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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ồ Chí Minh - Mộc Bài 육로 출입국 후기
안녕 bbongR 이다. 올해 초에 써둔 묵은 후기를 또 꺼내본다 오늘은 (베트남) 호치민 - 목바이 (캄보디아) 육로 입국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베트남 특히 호지민에서 장기로 사는 형들에게 다른 목적으로 악용 되는 루트이기도 하다. 싱글비자인 경우 재 입국시 새비자를 주는 것을 이용해 이 루트로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출국 했다가 바로 다시 베트남으로 재 입국하여 날짜 꽉 찬 베트남비자를 새것으로 갱신하는걸로 알고 있다. 비자런이라고 하지. 뭐 해보라고 소개하는건 아니다. 이 과정을 응용해 아예 육로로 태국까지도 갈 수 있으니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더 좋을거 같다. 그럼 시작. 본인 베트남에서도 개깡촌 어촌마을에 살고 있다. 이곳에 공항이 없는건 아니지만 여기서 슬리핑 버스타고 호치민 가면 새벽 4시 쯤 도착. ( 9시간 걸림 ) 비자런 스피드런 그것도 오픈런 각이 보이길래 과감히 버스를 타보았다. 슬리핑 버스는 언제나 느끼지만 1. 외투 필수. 탈때마다 추웠다. 보통의 만원버스면 모르겠는데 최대인원 대비 승객이 적어서 그런가 에어컨이 오버 파워 느낌이다 물론 이불은 준다. 2. 노이즈캔슬링 헤드셋, 이어폰 필수. 미친놈들이 분명 슬리핑 버슨데 스피커폰 통화, 게임, 유튜브 시청 안하는게 없다. 우리 집 쪽은 거의 없긴 한데 월요일 아침에도 술쳐먹고 집에서 가라오께 키는 애들이니 서로 눈치 안보고 침범할 수 있는 경계가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존나라고 읽길 바란다. 3. 보조배터리 필수 e북을 보든 영화를 보든 뭔가를 계속 봐도 이건 뭐 도착할 생각을 안하니 밧데리가 답이 없다. 챙기자. 다만 가방 두는 곳이 협소하니 스마트하게 챙기도록 하자. 이 외에도 앞쪽 열이 좀 더 나으며 2층도 생각만큼 불편하지 않다. 정도가 있겠다. 도착 ! bến xe an sương bến xe 가 버스 터미널이고 an sương 이 이름이다. 자다가 못 듣고 지나칠 뻔 .. 1군 에서는 한 30 40 분 걸리려나..? Huệ nghĩa 가 회사 이름이다. 눈에 익혀두자. 마지막에 돌아올때 써먹는다. 아직 영업 안하고 저때가 새벽 03:50 쯤 된듯. 판매원 출근. 별거 없다 mộc bài 둘 다 탁탁 끊어서 말하면 된다. 목\ 바이\ 첫차이고 새벽 5시 출발 십만동이다. 뭐 만족스러운 가격이지만 25만동 주고 9시간을 기가 맥히게 누워 온거 생각하면 비싼건가 싶기도 하다. 동그라미 표시한게 버스 번호다. 방송 듣고 그제서야 헐레벌떡 찾아 나서면 어리버리탈 수 도 있으니 남는 시간을 이용해 미리 버스 정보를 챙기자. ㅇㅋ. 이거다. 리무진이라고 불리고 좀 높고 큰 스타렉스 느낌이다. 현대의 솔라티나 포드의 트랜짓이 주를 이룬다. 그럼 버스도 봐두었고 시간도 5 시 출발인걸 알고 있으니 04 50 쯤에 나오는 방송이 뭐라 해대는지 알아 듣지는 못 해도 버스 타란 소리인거는 눈치채겠지? 그때 타면 된다. 타면서 기사한테 목\ 바이\ 하고 컨펌을 받도록 하자. mộc bài , Ô kê ? Ô kê Ô kê. 이건 꼭 필요하다. 그 이유는 이거 때문에. 환승 지점 도착이다. 므어어? 시부랄? 환승..? 그 조까틍걸 왜 이제 말해 안해. 라고 할 수 있지만 어려워 말자. 50 분 동안 한두명 내릴까 말까 하다가 갑자기 우르르 내리는 곳이 환승지점이니 쉽다. 불안하면 구글맵에 성조 없이 hue nghia go dau 라고 치면 환승지점이 나오니 처음부터 구글 네비로 확인하며 갈수도 있다. 그리고 기사에게 너가 목바이 간다고 얘기해뒀으니 챙겨줄꺼다. 못 내리면 뭐 어떠냐 그냥 쭉 가면 되지. 그냥 여행했다 쳐. 낭만 뒤지쟈나 그리고 내리면 Huệ nghĩa 직원티 입은 사람 찾아서 mộc bài 간다고 알려라. 직원이 까불지 말고 일단 앉아 있으라고 눈빛으로 얘기할거다. 좆나 캄보디아인같이 생긴 애 있으면 붙어 있는것도 답. 캄보디아인이 좀 더 까매서 해 떠야 찾기 쉽다. 아까 그 호찌민 안승 터미널에서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50 분쯤 온거다. 그러면 빨간 동그라미가 지금 대기하고 있는 환승 지점이겠지? 기다리다 봉고로 갈아 타고 파란 화살표 방향으로 마저 가게 된다. 참고로 지도상 파란 화살표의 bavet 이 목적지인거. 가긴 가니까 걱정 말자. 환승이다. 돈 내는거 아니다. 11 시 방향 mộc bài 보이는가? 도착이다. 얼리버드라 삐끼가 별로 없었는데 5시방향 벳남친구가 삐끼다. 비자런 도와 주겠다고 혹은 저 앞까지 (지도상 센타 건물) 태워주겠다고 저러고 있는거다. 눈도 마주치지 말자. 전혀 필요 없는 친구다. 무시하고 그냥 쭉 걸어 들어가자. 저 검색대는 참고로 꺼져 있다. 그냥 세워 둔거고 통과하면 됨. 문제는 저 옆에 저렇게 딱 서서 왠 씨꺼먼 새끼가 통과하는 외국인한테만 인상 쓰면서 뭐라뭐라 하며 여권달라 한다. 검색대 옆에 서있으니까 이새끼 뭐지 꽁안인가 하고 속기 쉽겠더라. 절대 아니다. 꽁안들은 유니폼 입고 있으니 속지말자. 재밌는건 저놈은 니 여권을 받아 도망가는게 아니고 돈 받고 재주껏 패스트트랙 시켜주는 것. 사실상 저기서 베트남 출국 미션은 클리어인 것이다. 난 그저 저런 편의? 를 위해 돈도 잘 못 쓰는 편이고 시간도 남아 돌았던지라 " 정식이지만 정식이 아닌 코스 " 를 택했다. 대부분의 외국인은 돈 내고 빨리 진행하기 때문에 저렇게 표현. 일반은 제일 왼쪽줄이다. 저 줄은 캄보디아인들과 나같이 돈 주고 후딱 진행하기 싫은 알뜰한 외국인들이 주를 이룬다. 줄 서보니 유독 줄이 길고 앞에서는 꽁안이 연신 스탬프를 찍는데도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저 시발것들 때문. 파란 줄 왕관 쓴 검정 후디는 아까의 삐끼들과 한패다. 저래 서 가지고 지네 팀원이나 빨간줄 그은 아주머니같은 시발 얌채들을 기다린다. 여태껏 내가 지나온 수많은 삐끼 새키들이 쟤랑 엮여 있던것. 저새키들이 주는 여권은 얼굴 대조도 하지 않고 도장 쾅쾅쾅 찍고 통과시키기 때문에 저렇게 서서 딴놈들이 수거해온 여권을 받아 대리 스탬프 처리 하는 것. 10개씩 뭉태기로 처리 하더라. 그러니 줄이 줄지 않는다. 내 앞으로 계속 10 명씩 보이지 않는 인간이 생기는 것. 참고로 저 아줌마는 다른 삐끼한테 이미 여권을 주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고 저 시발 여편네가 서있는 라인은 기다리는 줄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저러고 있다가 삐끼가 대신 처리해준 스탬프 쾅쾅 찍힌 여권 스댕봉 넘어로 받고 지년은 도장 받았다고 갑자기 줄 다 헤집고 들어 와서 히히힛 오줌 발사 하면서 밖으로 나간다. 아 시발 또 짜증나네 글 쓰는듸ㅣ도 담에는 그냥 나도 돈 주고 저 얌채들 중 하나가 되는게 좋지 않을까 하고 한 몇초 생각하기도 했다. 암튼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베트남에서 출국 완료. 몇십분은 서있었나 보다. 이 끝과 저 끝의 사이가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국경이겠지. ㅂㅂㅇ 베트남 ㅎㅇ 캄보디아 그냥 쭉 걷다보면 도착하는 이 곳. 캄보디아 비자 사는 곳이다. 못 찾을까봐 걱정하지 마라. 한국인은 비자를 사야 캄보디아 입국 할 수 있기 때문에 저거 못 찾고 딴대로 들어 가도 거기서 넌 빠꾸다. 아마 지문등록 하는 곳에서 빠꾸일듯. 중요한만큼 뻔한 곳에 있으니 대충 찾았으면 창문에 다가 대고 말하자. 이미그레이션 카드 두장 달라고. 잊지말자 두장이다. 꼭은 아니지만 이 다음 입국소에서 요구할 때가 있고 없으면 트집 잡힐 구실이다. 트집 = 돈 카드 작성할때 중요한 건 캄보디아 내 숙박할 주소를 적는 란이 있고 반드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팁이라면 아고다에서 무료취소되는 숙소를 하루나 이틀 뒤로 예약하자. 당일 취소되는 곳이 있으면 뭐 최고긴 하지만 없지 않나 싶다. 난 적어 내는 호텔 주소가 따로 있어서 잘 모르겠다. 아고다 검색시 목바이는 개같이 비싼 특급 카지노호텔만 뜨는데 걱정말자. 프놈펜으로 해도 된다. 암튼 예약 정보 받아서 해당 호텔 주소 적고 통과하고 예약 취소하면 된다. 그냥 아무대나 주소 따서 적어도 되긴 할건데 트집 잡으려고 ( 삥 뜯을라고 ) 아고다 내용 보여달라할 경우 낭패니까 굳이 말해 본다. 뭐.. 예약이 꼭 꼭 꼭 필요하다고 까지는 못 하겠음. 암튼 카드 재출 하면서 내가 구매할 비자를 말해줬다. 복수 2년 비자. 그런데 비자값은 분명 60 불인데 별안간 80 불 얘기하며 나한테 여권을 휙 던지는게 아닌가? 80 불 주기전까지는 일 안한다고 삥 뜯으려는 것. 하지만 난 니 새끼가 내 돈을 뺏을 줄 알고 미리 지갑에 딱 65불만 준비했지. 케케케 삥도 뜯겨본 찐따가 똘똘하게 뜯기는거다. 눈앞에서 손수 쎈타를 까며 65 불 밖에 없는걸 어필 했더니 캄보 꽁안 : 너 바로 돌아 나오는게 아니야? ( 비자런을 의미 ) 나 : ㅇㅇ 아니야. 나 캄보디아 여행임. 캄보 꽁안 : 하아.. 그럼 그냥 그거 다 줘 물론 캄보여행이라면서 2년짜리 복수 비자 사는거랑 베트남 입국 도장으로 꽉 채워진 내 여권이 이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뭐 5불 뜯기고 처리 되긴 했다. 이새키들이 삥 뜯는 명목은 너는 이미 비자런이라는 나라에서 하지말라는 짓을 하기 때문에 눈 감아 주는 비용으로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니가 다른 목적이라면 한판 붙어봐도 좋다는 의미. 내가 싸우는거 아닌데 알바노 ㅋ 암튼 소싯적에 돈 좀 뺏겨 본 경험을 이렇게 써먹으니 뿌듯했다. 그땐 신발 깔창밑이랑 양말속이었지. 병신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 ㅠ...ㅠ.... 이후로 코로나 때문에 체온 측정하는 곳이 있고 거기서도 돈을 요구하지만 그냥 못 알아 듣는척 하고 쌩유 하고 가면 된다. 주지마라. 간호사 아지매가 한국말로 십만동 십만동 이러는데 이시발 그래도 여기가 국경인데 이정도까지의 부패는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캄보디아 도착 ! 벳남 출국 후 국경길 걷는걸 오전 07 10 쯤 시작 했고 캄보디아 주차장을 오전 07 50 에 도착 했으니 비자런을 하게 된다면 목바이가 꿀은 꿀이다. 당일치기 비자런은 물론, 욕심내면 오전에도 끝내겠더라. ( 난 다만 사정이 있어 캄보에서 하루 자야 했고 실행하진 못 했다. ) 그럼 이제 벳남 재입국만 남았다. 벳남 재입국은 저기서 그냥 바로 빽해서 온거 역순하면 된다. 심지어 더 빠르다. 역순 시에 바로 첫번째 순서인 캄보디아 출국에서만 또 돈을 요구하는데 하지만 여기는 십만동 얘기 하는게 대부분이다. 암튼 난 이거도 오만동 오만동 이만동 이런식으로 넣어두고 오만동 줬다. 없다고 빌면 보내주기도 한다니까 빌어보든가. 난 돈몇푼에 내 자존심을 팔수가 없어, 십만동 밖에 없는척 하면서 오만동 줬다. 자존심 지킨다. 그렇게 소정의 수수료를 캄보디아 꽁안 새키한테 또 또 또 지급하면 캄보디아 출국 완료인거다. 그럼 이번엔 아까 그 국경길을 반대로 걷겠지? 베트남 입국 전 !!! 저기로 벳남 입국 완료 하면 된다. 나는 E비자 프린트 출력해서 가지고 있었다. 무비자 입국 하려는 애들한테는 한국 리턴 티켓 보자고도 한다니까 알아서 준비 잘 하자. 뭔소리냐면 저기서 니가 베트남에서 또 다른 삼국으로 갈 계획 ( 티켓 ) 이 없다면 베트남에 눌러 앉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입국을 불허 할 수도 있다는 것. 무비자 국가라고 마냥 오키오키 컴인컴인 하는건 아니다. 그러니 당일 취소 수수료가 없는 대한항공으로 예약하고 입국시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하고 바로 취.. 암튼 준비만 잘 되어 있으면 벳남 쪽에선 문제 될게 없을거다. 적어도 난 그랬음. 어쩌면 하루 자고 들어간거라 이상 없었을지도. 그냥 당일치기로 입출국 박다가 문제 생긴 갤럼 있으면 알려주길 바란다. 다시 벳남 도착 !! 이렇게 베트남 다시 입국하면 어찌 돌아가느냐. 그건 바로 아까 기억하라 했던 회사 로고가 보이지? 목바이 도착 시 니가 내렸던 자리로 가라. 갈때는 반대쪽이니까 센스있게 반대편 차선가서 찾고 그러지 마라. 이쪽은 그럴 생각이 없다. 니가 내린 곳 근처에 저렇게 현지인이나 알아볼 법하게 판대기 하나 달랑 세워 뒀다. 저기서 기다리다 보면 이 썩은 봉고가 널 데리러 올거다. 혹은 저렇게 이미 기다리고 있지. 목바이 호치민 전용 노선이라 수시 운행중인 것. 저 차에서는 돈 내는거 아니니 그냥 타면 어제 환승한 지점에 내려 준다. 거기 매표소에서 호치민 가는 버스표를 사면 되는 것. 캄보디아가 얼마나 싫었으면 아침 7시전에 이미 빠져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십삼만동. 리무진 버스 내부 사진이다. 귀환 완료. 호치민 ㅡ 목바이 100,000 동 목바이 ㅡ 호치민 130,000 동 이게 이동에 쓴 돈이고 그외 비자비, 삥 뜯길 돈 대충 이래 예상하면 총액 나오지 싶다. 나머지 사진은 캄보디아 하루 머무르며 찍은 사진으로 채워본다. 이 나라는 부패를 결심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카지노와 윤락업소만 있을 수가 있을까? 난 나와 맞는거라곤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던지라 일 보고 저거 한 바퀴 돌고 계속 숙소에 있었다. 먹을것도 마땅치가 않아 이거 먹었는데 면은 역시 짱개라 그런가 맛있더라? 후레이크 스프로 존나 큰 대추를 썰어 넣었음 . 이 칭따오가 참 맛있더라 국내 편의점 칭따오랑 다르게 산미가 좀 느껴지던데 참 맛있게 마셨다. 개뿔 없고 이게 뭐하는 도신가 싶어도 아침부터 저래 모여서 구호하고 할거 다 하더라. 카지노 옆 골목의 수준은 진짜 처참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듯 했다. 전체적으로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도시의 느낌이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bbongR고정닉
80,90년대 시위진압부대 백골단
https://youtu.be/KNjL3v13eSUhttps://youtu.be/_KgX-hb1amohttps://youtu.be/ooHwHu4CpXE요즘 제대한 전.의경들이진사복중대. 특수기동대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요.. 제대로 말씀드릴께요..ㅋㅋ 백골단은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집권시절.. 직업 경찰관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복부대였습니다.당시 특수기동대라는 명칭과. 형사기동대. 사복기동대라는 명칭으로 만들어졌었죠.또한 형기대는 무도1단 이상으로 의무근무3년. 사복기동대는 무도2단이상과 전의경출신자들(데모진압경험이 있으므로..)중심으로 2년조건부로 각각 채용을 했습니다.당시 말이 무도1단. 2단이지.. 대부분의 직원들은 당시 유도대.(현 용인대)출신들과 특전사 복무자(당시 제대및 장기지원경력자들 중심으로 채용..또한 전두환정권때는 공수출신들을 정말많이 채용했었구 그당시 출신들이 지금 경찰 형사계에 많이 포진되어 있으며 유도대출신들과 경합중이죠. )을 했고, 군복무시 데모진압경험이 많은 전의경출신들도 많은 수를 이뤘습니다. 이들은 하얀색 오토바이 헬멧과. 청색카바. 청바지(화염병 공격시 화염과 유리조각등으로부터 보호할수 있었다더군요)로 무장되어 있었고.. 이들은 일정한 대형등을 유지하는것이 아니라.. 데모진압시 어떠한 건물등을 목표로 (대부분100m 거리간격을 두고 뛰어나가 시위대를 붙잡고 밀어붙치는 식으로)무지막지한 진압을 시도하고 또한 붙잡혔을을시 시위대를 반 거의 죽음으로 만들정도로 공포의 부대였습니다.무조건 진격을 하니.. 데모꾼들이 아무리 강력하더라구...일단 튀기 마련이였죠..어떤분이 대답하시길 뭐 100%구속이니 뭐니 하시던데...당시 백골단이 추격을 시도하면 시위대는 도망가다가 다시 뭉쳐 공격대형을 이루기 마련인데..아님 경찰쪽을 쳐다보기 마련인데..그런점을 노려 그들이(시위대)가 지켜보는 시위대들중 가운데 가장 앞장서서 강한척 하며 난동을 부리고 선동을 하던 데모주동자들을 뛰어가 붙잡고 무자비하게 폭력적인 진압을 시도하니.. 다들 주춤거리게 되고 그러한 까닭에 더이상의 진압 중대에 더이상 다가서지 못하였다더군요. -그러한 점을 노린것이죠.-그리고 실컷 두들겨 패준후 그대로 풀어준다고 합니다. 반쯤 정신나간 사람이 시위대 길에 널부려져 있는데 시위대들은 바로 공포감이 몰입되어 패닉상태로 빠지게 되죠. 또한 진압후 다친사람 데리고 와봤자 시끄럽기만 하니까.. 수배걸리지 않는 사람만 빼곤 그냥 버스에 실고 데리고 가다가 내려주기도 하구 그랬다구 하더군요,.. 그후...93년도에 형사기동대 마지막기수가 만들어 지구..나서 정식 백골단은 97년도 연대사태까지 유지하고 없어졌습니다. 여기서.. 집고넘어가야할것은..일부 전.의경들이 백골단이였다고 말하는것에 대해서인데요.. 당시 진압효과가 뛰어나자..시위대들을 효과적으로 진압할 목적으로일부 전.의경 진압부대원들을 위와 같이 사복부대로 옷을 갈아입히구 진압작전에 내몰았습니다.시위대들은 당시 사복부대만 보면 다들 도망갈때라 그점을 노린것이였죠.. 그러나..직업경찰들과는 달리.. 명령에 복종하는 군대의 특성상 자율성이 있는 진압이 이루어 지지 않았구..(직업경찰관들은 분대별로 작전을 참 많이했다더군요. 작전명령이 좋지 않으면 따르지도 않았구 부당한 지휘를 남용하면 지휘차량을 찿아가 마구 때려부셔 지휘관들이 막 도망두 가구 그랬다네요.. 그런저런 이유로 직업 경찰관 중대는 독자적인 작전이 주로 이뤄졌죠) 이러한 과정에서 명지대 학생(강경대 였던가? 갑자기 이름이 정확히 생각이 안나네요)이 5월달이던가.. 암튼 당시 신입생이였는데.. 시위를 하다가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백골부대처럼 사복을 입구 진압하던 전경부대원들에게사망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김영삼 정권때는김영삼 대통령이 경찰관 사복중대를(백골단)을 무지 싫어했다더군요. 전두환. 노태우정권과 싸울때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는데 당시 그 가택연금 경비를 한 중대도 백골단이였고가택연금생활당시 백골단원들한테 많은 제약등을 받자.. 자신이 정권을 잡자마나...김영삼 정권 참모진들은 더이상의 사복중대를 뽑지 않았다더군요. 그래서 93년도 형기대가 마지막기수죠.현재 그들은 대부분 일선서 형사계에 많이 포진되어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암튼. 자신이 정치를 하면 잘할줄 알았는데..당시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바뀌면서 데모가 줄지 않자 (전대협은 군사정권시설에서의 민주화를주장했구.. 한총련은 반미.북 주체사상등으로 약간의 성격이 틀려지기 시작했죠) 당황한 나머지..전. 의경중대로 데모진압을 하려 했으나 여의치 못하자.. 일선서에 있던 일부 젊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순번을 정해 강제적으로 차출하는 방식으로차출하여 1년을 조건을 걸구 진압을 시켰는데 그때는 일선서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다가..강제 차출당해 휴일도 없이 또다시 진압을 시키구 군생활같은 단체생활을 하는터라 그들의 반발이 심했구..그런저런이유로 인해 초창기 사복중대의 위엄을 찿아볼수가 없었죠.그리고일선서에서 차출되었던 경찰관(계급은 순경)이 93년도 8.15범민족 대회때 판문점으로 가려던 시위대와 격전을 벌이다가 골목길에서 공격을 당해 쇠파이프로 머리를 수회 맞고 사망한 사건도 있었구요. 그후한총련의 96년도 연대대 사태이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93년도 형기대 기수가 활약을 끝으로 대부분 3년조건부 근무를 마치고 일선서로 나가버리자.. 다급해진 김영삼정권에서 옛 경찰관 진압중대인 백골단을 회상하고,1997년도에 특수진압요원이라는 명칭하에 직원중대 5개 중대를 창설했죠.자신들의 정권 말기였기에 강력한 카드가 필요했구.. 이들을 중심으로 당시 대대적인 포상을 걸어97년도를 중심으로 한총련의 강력한 지도부가 검거되어 와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폴리스 라인이니.. 무최루탄원칙이니 뭐니 하면서 2년 조건부로 뽑던 백골단의 후예들인 2기생까지 뽑구나서.. 일선서 순경들을 대상으로 순번을 정해 의무적으로 근무를 조건으로 3개중대를 운영중이고 2007년도에는예전처럼 무도시험이 없어진 상태에서 간단한 체력시험만 거치고 진압중대를 현재 각 시도별로 경찰관을 채용하여 만들어 중앙경찰학교에서 2년 조건부로 현재 교육중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난후 자신이 근무한 부대의 특성과 운용에 대해 전문가가 되죠..그와 마찮가지로 군제대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초창기 직업 경찰관의 중대는 정말 막강했구.. 당시 직업경찰관으로 채용되었던 전.의경출신들이 각 타군출신들에게 시위진압요령. 최루탄사용요령등을 가르쳐주며 이들의 시위진압은 무패행진을 계속해 나갔구.. 이들을 지휘하던 지휘부들 사이에서 일당백이라는 말이 나왔다구 합니다. 경찰관 중대 사복 1개중대만 출동하면 광화문. 종로. 신촌일대는 시위대의 공포등으로 금방 진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예로민주화를 요구하며 종로. 신촌 및 서울 시청방면에서 광화문까지 밀려들어온 수만의 시위대로 인해(거기서 시위대가 좀더 밀고들어가면 서울지방청. 미대사관. 기무사. 정부종합청사. 청와대. 그냥 끝입니다.) 최대의 위기로 몰리자. 직원중대인 백골단이 최후의 보류로 포진해 있다가 광화문 16차선에 포진되어 있던 가스차등이 발포하며 백골단원들이 쇠파이프등들고 중무장한채 뛰어들자..수많은 전.의경중대를 깨뜨리고 몰려든 시위대가 순식간에 이들의 위세에 놀란 시위대가 도주하기 시작해 서울시청까지 밀려들어가 길거리엔 그들이 떨어뜨린 소지품과. 신발등이 널부려져 있었다구 합니다. 그 무지막지한 군사정권때 민주화를 요구하며 목숨을 걸고 시위를 했던 모든국민과...또한 경찰관으로서 그들과 대치를 해야만했던 백골단원들.......모두가 이제는 잊혀져간 역사이자..아픔입니다. 제가 흔히 백골단이라고 불리는 형사기동대 1기생입니다. 형사기동대에 약 3년 근무하고 일반 경찰서 형사계 등 약6년근무하다가 퇴직하고 현재 사업하는 40대 후반 사람인데 인터넷을 보다가 몇자 적고자 합니다.대학을 졸업하고 특수군부대를 85년에 전역해서 태권도장(당시 4단)이나 차릴려고 하다가 경찰서 계시판에 형사 기동대 모집를 보고 지원 했습니다. 당시는 경찰에 투신하여 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20대의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약 20대 1의 경쟁을 통해 합격 하였습니다. 경찰 학교에서 6개월간 경찰교육을 받고 126명의 동기들이 모여 1개 중대를 만들었습니다.제가 키가 170센티인데 동기들이 모두 장신들이라 제 키가 제일 적었습니다. 참고로 요즘 젊은들이 키가 크지만 80년 당시 170센티는 중키에 해당 했습니다. 형사기동대 근무는 하루 당직 다음날 휴무 다음에 일근으로 근무를 했는데 데모가 있는 날은 몇일간 집에 갈 수가 없었어요. 데모가 없는 평일에는 소매치기 전담반이 되어 중심가 사복 근무를 했습니다.소매치기도 데모도 무지막지하게 체포 햇습니다. 집해시위자에는 백골단이였지만 소매치기들에는 저승사자로 불렸습니다. 우리는 국가에 녹을 먹고 있는 공직자로서 국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의지와 신념이 있었습니다. 동기들이 공수부대, 해병대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젊은이들 군에 안 갈려고 하는데, 동기들은 특수 부대에 스스로 지원하여 나라을 위해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젊어서 부정 부패도 몰랐고, 월급타면 몇일 술을 먹고나면 없는 돈이였지만 우리는 젊음을 불 살랐습니다. 당시 저는 신혼 이였는데 울산에 데모 진압 한다고 파견나가 2달간 있었는데 그 때 제 아내가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서 통화를 쉽게 하지만 그때는 공중전화를 통해 밤 늦게 전화를 했습니다.보고 싶다는 아내의 목소리에 그리워 말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운동 했는 사람들이 강할 것 같지만 마음 약하고 정에 약합니다.우리가 운동을 해서 그런지 시민들이 날라다니다는 과장을 하고 하는데 ,우리도 뛰어다니고 때리고 했을 때 참으로 힘들고 회의를 느끼곤 했습니다.데모를 막다가 동기들 수명이 대학교 안에서 가스통에 순직한 동기들이 있었는데, 장례식때 저도 많이 울었어요, 그 동기중에 갓 결혼하여 아기가 있는 동기도 있었습니다.또 소매치기와 싸우다가 아킬레스껀이 잘리어 장애인인 된 동기도 있어요.세월이 지나서 저는 일반인으로 사업을 하지만 현재 동기들은 일선 경찰서 형사계에 많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세줄 요약1. 백골단은 전의경,해병대,특전사,공수부대, 유도대(현 용인대 유도학과) 출신들로 이루어진 직원 중대였다.2. 일부 전의경 중대들도 백골단처럼 백골단 복장으로 시위진압 동원되었지만 명령에 복종하는 군대의 특성상 지휘관의 지나친 개입 때문에 자율적인 진압작전이 불가능해 직원중대처럼 진압을 잘하진 못했다.3. 윗 글에 나오는 오류인데 김영삼씨때는 나라가 완전히 민주화되었었기 때문에 이때 폭동 일의킨 한총련 진압했던 백골단(형기대)는 말 그대로 민주주주의를 위해 싸운 것이고 한총련 전에 있던 전대협도 북한,중국 찬양하는 이적단체였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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