로 퍼진다. 부드럽게 깔리는 미네랄리티를 베이스로 한 향들이 인상적이었다.일단 시음회의 내용은 여기까지 였고 뒷부분은 질문이 몇차례 이어졌는데과연 좋은 술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C.Dully 셀렉션의 철학이 뭔지 이해가 가는 시음회였다.그리고 질문 중에 '어떤 술이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걸작이냐' 라는 질문에 몇 가지 예시를 들어줬는데 그 중 하나가 지금 로엔히 대표님이 개인소장하시는 바틀인 C.Dully 다니엘 부쥬 브룻 드 풋이었다.바로 얻어먹음 ㅋㅋㅋㅋ.꼬냑이라기보다는 진한 셰리와 꼬냑 사이의 어딘가에 방점을 찍어놓은 듯한 꼬냑이었는데 이전 그로페랑이 과실향과 미네랄리티를 기반으로 부드럽게 밀고 간다면 이쪽은 진한 적포도와 볼드한 카라멜, 데메라라 시럽 등 진한 맛과 부드럽게 깔리는 호두 등의 견과류 뉘앙스, 은은한 에스테르를 바탕으로 길게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대표님과의 대담에서 럼 캐스크는 자주 접해보긴 했는데 이번처럼 카로니 럼 캐스크라고 딱 집어서 말한 건 경험이 없다고 하니또 개인소장 바틀을 조금 나눠주셨다TWA 파나마 싱글 캐스크 카로니 럼 20년이전 로엔히 시음회 때 TWA 에서 병입한 럼을 좀 마셔볼 기회가 있었는데 로엔히의 방향성인지 TWA의 방향성인지 모르겠지만 강렬한 에스테르를 기반으로 한 좀 폭력적인 맛의 럼보다는 에스테르를 적당한 조미료와 조연의 자리로 끌어내리면서 다른 노트들과 밸런스를 맞춰서 나아가는 방향의 럼을 셀렉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약간의 케미컬 노트들과 함께 열대과일의 향들이 은은하게 깔리며 어우러지는 부분이 인상적인 웰메이드 럼.시음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나오는데 같이 시음회에 참석하셨던 어르신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가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삼선짬뽕을 사주셨다. 여기 맛있다고 추천해주셨는데 진짜 국물 맛있더라.해장국이 따로 필요가 없었는데 좀 놀란게 국물용으로 들어가는 꽃게는 살이 거의 없어서 수율이 개판이었는데 이건 안에 살이 가득그득 차서 진짜 맛있게 먹었다.조개나 전복 껍데기들도 다 제거해서 먹기 편했던 건 덤.이 모든 걸 무료로 즐긴다니로엔히 시음회는 가히 GOAT가 아닐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직접 병입자들이 찾아와서 본인들의 철학이나 셀렉팅 기준들, 현재 갖고 있는 생각이나 비전들을 직접 설명해주고, 또 본인들의 술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면서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거든요.이번 시음회에서 C.Dully 라는 병입자의 철학과 그 목표를 좀 더 확실하고 정말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음회였습니다.
작성자 : LiverArchive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