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마스터플랜의 망령

ㅇㅇ(211.216) 2025.11.18 03:42:12
조회 85 추천 0 댓글 0
														

1972년 7월15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11층짜리 서른세 동의 아파트가 들어선 주거단지를 폭파하여 철거시킨 일이 일어났다. 2차 대전 전쟁영웅의 이름을 따 “프루이트 이고”라고 부르며, 새 시대 새로운 주거를 목표로 1955년에 지은 이 단지는, 가장 좋은 삶터로 평가되어 여러 건축상까지 받았던 바 있었다. 그러나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천편일률적 공간이 갖는 무미건조함으로 인해 그 속의 공공공간이 무법지대로 변하면서, 각종 폭력과 마약, 강간, 살인 등의 흉악범죄가 창궐하게 되었고, 흑백간의 주민갈등까지 유발하여, 이 주거단지는 도시에서 가장 절망스럽고 공포스러운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불과 17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시범죄의 온상이 된 이곳을 주정부는 폭파로 청산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건축가 챨스 젱크스는, 이 날은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한 날이라고 기록하였다.



모더니즘은 19세기말, 시대적 가치를 상실하여 세기말의 위기에 몰린 사회가 퇴폐와 향락에 이끌리며 문화가 퇴행하던 시절,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을 꿈꾼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찾은 시대정신이었다. 그들은 전통적 양식과 역사적 관습에 억눌린 인간의 이성을 회복시키고 합리적 가치를 최선으로 내세우며 우리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좋은 제품의 대량공급을 목표하며 통계에 근거하여 찾은 표준화라는 방식은 그들의 유용한 수단이었고, 사물을 조직화하고 환경을 체계화하며 수요와 공급을 정량화하는 방식은 그들이 목표하는 사회의 구성원리였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에 대한 과신이 문제였다. 도시를 예를 들면, 땅을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등으로 칠해 상업지역 주거지역 공업지역으로 나눠서 차등하였고, 도로는 도로의 폭과 속도를 제한하며 서열화하고, 도심과 부도심 변두리로 전체를 나누며 계급적으로 만든 도시계획을 과학적 합리라고 신봉하였다. 심지어는 오래 살았던 동네마저 이 도시계획도를 들이대며 재개발하였으니, 이게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특히 세계대전 직후 세계의 도시가 개발의 열망에 휩싸이면서, 이 마스터플랜은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져 전세계 방방곳곳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표준적 평면을 가진 집단화된 아파트들, 통계에 의거한 공공시설의 획일적 배분, 빠른 통행만을 우기는 교통계획, 직선화된 길, 각종 주의 표식 등, 어느새 공동체는 사라지고 각 부분의 적절한 배분을 중요시하는 집합체만 남는 도시가 양산 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신도시가 만들어지자, 프랑스 철학자 르페브르는, “이렇게 철저히 프로그램화된 거주기계에서는 모험도 낭만도 없으며, 우리 모두를 구획하고 분리하여 서로에게 멀어지게 한다.” 며 질타했다. 실상 도시의 범죄는 전통적 도시에서 보다 훨씬 증가하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계층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갔다. 모두가 급조된 환경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그 프루이트 이고 주거단지가 폭파되어 사라진 것이다. 모더니즘이 20세기의 유일한 시대정신이라고 믿었던 건축가와 도시학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마스터플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모더니즘과 마스터플랜이 간과한 것은 인간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가치였다. 그들은 모든 인간을 집단으로 파악하고자 했으며 개체의 다양성을 묵과하였다. 뿐만 아니라 모든 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장소성을 무시하였고, 그 역사적 맥락과 자연적 환경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래서 산이 있으면 깎고 계곡이 있으면 매웠으며 산악이든 평지든, 대륙이든 섬이든, 모든 곳에 똑 같은 조감도를 걸어 미래를 단호히 예견했지만 결국 모두 거짓이었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데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하루의 계획을 조리 있게 짠다고 해도 수시로 마음이 바뀔 수 있으며, 선과 악을 머리 속에 아무리 구별해도 우리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그 혼돈의 와중에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모든 땅은 얼마나 다 다른가. 기후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며, 생태와 주변이 부분마다 다르고 무엇보다 살아온 역사가 다 다르다. 그 다 다른 땅을 똑 같은 도형과 무늬로 뒤덮으며 한 가지 삶을 강요한 그 마스터플랜의 방법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했다. 어쩌면, 기후변화나 사회의 갈등과 분쟁 등,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재앙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사회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은 마스터플랜의 망령으로 인한 결과 아닌가.



viewimage.php?id=26b8d929eb&no=24b0d769e1d32ca73ce88efa11d02831d103fd974183ef10274d68d56bb00c0626191a0bb6adb0f4c07d849d19989a2093dece0d11d9cef0df7e8422b13bae4d44



바야흐로 서양에서는 이제,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의 삶을 존중하며 오히려 비움을 그리고, 자연과 화해하는 나눔을 그리는 데, 우리의 이 땅에서는 이미 폐기된 마스터플랜의 망령에 사로잡혀, 비움과 나눔이 가득했던 우리의 정겨운 옛 도시와 아름다운 산하를 유효기간이 훨씬 지난 표준도면으로 여전히 난도질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프루이트 이고”의 폭파가 떠오른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말 모임 가는 곳마다 가장 인싸일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5/12/08 - -
이슈 [디시人터뷰] 솔직함을 리뷰하는 유튜버, 흑백리뷰 운영자 25/12/09 - -
AD AI 가전 디지털 모음전 운영자 25/11/27 - -
2906505 물건 대여업체는 오히려 손님들이 잃어버려야 이득인건가 [3] 공기역학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23 0
2906504 눈 올 때 들으면 좋은 노래 snowy [2] 발명도둑잡기(118.216) 12.04 81 0
2906501 Dingux 리눅스 발명도둑잡기(118.216) 12.04 97 0
2906500 SDL / DirectFB / fbdev 를 비교한 성능 발명도둑잡기(118.216) 12.04 85 0
2906488 지잡 취업 가능? [1] 프갤러(121.151) 12.04 146 0
2906486 언어간 호환하려고 gRPC 쓰려다가 웹소켓으로 갈아탐 ㅇㅅㅇ [2] 프갤러(211.234) 12.04 128 0
2906485 안마방 체험 썰.jpg ㅇㅇ(118.235) 12.04 106 0
2906483 [애니뉴스] SortingClp - sortingColorPalette ㅇㅇ(121.172) 12.04 84 0
2906481 내란무새 리짜이밍 빤스런 ㅋㅅㅋ ♥발라당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00 0
2906479 ■개발자말고 아버지소개로 트럭정비사하는게낫냐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41 0
2906478 Regular Animals 발명도둑잡기(118.216) 12.04 76 0
2906475 부자 러스트 프로그래머 이제 숨만 셔도 하루 6만원씩 들어온다. [3] 프갤러(223.37) 12.04 154 1
2906474 지방 갈까말까 엄청 고민하다 거절했다. 프갤러(223.37) 12.04 102 0
2906473 오늘 뽑은 색이 다른 포켓몬 넥도리아(220.74) 12.04 90 0
2906471 지금껏 다녀본 업소들 유형별 특징.txt ㅇㅇ(118.235) 12.04 126 0
2906470 안마방 체험 썰.jpg ㅇㅇ(118.235) 12.04 83 0
2906469 우리신입 코드보면 줘패고싶다 걍 ㅇㅇ [2] 맨날가고싶은사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82 0
2906468 이미 선구자가 있었네. [3] 프갤러(49.165) 12.04 153 0
2906466 코딩 입문할려고 함 [2] Hopin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06 0
2906465 조국혁신당이 미래다 이기이기 타이밍뒷.통수한방(1.213) 12.04 78 0
2906463 님들 저 졸업작품 주제 추천좀요 [3] 공기역학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23 0
2906462 나님 금융회사 세울꺼양 [4] ♥발라당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23 0
2906461 여자들은 남자에게 돈쓰는걸 아까워하지 않음 [1] 프갤러(59.14) 12.04 114 1
2906458 C++ 인생 40 년 갈아 넣었습니다. [1] 프갤러(59.16) 12.04 106 0
2906456 팩트) AI 따윈 소프트웨어 같이 문과도 하는 것만 대체 가능 [8] 프갤러(115.4) 12.04 113 0
2906455 코딩에 수학 실력은 양날의 검임 [3] 프갤러(203.228) 12.04 145 0
2906454 농협가는중. 넥도리아(106.101) 12.04 58 0
2906453 ❤✨☀⭐⚡☘⛩☃나님 시작합니당☃⛩☘⚡⭐☀✨❤ [2] ♥발라당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85 0
2906452 요즘 시대 학점별 직업 발명도둑잡기(118.216) 12.04 120 0
2906451 쿠팡 개인정보 유출은 php와는 무관한 듯 [3] 나르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20 0
2906449 이력서 첫 줄 [5] 프갤러(220.79) 12.04 104 0
2906448 ❤+따당이 크리스마스 트리에 예쁜 말 써줘..❤+ [4] 따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09 0
2906445 [Etevers] 언리얼엔진 DX Wave(3D Artist) 6기 (~ 프갤러(14.32) 12.04 95 0
2906443 이야 sm판 무섭다 무서워 [2] 프갤러(221.149) 12.04 128 0
2906442 위메이드플레이 개발업계 중에서 어느정도임?? [1] 프갤러(106.101) 12.04 76 0
2906441 안드로이드 소스 잘 아는 사람 프갤러(211.213) 12.04 86 0
2906439 한국 테크 기업중에 화교한테 안먹힌 회사가 없구만 [3] RyuDO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42 0
2906434 폐쇄망에서 쓸 수 있는 AI비서 개발 어떻게 생각함 [1] 프갤러(35.194) 12.04 101 0
2906433 [대한민국] 트럼프 대통령 부정선거 리트루스, 윤석열 대통령 메시지 ㅇㅇ(121.172) 12.04 68 0
2906432 ERP랑 붙어서 인터페이스 연동테스트하는데 한방에 됨 ㅇ ㅅㅇ; [1] 프갤러(60.196) 12.04 95 0
2906431 러스트도 액터 모델 쓸 수 있다. [3] 프갤러(221.149) 12.04 109 0
2906427 아침 해가 돌아나오는 골목 ㅇㅅㅇ [5] 헤르 미온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18 0
2906424 태연 ㅇㅅㅇ 헤르 미온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71 0
2906423 하루 한 번 헤르미온느 찬양 헤르 미온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95 0
2906422 실시간 next js 쓰는 사람들 w된거 같다 ㅇㅇ(1.244) 12.04 135 1
2906421 쿠팡 물량이 좀 줄은거 같다..ㅇㅅㅇ 헤르 미온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84 0
2906420 흐미.. 소프트웨어 언어/기술 혐오가 너무 심한거 아닌가.. [4] 나르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 104 0
2906416 워드프레스, 그누보드는 상 쓰레기코드다 프갤러(118.235) 12.04 104 0
2906415 러스트 동시성은반쪽이다 얼랭/엘릭서해라 [1] 프갤러(61.75) 12.04 258 2
2906414 나는 오늘도 아무도 못알아볼 보고서를 쓴다. [3] ㅇㅇ(118.235) 12.04 113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