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프로그래밍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프로그래밍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앨런 헤이즐던 JB 공개저격ㄷㄷㄷ ㅇㅇ
- 검게 녹아내림에 성실하라 셋하나둘은둘셋
- 시부야 스카이 찍먹 밀런
- 서로 각자 재산 얼마인지 물어보는 연예인들.jpg ㅇㅇ
- '쌍둥이 아빠 사망 사건' 가해 운전자 가족 방송에 항의 ㅇㅇ
- 뉴욕 필름사진 연재 마지막 , 903SWC, 400TX 앙뤼까부리쑝
- 지역의사 10년 의무복무 법 통과…위반 시 면허정지 NiKe
- 미국에 '야당 탓'하며 계엄 정당화‥"깊은 실망과 배신감" 홍장원장
- 이이경 “유재석 언급 한 번도 안했다” 공식 입장 Fila
- 찢크 "주가 올라 국민연금 고갈도 늦춰"…국내 주식 비중 확대 검토 조선인의안락사
- 공자흐뭇. 장유유서 대폭발. 일본에서 좋아요 4만개 받은 한국영상ㄷ ㅇㅇ
- 한국이 매운걸로 명함 못내미는 나라들 ㅇㅇ
- 이재명이 말하는.. 탈모약이 중요한 이유 ..jpg 3dd
- 싱글벙글 호주 총격테러 사건으로 욕먹는 호주 경찰들 rtOS
- 한녀 곗돈 15억 들고 튀었다…가락시장 발칵 조선인의안락사
최고의 게임에 맞섰던 괴짜 개발자들 이야기
2004년 11월 16일, 혁신, 전설, 게임의 새 표준.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게임이었던 하프 라이프 2가 출시됐다. 하프 라이프 2는 전작의 명성을 가볍게 뛰어 넘는 완벽한 기술력과 완성도, 압도적인 게임플레이와 치밀한 마케팅을 통해 평단과 게이머들을 모두 매료시켰다. 밸브의 이 걸작 게임은 단순한 성공작이 아니라, 당대의 게임이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정점이었다.그리고 같은 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을 내딛은 게임 하나가 출시됐다. 하프 라이프 2와 같이 야심과 비전만큼은 거대했지만, 기술과 현실은 그 야심을 따라 주지 못 했으며, 그 결과는 참혹했다.그 게임의 이름은 '블러드라인'이었고, 그 중심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을 끝까지 밀어 붙이려 했던 개발사, 트로이카가 있었다.1990년대는 RPG 장르에 있어 격변의 시대였다.울티마, 폴아웃, 파이널 판타지, 시스템 쇼크, 파랜드 택틱스, 크로노 트리거, 발더스 게이트, 디아블로에 이르기까지 RPG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향으로 무질서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마치 르네상스와도 같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BGM ON그 중에서도 블리자드가 개발한 ‘디아블로’는 시대가 원하던 새로운 해답이었다. 디아블로를 하기 위해선 당시에 흔했던 TRPG 기반의 여타 CRPG나 일본의 JRPG와는 달리 복잡한 룰이나 캐릭터 시트를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플레이어는 어둡고 침침한 고딕풍의, 그로테스크한 던전 속에서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간단하게 즉각적인 보상이 돌아왔고,당시로선 혁신적인 방식이었던 실시간 전투는 끊김 없이 이어졌다.블리자드는 여기에 랜덤 루팅과 절차적 생성 던전이라는 작은 마법을 더했다.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조합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고, 디아블로는 단순한 히트작을 넘어 ‘영원히 플레이 될 게임’, 나아가서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디아블로의 출시 이후, RPG 시장에는 하나의 거대한 목소리가 생겨 났다. “모든 RPG는 디아블로 같아야 한다.” 평단도, 퍼블리셔도, 시장도, 팬들도 모두 디아블로와 같은 게임을 요구했다.RPG 산업에서의 디아블로는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문화적 현상에 가까워만 보였다.그러나, 그 폭풍의 중심에서, 대세와는 정 반대의 험난한 길을 택한 게임도 있었다.
“이것이 당신이 올해 내내 플레이 할, 유일한 ‘진짜 RPG’입니다… 마우스나 광클하면 그만인 가짜와는 다르죠.”1997년, '폴아웃'이 발매됐다.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CRPG는 처음부터 디아블로에 대한 반기로서 기획된 작품은 아니었지만,출시 직전의 도발적인 마케팅은 스스로를 디아블로의 안티태제처럼 규정했다.주사위 굴림, 턴제 전투, 방대한 텍스트와 선택지를 앞세운 이른바 정통 CRPG로의 회귀, 현실적인 풍자를 다룬 블랙 코미디와 냉소 섞인 스토리텔링.폴아웃의 출시는 90년대 후반의 RPG 업계와 그 이후의 장르적 문법 전반에, 디아블로에 뒤지지 않는 거대하고 강렬한 파동을 일으켰다.팀 케인, 레너드 보야스키, 제이슨 앤더슨. 이 모자람 없는(hairless) 세 사람은 우리가 오늘 다루게 될 이 세 사람은 트로이카의 창립자들로, 디아블로를 위시한 액션 RPG의 발전과 가속화 흐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폴아웃’이라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RPG를 만든 핵심 인물들이 되어 CRPG 계보의 전설적인 인물들로서 RPG 팬층에게 끊임없이 언급되게 된다.하지만, 그들이 만든 폴아웃이라는 RPG의 무엇이 그렇게나 대단한 것이었을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선 RPG의, 그것도 좋은 RPG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무엇이 좋은 RPG일까?RPG는 롤플레잉(Role-Playing) 게임이다.롤플레잉이란 관찰자에 머물던 플레이어를 참여자로, 살과 뼈 대신 코드와 폴리곤으로 이루어진 캐릭터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으로 여기게 만드는 과정이다.
좋은 RPG는 드워프와 드래곤이 살고, 핵폭발과 낙진이 실존하는 가공의 세계 속에서 ‘내가 이 곳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 낸다.
RPG의 본질은 수치나 시스템, 영수증 같은 데미지 숫자가 아니라 글쓰기의 힘에 있다.플레이어의 내면과 캐릭터의 내면을 일치시키는 서사, 세계가 나와 무관하게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는 인상,내가 내린 결정과 선택이 세계에 실제로 흔적을 남긴다는 몰입.이것들은 RPG 팬들을 매료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만, 반대로 이러한 설득력이 무너지는 순간,RPG라는 이름은 단지 허울만 좋은 껍데기가 된다. 그렇기에, RPG에서 자유도를 논하는 것은 본질에서 비켜 간다. 완벽한 자유도나 무한한 선택지는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RPG는 자유의 장르가 아니라, 제약의 장르이다.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 제약.이 제약 속에서야 비로소 플레이어는 단지 역할을 연기하는 단계를 넘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된다. RPG란 무엇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게임이 아니라, 어떤 제약을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게임이다.좋은 RPG를 만드는 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그들은 플레이어가 그러한 경험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능과 규칙, 서사와 공간이라는 도구들을 게임이라는 모래 상자 위에 세심하게 배치한다.이 과정에서 그들은 작가이자 감독이며, 프로그래머이자 디자이너이고, 건축가이자 심리학자이며, 하나의 세계를 구상하는 창조자가 된다.그들은 본질적으로 예술가이다. 그리고 폴아웃의 제작진은, 우연히도 예술가로서 작업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얻게 되었다.폴아웃의 제작 과정은 여러 시대적, 상황적 조건이 맞물려 이러한 정신에 정확히 부합했다. 오늘날 알려진 위상과는 달리, 폴아웃은 처음부터 기대를 받던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당시 개발사였던 인터플레이 내부에서의 폴아웃이란, 괴짜나 반항아와 같은 ‘문제투성이 직원’들을 한데 모아 놓은 그야말로 유배지같은 작은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회사 내부에서조차 이들과 게임의 성공을 진지하게 믿는 이는 없었고, 관심 역시 미미했다.하지만 바로 그 무관심 덕분에, 폴아웃 개발팀은 어떠한 지배구조나 품질 관리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그들은 마치 현대의 인디 게임 개발팀처럼 자신들이 원하던 RPG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시장의 어떤 RPG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만들어진 폴아웃은,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현대 CRPG의 전환점이자 전설적인 컬트 클래식이 되었다. 그리고 폴아웃 1편의 상업적·비평적 성공 이후, 폴아웃 개발팀의 위치는 급격히 달라졌다. 영업과 마케팅 부서가 개발팀에 따라 붙었고, 인터플레이의 임원진까지도 폴아웃에 이전보다 훨씬 깊숙이 개입하려 들었으며 개발팀의 창작적 자율성은 빠르게 줄어들었다.폴아웃의 후속작 개발은 더 이상 소규모 팀의 실험적인 시도가 아니라 곧 회사 전체의 이해관계가 연관된 거대 프로젝트가 되었다.이미 3년에 가까운 철야행군 끝에 1편을 만들었던 개발팀에게 즉각적인 후속작 개발 착수 지시가 내려졌고, 폴아웃의 성공에 기뻐할 틈도 없던 제작팀의 사기는 크게 꺾여 버렸다.
프로젝트 책임자들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창의적인 시도나 재미를 우선한 게임의 아이디어나 기능들은 상업성, 심의, 품질 관리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 둘씩 잘려 나갔다.‘누구도 신경쓰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독창적인 RPG는,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성공해버린 순간부터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는 조건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폴아웃은 팀 케인이 처음부터 일군, 자식과도 같은 IP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케인은 자신이 알던 폴아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팀 동료를 보호하려다 급여가 깎이고, CEO와 다투기까지 하는 등 그 과정에서 격화된 경영진과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게 되었다.이 상황을 견디다 못 한 케인은 결국 인터플레이를 떠났고, 미래는 막막하게만 느껴졌다.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믿고 함께 나온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폴아웃을 함께 개발한 레너드 보야스키와 제이슨 앤더슨이었다.세 퇴사자는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기 위해 모였다. 폴아웃의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던 그들은 자연히 다음에 만들고 싶은 게임의 아이디어들에 빠져 들었고, 우울했던 대화의 분위기는 금세 흥분으로 이어졌다.마법과 증기기관이 공존하는 세계, 엘프가 공장 도시를 걷는 스팀펑크 판타지라는 게임의 구상이 구체화되자, 퇴사의 상처는 어느새 잊혀졌으며 새로운 게임에 대한 열정이 그들을 채웠다.직원으로서의 그들을 원하는 회사는 많았지만, 이 소규모 프로젝트를 지원할 곳은 없었다. 그들이 어떤 투자자도 찾지 못해 절망할 즈음, 폴아웃의 광팬이었던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의 한 담당자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그렇게 1998년 4월 1일, 트로이카 게임즈가 탄생했다. 회사의 이름은 폴아웃을 개발하던 시절 인터플레이 임원이 늘 붙어 다니던 그들을 보고 "괴짜 세 명"이라 비아냥대며 부르던 별명이었다. 그들은 그 모욕을 기꺼이 회사의 이름으로 삼았다.트로이카 게임즈의 첫 게임, ‘아케이넘’은 그래픽이 조악했고 버그투성이였지만, 독특한 스팀펑크 판타지 세계관과디스코 엘리시움의 전신이 되는 내러티브 중심의 명작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에 비견되는, 풍부하고 복잡한 서사로 이를 만회하며 RPG 팬들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아케이넘의 출시 이후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뒤 발매된 게임, ‘템플 오브 엘리멘탈 이블’은게임에 최초로 사용된 D&D 3.5판을 완벽히 구현하며,게임 시스템에 있어선 바이오웨어의 발더스 게이트를 넘어 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트로이카의 게임들은 모두 불안정하고, 버그 투성이에, 혼란스러웠지만 비평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RPG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 더, 기술도 자금도 여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대담한 게임을 만드는 위험한 시도를 하게 된다.“사람은 재로 변하지만, 이 게임은 영원불멸입니다.”
-SSethTzeentach2001년 11월, 트로이카는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 블러드라인의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TRPG 팬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게임인 ‘월드 오브 다크니스’를 배경으로 한 뱀파이어 정치극을 다룬다. 블러드라인은 검과 마법이 나오는 판타지, D&D가 지배하던 CRPG 시장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었다.게임의 엔진 역시 전례 없던 시도를 택했는데, 블러드라인은 외부 개발사로선 최초로 하프 라이프 2에도 사용되는 소스 엔진을 사용해 개발될 예정이었다. 당대의 최첨단 기술로 전례 없는 1인칭 CRPG를 만들겠다는 야심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은 곧바로 발목을 잡게 된다. 밸브의 소스 엔진은 하프 라이프 2가 몸소 증명했던 것처럼 매우 강력했다. 덕분에 이전의 어떤 게임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상호작용과 애니메이션을 도입해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에 큰 역할을 했지만, 치명적이게도 소스 엔진은 하프 라이프 2와 함께 여전히 개발 중에 있었다. 기술 지원을 받는 건 불가능했으며, 블러드라인 팀은 하프 라이프 2에 계속해서 진보된 기능들이 투입되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만 했다.무엇보다도 소스 엔진은 RPG를 위해 만들어진 엔진이 아니었다. 트로이카는 게임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엔진을 직접 개량하고 만들어 나가야만 했고, 이는 트로이카의 기술 수준과 개발 여건을 고려했을 때 현실성 없는 선택으로 다가왔다.무엇보다도, 트로이카는 엄연한 회사였음에도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사업가가 아니었다. 트로이카의 창립자인 케인, 보야스키, 앤더슨은 폴아웃 개발의 뼈아팠던 경험을 토대로 모든 개발자가 동등한 지위를 갖는 수평적인 개발 환경을 조성하길 원했다. ‘리드 디자이너’나 ‘시니어 아티스트’같은 전통적인 직함은 사용되지 않았고, 회사 내에선 모두가 평등한 개발자로 대우 받았다. 이 결정은 팀의 창의성에 있어선 최고의 선택이었을지 모른다.하지만, 고질적으로 명확한 결정권자가 부재했기에, 시간과 자본의 제약의 관리가 요구되는 대규모 RPG의 개발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의 게임은 항상 고질적인 심각한 버그와 개발 지연에 시달렸으며, 개발 과정은 창의적인 재앙으로 변했다.미완성 기술, 지나친 야망, 그리고 책임자 없는 회사 구조가 합쳐진 좋게 말하면 이상적인, 나쁘게 말하면 순진한 개발 구조는 순식간에 크런치 지옥을 불러 왔으며, 개발자들은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밤을 초과 근무로 몸과 마음을 불살라야만 했다.4년의 개발 기간 중 정상적인 근무 기간은 단 1~2개월이었다. 나머지 96%의 시간은 끝없는 크런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작업물들과 아이디어들, 심지어는 게임의 핵심적인 스토리조차 무자비하게 폐기되고 축소되어야만 했다. 트로이카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개발했다.하지만 예정되었던 개발 기간은 몇 번이고 초과되었고, 결국 게임의 퍼블리셔였던 액티비전은 인내심을 잃고트로이카에게 수 개월 안에 게임을 완성하라는 최후 통첩을 내려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액티비전은 그들의 게임을 하프 라이프 2와 동시에 출시하길 원했다. 소스 엔진을 사용하는 두 게임이 함께 발매되면 상업적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담긴 선택이었다. 밸브 역시 완고했다. 밸브의 소스 엔진 사용 계약 조건은 ‘어떤 소스 엔진 게임도 하프 라이프 2보다 일찍 출시할 순 없다’는 것이었다.트로이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조건을 바꾸고 싶었지만, 이미 체결한 계약을 없던 일로 할 순 없었다.결국 2004년 11월 4일, 블러드라인은 하프라이프2와 정면 대결을 하는 구도로서 던져지게 되었으며,소비자들의 지갑과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당연하게도 최고의 게임이었던 하프 라이프 2에 쏠렸다.출시 당시의 블러드라인은 명백히 미완성된 상태였기에 전혀 주목받지 못 했고, 비평가들의 평도 좋지 않았다.블러드라인의 출시 이후 트로이카에게 관심을 보이는 퍼블리셔는 더는 찾을 수 없었고, 회사에는 미래가 없었다.창립자였던 케인과 보야스키, 앤더슨은 회사가 더는 손쓸 수 없게 되어버리기 전에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고 해산하자는 결정을 내린다.결국 두 차례의 구조조정 끝에, 트로이카는 2005년 2월 공식적으로 폐업하게 되며 트로이카 게임즈와 그들의 게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일만 남은 것이었다.하지만, 소수의 RPG 팬들은 블러드라인이라는 버그 투성이의 코드 뭉치 속에 숨겨진,게임이 원래 도달했어야 했던 가능성에 주목했다.블러드라인에는 뱀파이어의 출신 별로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선택지와 플레이 양상이 있어 RPG 게임으로서 밀도가 높았고,레벨 디자인은 다소 투박했지만 진행 과정에 있어선 '이머시브 심'이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유기적인 면이 있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00년대의 세기말과 고스 감성이 녹아 들어 있는 매력적인 세계관과 풍부한 롤플레잉 경험과 함께,블랙 코미디와 성인 판타지가 심도 있게 해석된 사려 깊은 각본과 대사들이 표현하고 있었으며이를 매력적으로 해석된 다양한 캐릭터들이 뒷받침했다.이러한 가능성을 발견한 블러드라인의 팬들은 이 비운의 게임을 손수 고치기 시작했다. Wesp5라는 한 유저의 비공식 패치는 2004년 출시 직후부터 시작되어, 2025년 현재까지도 업데이트되고 있다.버전이 11.5까지 올라간 패치는 언제부턴가 단순한 버그 픽스를 넘어 삭제되었던 컨텐츠를 복원하고,미완성이었던 퀘스트를 완성하며, 트로이카가 꿈꿨던 게임을 팬들의 손으로 직접 완성해 나갔다.팬들의 비공식 패치와 함께 인기를 끌기 시작한 ‘블러드라인’이 CRPG 명작이라 불리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게임을 접한 RPG 유저들은 열광했으며, 개발자나 비평가들은 이 잊혀진 게임을 재조명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트로이카는 게임의 완성과 동시에 죽어 버렸지만,
완성되지 못한 채 시장에 내던져진 게임과 개발자들이 본래 꿈꿨던 게임의 모습은 팬들의 손으로 서서히 되살아났다.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필연적인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회사는 아티스트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들만이 모인 공간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그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동시에 그들을 현실의 벽 앞에서 무력하게 만든다.게임은 예술이지만, 동시에 산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산업은 마감일과 예산, 그리고 타협을 요구한다.트로이카는 너무나 이상적이었고, 개발자나 사업가라기엔 예술가들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런 순수함은 산업에서 살아남기엔 너무 연약했다. 하프 라이프 2는 완벽했고, 블러드라인은 미완성된 게임이었다.블러드라인의 컬트 지위는 단지 향수로 인한 보정일 뿐이며, 트로이카의 이상론만을 앞세운 비효율적인 개발 구조는 무능이었을 뿐이라며 비판받아 마땅할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들의 게임이 지금까지도 CRPG 팬들의 마음 깊이에서 사랑받는 것은, 그들이 개발 과정에서의 그 모든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상을 끝까지 져버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작성자 : flotsam고정닉
홍콩 특색 상호확증파괴
오늘의 주인공 타이베이, 아니 베니 타이.영국에서 유학까지 갔다온 법학자로 2003년 홍콩 정부에게 훈장까지 받은 엘리트시다. (후술할 문제의 사건으로 2020년 훈장은 박탈됨.)원래는 평화롭게 살던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는 만성적인 불만이 있었다. "직선제 언제함?"홍콩 기본법 45조에 따르면 현행 행정장관은 간선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지명위원회가 복수의 후보를 선출하되 그 중에서 보통선거를 치루는 방식으로 개혁해야한다. 문제는 이게 강경 민주파들 입장에서는 영 아니었던 것이다. 베이징이 허락한 후보 중에서만 뽑는게 무슨 보통선거야.결국 건제파 내부의 2010년대 행정장관 직선제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홍콩 시민들은 이것이라도 받아먹었어야했다. 아무튼 이 사람이 진짜 중요한 이유는 2013년 우산혁명의 주동자이기도 했지만,사분오열 찢어져있던 민주파들을 결집시키는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2010년대 본토-내지 갈등이 격화되면서 홍콩 지역운동은 과격화되고 호응도 얻어갔지만,그 운동들은 하나같이 자기 동네에서, 자기 파벌끼리만 놀고 있었다.때문에 민주파들은 암묵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의석을 영 못 얻었다.(근본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 특성상 의정 활동에 능숙하지 못한 것도 있고.) 그런데 베니 타이는 여기서 중요한 운동을 한다."민주파 내부에서 경선을 거치고, 그 단일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자!"이 시도가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게 송환법 철회 직후의 2019년 구의회 선거다.익히 알려진대로 이 선거는 민주파가 초압승을 거두었다.그런데 구의회는 영국령 말기 자문회의 후신이라 별다른 권한이 없다.(지금도 예산 집행 및 의견 상신 정도가 거의 전부다.)따라서 진짜 민의를 증명할려면 입법회이나 행정장관에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리고, 송환법 시위를 거치면서 건제파와 민주파 모두 악에 받힌 상황에서 베니 타이의 계획이 시작된다. "홍콩 민주파 내부에서 경선을 거친다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다.""그런 입법회가 개설된다면 우리는 정부에게 압력을 가할 것이다.""입법회의 모든 예산집행 및 법안 개설을 모조리 반려시킬 것이다." "? 우리가 등신으로 보이나.""홍콩 기본법 50조에 따르면 그럴 경우에 행정장관은 입법회를 해산할 권한이 있음.""님 등신 맞는거같은데?""홍콩 기본법 52조에 따르면 보궐 입법회에서도 똑같은 예산안이 부결될 경우에는 행정장관이 반드시 사직해야함." "........... 그래, 내가 사직한다 치자. 어차피 그래도 정무사장(국무총리격)이 대리하고 보궐선거가 치루어지지.""그리고 어차피 행정장관은 특성상 후보군이 한정되어있는데?""상관없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특별행정구 정부의 총체적 마비다.""입법회도 행정부도 모조리 무력화시킬거다.""그리고 홍콩 기본법 18조에 따르면 이 경우에 홍콩의 최종적인 처분권은 중화인민공화국 최고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로 넘어간다."(기본법을 옮기자면 "홍콩 자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동란이 생길경우 상무위원회가 전국성 법률이나 명령을 반포할 수있다.")"그리고 이 상황이 되면 홍콩 시민들은 극도로 반발해서 총파업이나 무력시위를 벌일 것이다.""마침내 홍콩에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할 것이고 외국 사회는 중국에 대규모 경제재재를 가할 것이다." "그래, 이 새끼들아. 다 같이 죽자! 너도 나도! 아니 중국 그 자체를 태워버리자고!!!!!!!!!"(진짜로 태워버리기, 상호확증파괴,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기 등등 언급함.)아, 물론 동아시아 입법부가 원래 좀 막나가는 곳이기도 하다.한국은 무기의 달인이 뛰어오르지를 않나.타이완은 현역 의원이 지 제안 부결되었다고 누드 화보를 뿌리지를 않나. 근데 그런 곳에서도 이게 용납되냐고 묻는다면.......사실 민주파들은 진작부터 베이징에 호감작을 쌓아오고 있었음.중국인들이 민폐끼치는거 싫으니 꺼지라는 거리 시위는 일상이고(그런데 사실 이런 경우에는 본토쪽에서 양보해주는게 암묵적인 전통이긴 함.) 구의회 한 명은 대놓고 취임식날 쑨원 초상화앞에서 중화민국 국가를 틀고민주파 입법회는 취임식날 중화인민공화국(People Repulic of China)을 피플 퍼킹 오브 지나(....)라는 드립을 치고 바로 의원직이 박탈되질 않나.그리고 문제의 입법회 민주파 경선결과.민주파 내부에서 17만명 참가로 예상된 경선은 60만명 참가라는 엄청난 호응을 얻음.이 말인즉슨 베니 타이의 주장한 입법회 과반에 기반한 시나리오를 홍콩 주민들도 어느 정도 지지한다는 뜻도 되었고. 이 시점에서 베이징과 홍콩 정부는 죽기 vs 고자되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음.어이, 행정장관. 마음 같아서는 네놈부터 본토로 이송시키고 싶지만, 그래도 상황이 이 지경인데 최소한 생각해둔 건 있겠지?아, 물론이지. 역시 행정장관이야. 샹캉을 구하려 왔구나.? 난 그냥 사퇴할건데.송환법 추진을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고통받아야함? 개새끼들.......더 정확하게 말하면 송환법 시위를 조기 진압하는데 실패하면서 캐리 람은 내부 지지를 완전히 상실해버렸고아예 비공개자리에서 사퇴의사까지 밝혔다가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그걸 부정하는등이미 캐리 람 입장에서는 무얼하고싶어도 어쩔수가 없었음. 결과적으로 사건의 해결법은 베이징으로 넘어갔고 그 결과 나온게 '국가안전법'이었음.(물론 이 사건 하나 떄문은 아니고 쌍방간의 불신과 분노가 송환법 시위로 폭팔했다고 보는게 옳음.) 이로서 실리콘 드림은 안녕. 애초에 홍콩에 꿈이 있기는 했냐만은. 참고로 국가안전법으로 체포될 당시 베니 타이는 그냥 그건 말이 그런거지 실제로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홍콩 경무처는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비공개회의에서 베니 타이가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녹화한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함. 결국 베니 타이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홍콩은 사법거래가 인정되서 이 경우 무조건 최고형량에서 3분의1을 삭감해야함.)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임. 그리고 이것이 홍콩 민주파들을 궤멸시킨 사건으로 유명한 홍콩 47사건임. 마지막 이야기. 베니 타이가 이 계획을 공개한 빈과일보는 현재 폐간되었고 사장인 지미 라이는 특별행정구 지배를 약화, 전복시키려했다는 죄목으로 고소되었음.그리고 오늘 홍콩 법원에서 판결이 나왔음. 혐의점 모두 유죄. 형량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소 징역 10년, 최대 무기징역이 선고될 예정이라 함. 지미 라이가 70대 노인인점을 봐서는 뭔 차이가 있냐싶겠지만. ps : 혹시나해서 말하는건데 누드 화보 뿌린 사람은 후스의 수제자 리야오다.부결된 제안은 "중정기념당 익스플로전" 중화권은 어떤 곳일까.......
작성자 : Vanish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