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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가 죄책감 느끼는 소설(1)

ㅇㅇ(121.157) 2024.03.11 22:39:05
조회 250 추천 7 댓글 1

또 손이 아려온다. 몇 번이고 해봤지만 동상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강가의 바람과 손의 물기가 정신력을 끌어내리는 것에 한 몫한다. 원래 이 일을 하던 괴물도 처음엔 똑같이 겪던 고통이었을 것이다.

떨리다
 못해 경련하는 손을 마지막 얼음 아래에 얕게 박았다. 고통 속에 터득해낸 나름의 요령이었다. 이제 ‘끼익’ 하는 소리를 내는 무릎을 굽히고, 팔에 마지막 힘을 끌어모은다. 허리를 비틀고, 이제 다시 힘이 빠진 ‘끼익’ 소리를 내는 무릎을 편다. 손은 차가움 끝에 신경적인 뜨거움만이 남았다. 부족한 힘에 얼음은 공중에서 여러 번 돌다 겨우 물살에 안착해 흘러나갔다.

-

우유가 꽤 식은 것 같았다. 살금살금 손을 뻗어 컵과 닿게 해본다. 미지근하기까지는 조금 거리가 멀지만 입천장이 조금 데는 정도면 이 따뜻함을 죽 즐기기 위해서라면 작은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손의 모든 마디를 컵에 붙였다. 손에 쥐가 나는 느낌, 혹한에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매일의 증표 같은 느낌이다. 상점은 꽤 요긴한 휴식처 중 하나였다. 나름의 포근함 덕에 아무 생각 않고 
멍 때리며 시간 보낼 수 있었다. 그들이 보았으면 역겨워했을 광경일 듯했다. 이것까지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수도만큼 괴물이 많아 물자가 충분했고, 많은 물건들이 그들의 따뜻함을 내게 전해준다. 그게 제일의 문제였다.

가만히 쌓인 먼지만 봐도 구역질이 났다. 그들의 단말마, 스르륵하는 소리, 강바람이 우연찮게 그것을 모사할 때면 손이 끈적해지고는 곧 놀라 주저앉았다. 더 이상 
숲속을 걷는 것이 꺼려지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얼음을 나를 때에는 귀에 눈을 처박거나 바람이 불 때마다 눈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눈을 질끈 감았다. 코어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눈이 밟히고 응축
되는 소리, 처음에는 새가 속삭이듯이 사각거리다가 끝에는 뭉툭한 느낌의 소리가 난다. 신발 안쪽의 가죽이 젖어 뜯어질 때도 있었지만 금방 바늘과 실로 때웠다. 거처로 삼은 이상 당연한 적응이었다. 연구소에서 알게 된 내용 때문에 스노우딘에 남게 되었다. 지열 발전기는 별도로 온도를 유지시켜주지 않으면 과열되어 이상이 생긴다. 코어에 이상이 생기면 괴물들의 기술력이 퇴보한다. 대피한 괴물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그게 남게 된 이유다.

-

해골에게 주었던 마지막처럼, 손은 자연스레 움직였다.
 자신이 아끼던 정원 위에 쓰러졌다. 유일하게 바깥과 닿을 수 있었던 스테인드글라스가 그의 패배 조명했다. 왕은 분명 그때 죽었다. 별다른 조치와 상관 없이 곧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 가시가 되었다.


“내 아이야, 왜 짐승이 되었니?”

날 알아봤다.


경멸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저주하는 말도 
아니었다. 동정이었고, 물음이었다. 형제와 함께면 항상 짓던 그 바보 같고 친절하던 눈빛, 작게 올라간 입꼬리 위에 항상 있던 순진한 눈빛. 독초를 먹어도 한결같던 그 눈빛. 자신이 겪어온 공허를 빗대어 바라보는 사람처럼. 그가 과거의 학살자였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끔의 담소를 할 때면 괴로워했고, 밝은 세상을 열어야 할 아이에게 밝힐 수 없는 목 안의 가시 같은 과거였다. 계속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이면이었다. 허무해했고 남은 생의 몇 할은 공허 속에서 죽어있었다. 그의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 부분 중 하나였다.

얼마나
 지나왔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 자신의 부하, 친구, 제자, 가족을 죽인 이를 안타까워하며 죽었다.

떨쳐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 이후로는 멍하니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영혼이 깨질 때까지, 스테인드글라스가 더 이상 빛을 가져오지 않을 때까지. 그의 먼지 위에 다시 빛을 비출 때까지. 손에 힘이 빠져 눈에 초점이 다시 그 먼지에 맞춰졌을 때. 구토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머리가 미끈한 것들로 가득 차 바깥을 향해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힘 빠진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 토해낼 곳을 찾아야 한다. 힘 빠진 것에도 정도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다리는 곧 제동이 걸렸고, 결국 넘어져 바닥에, 얼굴에, 흉부에 토사물을 내놓고 말았다. 


뒤에서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조용하고 어두운 숲에 몸을 다 내놓은 것 같았다. 귀에 얇은 바람이 지나는 느낌. 그것을 느낀 이후엔 반사적으로 몸을 세우고 타는 목으로 뛰었다. 쫓기는 공포에 대해 무언가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복도의 기둥을 차례차례 지날 때에는 눈물이 턱 아래로, 다시 가슴골 아래로, 또 아랫배까지 흐르고 있었다. 집을 떠날 때부터는 손 둘 곳을 찾지 못했다. 버거 팬츠가 몇 마디 할 때는 듣지 못했다.

-

메아리 꽃이 말할 때에는 눈을 질끈 감고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

눈보라 속에 모든 
소리, 생각이 잠겼을 즈음엔 천천히 눈이 감겼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눈 속에 파묻혀 떨고 있었다. 토사물을 닦아내도, 입을 아무리 씻어내도. 머리의 그 이상한 느낌은 계속 자리 잡혀있었다. 아직도 아스고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

내 생각은 
그때에서 멈춰있다. 단편적인 것들이 조금 늘었을 뿐이다. 나는 인간이다. 줄곧 괴물들이 바라오던 인간. 그들을 죽인 학살자. 변하지 않는 사실들이다.

단지
 또 그들을 죽음으로 몰았을 때 생길 의문스러운 죄악감을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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