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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제 1편. 이창호, 바둑을 만나기까지

판타마린 2005.07.30 03:45:36
조회 1713 추천 0 댓글 8


1975년 7월 29일.

이창호는 전북 전주시 중앙동에서 이시계점이라는 금은방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창호의 아버지 이재룡씨는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그중에 둘째가 바로 창호였다.

창호네 집안은 그 부근에서는 꽤나 알부자로 통했다.
창호의 할아버지인 이화춘씨는 해방 전부터 만주에서 귀금속을 취급하는 상인이었는데 변함없는 신용과 놀라운 근검절약 정신으로 말미암아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창호의 어머니 채수희씨는 창호를 낳기전 태몽을 꾸었는데 그 꿈이 예사롭지 않았다.
큰 가마솥에 가득 밥을 짓고 있는데 밥이 되었나 싶어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 엄청난 크기의 구렁이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구렁이는 재물을 상징한다 하니 해몽대로라면 창호는 애초부터 재물을 안고 태어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창호는 타고난 우량아였다. 태어났을 당시 체중이 무려 4.8kg이나 나가는 데다 머리가 큰 편이어서 어머니 채수희씨가 출산 당시 고생을 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의사는 기계를 이용해서 창호를 나오게 했는데 그때 창호의 머리 윗부분이 약간 길쭉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이재룡씨의 아들 3형제는 모두 우량아였다. 창호보다 두살 위인 형 광호, 그리고 창호보다 한 살 어린 동생 영호 모두가 건장한 체구다.
창호를 제외한 이들 두 형제는 모두 키가 180을 훌쩍 넘었지만 어릴 적부터 바둑의 세계에 빠져 바둑과 씨름을 한 창호는 그 때문인지 키가 171cm에서 멈췄다.

창호는 유복한 환경에서 무엇이든 잘먹고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
단지 체격이 너무 커서인지 몸에 열이 많았고 식욕이 워낙 좋다보니 체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한다.

1977년 2월에 창호는 동네사람들을 권유에 마지못해 아버지와 함께 우량아 대회에 나갔다. 지금은 사라진 대회지만 당시에는 분유사들이 주최하는 이 대회는 신문에 보도가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전북지역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창호는 1등을 했다.;;
그리고 전북대표로 나간 전국대회에서도 2등을 하는 기염(?)을 토한다.

훗날 창호가 매년 100국가량의 대국을 멀쩡하게 견뎌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사실 바둑은 가만 앉아서 돌만 까딱거리는 것 같아도 개인당 제한시간 3시간 짜리 바둑 한판에 엄청난 정력의 소모를 가져온다. 노인네들의 세상풍물 유유히 흘려다보는 신선놀음같아도 실제 프로기사들의 치열한 승부세계에서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온 정신을 반상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프로기사들의 집중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러한 과도할 정도의 집중이 결국은 체력의 소모를 가져다 주게 되고 그 어느 스포츠 못지 않게 너끈한 체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세계 최고의 자리를 10여년 넘게 지켜오게 되는 이유의 일면을 이런 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중함과 침착함, 그리고 잔잔함의 대명사 이창호 9단. 차갑고 향기없는 바둑을 둔다며 세기의 기인 후지사와 9단의 독설을 들어야 할 만큼 냉정한 기사.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에게 창호의 부모님은 조금 의아스러운 느낌이 드는 대답을 한다.

"창호는 지독히도 고집이 셌다."

한번의 창호가 네살때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도 창호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며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어머니인 채씨가 한사코 안된다고 하자 창호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가게 입구의 커다란 진열장을 향해 그대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결국 깨진 유리창의 파편에 창호는 왼쪽 동맥이 끊어지는 큰 상처를 입었다.
아직도 그때의 흉터자국이 남아있단다.




보통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어린 시절, 혹은 지금까지도 창호의 모습이나 그의 바둑은 스승인 조훈현 9단의 날렵하고 화려한 기풍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보일 정도로 소박했다.

"조훈현이 바람과 같은 빠르기를 지녔다면 이창호는 소처럼 느렸다. 조훈현이 끊임없이 용렬하는 불과 같다면 이창호는 잔잔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이었다."

...그게 凡人의 눈에 비친 창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가끔씩...아주 가끔씩 그 흐리멍텅하기 까지한 도통 알 수 없는 눈에서 비치는 강렬한 광채를 우연히도 볼 때면...그 때까지 창호를 자기 눈에 뵈는 그대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던 그들의 뇌리에도 불가사의한 진동이 일고는 했다.
그러나...그것뿐.
다시 찰나의 순간에 창호는 눈을 내리깔고 그 빛을 칠흑과 같은 어둠속에 고이 묻어버리고 만다.

그래서일까...그들에게 보이는 창호는, 심지어 스승인 희대의 대천재 조훈현 9단에게마저 불가사해한 존재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끝을 알 수없는 바다와 같은 아이...
그 푸르고 광활한 심연의 깊이 저 아래에는 끊임없이 용솟음 치는 용암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건 나중에 보다 자세히 얘기할 것이니 잠시 미뤄두고...


시간이 흘러 창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지금의 이창호 9단은 매우 신중하며 말이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지만(오죽하면 기자들이 그를 인터뷰 할 때 이른바 '난청지역'에서 벗어나 이 9단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려고 난리를 치겠는가...워낙에 이 9단의 목소리가 작아서...생각보다 이 9단은 목소리가 가늘다. 필자도 조금 놀랬다. 이런 것도 범부의 선입견일까...) 어릴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쾌활하고 명랑한 편이어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놀고 그리 특별한 면은 없었지만 수리에 밝아 머리가 좋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무슨 미적분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왜 그거 있지 않은가. 정육면체로 된 여러가지 색깔로 되어 있는 무슨 블럭(?) 맞추기 같은 거...이름을 모르겠다..;;; 그게 한때 유행이었는데.
그 블럭을 맞추는데는 일정한 공식이 있는데 그 공식을 알면 어른들의 경우 4, 5분 정도 걸리고 공식을 모르면 시간이 마냥 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창호는 그 블럭을 처음보고는 불과 2분만에 맞추었다 한다.
이창호의 바둑은 그 유래가 없을 만큼 정밀하고 치밀하기 그지 없는 계산으로 유명한데 그런 그의 모습에 우습지만 그 때의 블럭놀이가 투영되기도 한다.

말했다시피 집안이 유복했던 창호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명문 사립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검사한 창호의 IQ는 139.
좋은 편이지만 소위 '멘사회원'급의 지능지수는 아니었던 셈이다.

공부는 잘하는 편이어서 반에서 1등을  곧잘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홍소금'이란 별칭으로 익숙한 홍종현 8단에 비하면 어림없는 얘기다.
홍 8단은 노상 술마시고 놀면서도 그 어렵다는 S대 법대에 가볍게(;;) 합격한 사람이다.
그런 홍 8단도 바둑으로는 그리 큰 빛을 보지 못했으니 창호의 어릴 적 공부실력이나 지능지수등은 그저 참고만 될 뿐,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창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 이화춘씨로부터 바둑을 배우게 된다.
1983년. 창호가 8살 때였다.
이 당시 이화춘씨는 가업인 귀금속점을 아들 이재룡씨에게 물려주고 친구들과 바둑으로 낙을 삼고 있던 때였다.
전주 기우회의 회장을 맡기도 한 창호의 할아버지의 기력은 아마 5급 가량.

방안을 들락거리다 우연히 어깨너머로 할아버지가 棋友들과 바둑을 두던 모습을 유심히 보던 창호는 결국 할아버지에게 바둑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게 된다.
할아버지는 좀 더 크면 배우라고 창호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나 창호의 고집을 누가 말리랴. 결국 할아버지는 창호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창호와 바둑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것이었다.

"어린 시절...바둑은 내게 요술거울과 같은 비밀스러운 즐거움이었다..."
                                                                                                -李昌鎬 9단



※이 글은 중앙일보 바둑 전문기자 박치문 위원님의 글을 토대로 각색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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