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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플랜의 망령

ㅇㅇ(210.100) 2025.08.13 09:54:42
조회 85 추천 0 댓글 0

1955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세워진 ‘프루이트 이고’라는 2,870세대수의 주거단지는 세워지기 이전부터 건축매체로부터 최고의 아파트로 칭송 받았다. 이 단지는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 미노루 야마자키(그는 2001년 테러로 무너진 뉴욕무역센터도 설계했다)의 설계로, 그 당시 세계건축계를 이끈 르 코르뷔제와 국제건축가회의(CIAM)가 주창한 신도시에 대한 마스터플랜 강령을 충실히 추종하여 ‘미래도시의 모범’으로도 불렸다. 합리와 이성을 절대가치로 믿는 모더니즘을 시대정신으로 가진 그 강령은, 7만여 평의 땅 위에 11층의 33개동의 아파트를 균일하게 배치시키며 흑인과 백인가구으로 나눈 후 모든 공간을 기능과 효율로 재단하여 분류하고 계급화시켰다. 보랏빛 꿈을 약속한 마스터플랜은 마치 전지전능이었다.



우리의 미묘한 삶을 그렇게 쉽게 예측하는 일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예컨대, 세탁이나 육아 같은 공동의 공간은 환기와 채광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공동(空洞)의 공간이 되더니, 급기야 마약과 강간 살인이 연이어 일어나고 말았다. 계급적 분류는 계층별 갈등을 부르고 결국은 단지 전체가 인종분규와 도시범죄의 소굴이 되고 만다. 움직일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2대 밖에 안될 정도로 절망의 땅이 된 이 ‘미래 도시’를 보다 못한 시 정부는 1972년 다이너마이트로 전체를 폭발시켰다. 1972년7월15일15시32분. 이 단지가 폭파된 순간을 적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건축가 찰스 젱크스는 이를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한 순간이라고 했으며 그로써 마스터플랜이라는 도시 만드는 방법은 서구에서 폐기된다.

그러나, 이 폐기된 마스터플랜이 우리 땅에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했으니, 1970년대 경제개발이 광풍처럼 몰아치면서 —종합계획도, —개발구상도 같은 이름의 지도들이 이 땅에 난무한 것이다. 모두 마스터플랜의 다른 말인 이 지도들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우선 각종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 색채에는 중요한 권위가 있어, 붉은색이면 상업지구를 나타내며 노란색은 주거지구, 보라색은 공업지구 등으로 색채마다 건폐율과 용적율이 달라 땅값의 차이로 등급을 갖게 된다. 도로에도 계급이 생겨, 고속도로, 간선도로, 분산도로, 집적도로 등 도로별로 속도제한을 두고 도로폭을 정하며, 도로변에 짓는 건물의 종류와 높이와 모양까지 규제하고 등급을 둔다. 공간구조도 위계적이다. 도심이 있고 부도심이 있으며 변두리도 있어, 변두리 근린생활시설에 사는 이들은 도심중심상업시설에 오면 괜한 주눅이 들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마스터플랜이 기적을 이뤘다. 50만 명이 사는 분당이 5년만에 만들어진 것, 이는 세계의 도시역사에 유래 없는 일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도시학자들은 분당을 교과서에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도시가 실패했을까? 아니다. 분당은 성공하였다. 도시가 성공했을까? 아니다. 도시가 아니라 부동산이 성공한 것이다. 주삣거리며 산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주민들이 행복해했다. 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정치가가 지나칠 리 없다. 몇만 호를 짓겠다고 공약하면 건설자본이 붙어서 마스터플랜을 찍어댔다. 

바야흐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야합하여 만든 마스터플랜의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나타나, 수도권의 땅들을 도륙 내더니 영남으로 호남으로 심지어는 제주에까지 신기루처럼 연일 솟아났다. 이런 도시에서의 삶이 행복해졌을까? 이들의 원본이던 프루이트이고 같은 도시에 대해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이렇게 철저히 프로그램화된 거주기계에서는 모험도 낭만도 없으며, 우리 모두를 구획하고 분리하여 서로에게 멀어지게 한다.”며 질타했다. 나는 건축가임에도 이런 도시들에 서면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지 못한다. 모두가 다른 땅이며 다른 삶이었는데 표준적 모형, 표준적 지침을 강제하여 천편일률의 풍경으로 만든 까닭이니 지역의 정체성이 소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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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가 아니었다. 전가의 보도 마스터플랜을 도시에만 휘두르지 않았다. 국토개조라는 시대착오적 용어를 내세우며 4대강을 절단하고 만다. 우리 땅은 곳곳이 다르며 부분마다 독특하고 고유하여 금수강산이라 했다. 특히나 강은 물길마다 구비마다 유별한데 이를 표준적 단면을 갖는 마스터플랜으로 일관하며 뒤집고 파헤쳤다. 양식 있는 많은 학자들이 대자연의 복수를 경고하며 말렸지만, 마스터플랜에 경험이 많다며 그 효능을 과신한 그 분에게는 다소 불편한 잡음으로 들렸다. 잃어버린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언감생심이라, 생태학자들이 예언하는 미증유의 불행이 닥쳐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지만, 녹초라테와 큰빗이끼벌레라니…… 불안과 공포가 이제 강마다 내재한다. 마스터플랜의 망령을 빠져 나오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가……



마스터플랜의 허망함을 아는 해외 선진도시는 이미 다른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전체를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라, 주민과 함께 필요한 작은 부분을 개선하고 기다리며 변화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형식, 시간이 걸리지만 시행착오 없는 이 지혜로운 방식을 선택했다. 도시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생물체처럼 늘 변하고 진화한다는 이치를 터득한 이 방식은 예산도 많이 들지 않지만 무엇보다 과정이 민주적이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개발이 아니라 재생이라는 지금 시대의 가치와 부합한다. 급기야는 우리도 도시개발에 대한 의식이 서서히 변하여 마스터플랜 시대가 이 땅에서도 저물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정부에서 DMZ개발을 추진하는 듯하더니 최근에는 대규모의 마스터플랜들을 발표하였다. 모두들 아는 바와 같이 비무장지대는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땅이며, 3국의 국경이 만나는 핫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혹독한 역사를 바탕으로 형성된 곳이다. 그러나 발표된 그림은 예전처럼 천지개벽이었다.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때에 그런 큰 그림을 품을 수 있다 하자. 그러함에도 진심으로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부디 조금씩, 하나씩, 천천히 하시라.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우리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의 것이며, 우리는 이를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인 까닭에......




2015.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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