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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인이 뽑은 위대한 한국인 top 15
202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하였다. 15위. 유일한 (1895~1971) 독립운동가+사업가+교육자, 사회 사업가이자 유한양행의 창업주 겸 초대 회장 당시 열악한 노동 환경속에서도 근로기준법을 다른 기업인보다 철저히 준수 직원들에게 주었던 월급의 액수가 상당히 높은 노동자를 위했던 기업인 한평생을 조국의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죽어서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위대한 인물 14위.문재인 (1953~)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 병장 만기 전역 사법시험 합격 1982년에는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 변호사 개설 노무현의 절친이자 노무현 정권당시 수석비서 이후 노무현 사망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이사를 맡았다가 민주당을 맡게되고 훗날 19대 대통령이 되었고 뛰어난 정치로 180석의 범여당을 확보하는데 성공 13위 반기문 (1944~) 한국인 최초 un 사무총장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 출신으로는 두 번째 유엔 사무총장 그의 업적으로 2015 파리 기후 협정 집속탄(대량 살상무기) 금지 협약 채택등이 있다 12위 심사임당 (1504~1551) 사실 신사임당의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그녀가 언급돠 문헌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그녀의 정확한 성명은 현재까지도 불명 어렸을때부터 여성임에도 글,글씨,그림 솜씨가 뛰어났다 당대에 뛰어난 화가였지만 아쉽게도 남아있는 그림이 거의 없다 또한 위대한 어머니이자 현모양처로 유명 그녀의 아들로는 이이가 있는데 이이는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11위 이건희 (1942~2020) 국민기업인 삼성의 2대회장이자 세계에서도 밀리지않는 뛰어난 기업인 사회적 기여도 많이 한 인물 여담으로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하였다 제계에서도 소문난 애견가인지라 부하 직원에게 각 계열사 사장 중 누가 보신탕을 먹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한 적이 있는데, 부하 직원이 이유를 묻자 보신탕을 먹는 사장들에게 개를 키워보게끔 강아지를 한 마리씩 선물하려 했다는 일화도 전해질 정도다. 10위 유관순 (1902~1920)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이자 열사.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 중 가장 상징성 강한 인물 3.1운동에 참여하였고 3.1운동당시 옥사한 7500명 중의 한명 그녀는 재판중에서도 논리적인말로 일본재판관을 놀라게하였다 참고로 3.1운동당시 일본 측의 기록을 보아도 3개월간의 진압과정에서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구금자 46,948명으로 한반도 역사상 가장 컸던 독립운동이였다. 9위 안중근 (1879~1910) 구한말에 활약한 계몽 운동가+군인+독립유공자이자 아시아를 위협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인물 민족주의자가 아니였고 그는 모든 아시아 민족이 평화롭게 살다는 평화적 아시아주의를 신봉했다 한국에서 항일운동의 거의 첫번째를 알리는 상징성과 네임드 이자 일본,대만,중화민국에서도 그의 업적을 높게 샀다 여담으로 이토를 죽여서 병합이 빨라졌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이토가 안중근한테 죽기 3개월 전부터 한반도 병합을 빠르게 추진하려는 가쓰라 다로 수상을 필두로 진행중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토를 죽여서 병합이 빨라졌다는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8위 정주영 (1915~2001) 대한민국의 뛰어난 기업인이자 정치인이기도 허다 현대 그룹의 창시자이자 회장이였고 1990년대에 정치에 입문하지만 낙선후 소 떼를 이끌고 방북한 것을 계기로 금광산 관광 사업을 시작하였고 대북사업에 선구자 이기도 하다. 1995년에는 포보스 선정 세계 9위의 부자였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을 회사 부하로 둔것또한 유명한 이야기 또한 박정희가 정주영에게 당시 이명박을 감시하고 아니면 짜르라는 식으로 압박을 했는데 정주영이 지켜줬다는 설도 있으나 진실인지 아닌지는 판별이 불가다 7위 부모님 (?~?) 아버지 어머니 6위 김구 (1876~1949)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동학농민운동의 지휘관 구한말때 민족운동가 이기도 하다 한국독립사에 빠질수 없는 인물 민족주의자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살린인물이자 수장 5위 김대중 (1924~2009.08.18)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이자 70~90년대 네임드 사회운동가 박정희와 싸우면서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 되는 정치인 화해와 용서를 중시했고 민주화 이후로 정치적 보복을 최소화하였다 영남-호남갈등을 이용하기도 하였지만 화해의 손짓으로 박정희의 업적을 인정하였다 한국의 정보화를 이끌고 일본과의 관계도 증진시켰다 남북정상회담을 주최하였고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는다 4위.노무현(1946.09.01~2009.05 23)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고졸 학력으로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당시 사법 시험 전체 합격자 60명 중에 단 둘뿐인 고졸 합격자였다 이후 인권변호사를 맡고 활동하다 김영삼의 눈에 띄어 통일민주당에 입당 청문회에서 재벌과 전두환세력에게 일갈하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김영삼이 화합목적으로 야당과 여당을 모두 하나의당으로 통합하자 노무현은 반발하였고 김영삼과 틀어지기 시작한다 이후 지역갈등을 타파하고자 도전하였으나 낙선을 여러번 하였고 이 열정을 보고 감동한 시민들이 한국최초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기 시작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장관을 거쳐, 2002년 제16대 대통령에서 극적으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특유의 권위주의를 버린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에 많은 서민들은 그부분에 공감을 하였다 또한 대통령 중 최초로 귀향을 선택해 서민의삶속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였다 하지만 과격한 언행(대통령 못해먹겠다,미국 응디등)과 다케시마 발언, 저조한 국정 성과, 피아제 뇌물사건과 자살로 회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3위 박정희 (1917~1972) 3~5대 대통령이자 현대의 한국 기반을 만든 인물 독재자로 비판받는 동시에 크나큰 업적으로 칭송받는 대통령 그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 경제) 1.빈곤 해방/ 민생 향상 -식량난 해소로 1961년 빈곤율 66.9%에서 1979년에는 빈곤율 11.2%로 6분의1로 감소 시켰고 1965년 텔레비젼 보급율 0.8%도 1980년에는 83%를 달성시킨다 그 이외 농촌,도시의 인프라(수도,전기)개선과 1960년당시 공식 실업률이 무려 30%였던것을 한자리수%로 줄였다 2.한국 경제의 방향성 설정 이승만과 장면내각이 계획한 제5개년 계획의 문제점이 많아 대규모 수정후 1964년에는 수출지향 전략을 채택해 자유무역과 보호 무역의 장점만을 절충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계속해서 구사해 나갔다 3.한강의 기적과 경제,과학 발전,기타 등등 외교를 통한 비용마련과 포항제철소같은 국가시설 설립 한국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 건설 울산석유화학단지 설립 수많은 자동차산업 육성 수많은 공업단지 조성 수많은 화학공업 육성 수많은 조선산업 육성 수많은 전자공업 육성 또한 당시 북한에서 전기를 수입해서 북한에 의존했던 한국에서 대규모 정전 문제해결을 위한 전력난 해결 (한국전력주식회사를 설립+수력+화력발전소 건설시작) 한국 최초 원자력 건설과 원자력 육성 새마을 운동 식량난 해결 통일미 개발로 한국토지에 맞는 벼 개발과 식량자급 해결 지나친 쌀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한국 영양까지 개선 중소기업 육성 또한 중국 화교세력을 단절시켜 화교자본 차단 한국 최초 지하철건설 자본주의 체제 안정화 지하경제를 끝내고 화폐개혁 한국 인적자원과 gdp개선 한자사용을 줄이는 한글전용 정책 군가산점제도 한국최초 주민등록증도입 국민건강보험의 기초설계 국세청 설립 부가가치세도입 산재보험, 국민건강보험 등 복지정책 대거도입 또한 예로부터 한국에서 홍수로 죽는사람이 매해있었으나 승압산업 실시로 수많은댐과 보를 건설해 한반도 역사 최초로 재발하던 홍수를 예방하여 막대한 인명피해를 막았다 구한말부터 시작된 나무없는 산에 산림녹화 시작 이후 한국산에 보이는 나무 대부분이 이때 심었던것이고 1982년 심지어 지금까지도 세계 유일 삼림녹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또한 산림녹화뿐만 아니라 연료림또한 많이 심어 재생가능한 수많은 연료림을 확보하는데 성공 또한 사방사업을 통해 구한말부터 진행되던 국토자갈화와 모래이동을 획기적으로 막는데 성공하였고 구한말부터 진행되던 화전농업 역시 금지하고 관리하였다 한국 최초 그린벨트 지정과 한국 최초 국립공원 지정 국제관광도시 조성과 오늘날의 감귤 제주도와 역사가 넘치는 경주이미지를 이때부터 이미지화 시켜 수많은 관광산업을 경주와 제주도에 조성 본격적인 과학기술 개발 공무원 채용 학력제한 철폐 전국민 과학운동전개 수많은 특성화고 설립 적극적인 고등교육 관리 한국최초 직업훈련제도 도입 현재까지도 쓰는 k2소총 뿐만아니라 자주국방의 시작과 발전 국방과학소 설립 등등이 있다 2위 세종대왕 (1397~1418) 광개토대왕 다음으로 대왕명칭으로 불리는 군주 goat 농업/복지/음악/미술/언어학/역사학/수학/과학/의학/군사등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세계최초 만들어진 기록이 남아있는 한글을 발명한 천재군주 1위 이순신 (1545~1598) 임진왜란당시 구국의 영웅 일본의 해상보급을 초토화시켜 보급을 완전히 끊게 만들었고 세계 해전역사상 최고의 승리와 수많은 해전에서 승리한 위대한 제독 말그대로 하나의 전쟁의 판도를 뒤바꾼 영웅
작성자 : ㅇㅇ고정닉
지주는 쇠락해도 부동산은 잘나가는 이유...jpg
지주. 인류가 문명사회 진입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 그러니까 최소 95-97% 에 달하는 기간 동안 지배계층으로 군림해온 집단임.그러나 지주는 현재 대부분의 산업 국가에서 몰락했거나 존재하더라도 주류가 아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현 21세기에 신봉건제라는 말을 탄생시킬정도로 건물주들과 리츠는 월세로 큰 수익을 거두고 있음.언뜻 보면 건물주나 지주의 메커니즘은 비슷해보임. 특히 소작농 또는 노동자의 소득 일부를 가져간다는점에서.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안 갈거임. 도대체 지주 대부분은 사라지거나 몰락했는데 건물주는 잘나가는가. 이에 대해서 알려면 부의 원천이란 개념부터 알아봐야 함.1. 부의 원천일단 국가도 군대도 전부 인공적인 개념임. 인류가 부족으로 사냥하고 살던 인류가 타고난 이후 대부분 시절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는거임. 즉 토지에서 나는 수확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주란 개념 자체가 국가 이전에 오는것이란것이고 군대 또한 토지를 소유하고 그로부터 부를 창출해낸다는 그 개념 이후에 만들어진 집단임. 실제로 보통 부족간의 전쟁이 있더라도 이 경우 건장한 성인 남성들이 일시적으로 위기시에 모이는것. 일시적일수 밖에 없는게 그 전사들도 자기랑 자기 자식 밥을 먹여 살려야 함. 그러니 계속 싸움질만 하고 있을순 없다는거임. 그렇기에 군대는 비생산적 집단이라고 얘기하는거고.[ 나중에는 왕이 아예 땅을 분배해서 가신들의 충성을 확보 ]그리고 이건 저장성이 떨어지고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식량에 의존하던 수렵-채집시절까지 이어졌음. 그러나 땅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그로부터 대규모 생산물을 수확 가능해지는 시점에 오면 얘기가 달라짐. 왜냐면 이제 여기서 나는 생산물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그 누군가가 건장한 전사들에게 사냥보다 리스크가 덜하고 보상이 나은 조건을 제시할수 있게 되었음.나를 따르면 너에게 사냥할때보다 2배나 3배 많은 식량을 주겠다 했고 이를 통해 충성을 구매한거임. 그리고 이는 감정에 쉽게 흔들리는 카리스마나 우정에 기반한 충성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견고했음.바로 원래 사람의 인심을 사고 사냥감을 베푸는 관대한 자야말로 지도자가 될 수 있던 수십만년간의 수렵 채집 시절에서 오히려 무자비하고 잔인한 인물이 더 많은 이익을 통해 충성을 확보하고 오히려 관대한 지도자를 압도하고 지배자로 등극할수 있는 방법이 마련된것.왜냐면 안정적인 대량의 식량이 생산 가능해진 농업 이후 전사들의 충성은 단순 인심을 사는데서 나올 필요가 없어졌거든. 우정이나 관대함보다 더 확실하고 오래 가는 충성을 땅에서 나오는 식량을 통해 구매가 가능해졌으니까.갑자기 왜 이런 역사 배경 지식을 설명하고 있냐면 농경 시대 이래 토지란 곧 부의 원천이자 우리가 생각하는 전투에만 집중하는 군대란 집단이 생겨날수 있는 기반 그 자체로 지주는 곧 지배계층을 이른다는걸 얘기하는거임. 왕이나 귀족등.그리고 이 세상을 지배하고 정치마저 좌우하던 지주 집단이 점진적으로 힘을 잃은 이유는 정확히 이 부의 원천의 독점이 사실상 깨졌기 때문임. 산업혁명과 함께. 2. 지주의 쇠락[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동인도회사의 수장으로 인도 무역 독점을 통해 영국 최대 지주들에 비견할수 있는 부호가 된 조시아 차일드 ]그렇기에 지주란 집단 자체가 사회 경제의 지배계층에서 서서히 몰락하는 확실한 시작점이 된 곳은 영국임. 그 이전까지는 여느곳에서 그 토지란 생산 기반을 누가 지배하느냐 즉 토지 소유권의 이전 문제지, 토지 자체를 가진 집단이 힘을 잃어버리는게 아니었음.누구는 상업도 있었지 않느냐?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산업혁명 이전의 상업은 곧 토지에서 나는 여러 생산물을 교환하는등의 유통 및 거래 행위였고 이런 거래 행위에서 나는 차익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거임.즉 지주 평균보다 훨씬 부유한 몇몇 거상들이 17-18세기 초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의 원천이란 측면에서 여전히 토지에 묶여있었고 사회의 지배층도 지주였음. 그래서 국가에서 제일 부자인 거상들조차 그런 지주집단으로 이루어진 귀족등의 모임에 낄려고 노력했음.[ 농업경제 vs 산업경제 ]그러나 산업혁명은 토지에서 벗어난 생산 요소인 자본이 경제에 도입되기 시작했다는거임. 무슨말이냐하면 공장이 토지 위에 지어지긴 하지만, 토지 그 자체에서 나는 감자나 쌀이나 그런게 아님.얼마나 많은 기계나 인력을 투입하느냐에 따라 단순 땅의 넓이나 또는 날씨와 상관 없이 대량의 생산품을 쏟아내고 그를 통해 얻은 자본을 또 재투자해 확대재생산이 가능했음.그리고 이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으로 1700년대 4명 5명 정도 있을 수준의 대부호가 1850년대에 수백명 단위로 즐비하게 되었다는거임. 그야말로 생산량이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19세기 이후 검정색 ( 제조업 ) 의 비중 폭증 ]이게 뭘 의미하느냐하면 더 이상 부의 원천은 토지만이 아니게 되었을뿐 아니라 오히려 토지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산업보다 훨씬 적어졌다는거임. 1800년대 초즈음에 이미 영국 세입의 과반 이상이 영국 공업품에 대한 물품세나 관세등으로 충당이 되기 시작할 정도로. [ 영국 농산물 가격 하락 ]여기에 187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흉작과 함께 미국산 저가 농산물이 덤핑 수준으로 들어와 농산물 가격 대폭락으로 적자를 보며 지주들은 대거 몰락함.이에 대해 왜 지주들은 견제를 안했겠냐 하겠지만 사실 했음.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고 자본가들의 금력이 지주를 뛰넘었던데다 그 이전에는 서서히 진행되었고 자신들도 그런 산업혁명의 투자자로 이익을 보았기 때문. [ 1820년대 이후 세계 GDP 폭증 ]그래서 중남미나 동남아 지주들은 설령 국가 발전이 지체되더라도 자기 기득권을 위해 산업화에 훼방을 놓는 경우가 있었음. 그러면 또 한가지 의문이 들거임. 그냥 토지에서 이전처럼 꿀 빨면 되는거 아니냐? 하지만 토지는 인플레이션 방어가 안된다는 문제가 있음. 특히 산업혁명 이전 0.01% 성장이 아니라 1-2% 이상 될 경우 농업 기술은 그에 맞춰 무한히 진보하는게 아니라서 농업 생산성이 못따라잡거든.그에 비해 산업은 이것의 수십배로 증가하고 그 산업을 뒷받침하는 금융 자본은 아예 수백배 증가했음. 봉건영주의 경우 토지 가치 대비 비용을 제하고 고작해봐야 연 1-3% 가 보통 수익이었으며 이마저도 내년에 반드시 증가한다는 보장은 없었음.[ 1에이커당 벌어들이는 수확물의 가치: 1800-1839년까지 성장률이 미미함을 알 수 있음 ] 그러나 19세기 자본가들은 자본 투자금 대비 15-30% 의 수익을 거두고 금융은 20-50% 높게는 200% 까지도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았지. 즉 이 경제의 팽창속도를 토지에서 창출되는 부인 농산물, 소금, 목재등 자원이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는거임.그리고 경제가 팽창하면 뭐가 일어남?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만 위에서 얘기했듯 농업 생산성은 인플레이션 따라 올라가는게 아니었고 그 결과 사실상 정체된 소득 대비 노동의 가격도 도시의 상품 가격도 올라갔음. 그렇게 되니 상류층과 어울리기 위한 품위 유지비를 위해 결국 금융가에 대출까지 할 지경까지 내몰리나, 농업 소득성장은 여전히 전체 경제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음. 그 와중 이런 제조업에서 벌어들여 더 강력해진 중앙정부는 전에는 못했던 과세까지 단행.[ 빅토리아 시대 농업 소득 25% 를 은행 대출 이자로 지급 ]그 결과 100년전만 해도 사회 지배계층으로 군림했던 지배계층은 성장에 따른 인플레에 따라오는 유지비용 증가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농업소득 그리고 대출 이자 양쪽에서 갈려나가며 상당수는 빚쟁이로 전락하고 수백년동안 가문의 상징이었던 토지를 자본가와 은행에게 매각하며 끝마쳤음. 이는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Crédit Foncier 와 같은 은행들이 프랑스 시골의 토지를 귀족 가문에서 부르주아 즉 자본가와 금융가 가문들오 소유권응 이전하는등 산업화되는 전유럽에서 일어나기 시작함.[ 도시 부동산으로 전환해 번성하고 있는 카도간 백작 가문 ]물론 이와중에도 소수 투자를 잘하거나 자본가나 금융가들과 결탁해 살아남은 지주층도 존재하지만 현재 이들의 주 수입원은 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물이 아님. 이렇게 한 때는 수백명 심지어 수천명도 지탱 가능한 부의 원천이였던 토지는 지주 일개인도 지탱을 못할 수준이 되었음.그러면 왜 부동산 가격은 인플레이션 헷징이 되냐? 근본적으로 토지와 다른 성격의 그것이기 때문임. 간단히 말해 부동산은 부를 생산하는게 아닌 생산수단으로서가 아닌 가치를 저장하는 투자 자산이기 때문.3. 부동산의 성질지금까지 들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현재 부동산은 엄밀히 말해 전근대 토지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음. 물론 자기가 농장을 사서 소를 기른다던가 또는 농작물을 키워서 판매한다면 이전과 같은 성질의 자산이겠만 보통 우리가 말하는 부동산은 이게 아니지.오히려 대도시나 경제나 상업 중심지에 자본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기에 그만큼 수요가 있고 그에 따른 부동산 가치와 그리고 그걸 임대할려는 정도에 따라 시장에서 책정되는 가치임.즉 현재 부동산은 예전의 토지 즉 생산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니는게 아니라, 오히려 금융에 종속된 투자 자산으로서 그 가치를 발하는것이며. 다시 말해 땅 그 자체가 아닌 어떤 입지와 주변환경을 지니고 있느냐가 그 가치를 결정하기에 부동산은 땅보다 위치를 사는거에 가까움.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살려는건 일자리 기회, 커리어 기회, 여러 인프라등이 몰려서라고. 전근대에 궁정 근처의 주택이 매우 가치가 높았던것처럼 말임. 설령 그게 아무 생산을 하지 않더라도.왕이란 권력자에 가까워지는 그 근접성이 궁정 근처의 주택 가치를 결정지었다고. 그런데 이게 따로 현금 유동성을 창출해내진 않지. 그래서 많은 지주와 귀족들은 결과적으로 이런곳들조차 자신의 유동성이 떨어져 나중에는 자본가들에게 매각하게 됨.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부동산은 자본과 인력 그리고 정보의 중심지나 인프라에 근접한 위치등을 고려해 가치를 매기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헷징이 되는 자산인거임.간단하게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인을 얘기할때 소를 몇마리 사육할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농산물을 수확할수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게 이런 이유지.오히려 현재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인은 도심 인구 증가, 금리, 인프라, 대출등 레버리지, 교통과 일자리, 공급 대비 수요등임. 그렇기에 산업이 망하거나 인구가 줄어 유령도시가 되면 설령 땅은 그대로라도 부동산 가치는 떡락하는거임.즉 부동산 투자는 봉건 지주로서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라기보다 금융 투자자로서 위치와 인프라등에 따른 가치를 보고 매입하는것이다라고 말하는게 맞음. 시골 촌 동네 저렴하고 농사 잘되는데 거기 투자하는 사람 별로 없듯.그렇기에 여러 대형 펀드들이나 금융기관들이 부동산에 투자하는것처럼, 현재 부동산은 오히려 금융 투자자들이 대거 참여가 가능한거임. [ 캐나다 젊은 세대의 절반이 급여 50% 이상을 월세로 지출 ]다만 사실상 경제적 기회나 양질의 일자리가 대도시 몇곳에 몰린 상황에서 좋은 입지를 선점해 소득의 높게는 절반 가까이 월세로 가져가는 모양새가 마치 예전 봉건 지주의 그것과 유사하다해 신봉건주의라 하는거임.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전 봉건지주가 소유한 토지랑은 전혀 다른 개념이고 그렇게 토지랑은 다르기에 투자 자산으로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는 이익을 거두면서 현대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번성하기에 금융위기때 부동산 가치도 영향을 받는것.
작성자 : 학생회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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