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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벌써 저한테 내년 공천 청탁 들어오고 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570324?sid=100 [속보] 전한길 “벌써 저한테 내년 공천 청탁 들어오고 있다”장동혁 신임 국민의힘 대표가 한국사 강사 출신 유튜버 전한길씨의 당직 기용설을 일축한 가운데, 전씨는 자신에게 내년 지방선거 등에 대한 “공천 청탁이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지난 29일 진행한 유튜브 라n.news.naver.com- 전한길 "공천 청탁 막 들어와…장동혁에 부담주지 않겠다"전한길 "공천 청탁 막 들어와…장동혁에 부담주지 않겠다"전한길 "벌써 인사·내년 공천 청탁 막 들어와… 파워 세졌다"은밀히 해야 할 일을 대놓고 자랑하네 ㅋㅋㅋ
작성자 : ㅇㅇ고정닉
러시아 최대 기업 가즈프롬은 어떻게 몰락했는가
1943년, 제 2차세계대전 중 소련 정부는 국내 가스 산업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후 1965년부터는 가스 산업부로 가스 탐사, 개발, 유통을 중앙화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가스 산업부는 시베리아, 우랄 지역, 볼가 지역에서 대규모 천연가스 매장지를 발견하였고, 소련은 주요 가스 생산국이 되었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전 가스산업부 장관 소련이 완전히 저물어가기 시작하던 1989년, 8월, 소련 가스산업부 장관인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의 지도 하에 국가의 가스산업부는 가즈프롬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그 가즈프롬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석유회사가 되었다. 이는 소련 최초의 기업체이기도 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후 수많은 러시아 국내 사업장들이 줄도산했는데, 가즈프롬은 이 틈을 노려 가스 부문의 독점권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붕괴된후 러시아 첫 대통령직을 맡은 보리스 옐친의 대통령령으로 가즈프롬은 정식적인 주식회사로 탈바꿈되었고, 그로인해 가즈프롬은 바우처 방식으로 주식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2000년 가즈프롬이 소유한 러시아 주요 천연가스 매장지 러시아 경제는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걸었지만 가즈프롬만큼은 독점력을 이용하여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2000년 6월 러시아 대통령이 된 푸틴은 가즈프롬을 포함한 러시아 과두 정치가들(올리가르히들)에 대한 통제력을 얻고 국가적 챔피언 프로그램을 통해 중요 기업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기위해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올리가르히들이 사업에서 숙청되었으며 가즈프롬 역시 체르노미르딘이 이사회 의장에서 해고당하는등 푸틴의 영향을 받았다. 2000년대 내내 유지되었던 세계적인 고유가현상에 힘입어 파탄위기였던 러시아 경제는 극적으로 회복되었고, 푸틴이 집권한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연 15~20%씩 성장하는등 러시아 경제는 엄청난 호황을 맞게되었다. 2012년즈음 러시아의 GDP는 소련 수준을 회복했으며 당연히 가즈프롬을 포함한 기업들 역시 대폭 성장할수있었다.2008년 전세계 시가총액 3위 기업이었던 가즈프롬 지금같으면 믿기지않겠지만 2008년 가즈프롬은 시가총액으로 전세계 3위 기업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미국과 유럽의 모든 글로벌기업들보다도 더 큰 회사가 바로 러시아의 가즈프롬이였단 소리. 자료를 보면, 당시 가즈프롬은 엔비디아, 구글, 애플, MS, 아마존, 메타, ASML, ARM, SAP, 노보 노디스크, 로슈, 노바티스, 아스트라제네카, 브로드컴,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와 같은 기업들보다 훨씬 거대한 기업이었다. 너무 말도안될정도로 규모가 컸다보니 당시 가즈프롬의 CEO는 가즈프롬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달성하게될것이라는 미친 목표를 세웠을정도였다. 참고로 2025년 현재조차 시가총액 1조달러이상인 기업은 엔비디아, 애플, 구글, MS, 아마존, 메타, 테슬라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밖에 없다. 그러나..... 2014년, 우크라이나의 지배하에있던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무력으로 침공하여 점령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로인해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고강도 제재를 부과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러시아 경제와 환율, 기업들까지 즉각적으로 타격을 주었는데....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루블화 환율부터 GDP, 국제 석유가격까지 수직으로 폭락하였다. 2014년 러시아의 국내총생산은 2조 2000억불에서 1조 3000억불까지 거의 반토막나는 상황까지 가게되었다. 러시아 GDP와 기업들이 정확하게 이 시점부터 성장하지 못하게된것이다. 숨이 멎을것같다는 영국 언론사 가디언의 한 기자 2014년 러시아 경제가 지각변동되면서 개박살나자 가즈프롬의 시가총액은 무려 3000억달러가 증발했고, 순식간에 전세계 10위권 기업에서 200위권 기업으로 말도안될정도로 쇠퇴하기시작했다. 이는 세계 5000대 기업 통틀어서 전례가 없을정도였고, 가즈프롬의 순이익은 무려 86%가 감소했다. 말도안되는 가즈프롬의 쇠퇴 속도 한때 세계 최대 기업이었고 인류역사상 첫 1조달러 기업이 될것이라는 가즈프롬은 빠른속도로 추락하였다. 2025년, 완벽하게 무너진 가즈프롬 아까 2008년 그래프를 기억하는가? 2008년으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 과거 가즈프롬에 상대도 되지못했던 미국과 유럽의 거대 기술기업들을 보라. 가즈프롬의 1/300도 채 되지않았던 엔비디아는 현재 가즈프롬의 100배가 넘을정도가 됐다. 이 과정이 20년도 채 걸리지않았다. 미국과 유럽의 초거대 기업들이 독주하는 현 시점을 러시아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게다가 가즈프롬은 작년인 2024년 190억달러라는 사상 최악의 손실을 봤다. 회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있는 상황이다. 현재 러시아 경제규모는 10년전보다도 작아졌을정도. 러시아를 대표하는 간판기업 가즈프롬은 몰락했고, 러시아 전체 GDP는 이제 영국의 수도 런던시나, 독일의 한 주들과 별반 차이가없을정도로 작아졌다.이제는 아예 중국이나 영국의 5대 기업들의 가치가 러시아 국가GDP랑 맞먹을정도다. 그만큼 서구 기업들이 너무 커진것.. -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스압)싱글벙글 실패한 소형차의 이야기
[시리즈] 싱글벙글 클래식카 이야기 · 스압) 싱글벙글 열정의 50년대 미국차들 · 초스압)싱글벙글 현존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 · 스압) 싱글벙글 열정의 50년대 미국차들 2편 · 스압)싱글벙글 낭만의 60년대 미국차들 https://youtu.be/NtIlG87_D28?si=GnDNW8_cAey1owmh The Stroke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The Stroke · Billy SquierAbsolute Hits℗ 2002 Capitol Records, LLCReleased on: 2005-03-29Producer: Mack SquierProd...youtu.be (보면서 들으면 좋은 노래) ● 크라이슬러 그룹(현 스텔란티스) 사옥 바야흐로 냉전이 무르익고 중동에서 전운이 감돌던 1971년, 미국의 자동차 빅3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 그룹에서는 점차 변화하는 트랜드에 맞춰 소형차를 북미 시장에 출시할 생각을 품게 된다. 이는 빅3 중 가장 체급이 작았던 크라이슬러 그룹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특히 공격적으로 진출하던 외국계 브랜드들의 확장이 큰 영향을 끼쳤다. 아 씹.. 상도덕도 없는 쪽바리들이랑 크라우츠 놈들이 자꾸 우리 파이를 뺏어가네.. 이대로면 우리만 뒤쳐지겠는데? 크라이슬러의 이와 같은 위기감은 단순한 피해망상이 아니었는데, 1960년대부터 미국 시장에 진출해 큰 히트를 치고 있던 토요타의 "코로나"와 50년대부터 이미 진출해온 폭스바겐의 "비틀"은 이미 야금야금 빅3의 파이를 조금씩 빼앗으면서 성장하고 있었기에 빅3 중 최약체 취급인 크라이슬러로서 위기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ㅋㅋㅋㅋㅋ 돈복사 존나 달달하노 ㅋㅋㅋ ㅇㅈ합니노 안되겠다. 우리도 소형차를 출시해 다른 회사들과 경쟁을 해야겠어. 결국 크라이슬러는 신형 소형차를 개발 및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물론 비단 크라이슬러만 이러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고, 소형차 개발의 필요성을 느낀 GM과 포드도 이 시기 "핀토"와 "베가"를 출시해 소형차 시장의 파이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 쉐보레 베가 ● 포드 핀토 음.. 다른 회사들은 다들 소형차 전용으로 신형 샷시를 만들었는데.. 우리는 북미에서 이런 차를 파는게 처음이니 원래 있던 걸 좀 다듬어서 내봐야겠구만. 당시 크라이슬러는 북미 시장에 소형차를 출시하는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포드나 GM과 같이 완전 새로운 차를 만들기보다는 시장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로 결정하고 자사 그룹 산하 기업에서 생산한 차를 가져오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여기서 낙점된 자동차는 크라이슬러 그룹 내의 영국 및 유럽 시장을 담당하던 "힐만"의 "어벤저"라는 차종이었는데, 1970년에 출시된 어벤저는 미국식 콜라병 디자인과 준수한 성능으로 유럽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에 고무된 크라이슬러 이사진들은 북미에 이 차를 가져와 현지화하여 판매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게 된다. 이 "어벤저"를 판매할 브랜드는 크라이슬러 산하의 저가형 차 전문 디비전인 "플리머스"라는 브랜드였다. 당시 크라이슬러 그룹에서는 일본에서 차를 가져와 현지화해 판매할 브랜드로는 "닷지"를, 유럽에서 차를 가져와 현지화해 판매할 브랜드로 플리머스를 밀고 있었기에 어벤저의 미국 시장 판매를 맡게 된다 북미 시장으로 출시가 결정되며 차명도 어벤저에서 "크리켓 (Cricket, 귀뚜라미)"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폭스바겐의 비틀에서 착안한 것으로, 비틀과 같이 곤충에서 따온 차명으로 자신들도 반사이익을 누리겠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1971년, 크라이슬러 그룹의 큰 기대를 안고 드디어 "플리머스 크리켓"은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 출시되기에 이른다. 유럽에서 판매되던 힐만 어벤저와 북미 현지화된 플리머스 크리켓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았는데, 우선 우핸들에서 좌핸들로 위치 변경, 좌석에 머리받침 추가, 엔진 출력 저하, 그리고 어벤저에서는 고급 사양에만 달려있던 4점식 헤드라이트가 크리켓에서는 기본으로 채택되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던 힐만 어벤저였기에 북미 시장에서도 무리없이 큰 인기를 끌 것이라 생각한 크라이슬러 그룹은 행복회로를 마구 태우게 된다... ???? 시발 이게 뭐노?? 크라이슬러의 기대와는 달리 크리켓은 시장에서 개 쪽박을 친 것이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플리머스 크리켓을 홍보할 때, 경쟁사의 소형차들은 2도어지만, 자사의 크리켓은 4도어라는 점을 어필하며 든든한 패밀리카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 북미에서 소형차는 "돈없는 거지들이나 타는 차, 여편네들끼리 장보러 갈때나 타는 차" 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이런 마케팅이 씨알도 안먹혔다는게 큰 문제였다. 또 여러 사양을 출시해 소비자들의 입맛대로 고를 수 있도록 했던 다른 회사들과 달리, 크라이슬러 그룹은 크리켓이 타사의 소형차들과 다르게 문짝이 4개니 다른 사양을 더 낼 필요가 없다고 안일해하며 4도어 세단 이외의 다른 사양을 출시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내장재가 쩍쩍 갈라지고, 차의 녹을 방지하는 방청 기능도 제대로 탑재되지 않는 등 심각한 품질 문제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당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개좆된 것을 감지한 크라이슬러 그룹은 크리켓의 품질 개선을 시도하고, 이듬해인 1972년에는 왜건 사양을 추가해 어떻게든 반등을 노리려 했으나 결국 배기가스 강력 규제법인 "머스키 법"과 지속적인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인해 플리머스 크리켓은 1973년을 끝으로 사라지게 된다 더욱이 비참한 점은 크라이슬러 그룹에서 1972년에 크리켓을 더 이상 유럽에서 수입하지 않기로 하면서 1973년에 판매된 크리켓들은 전부 눈물의 할인까지 해가면서 팔아 겨우겨우 연초에 해결한 악성 재고들이었다. 문제는 재고처리를 끝낸 1973년 말, 욤 키푸르 전쟁으로 오일쇼크가 일어나 석유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태가 벌어지자 포드의 핀토나, 쉐보레의 베가 같은 경쟁사의 소형차들은 경제적인 패밀리카로 둔갑해 엄청난 수혜를 입었으나, 이 시기 크리켓은 이미 진작에 연초에 단종되어 버려 수혜도 입지 못했다. 결국 플리머스 크리켓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대의 억까와 품질 문제로 북미 시장에서 골머리를 앓다가 사라진 비운의 자동차가 되었다. 이 때문에 유럽 시장의 자동차를 북미에 현지화 하는것은 옳지 않다고 판명이 나면서, 크라이슬러 그룹은 닷지 뿐만 아니라 플리머스도 일본차를 미국화하는 브랜드로 재편성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1980년대 크라이슬러 CEO에 취임한 "리 아이아코카" 체제에서 더욱 극심해지게 되었다. 여담으로 북미말고 다른 대륙에 출시된 힐만 어벤저들은 형제인 크리켓과 달리 승승장구 했는데, 이 중에는 1990년까지 가장 오랫동안 생산된 폭스바겐 아르헨티나 지사의 "폭스바겐 1500"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youtu.be/YtvYbCqTdkg?si=aiilXpyLbEk2Abae 마지막으로 플리머스 크리켓의 광고를 보면서 끝을 내도록 하겠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다들 오늘도 좋은 하루 되길 바란다 3줄 요약 1. 크라이슬러가 위기감에 유럽차 가져와서 택만 갈아 끼움 2. 크라이슬러의 안일한 대응과 시대적 억까로 폭망함 3. 다른 회사 소형차들은 존버하면서 오일쇼크 수혜라도 입었는데 얘는 그것도 못함
작성자 : 림송철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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