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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훈 뒷이야기 마지막.

낭야(121.183) 2011.05.01 12:14:06
조회 641 추천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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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전 도전1국이 끝난 후 만찬장에서 고바야시, 조훈현과 함께.

20여년간 19로 최일선에서 활약하며 반상반외(盤上盤外)의 정면과 이면을 지켜봐온 손종수(농심신라면배 관전필자, 사이버오로 사업총괄이사) 기자가 특별히 풀어놓는 조치훈 9단에 얽힌 비화. 이 글은 월간바둑 2008년 11월호부터 석 달에 걸쳐 연재한 바 있으며, 기축년 설을 맞아 명절연휴기간 동안 5회로 나눠 사이버오로에 다시 소개합니다. 이 글은 일본 최고의 르포작가 사와키 고타로 씨가 쓴 『마차는 달린다』의 내용을 여러 곳 인용 혹은 원용하였고, 번역은 정동환 한국기원 홍보팀장이 도와주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註)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기자가 생각하는 조치훈은 바둑에 관한 한 지상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승부사다. ‘목숨을 걸고 둔다’는 말을 유행시켰던 청년기의 조치훈은 8-90년대 (프로바둑을 지향하는) 청소년들이 가장 닮고 싶어 했던 우상이었고 86년의 교통사고 이후의 휠체어대국은 20여 년이 흐른 지금 하나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상금에 관한 한 여전히 최고액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랭킹 1~3위를 석권하는 ‘대삼관(大三冠)’을 네 차례나 기록했고 타이틀 획득 수에서도 일본 프로바둑 신기록(71회, 2위 사카다 에이오 64회)을 보유하고 있으니 부와 명예를 확실하게 거머쥔 셈인데 그는 과연 행복할까.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는 그의 말이 오래전 유력일간지 기자칼럼에서 본 기억 그대로 순수하게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웠다’는 말로 치환될 수 있다면, 그리고 한국바둑계와 팬들이 그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여주었다면 그는 행복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을 떠나서, 한국의 바둑계를 떠나서 이야기되는 조치훈은 대단히 유쾌하고 위트 넘치는 사람이지만 그는 한국을 떠날 수는 있어도 한국인임을 부정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그가 생각하는, 20년 전의 한국인 조치훈은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 않다.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숙명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함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씁쓸하게 웃었던 것처럼 마음 속 깊은 곳의 한국을 떨쳐버리지 못한 조치훈은 ‘한국어 구사가 서툴러서 또 일본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저 ‘바둑으로 일본인을 이기는 조치훈’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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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그 어느 집단에도 속해 있고 그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인가?


한국인으로서의 그는 오랜 시절 외로웠다. 오해가 쉬운 말이 아닌, 온몸으로 절절하게 ‘나는 외롭다’고 외칠 만큼 그는 외로웠다. 치열한 그의 승부세계와는 뜻밖에도 거리가 먼 구름, 바람, 숲을 대상으로 마음을 담은 그의 부채 휘호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고운(孤雲), 풍삽삽(風颯颯), 운림지정(雲林之情)….

그는 본인방 타이틀 5회 방어 기념식에서 하객들에게 나누어준 부채에 ‘군간백일치(君看白日馳) 하이현상전(何異弦上箭)’, 흐르는 시간은 막 쏘아지려는 화살과 같다는 당대(唐代)의 문인 이익의 시 두 구절을 휘호로 옮겨 기사생애의 반환점에 대한 소회를 담았는데 그 5년 뒤 하객들에게 가벼운 웃음으로 약속했던 본인방 10연패를 이룩했다.

사실, 그의 타이틀 획득과 방어, 심지어는 상실까지도 이런 예언자적 일화가 많았고 그것이 그를, 그의 승부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그의 어록에 남겨진 ‘그래 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말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애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바둑이지만 그런 바둑에 생의 모든 의미를 걸 수밖에 없었던 승부사로서의 감회가 담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구로 꼽힌다.

요즘 그의 마음은 10여 년 전 어느 날 대국 도중에 활짝 펼쳐든 부채의 자필 휘호로써 헤아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유지족(吾唯知足)

석가모니께서 수행 6년의 깨달음을 유언처럼 제자들에게 전한 말이라던가. 오직 스스로 족함을 안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태어난 곳을 향해서 또 그곳의 사람들을 향해서 얼마나 많은 빛깔의 애증을 떠올리고 가라앉혔을까.

단 한 사람의 육친, 그런 사람이니까

서울 기성전으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그날 밤 조치훈과 만나기로 약속한 사와키 고타로는 일본기원 기자실에서 혼자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조치훈과 대만출신 왕리청의 대국이 비치고 있었다. 조치훈은 기성전 도전기 중간에도 몇몇 기전에서 바둑을 둬야만 했는데 이 대국도 그중의 하나였다.

조치훈은 9시에는 끝날 테니 10시경에 만나자고 말했지만 바둑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10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잠시 후 패싸움에서 이겨 조치훈이 근소한 차로 왕리청을 이겼다. 12시가 지날 때까지 검토가 계속되었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는 모두 기진맥진했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택시로 시부야까지 나가 넓은 테이블이 있는 바에서 시원하게 맥주를 한잔 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일주일 전의 서울 이야기로 돌아갔다. 사와키 고타로는 ‘마차는 달린다’의 마지막 장면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가족과 고향은 점점 더 멀어졌다. 한국인으로서의 조치훈은 ‘일본인을 바둑으로 이기는 사람’으로만 받아들여졌다. 그게 조치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조상연은 조치훈이 10대 초반일 때 바둑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때린 적이 있었다. 어린 동생은 울면서 대들었다. 왜 나를 일본에 데리고 왔느냐, 누구에게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내 인생을 어떻게 해줄 건가. 지금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조상연은 생각했다. 그렇다. 확실하게 나는 이 녀석의 부모와 고향을 빼앗아버렸다. 나에게 이 녀석을 때릴 자격이 있기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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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전이 끝난 후에 한국기원은 격렬하게 조상연을 비난했다. 요컨대 조치훈을 이용해서 혼자서만 단맛을 다 빨아먹었다는 것이다. 조치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용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형은) 단 한 사람의 육친, 그런 사람이니까….”

많이 취했음에도 그다지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맥주를 마신 후에 진을 두세 잔 마시고 철수하기로 했다. 택시 안에서 조치훈이 입을 열었다.

“서울에서 돌아오는 날 아침, 한국기원 이사장에게 인사하러 갔었는데 그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아요?”

“글쎄….”

“당신도 형하고 손잡고 엉터리 같은 일을 하고 있지.”

“그런 말은 서로 안 하는 게 좋은 거 아닌가?”

그 뒤는 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서울에서 대국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했던 그의 말을.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어려웠다.”

그것은 일본이라는, 안에 들어와서 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한번 떠나 버린 고향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던가. 택시가 멈추자 ‘그럼 이만….’하며 그가 내렸다. 맨션 현관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지친 뒷모습을 보면서 그의 뒤를 쫓아가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언젠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싼 여관 같은 곳에서 머물면서 한국여행이나 한번 해보자. 진짜로.”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택시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이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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