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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사칙사..왜 조선은 명나라 칙사가 오면 경국대전을 치웠을까?
1년 삼사라 해서 조선에서는 새해 첫날에 명나라로 인사하러 가는 하정사(賀正使) 명나라 황제의 생일날 출발하는 성절사(聖節使) 황태자의 생일날 출발하는 천추사(千秋使) 이렇게 3번만 명나라로 갈 수 있었음 (공식적으로 말하는거..비공식적으로 가는 횟수도 존나 많았음 사실상 이게 명나라와의 무역루트라)그렇다면, 명나라에서는 1년에 몇 번이나 조선을 방문 했을까?기본적으로 명나라에서 조선에 사절을 보내는 경우는 국왕 즉위식, 왕비, 왕세자 책봉식, 혹은 처녀나 내시, 매 같은 공물을 요구할 때 정도였는데, 다 따져보면 연평균 1회 정도였던 걸로 나온다.문제는 이 한번의 칙사방문 때문에 조선은 매년 기둥뿌리가 뽑혀나갈 정도로 나라 재정이 휘청거렸다는 것이다뭐 재정이야 세금 올리면 그만이고 그런데 문제는 이 칙사들을 대접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 문제였다. 아...좆됐습니다 전하!! 명나라에서 칙사가 온답니다!! 아 씨발....좆같네 왜 갑자기 오고 지랄이야!!!씨발 영접도감(주로 중국 사신을 맞이하고 접대하는 임무를 맡았던 임시 관청을 의미하며, 왕의 권위와 국가의 체면을 보여주기 위해 화려하고 성대한 의식을 치렀고, 『영접도감의궤』에 관련 절차와 기록이 상세히 남아있음)차리고, 호조판서는 재정 얼마나 들어갈지 뽑아와! 아니 저 병신새끼는 뭐야? 저 병신새끼는 왜 경국대전을 펼쳐보고 있어?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법 보는게 무슨 문제 라도...? 야이 병신 씨방새야!!!이새끼 담당 누구야? 교육 제대로 안시켰냐? 칙사가 오면 조선은 경국대전을 숨기기 바빴는데,그 이유는 바로 경국대전의 내용이었다 조선은 국왕이 승하할경우 독자적인 묘호를 썼는데, (태정태세문단세 <- 이거) 명목상 명나라의 제후국인 조선에서 독자적인 묘호를 썼다는걸 들키수가 있기 때문이었다또한 경국 대전에는 조선의 고유한 관직 체계와 인사 시스템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명나라의 제후국 시스템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고 독자적인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보여주면 명나라가 "왜 너희 맘대로 관직을 만드느냐", "대명률을 따르라"며 내정 간섭을 할 빌미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숨겼음 거기에 군사정보는 덤이고...그리고 외교파트도 봐라!거기에 외교도 문제였다.명나라에서는 일본 하고는 일체의 교류를 끊으라고 했는데 그런데 현실적으로 일본이랑 교류 안하면 일본쪽에서도 들고일어나고그리고 일본의 상황도 체크해야 하는 조선에선 일본과의 교류는 필수였다 이런 통신사 규정이 경국대전에 적혀있었고 이는 명나라의 말을 씹고 일본과 교류한다는 사실을 들켜 명분을 줄수 있다는 의미였다 야야! 길거리에 붙은 글들이랑 현판 다 떼어내고, 백성들 귀중품 전부 숨기던가 자진 반납하게 명령내려! 모두들 가난한 개거지인척해! 중국에게 보였다간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경국대전과 기타 외교문서를 싸그리 치워버리고 아울러 조선의 상황을 명나라에 알리지 않기 위해 문자로 된 모든 문서와 현판 등등을 철거하고 혹시라도 귀중품 보면 괜히 금은 뜯어갈까봐 귀중품도 싸그리 치워버렸다비록 명나라의 속방처럼 분류되었지만, 그 자존심 하나만은 살아남아서 명나라에서 내린 묘호를 쓰지않고 독자적인 묘호를 썼고, 명나라에서 하지말라는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나름 깡다구 있던 조선이었지만... 그걸 숨겨야만 했던 약소국의 비애 또한 있던것이 조선이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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