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프로그래밍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프로그래밍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공포주의) 영국 전문잡지사에서 선정한 역대 공포영화 TOP 100 (下) 영단어봇
- 오늘의 김하성.webp 이정후
- "와 MZ사원 혼냈다고 부모님한테 연락 옴ㅋㅋ" 우울증말기
- 싱글벙글 동양인의 지능이 서양인보다 낮다는 선동은 과연 사실일까? ㅇㅇ
- 영포티에 대해서 Araboza ㅇㅇ
- 싱글벙글 조선시대 무기촌 ㅇㅇ
- 가수에게 콘서트는 항상 배수의진 이다.. 이업계 벅업다 전유진
- 중국 정부 디스하는 사우스 파크.JPG 얼탱
- 히토미 볼법한 사건들 3편 첫번째 사건을 좀 더 자세히 ㅇㅇ
- 띨댕이의 육아일기 02 DDil
- 순직 해경의 마지막 무전…"물 차올라, 추가 인원 필요" ㅇㅇ
- 요즘 시위대의 상징.JPG 얼탱
- 전참시 나온 크레 상태 ChoiGECKO
- 생선뼈 발라주던 전 남친...jpg 수류탄이야
- 띠용띠용 기록에 나와있는 한국사 공식 미남들 ㅇㅇ
미국이 중국과 소련을 멸망해서 구해준 사연...JPG
미국은 1차 대전, 2차 대전 참전해서수많은 파병과 지원을 보냈었다소련과 중국도 그 예외는 아니었는데그 규모를 알아보도록 하자루즈벨트 대통령은 1940년 12월 19일 중국에 대한 2,500만 달러의 군사 지원을 승인하여 중국이 P-40 추격 항공기 100대를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1941년 늦은 봄까지 미국은 중국이 지상 및 항공 장비를 모두 확보할 수 있도록 대출 임대 자금으로 1억 4500만 달러 이상을 할당 했습니다.중국은 당시 변변한 공군전력이 없어서충칭대공습 같은 사건으로 일본공군에게 일방적으로 내내 쳐발리다가미국의 P-40 전투기 지원 덕분에 겨우 구사일생함P-40 100대 이외에도 P-66 전투기 82대, P-43 전투기 41대를 중국에 제공하였고이는 중국공군 대다수의 전력이 되었으며 일중전쟁 당시 절대적인 희망이 되었다. 이를 통해 그나마 중국 전역이 점령당하지 않고 고기방패 나마 버틸수 있는 근간이 됨또한 미국은 미 제14공군을 통합한 미중연합공군(CACW, China American Composite Wing)을 창설하여지나전선(중국전선)의 일본군 비행장들을 폭격하고 상당수를 파괴하여 중국을 멸망에서 구해줌당시 미국이 중국에 지원한 것들은M3 전차 100대트럭 25,000대야포 2,053문소총 305,000정기관총 100,000정철모 146,000개폭격기 151대전투기 679대수송기 120대훈련기 43대식량 33,000톤기타 지원금액 8억 4,500만 달러애초에 중국은 2차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까지도자력으로 일본에게 승전하거나 승리하지 못하며왕징웨이 친일정부에 통치당하다가미국의 일본 원자폭탄 투하로 해방 됨이번엔 소련을 볼까독소전쟁 시기 소련의 칼로리 섭취 절반이 서방 랜드리스에서 나왔다.전시 동안 이루어진 접촉과 특히 무기대여법에 따른 인도 물자는 미국이 매우 뛰어난 경제-기술력을 지닌 나라라는 널리 퍼진 인식을 확인시켜주었다.측근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스탈린 조차 미국과 영국이 "무기대여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1941-42년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에 독일에 대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민간인들에 갈 의복과 다른 소비재 대부분은 관료들이 착복했다. 조금 남은 것들이 호의에 고마워하는 수령자들에게 떨어졌다.실패한 제국 1권,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저 82~83p===============스탈린 조차소련이 전쟁에서 승리한건 미국 영국 덕분이라고 인정한 사안소련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1944년에 무기대여 물자는 소련 GDP의 10%, 즉 456억 루블을 차지했다.미국 원조의 실제적인 기여는 구체적인 결정적 영역에서는 훨씬 더 컸다.예를 들어 무기대여 물자는 소련의 트럭과 자동차의 55%, 트랙터의 20.6%, 공작 기계의 23%, 자동차 엔진의 42%를 감당했다.또 소련 알루미늄의 41%, 아연의 19%, 니켈의 25%, 수은의 37%, 주석의 99%, 코발트의 57%, 몰리브덴의 67%, 스테인리스 강철의 24.3%, 항공 휘발유의 18%, 천연 고무의 100%, 에틸렌 주정의 23.3%, 글리세린의 38%도 공급했다.게다가 미국산 식품, 신발, 스튜드베이커 트럭은 소련군이 스탈린 그라드에서 베를린으로 진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실패한 제국 1권,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354~355p====독소전쟁 당시 대규모 산업단지와 농업단지를 상실한 소련이 체제를 유지할수 있었던건 랜드리스 덕분소련군의 기계화, 차량화 또한 미국의 랜드리스 지원이 막대했다.1944년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의 기동포위와 베를린으로의 진격도 미국 랜드리스에 의한 것이후 소련은 돈 없다며 미국에게 럔드리스 빚 안 갚다가2006년 러시아때 원금의 2.6%인 2.4억 달러만 갚고나머지는 미국이 전부 탕감시켜 줬다. 사실상 무상원조반면 일본의 도움도 있었는데일본이 신생국가 중국공산당에 수십년간 ODA 지원함중국의 발전은 실은 "일본에도 크게 지원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아는 중국인은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중국의 Q & A 사이트 지식乎는 최근 "일본에서 이렇게 도움을 받았건 믿고 싶지 않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정부 개발 원조 ( ODA )를 소개하는 게시물을 게재했다.기사 중국인 필자는 1979 년 부터 약 40년 동안 일본이 중국에 총 3 조 6000 억엔을 넘는 규모의 원조를 실시하고 왔다는 많은 중국인이 모르는 진실을 전하고있다.중국인 필자는 일본이 중국의 어느 도시에서 어떤 프로젝트 를 얼마나 금액을 걸고 도와 왔는지 목록으로 소개하고있다. 많은 철도의 건설 · 확장 · 전자 항구 건설, 수력 발전소 건설, 병원 · 공장 · 공항 건설 등 인프라 정비에서 악단의 악기 제공과 백신 접종 확대 계획에 대한 지원 등도 포함 있다. 모두 중국인 생활에 직결되는 것 뿐이다.중국에서는 " 중국인이 생활 할 수있는 것은 공산당 의 덕분"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지만, 일본이 이만큼 많은 도움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많은 중국인 은 지금도 모르는 상태이다.중국인 필자는 또한 예를 들어, 약 20 년 전에 귀주 지방의 농촌 일본의 원조로 만들어진 물탱크와 수도 시설이 지금도 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은 "다른 수리 시설은 사용할 수 없게되었지만, 이것은 지금도 사용할 수있다. 하지만 누가 만들 었는지는 모른다"고 있다고 소개했다.또한 일본의 원조로 건설 한 충칭의 모노레일도 지금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장소가 있지만, 당시 중국에는 모노레일 기술이 없어 일본의 기술 지원이 없으면 만들 수 없었던 것을 알기 중국인은 거의 없다 그렇다.중국의 현대화를 지원했다 "최대 원조국 '로 일본은 거액의 ODA 원조를 해왔는데 많은 중국인 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너무 부자연 하지 않을까. 중국인 은 기사의 중국인 필자가 말하는 "믿고 싶지 않다"사실을 더 알아 주었으면 것이다. (편집 담당 : 무라야마 켄지) ( 이미지 사진 제공 :123 RF)즉 마오쩌둥 대약진운동으로중국인 7000만명 집단아사 되며쓰레기 철강제철로 변변한 기술도 산업도 전무하던 시기에중국의 근대화를 촉진시켜 주고 지원해줬던게 일본국
작성자 : ㅇㅇ고정닉
싱글벙글 초연 한번 했다가 작곡가 초상 치를뻔한 공연.jpg
오페라,연극,뮤지컬 등의 공연을 볼때는 조용히 매너있게 관람하는것은 오늘날의 기본적인 예절일 것이다하지만 20세기에 있었던 오늘 다룰 이 사건은 그야말로 관객들의 매너 따위는 국 끓여먹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던 사건이었다봄의 제전 (Le Sacre du printemps)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 ~ 1971)가 1913년에 발표한 발레곡이다당시의 발레 관객들은 “백조의 호수”같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전 발레를 선호했는데이 작품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봐도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내용,의상,안무,음악 등 모든 면에서 당시 관객들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었는데봄의 제전은 피에르 몽테의 지휘로 1913년 5월 29일에 초연을 시작했다“불새” 혹은 ”페트루슈카“등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스트라빈스키의 절충적인 면모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극단적으로 높은 음역에서 연주하는 바순으로 시작하는 서주 부분부터 관객석은 수군거렸고이 가락을 클라리넷과 알토 플루트,오보에 등의 악기들이 나오며 복잡한 음악을 만들어내자 관객석에서 대놓고 욕짓거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그야말로 관객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연을 보게 된 것이다제 1부 2곡의 거칠고 강박적인 리듬이 들려올 쯤에는 이미 관객석은 야유하고 고성방가하는 관객들로인해 아수라장이었다상상을 초월하는 야만적인 안무와 파괴적인 음악이 시너지를 발휘해 관객들의 분노와 야유는 점점 커져가게되고관객들은 휘파람을 불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온갖 쌍욕까지 해가며 공연장에서 난장판을 피웠고 몇몇은 멱살까지 잡고 주먹다짐을 했다고한다이런 혼돈의 카오스같은 상황 속에서도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공연 관계자들은 아무렇지않게 공연을 이어갔다이 곡의 작곡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공연 끝나고 커튼콜 할 생각에 신나서 나가기 좋은 자리에 앉아있었다가분위기가 험악해지자마자 바로 자리를 빠져나왔다고한다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경찰들까지 출동했는데1막이 끝나고 나서야 극장에 출동했고 뭘 어떻게해야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있었다고한다2막에서도 소동은 멈추지않았고공연이 끝날때까지 이 개판오분전은 멈추지 않았다고한다그렇게 ㅈㄴ 큰 파도가 지나간 공연은 무사히 끝나게되는데관객들의 이런 반응은 발레단의 단장이었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어느정도 의도한 상황이었다공연이 끝난 뒤 그는 스트라빈스키에게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것이었다” 라고 했는데이 난장판같은 소동 덕분에 사람들에게 “봄의 제전“이 확실하게 각인되는 노이즈 마케팅이 되었기 때문공연이 끝나고 끝까지 남아있던 많은 지지자들이 박수를 쳐서 스트라빈스키는 쉬지않고 인사했다고한다
작성자 : 짜잔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