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마스터플랜의 망령

ㅇㅇ(211.216) 2025.11.03 19:19:57
조회 54 추천 1 댓글 1

1972년 7월15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11층짜리 서른세 동의 아파트가 들어선 주거단지를 폭파하여 철거시킨 일이 일어났다. 2차 대전 전쟁영웅의 이름을 따 “프루이트 이고”라고 부르며, 새 시대 새로운 주거를 목표로 1955년에 지은 이 단지는, 가장 좋은 삶터로 평가되어 여러 건축상까지 받았던 바 있었다. 그러나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천편일률적 공간이 갖는 무미건조함으로 인해 그 속의 공공공간이 무법지대로 변하면서, 각종 폭력과 마약, 강간, 살인 등의 흉악범죄가 창궐하게 되었고, 흑백간의 주민갈등까지 유발하여, 이 주거단지는 도시에서 가장 절망스럽고 공포스러운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불과 17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시범죄의 온상이 된 이곳을 주정부는 폭파로 청산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건축가 챨스 젱크스는, 이 날은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한 날이라고 기록하였다.


모더니즘은 19세기말, 시대적 가치를 상실하여 세기말의 위기에 몰린 사회가 퇴폐와 향락에 이끌리며 문화가 퇴행하던 시절,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을 꿈꾼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찾은 시대정신이었다. 그들은 전통적 양식과 역사적 관습에 억눌린 인간의 이성을 회복시키고 합리적 가치를 최선으로 내세우며 우리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좋은 제품의 대량공급을 목표하며 통계에 근거하여 찾은 표준화라는 방식은 그들의 유용한 수단이었고, 사물을 조직화하고 환경을 체계화하며 수요와 공급을 정량화하는 방식은 그들이 목표하는 사회의 구성원리였다.




viewimage.php?id=26b8d929eb&no=24b0d769e1d32ca73ce88efa11d02831d103fd974183ef10274d68d56bb00c0626191a0bb6adb0f4c07d849d19989a2093dece0d11d9cef0df7e8422b13bae4d44




그러나, 인간의 이성에 대한 과신이 문제였다. 도시를 예를 들면, 땅을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등으로 칠해 상업지역 주거지역 공업지역으로 나눠서 차등하였고, 도로는 도로의 폭과 속도를 제한하며 서열화하고, 도심과 부도심 변두리로 전체를 나누며 계급적으로 만든 도시계획을 과학적 합리라고 신봉하였다. 심지어는 오래 살았던 동네마저 이 도시계획도를 들이대며 재개발하였으니, 이게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특히 세계대전 직후 세계의 도시가 개발의 열망에 휩싸이면서, 이 마스터플랜은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져 전세계 방방곳곳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표준적 평면을 가진 집단화된 아파트들, 통계에 의거한 공공시설의 획일적 배분, 빠른 통행만을 우기는 교통계획, 직선화된 길, 각종 주의 표식 등, 어느새 공동체는 사라지고 각 부분의 적절한 배분을 중요시하는 집합체만 남는 도시가 양산 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신도시가 만들어지자, 프랑스 철학자 르페브르는, “이렇게 철저히 프로그램화된 거주기계에서는 모험도 낭만도 없으며, 우리 모두를 구획하고 분리하여 서로에게 멀어지게 한다.” 며 질타했다. 실상 도시의 범죄는 전통적 도시에서 보다 훨씬 증가하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계층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갔다. 모두가 급조된 환경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그 프루이트 이고 주거단지가 폭파되어 사라진 것이다. 모더니즘이 20세기의 유일한 시대정신이라고 믿었던 건축가와 도시학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마스터플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모더니즘과 마스터플랜이 간과한 것은 인간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가치였다. 그들은 모든 인간을 집단으로 파악하고자 했으며 개체의 다양성을 묵과하였다. 뿐만 아니라 모든 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장소성을 무시하였고, 그 역사적 맥락과 자연적 환경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래서 산이 있으면 깎고 계곡이 있으면 매웠으며 산악이든 평지든, 대륙이든 섬이든, 모든 곳에 똑 같은 조감도를 걸어 미래를 단호히 예견했지만 결국 모두 거짓이었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데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하루의 계획을 조리 있게 짠다고 해도 수시로 마음이 바뀔 수 있으며, 선과 악을 머리 속에 아무리 구별해도 우리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그 혼돈의 와중에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모든 땅은 얼마나 다 다른가. 기후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며, 생태와 주변이 부분마다 다르고 무엇보다 살아온 역사가 다 다르다. 그 다 다른 땅을 똑 같은 도형과 무늬로 뒤덮으며 한 가지 삶을 강요한 그 마스터플랜의 방법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했다. 어쩌면, 기후변화나 사회의 갈등과 분쟁 등,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재앙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사회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은 마스터플랜의 망령으로 인한 결과 아닌가.

바야흐로 서양에서는 이제,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의 삶을 존중하며 오히려 비움을 그리고, 자연과 화해하는 나눔을 그리는 데, 우리의 이 땅에서는 이미 폐기된 마스터플랜의 망령에 사로잡혀, 비움과 나눔이 가득했던 우리의 정겨운 옛 도시와 아름다운 산하를 유효기간이 훨씬 지난 표준도면으로 여전히 난도질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프루이트 이고”의 폭파가 떠오른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1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해외에서 겪는 불합리한 대우에 대응 잘 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5/11/03 - -
AD 저녁 뭐먹지? 오늘의 메뉴 추천! 운영자 25/10/31 - -
2901260 돈 벌고 싶으면 돈 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해라. 프갤러(110.8) 11.08 28 0
2901259 애시당초 시험 성적 만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애들 프갤러(39.7) 11.08 26 0
2901255 슬랙 웹버전은 허들 안되던데 프갤러(110.8) 11.08 22 0
2901254 이 모니터 진짜 개지리더라 [3] 에이도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57 0
2901253 생각해보니 내 잘못이 아닌거 같다. 프갤러(110.8) 11.08 23 0
2901252 조회수 그거 그냥 매크로임 [1] 프갤러(110.8) 11.08 32 0
2901251 나는 왜 글들이 소통에 참여하는 인원 수보다 조회수가 많은가 했는데 [2] chironpracto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36 0
2901250 러스트 해라. 러스트 하니까 바이브 코딩 안된다. [1] 프갤러(110.8) 11.08 37 0
2901249 보색 새낀 그냥 깔끔하게 차단 무시가 답 [12] 프갤러(110.8) 11.08 50 0
2901248 약해보인다는 놈이 약해보인다는 놈이 약해보임 [2] 프갤러(110.8) 11.08 36 0
2901246 방어적으로, 공격적으로 굴 수록 약해보이는 것이 사실... [1] 에이도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34 0
2901245 맞아 러스트 배우려는 태도가 없는게 문제야 프갤러(110.8) 11.08 19 0
2901243 에이도비야 피그마 있으면 걍 피그마 MCP 뼈대 박고 나머지만 수정하면됨 [3] ㅆㅇㅆ(124.216) 11.08 52 0
2901242 ㅆㅇㅆ말대로 피그마 MCP를 Cursor에 연동했다 [7] 에이도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67 0
2901241 대체 얼마나 지능 후달리면 이게 어렵다는거임 [2] ㅆㅇㅆ(124.216) 11.08 63 0
2901240 실례지만 쉬운거도 어렵게 설명하는거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42 2
2901237 피그마에서 json으로 메타데이터 전달해주잖아 그걸로 뼈대 만들고 ㅆㅇㅆ(124.216) 11.08 36 0
2901235 디자이너가 현학적으로 만든 거 코드로 구현 중 [5] 에이도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98 0
2901234 난 토론 초장부터 단어가 어려우면 일단 배제하고 봄 ㅇㅇ(211.210) 11.08 33 2
2901233 소신 발언 하자면 제일 화나는건 나임. [11] ㅇㅇ(124.48) 11.08 96 0
2901232 결과물이 잘 나와야 그 담에도 강사로 일할 수 있거든 [3] 에이도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46 0
2901231 뭐땜에 싸우는지 모르겠는데 최근 학생들 게임 만들어보기 들어본점 프갤러(114.205) 11.08 27 0
2901230 고인들 헹군 물 한뚝배기 하고 나니 [10] chironpracto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59 0
2901229 실례지만 두 분... 너무 불타고 계신 게 아닌지? [2] 에이도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64 0
2901227 아 렌더러 원리 설명한거 자꾸 천안문시키노 논리적으로 개박살나니까 ㅆㅇㅆ(124.216) 11.08 34 0
2901225 젊음은 참좋은거네요 [3] 배구공(119.202) 11.08 51 0
2901224 그냥 저수준 api 배우면 존나 어려우니까 고수준에서 렌더링 [8] ㅆㅇㅆ(124.216) 11.08 63 0
2901222 걍 학생들 코딩을 스크래치로 배우는거랑 같은거임. [1] ㅆㅇㅆ(124.216) 11.08 49 0
2901220 애초에 교육현장서 스윙으로 겜 만들라고 한 이유가 그럼 뭐가 있어 [5] ㅆㅇㅆ(124.216) 11.08 72 0
2901219 애니메이션 자연스럽게 만드는 사람들 보면 대단하다 [1] 루도그담당(58.239) 11.08 35 0
2901218 뭐든 극단적으로 가면 좋을 게 없다는 개소리에 대해 [7] 프갤러(39.7) 11.08 63 0
2901214 애초에 렌더러라는게 뭐 대단한게 아니라 어떻게 그릴지임 걍 [4] ㅆㅇㅆ(124.216) 11.08 66 0
2901213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 프갤러(116.47) 11.08 27 1
2901211 텐서플로 케라스 <-- 강의하기에만 좋음 [4] 에이도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56 0
2901210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생활용품 수납함 부품함 파나요? 넥도리아(223.38) 11.08 22 0
2901209 아까부터 스윙이네 어쩌네 싸우는데 [10] 슈퍼막코더(126.179) 11.08 70 0
2901208 오늘 홍대가서 산건데 어때보여? [5] ㅁㅁ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54 0
2901207 "무슨말인지 알겠어", "무슨느낌인지 알겠어" [5] 헬마스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68 1
2901205 이경규행님이 ㅆㅇㅆ좀 패줘야 되는데 ㅇㅇ(118.235) 11.08 44 0
2901204 좆도모르면서 어려운단어 남발한다 = ㅆㅇㅆ이야기 ㅇㅇ(118.235) 11.08 34 3
2901203 그런데 확실히 실무자와 실무자가 아닌 사람은 단어에서부터 티가 나 [6] ㅇㅇ(124.48) 11.08 118 0
2901202 내가 알기로 교수들은 렌더러 교육에 다이렉트 x쓰지 않나 [9] 에이도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84 0
2901201 다섯 시간 잤더니 졸리다 [4] 발명도둑잡기(118.235) 11.08 39 0
2901199 ㅆㅇㅆ 틀렸음을 인정하라. 이 나르시시스트야 [5] 나르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107 4
2901197 냥덩이도 반성문 올려야 되는데 발명도둑잡기(118.235) 11.08 35 0
2901195 ㅆㅇㅆ = 앱히키 ㅇㅇ(222.108) 11.08 39 2
2901193 ❤✨☀⭐⚡☘⛩나님 시작합니당⛩☘⚡⭐☀✨❤ [2] ♥KiTTY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44 0
2901192 원리를 알아야돼 전제가 틀렸어 맥락을 이해못해 ㅇㅇ(211.234) 11.08 33 3
2901191 잠 자러감..ㅇㅅㅇ [1] 헤르 미온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22 0
2901190 자바 virtual thread 프갤러(211.186) 11.08 38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