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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골드버그 체형&식단 검색하다가 충격적인 사실
많은 프로레슬링 팬들이 알다시피 골드버그는 90년대부터 2000년대, 2010년대, 심지어 2020년대까지약간 근육빠짐이 있긴했지만 거의 일관된 체형을 유지를 했는데, 이것 때문에 내가 골벅을 특별히 좋아했음.그러다가 오늘 갑자기 문득 궁금한게 생기더라고골드버그가 본인의 체형을 저렇게 유지하는 데 특별히 식단을 신경 썼다던지, 운동 방향에 있어서다른 선수들이랑 어떤 차별점이 있었나 구글로 이리저리 검색도 해보고 AI까지 동원해서 물어봤는데상상도 못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놀랄만한걸 알게됨.그의 경기 스타일을 보면 훈련할 때도 운동이 파워리프팅 스타일이 가미된건얼추 알 수 있긴해서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음.보디빌딩 스타일은 많은 선수들이 애용하는 방식이고,무에타이는 골드버그가 수련하는 영상도 있고 유명하니하지만 진짜 충격적이였던건 식단인데하루에 10,000~15,000칼로리를 목표로 하면서 꾸준히 섭취를 했다고 함. 이건 기사도 검색해봤는데기사도 있고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게 나오긴함. 이렇게 많이 섭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긴한데 이건 나중에 얘기하고참고로 이 수치는 WWE 출신 선수들이 경기전 훈련하면서 먹는 식단중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임. (1위)에프터번 효과는 처음 알게됐지만 뭐 그렇다치고여기서 드는 의문그럼 골드버그보다 체형도 더 크고 심지어 벌크업한 이후 유지도 잘하고 있는 더 락은??이외에도 사이즈크고 오랫동안 현역생활한 선수들 대표적으로 존시나, 브록레스너는?경기전 훈련기간 식단존 시나 하루 3,600칼로리 수준더 락 평소 4,000~6,000칼로리 수준. 영화 촬영 기간엔 8,000칼로리 수준 (이미 잘 알려짐)브록 4,000~5,000칼로리더 락은 유독 사이즈가 더 커서 골드버그보다 많이 먹을줄 알았는데대체 이유가 뭐지?더 깊이 파고들고보니 이유가 있었는데(아까 많이 먹을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서 나중에 언급하겠다고 한 부분)그전에 궁금한 사람들 이것 먼저인터뷰에서 본인이 그만큼 먹는다고 이미 언급함.다시 본론으로골드버그가 경기 직전 훈련에 10,000칼로리 이상이나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이유1 요약)골벅이 주로 경기에서 사용하는 기술들을 경기전에 훈련하는게 보디빌딩식 트레이닝보다 더 큰 에너지 소모.무빙이나 테크닉을 보면 딱 느낌올꺼임이유2뻔한거니 그렇다치고마지막 이유를 읽고나서야 "아.,.."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됏는데나이는 먹을대로 먹었으니 노화로 인해 근육손실이 커지다보니,현역시절 만큼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음식을 때려붓는게 답이었음.당장 위에 비교했던 더 락이랑 비교를 해봐도 경기스타일을 보면 골드버그가 훨씬 파워풀요약) 골벅이 50대때 현역시절 만큼의 파워풀한 기술을 사용하는 경기를 내보이기 위해선떨어지는 신진대사를 끌어올리려고 경기전 훈련때 식단을 10,000 ~15,000 칼로리씩 섭취할 수밖에 없었음.
작성자 : ㅇㅇ고정닉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관람 후기(스압)
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외관생수 가지고 들어가려다가 안된다고 빠꾸먹어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감엘리베이터 타고 꼭대기층까지 올라간 뒤 한층 한층 구경하며 내려오면서 시대의 흐름을 체감하는 느낌의 방식이었음카를 벤츠의 초-고대 2기통 엔진2마력의 장절한 위력을 보여준다.벤츠의 첫 자동차 특허 문서지금은 회사명에서 사라졌지만 다임러-벤츠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지금의 벤츠의 창업자 중 하나인 다임러가 만든 오토바이세계 최초의 가솔린 엔진 이동수단이자 최초의 오토바이이다.모토gp의 대선조 같은 물건 아닐까...벤츠의 세 창업자 벤츠-다임러-마이바흐의 흉상지금 존재하는 벤츠의 럭셔리 서브브랜드 마이바흐가 저 사람한테서 나온 것임위쪽에서 찍은 그 당시 다임러와 벤츠의 고대 자동차들현재 메르세데스-벤츠의 메르세데스의 시작당시 다임러(회사)의 이사의 딸의 이름에서 자동차의 이름을 따왔다고 함다임러의 메르세데스 75마력(차 이름임)1908년산다임러와 벤츠가 합병한 이후인 1939년 메르세데스-벤츠 320 리무진때가 때라 뭔가 나치 깃발이 그려져 있어야만 할 것 같음1980년산 메르세데스-벤츠 O305 버스슈투트가르트의 바겐부르크-Ostend 길을 왕복하는 노선으로 쓰였나 봄중세 버스런던 옴니버스는 런던에서 1855년부터 1933년 사이에 존재했다 하니 그 중간에 제작된 버스인 듯메르세데스-벤츠 O3500 버스1952년산아까 중세 버스와 비교하면 많이 발전한 듯사진 순서가 꼬였는데 버스 위에 있는 사진이랑 같은차임1972년산 메르세데스-벤츠 300 SEL 6.3V8엔진을 일반 4도어 세단에 넣은 일종의 머슬카임지금의 S클래스의 선조1985년산 메르세데스-벤츠 300 TD왜건임지금 택시로 많이 쓰이는 e클 왜건의 시초 아닐까?1940년산 메르세데스-벤츠 O2600 버스앞에 크게 박혀있듯 디젤엔진을 사용함위쪽에서 찍은 다음 층마인-퓌러독일의 최대 흑역사 시절메르세데스-벤츠 260 D (1938)딱 그시절 영화에 나올거 같은 디자인임메르세데스-벤츠 540K 까브리올레 B (1937)메르세데스-벤츠 540K 로드스터위 차랑 같은 모델 파생형임1928년 모델인 거 같은데 뭔진 모름 ㅈㅅ위 540K의 후면이때 클래식 카들은 뒤가 진짜 예쁜거 같음1932년 메르세데스-벤츠 OM59 디젤엔진무려 55마력의 힘을 보여줌1924년의 메르세데스 M836 엔진1세대 슈퍼차져가 장착된 6기통 엔진임굉장히 익숙학 쉘 마크를 달고있길래 찍어봄트럭의 변천사메르세데스-벤츠 300 SLRW196을 개조한 차량으로 1955 세계 스포츠카 챔피언십 우승차량밀레밀리아 1, 2위투어리스트 트로피 1, 2, 3위타르가 플로리오 1, 2, 4위스웨덴 그랑프리 1, 2위아이펠 레이스(뉘르부르크링) 1, 2, 4위르망 24시 84킬을 달성한 여러모로 전설적인 차량임후마판과 스털링 모스 경이 몰았던 차량이 차를 마지막으로 메르세데스는 레이싱에서 긴 기간 철수함후면에 기계적인 문제로 진 적 없다는 말은 르망24시를 생각할 때 뭔가 의미심장한 거 같음...귀여운 미니버스그 유명한 걸윙도어위층에서 찍어봄W196과 후마판의 영광스러운 월챔을 기념하는 부분1952년의 메르세데스-벤츠 300당시 벤츠의 기함이었음소프트탑 버전1955년 메르세데스-벤츠 180당시 벤츠의 주력모델이었음와 ㅅㅂ 뒷태사진 개수 제한이랑 슬슬 잘시간이라 나머지는 일어나서 올려봄-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관람 후기 (2) (스압)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ormula1&no=1312095&exception_mode=recommend&page=1인상적인 걸윙 도어를 자랑하는 300SL걸윙 도어를 장착하는 일반 모델과 걸윙 도어가 없는 로드스터 모델로 나뉜다.빨간색이 로드스터임사진 중간에 SLR이랑 똑같이 생긴 유선형 디자인은 300SLR을 개조한 울펜하우트 쿠페로 300SL의 좀 더 직접적인 원형 같은 거임300SLR의 프레임옆을 보면 문을 넣을 자리가 없는 게 보임이를 해결하기 위해 걸윙 도어가 도입된 것메르세데스-벤츠 C32 AMG (2001)세이프티 카랑 자주 혼동되는 메디컬 카다.2002시즌 미국 그랑프리(인디애나폴리스 서킷)에서 첫랩 뒤를 따라가기 위해 정렬해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맨 오른쪽 사진은 세이프티카로 사용된 SL55 AMG이제 완전 클래식카에서 슬슬 어느정도 익숙한 시대로 접어든다.1964년까지 메르세데스-벤츠의 자회사로 있던 아우토 유니온이 폭스바겐 그룹으로 넘어갔음을 알1리는 신문기사이다.이떄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우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됨많은 시간이 흐르고 두 회사가 모두 f1에 함께 참전하게 되었다는 게 참 기쁜 일 아닐까?1963년부터 1971년까지 판매된 W113 SL300SL의 후속작이다.메르세데스-벤츠 ESF 22 (1973)70년대 슬슬 늘어나는 자동차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테스트용 차량이다.ESV(Experimental Safety Vehicle) 시리즈 중 하나ABS와 진보된 안전벨트, 에어백이 장착되어 있다.메르세데스-벤츠 W123 (1975~1986)지금까지 이어져오는 E클래스 중에서도 명작으로 손꼽히는 세대이다.메르세데스-벤츠 SLK55 AMG (2011)한떄 F1 세이프티카로도 이용된 적 있는 모델노즈가 인상적인데 솔직히 볼때마다 못생겼다.참고로 저 뒤에 국방색 밴은 쥬라기 공원 촬영 때 쓰였다고 한다.메르세데스-벤츠 190 SL달에도 다녀온 우주비행사 데이비드 스콧이 소유했던 차량이다.세월의 흔적이 느껴짐요한 바오로 2세가 사용한 교황 의전용 차량바티칸 번호판이 인상적이다.메르세데스-벤츠 500 SL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탔던 스포츠카다.교통사고 때 탄 차는 아님메르세데스-주방용품들이다.이제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친환경 차량들의 차례다.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 그룹 내에 존재했던 브랜드들2007년 크라이슬러는 벤츠 그룹과 결별했다.현재는 대 황 존 엘칸의 스텔란티스 그룹 내에 존재메르세데스에서 벗어나 페라리로 간 한 레전드 선수가 생각나는 신세가 아닐 수 없다...기습 국뽕2014~2021 메르세데스 f1팀의 8연속 컨챔 대기록 기념샷이다.이 사진이 찍힌 2021 아부다비를 마지막으로 메르세데스는 길고 긴 왕조를 마무리하고 드챔과 컨챔을 모두 레드불과 몽골에게 넘겨주게 된다.과연 26시즌 자신있어 보이는 메르세데스가 다시 한 번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을까?메르세데스 AMG GT 컨셉트카표면 난잡한건 천장 조명이 비쳐서 그런거다.멋진 디자인과 유광 빨간색을 보니 삼각별의 악마 cla 콘셉트카가 머릿속에 맴돈다...메르세데스-벤츠 NECAR 1 (1994)New Electric Car의 줄임말이다.벤츠의 첫 수소차41마력에 최고속도 시속 90km 주행거리 130km로 당시의 수소차 기술이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 F-CELL다시 돌아온 수소 차량이다.2011년 이 차량 3대가 세계일주를 해냈다.그래서 그런지 옆면이 상당히 더러운 것을 볼 수 있음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4026/http://media.daimler.com/dcmedia/0-921-614307-49-1358454-1-0-0-1358459-0-1-0-0-0-1-0-0-0-0-0.html?TS=1447331843524메르세데스-벤츠 SLS AMG Electric Drive (2014)SLS AMG의 전기차 모델이다.BMW I3 테슬라 로드스터 쉐보레 볼트 등이 현역이었던 시절답게 그리 실용적인 차량은 아니었다.워크맨과 플레이스테이션전자제품 기업으로서의 소니의 최전성기 아니었을까게임보이와 아이팟어떻게 보면 소니에서 애플로 IT시장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게 담겨있는 것 같기도...입구부터 뭔가 대중문화 관련된게 전시된 것에서 볼수 있듯이 아래는 자동차 그 자체보다는 대중문화에 초점이 맞춰진 전시관 같다.메르세데스- 벤츠 SLK 230 Kompressor (1997)kompressor는 슈퍼차져를 의미한다.메르세데스-벤츠 CLK 320 까브리올레 (1998)메르세데스-벤츠 SL500 (2000)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을 젋은 시절이라 추억하는 걸 보니 갑자기 세대차이가 느껴진다...저 뒤쪽에 무슨 게임하는 곳 있던데 모녀 두명이 10분 넘게 차지하고 있어서 난 못해봄메르세데스- 벤츠 E60 AMG(1997)전시장도 90년대 클럽 느낌인 거 같다.막 뉴스에서 외제차가 어쩌고 오렌지족이 어쩌고 하던 시절 아닌지...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 로드스터아직 엔진 제조사로만 참여하던 그 시절 단순히 엔진 제조사와 레이싱팀의 관계가 아닌 더 깊은 관계였던 메르세데스와 맥라렌의 사이를 엿볼 수 있다.근데 저 노즈는 다시 봐도 못생겼다.메르세데스-벤츠 CLS 350 CGI (2006)드디어 나랑 나이가 같은 차들이 나온다...메르세데스-벤츠 CL 600 (1999)메르세데스-벤츠 E500 Limited (1994)단순한 E클래스가 아니고 포르쉐랑 협업하고 V8엔진을 얹은 고성능 모델이다.그 당시의 M5랑 라이벌이었다고 하던데...이 차량 출시를 기점으로 현재 벤츠의 모델명 네이밍 방식(E200 S500 등)이 정해졌다고 한다.슬슬 사진 수 제한에 걸려서 글 또 새로 파야 할 거 같음마지막은 우리가 가장 관심있어할 레이싱카들에 관한 부분임따로 박물관 코스 마지막쯤에 모아놨었음곧 나올 W112020시즌 경의 마지막 드챔을 함께한 역대 가장 빠른 F1카
작성자 : IА고정닉
[하우스 오브 겔랑]겔랑 가문의 역사를 알아봅시다.
Guerlain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 뷰티 하우스중 하나이자70살 할머니부터 MZ세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팬덤을 거느린 하우스인 겔랑그 역사를 알아보자긔1. 겔랑 비긴즈[겔랑의 초대 향카게 사진]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1798~1864)은 화학자이자 의사, 그리고 조향사였긔.1828년, 파리에 첫 향수공방을 두 아들과 함께 열고선 판매하기 시작했고탁월한 조향 실력으로 유럽 상류층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긔.겔랑옵빠는 향수공방을 만들기 전에 영국에서 비누 제조도 배우고 이것저것 다 할 줄 아는 천재 올라운더여서1830년에 모유수유를 하는 여성의 꼭쥐쓰를 위해 제작된밤 드 라 페르떼는 성능이 너무 좋아 립밤으로 각광받았고겔랑은 2010년대 초반까지 모양만 바꿔서 팔았긔...(다시 내줘 제발)이런 겔랑의 명성이 최정상에 오르게 된 때는 1853년나폴레옹 3세의 와이프이자 프랑스의 마지막 황후, 외제니 황후에게 결혼 선물로 오 드 콜론 임페리얼 향수를 진상하면서임.(오 드 콜론 임페리얼은 아직도 판매중이긔. 근데 국내는 단종시킨듯. 뻐킹 LVMH 코리아 ㅗㅗ)고급스럽게 황실의 상징인 꿀벌이 양각된 겔랑의 상징, 비(bee) 바틀은 이때 처음 만들어졌고외제니 황후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했긔. 이 향수만 뿌리면 두통이 사라졌다나 뭐라나?아무튼 미인으로 유명했던 외제니 황후웅니는 파리 사교계의 중심이자 패션의 트랜드를 이끄는 최고의 인플루언서였는데 당시 귀족들의 가방을 만들고 패킹해주는데 천부적인 솜씨를 갖고 있던 서른살의 루이 비통을 자신의 전속 패커로 밀어준 것도 외제니 황후였긔.이런 외제니 황후의 마음에 쏙 들었으니 겔랑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 유럽 각국의 왕실에서도 자신을 위한 향수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게 되었긔빅토리아 여왕이나 이사벨라 2세에게도 향수를 만들어줬고겔랑은 폐하의 공식 조향사로 자리매김했음이때부터 겔랑은 자신의 제품에 프랑스 2제국의 상징이자 황실의 상징인 꿀벌을 붙일 수 있게 되었으며 벌과 벌집은 겔랑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긔.이런 전성기를 누리게 된지 10년이 좀 넘었을 때, 초대 향카게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옵빠는 66살의 나이에 눈을 감게 되었고겔랑의 사업은 두 아들에게 넘어갔음.2. 겔랑 라이즈2대 공동 향카게 에메 겔랑(2대 공동 향카게 가브리엘 겔랑)겔랑 하우스는 이제 두 형제, 에메 겔랑(1834~1910)과 가브리엘 겔랑(1841~1933)에게 넘어갔는데.형인 에메 겔랑은 상품 개발을 맡고 동생인 가브리엘 겔랑은 사업적인 매니지먼트를 맡아 투탑시스템으로 회사를 굴렸긔.이 당시 나온 겔랑의 향수는전설의 오리엔탈 푸제르 향수. 과감하게 바닐린과 쿠마린이라는 합성 향료를 사용한 지키를 1889년 출시했긔.처음에는 여성 향수로 출시했지만 남성들도 쓰기 시작했고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용한,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가버린, 웅니오빠들이 다 뿌리고 다니는 젠더리스 향수였긔 ㄷㄷ이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뷰티 용품도 선보였는데Ne m'oubliez pas-느 무블리에 빠 (뜻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립스틱을 1870년에 출시했음.뭐야? 그냥 립스틱 아님? 싶겠지만이것이 세계 최초로 둥근 튜브형 용기에 담긴 리필형 립스틱이긔.3. 겔랑 익스트림 라이즈(3대 향카게 자크 에두아르 겔랑)1890년대, 이제 가브리엘옵빠의 두 아들인 피에르 가브리엘 겔랑(1872~1961)과 자크 에두아르 겔랑(1874~1963)이 사업을 이어받음(에메옵빠는 자녀가 없어서 조카인 자크에게 조향을 전수했긔.)자크 겔랑은 60년간 겔랑의 퍼뮤머로 활동하며 향수계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고 신화를 만들었긔.샤넬 넘버 5를 만든 에르네스트 보(1881~1961)도 겔랑의 능력에 대해 찬사를 남기며 존경했을 정도였으니...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기가막힌 조합으로 그 이미지를 형상화 하는 자크 겔랑 옵빠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이 내린 재능 자체였긔.자크가 만든 향수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면1911년, 자크의 아내인 릴리를 위해 만든 뢰르 블루1차세계대전 직전, 벨 에포크 시대의 낭만을 담은 이 향수는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긔.전쟁 직전 식민지빨이로 최고로 번영했던 시대인 벨 에포크를 살아간 자크 겔랑은 몬가 몬가를 느꼈으며 그걸 향수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긔이 바틀 디자인은 크리스털 하우스 바카라(Baccarat)의 디자이너 조르주 슈발리에가 디자인했고 겔랑 하면 생각나는 대표 디자인이 되어버렸긔(tmi: 크리스털 하우스 바카라 250주년 기념으로 나온 콜라보 향수가 귀정의 바카라 루쥬 540이긔.)1919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온 향수인 미츠코전에 나온 향수와는 다르게 전쟁으로 개박살난 시대상을 반영하듯 어두운 분위기를 주긔일본해군 제독 와이프인 미츠코와 영국장교와의 비극적 연애 어쩌구가 내용인 끌로드 파레의 소설 [전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긔.1925년 샬리마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타지마할의 그 양반들 맞다)의 러브스토리(14째 애 낳다가 죽었다고 하니 얼마나 야스를 한거긔;;)에서 영감을 받고 샤 자한이 사랑한 정원에서 이름을 따서 만든 향수긔.바틀 디자인은 피에르 가브리엘의 아들이자 자크의 조카인 레이몽 겔랑이 맡았고 제조는 바카라에서 했으며 1925년 장식예술박람회에서 찬사를 받으며 수상했긔요 세개 정도가 자크 겔랑 시대를 대표하는 향수들이고 모두가 기억하는 겔랑의 올드스쿨 향수들이 자크 겔랑의 코와 손에서 나왔긔그리고 오리엔탈, 이국적 느낌의 겔랑 향수 방향성도 자크 겔랑이 퍼퓨머로 있던 시기 확립된거긔.출시된 향수들 말고도 미발표된 엄청나게 많은 조합들이 있다고 카더라.여담이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자크의 삼촌인 에메가 만든 푸제르 향수 [지키]는 자크의 어린 시절 별명을 따서 만들었다는 썰이 있긔4. 겔랑 폴링자크는 아들이 넷 있었긔. 그 중 나이 마흔 넷에 둔 늦둥이 아들인 피에르 겔랑은 2차 세계대전이 터져서 징집되고 치명상을 입고 돌아와서 20대 초에 죽게되긔. ㅠㅠ참척을 겪은 충격으로 자크는 활동을 중단했긔...ㅠㅠㅠ원래부터 사람이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사진도 노년 시절 몇장 있고(이것도 손자인 장 폴 겔랑이 좀 찍자고 해서 찍은거긔)인터뷰도 거의 없긔. 예술품 좋아해서 예술품 수집하고 혼자 농사나 짓고 정원을 가꾸었다고 하니 아주 대문자 I가 따로 없긔.아무튼 자크는 여러 일들과 노화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게 되고 자신의 후계자이자 제자인 손자 장 폴 겔랑과 함께 만든 Ode (1955년 작) 을 마지막으로 모든 활동을 접고 살다가 1963년에 죽긔활동을 접기 전, 자신의 손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하긔“난 이제 노부인들을 위한 향수밖에 만들 수가 없구나...”ㅠㅠ 여담이지만 형인 피에르는 이미 2년전인 1961년에 죽었긔5. 라스트 겔랑(장 자크 겔랑)이제 사업은 피에르 가브리엘 겔랑과 자크 겔랑의 아들들인장 피에르 겔랑과 장 자크 겔랑으로 넘어가긔그런데 둘은 조향사가 아니고 그냥 경영자였고장 자크 겔랑 정도만 유의미하게 여기서 언급할 만 한데프랑스 명품 하우스들의 이권을 지키고 모조품을 단속하는 연합회인 코미테 콜베르를 설립했고 프랑스 향수협회의 회장이었으며가장 중요한 건세계 최고의 조향학교인 ISIPCA를 설립했긔윤.자 그럼 아들세대가 조향사가 아닌데 누가 조향사인가?바로 장 자크 겔랑의 아들이자 자크 겔랑의 손자인 4대 향카게 장 폴 겔랑(1937~) 이긔.아들 세대가 조향 능력이 없었는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자크는 자신의 재능있는 손자를 데려다가 훈련시키고 가문의 비법을 전수하여 겔랑의 마스터 퍼퓨머로 만들었긔.이 옵빠의 특징은 16살때 시력을 크게 잃어서 학교를 관두게 되었고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스승인 자크 겔랑 밑에서 냄새를 킁카킁카거리며 훈련받았는데...(시력을 잃고 방구석 백수가 되어버린 장 폴 겔랑)장 폴 겔랑 옵빠가 회상하길 시력 이상으로 인해 거의 앞을 못보게 된 상태에서 학교를 관두고 방구석에만 있자할아버지인 자크 겔랑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우리 식으로 번역하자면 히키코모리질 때려쳐라 이노무자슥아!) 라고 말하며 수많은 향료들로 가득 찬 겔랑 가문의 방으로 데려갔고그 향들을 본능적으로 킁킁 거리는 자신의 손자를 매우 흐뭇하게 지켜봤다고 하긔 ㅠㅜ손자의 재능을 알아본 자크는 장에게 몇달간 3천가지의 다른 냄새를 구별하고 암기하는 훈련을 시켰음 ㄷㄷ(자크 겔랑의 개인사 등은 자크 겔랑이 ㄹㅇ 극강 대문자 I 은둔파라서 교류가 있던 손자 장 폴 겔랑이나 그 가족들의 회상에서만 알 수 있긔윤)아무튼 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장 폴 겔랑.(앞으로 JPG라고 하겠음)수 차례의 안과 수술로 시력도 일부 되찾았고 승마도 잘하고! (진짜 승마를 좋아해서 프랑스 마장마술 팀 국대 예선에도 출전한 적이 있긔) 요리도 잘하고! (르 꼬르동 블루에서 셰프 트레이닝 받음) 못하는게 없는이런 JPG의 커리어 첫 작품들은바로 남성용 향수인 베티베르 (1959) 빈티지 베티베르를 못맡아봐서 모르겠지만 지금의 베티베르도 매우 훌륭한 향수긔... 남자의 멋진...잘 빠진 양복쟁이의 향기긔그리고 1965년의 남성용 향수인 아비 루즈말박이인 JPG답게 빨간 승마복에서 이미지를 따왔다고 하긔그리고 JPG의 최고 히트작삼사라 (1989) 산스크리트어로 윤회 전생을 뜻하는 단어에서 따온 이 향수는단번에 레전드가 되었긔...리포뮬 되어서 오리지널 삼사라를 모르지만 리포뮬 삼사라도 진짜 좋긔 진짜로... 일랑일랑파워섹스...안맡아본 향붕이들은 꼭 맡아보긔근데 러브무현코리아개새기들아 삼사라는 왜 안보이냐?근본을 다 치우면 겔랑에서 뭐가남노? 아베이로얄? 시발아무튼 JPG는 가문의 유산을 이어받아 승승장구 했는데...문제가 생김...90년대 초...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수많은 패션하우스, 뷰티회사들이 인수합병되는 시기였으며 유럽의 경기침체를 겔랑도 피해가질 못했긔...회사는 서서히 기울어가고 있었고 위에서 언급한 4세대 겔랑 형제는 이제 나이가 90에 가까워지고 상속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긔...그 때 겔랑가문 상속인이 25명임ㅋㅋㅋㅋㅋㅋㅋㅋ거기에 나이가 60이 넘은 JPG의 후계자 향카게를 할 인재가 겔랑가문에 보이질 않았긔...그때...굶주린 늑대새끼가 겔랑에 침을 바르는데...바로 LVMH제국을 세운 베르나르 아르노였긔겔랑 가문이 지분 상속 관리를 하기 위해 지주회사를 세울 때아르노(라 쓰고 씨발놈이라 읽는다)는 14%의 지분을 매입하며 겔랑에 손을 댔고결국 불황과 이익감소에 버티지 못한 겔랑 가문은 아르노 회장에게 지분을 팔아 LVMH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긔.그리고 지주회사의 대빵이었던 에릭 겔랑(아까 샬리마 향수병 만든 레이몽 겔랑의 아들이다)은 디올의 이사회에 들어가고 부회장까지 맡게 됨.당시 겔랑의 강성 빠들-겔줌들은 겔랑이 좆망했다며 우울해했고탈겔랑 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하긔참고로 JPG는 이때 나갈려고 했는데 아르노 회장이 온갖 똥꼬쇼를 해서 붙잡았다는 말이 있긔...그래서 JPG는 조향사로 계속 남게 되고이제 겔랑의 향수는 겔랑 가문의 사람이 전부 만드는 것이 아닌 다른 조향사들이 만드는 것으로 바뀜90년대 말에 JPG와 현재 까르띠에 전속 조향사로 활동하고 있는, 마틸데 로랑과 함께 만든 것이 아쿠아 알레고리아 라인이당그러다가 2002년 메인 자리에서 은퇴하고 고문 직함으로 활동하긔.그렇게 JPG의 영향력 아래 겔랑의 유산이 유지되며 잘 굴러가나 싶더니...개좆같은 사건이 발생했긔6. 겔랑의 끝때는 2010년....프랑스 뉴스 인터뷰에 나온 장 폴 겔랑앵커: 삼사라를 만드실때 어땠나요?JPG: 어쩌구 저쩌구...그 한 번 나는 흑인(니*로)처럼 일하기 시작했다. 모든 니*로들이 열심히 일했는진 모르겠지만 ㅋㅋLVMH: 미친새끼 아님? 저새끼 치매임?모든 사람들이 경악하게 된 사건이었긔...뉴스 인터뷰에서 저런 말을 대놓고 한 JPG 때문에파리의 겔랑 본사 스토어 앞에서는 시위가 이어지고 LVMH 보이콧 성명도 벌어짐개박살이 날 위기에 처하긔...결국 LVMH는 JPG와 손절 선언을 하고 모든 관계를 다 끊어버리고 직함도 전부 빼버리긔...결국 2012년 당시 환율 기준으로 840만원의 벌금을 물고 간신 감옥을 면하게 되긔...(tmi: 애인과 나는 JPG 할배 이야기 나올 때마다 아프리칸처럼 열심히 일한 할배라고 비꼬면서 말함ㅋㅋㅋㅋ)그 후 JPG는 조향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었는지 마이 익스클루시브 콜렉션 이라는 스타트업에 들어갔고17년도에 이런 희한한 병 모양의 향수를 런칭했긔향은 안맡아봐서 몰?루21년도에 나온 라인은 나도 한 병 갖고 있는데 되게 좋다가면네에서 아직 팔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회가 된다면 맡아보시긔...그리고 JPG는 알츠하이머를 조금 앓고 있는 가운데(알츠하이머 걸려도 조향을 하고 있다는게 무시무시하다) 또 시끄러운 스캔들이 터지는데...JPG에게는 2005년부터 만나던 21살? 연하의 애인이 있었긔...시발ㅋㅋㅋ 80대 노인네가 60대를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이긔...아프리칸처럼 열심히 사랑하시는 장폴겔랑옵빠...아무튼 겔랑 가문의 구성원들, 특히 JPG의 아들은 아무리봐도 돈긁어내려고 접근한 것 처럼 의심되는 애인을 경계했고아들은 JPG의 알츠하이머를 사유로 법적 권리를 다 가져가고(금치산자로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그걸로 결혼을 무효화시킴ㅋㅋㅋㅋ이렇게 아들과 아빠 애인 사이의 서로 괴롭힘 폭행 어쩌구로 법적 싸움이 벌어지고...이거 관련 마지막 뉴스가 22년도인가 그런데 어찌됐는지는 잘 몰?루아무튼 장 폴 겔랑을 마지막으로 겔랑 가문이 조향하는 겔랑 향수의 스토리는 끝이 났긔.그럼 겔랑 가문 중에서 조향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냐?아니긔파트리샤 드 니콜라이가 있긔자크 겔랑의 형 피에르 겔랑의 증손녀이자 JPG에게는 촌수로 조카딸 정도 된다이 사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파딱 글 참고https://m.dcinside.com/board/hyang/339650그리고 또 누가 있냐면 JPG의 손자, 리얼 겔랑 가문의 적통이 있다.폴 겔랑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설립한 ISIPCA를 졸업하고 IFF에서 주니어 퍼퓨머로 일하고 있는미친향수저새끼응애겔랑이긔안느 플리포(입생 리브르랑 프말 신테틱 네이처 만든 웅니이긔) 밑에서 조향을 배우고커리어 시작한지 5년밖에 안됐는데 랑방, 크리스찬 루부탱, 드리스 반 노튼, 아무아쥬, 질샌더, 돌체 앤 가바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역시 조향사는 수저 잘물고 태어나는게 최고구나 라는걸 느끼게 하는 사람이긔-글을 마치며-사실 본 향붕이는 얼마 전 까지는 겔랑에 큰 관심이 없었긔그런데 얼마 전에 겔랑을 너무 좋아하는 겔줌단 애인이 생긴 이후 겔랑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겔랑 집안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정리해봤우길고 지루하지만 끝까지 읽어줬다면 너무 고맙긔
작성자 : 슬퍼하는자는복이있나니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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