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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카 후기]군생활이 곧 아도였던 군붕이의 요다카 후기 (초장문)
<이 글은 무척 장문이므로 주의 요망.> <갤주 노래 개쩌는건 두말하면 입아프니 본인의 경험 의주의 글을 썼음.> 서론 : 어쩌다가 군붕이가 일본까지 가려고 마음 먹었는가 나는 아도라는 우타이테를 알게 된 지는 꽤 오래되었고 스스로 팬이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닐 정도의 사람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등하교 내내 아도 노래를 들었으니 팬이라 하기엔 부끄럼 없었으리라. 하지만 굿즈를 산다거나, 콘서트를 보러 간다거나 하는 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그런 오프라인 컨텐츠에 관심이 크게 없기도 했고 극히 내향적인 성격에다가 학생 이슈로 경제적 문제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내가 콘서트를 보러 기어나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대 덕분이었다. 군생활 하면서 음침하고 어두컴컴하던 성격이 조금은 외향적이게 바뀌었고 오프라인 컨텐츠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개짬찌 일병시절 유튜브에서 우연히 히바나에 관한 정보를 보았고, 나는 훈련 기간만 안 겹치면 갈 수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약 반년 뒤의 공연을 덥썩 예매해버렸다. 요즘 군대는 콘서트 하나 보러 가기엔 충분한 월급을 주다 보니 돈 걱정할 필요가 없던 것도 컸다. 그렇게 히바나를 기다리며 일병 6개월은 순식간에 흘러 상병이 되었고, 휴가 타이밍에 기가막히게 아무런 훈련이 없어 히바나를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주한 아도는 가히 상상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유튜브에서 라이브 영상을 가끔 봤지만, 당시만 해도 ‘라이브는 뭔가 애드리브가 과하네’ 같은 생각을 했었으나 현장에서 목도한 그것은 팬심을 신앙심으로 바꿔버릴 만한 가공할 위력이었다. 나는 그 광경에 압도당해 펜라이트를 흔드는 것도 잊은 채 입을 떡하니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반드시 요다카에 가야겠다고. 본론 : 요다카를 향하여 요다카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표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군인이고 선행 티켓을 얻기 위한 하나셀을 만들 기회조차 없었다. 여권도 없고 해외 결제가 되는 카드조차 없던 시점이었다. 우선 열심히 갤질하여 여러 아붕이들의 도움을 받아 비밀기지 등등을 가입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결국 일본 전화번호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일권을 주워 공연을 보고 그마저도 못 먹으면 돔 밖에 드러누워 시제석 영상이라도 찍는다는 야수를 넘어 금수의 심장에 가까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런 내게 동앗줄이 하나 내려왔으니. 한 아붕이가 티켓보드에 대한 글을 썼던 것이다. 그것을 확인해보니 이메일 주소만으로도 신청이 가능했다. 그렇게 도쿄돔 S석과 A석, 교세라돔 S시제석 A시제석을 먹을 수 있었다. 드디어 티켓을 구한 것이다. 이때 나는 어느새 병장이 되어 있었다. 군인의 신분으로 해외를 가는 것. 그것은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여러 절차가 있었고, 숙박 장소와 비행기편을 사전에 보고해야 했던 탓에 더 싼 숙소나 항공편이 생겨도 바꿀 수 없었고 여러모로 불편함이 있었다. 심지어는 도쿄와 오사카를 쭉 이어서 가기엔 휴가가 하루 모자라 도중에 복귀하고 다시 나가야 하는, 역대급 스케쥴이 탄생했다. 그래도 정말 다행히, 요다카의 공연일은 내가 말출을 나갈 기간이었고, 훈련이 있든 대기가 있든 알빠노를 시전하고 출국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 계획을 간부에게 보고했을 때 진짜 대단한 놈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어느 군붕이가 말출에 찍턴을 해외로 하겠는가. 아마 우리 부대 역사에 남을 말출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다시 흘러, 말출을 출발할 날이 다가왔다. 나는 해외여행을 많이 경험했으나, 혼자 떠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긴장도 하고 설렘도 있었다. 첫 여행이 콘서트 원정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오히려 좋다. 내 처음을 갤주에게 바치다니 으흐흐 도쿄돔 1일차 아침을 먹고 곧바로 돔으로 향했다. 돔은 멀리서부터 그 엄청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괜히 꿈의 무대가 아니구나 싶었다. 굿즈 정리권 까진 시간이 남았으므로 가챠줄부터 섰다. 내 옆에 전신에 굿즈로 무장한 현지 아붕이가 있었다.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어 보았다. “이게 그 하룬인가요?” 원래 살 예정에 없었으나 그 아붕이가 가진 하룬을 보니 갖고싶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꺼내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 굿즈에 대해 스몰톡을 나누다가, 어디에서 왔느냐, 공연은 처음이냐 등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가진 콜렉션만 봐도 알 수 있었지만 역시 그 아붕이는 엄청난 고인물이었다. 조금 친해지니 웬 종이를 꺼내더니 현장에서 만난 아도민들의 이름을 모으고 있다며 펜을 함께 건내주었다. 어차피 읽지도 못할 테지만 내 본명을 그곳에 적어주었다. 현장의 재미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뭐 그렇게 시간은 흘러 타와레 부스에서 앨범도 사고 라쿠텐 굿즈도 받고, 현판 굿즈도 사고. 현장의 모든 컨텐츠를 즐긴 후 아도 노래를 틀어주는 라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아도 노래라니. 굉장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공연시간이 다가왔다. 그렇게 돔에 들어서는데 내 자리가 심상치 않았다. 입장하고 계속...계속 왼쪽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어디까지 가는거지? 싶을 때쯤,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세상에 맙소사. 나는 이 넓은 돔에서, 이 많은 5.5만명의 사람 중에서 가장 좌측 끝에 앉아버렸다. 내 왼쪽은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이렇게나 극단적인 자리일 수가. 아마도 저정도 위치였던 것 같다. 이게 시야제한석이 아니라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아도박스고 나발이고 스크린 대부분이 각도 탓에 보이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한지 20여분이 지나서야 아도가 지상이 아니라 저 위에 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정도다. 심지어 주변 대부분은 목석. 그렇겠지. 절반은 그냥 빈자리니까. 나는 그 순간 현장에 있지 않았다. 굉장히 발전한 시대의 블루레이 앨범을 보고 있었다. 그런 아쉬움을 삼키며 공연을 보고 있었으나, 역시나 아도의 노래는 파괴력이 엄청났다. 대체 언제 쉬는거지 싶을정도로 몰아치는 곡들에 감탄이 나왔다. 또 이런 불편하기 그지없는 자리일지라도 한가지 장점이 있었으니, 펜라이트가 정말 예쁘게 보였다. 특히나 '바람과 나의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산호초가 가득한 대양 속을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레이저와 펜라이트 연출만큼은 참 잘 보였다. 그 아름다운 광경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찾아온 MC시간. 아도가 긴 이야기를 할 거니까 앉으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스와레” 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그 말에 빵 터졌고 아도 본인도 웃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정말이지 진지하고 또 어두컴컴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티스트라는 것에 깊은 유대감과 애정을 느꼈다. Ado라는 존재와 자기 자신의 괴리에서 오는 고민. 예전부터 캐릭터(아바타)등을 내세워 활동하는 사람들은 줄곧 호소해 오던 일이다. 또는 페르소나(사회적 가면)를 내세운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도가 나보다야 나이가 많지만 그래도 한참 어린 나이지 않은가. 이만한 관심의 무게가 어떨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나 분명 엄청난 무게임이 틀림없다. 그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Ado라는 가공의 존재 너머 목소리를 내고 힘을 전해주는 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랄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응원하고 또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대에 부응하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이미 나에게, 우리에게는 별처럼 반짝이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아도가 울기 시작했을 때에는 나도 눈물이 절로 나왔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응원해 온 사람일수록 분명 더 큰 감정을 느꼈겠지. 내가 첫 공연부터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애석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눈물의 MC가 끝난 이후. 굉장히 긴 시간 동안 무대는 파란 화면만이 떠 있었다. 일반적인 앵콜 준비 이상의 시간 동안 고요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 싶던 순간 내 눈을 의심하고야 말았다. 무대 뒤편에서 초대형 하쨩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초대형 하쨩 풍선의 등장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돔 전체에서 가장 좌측에 있었으므로. 내가 그 하쨩을 처음 발견한 인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내 자리가 가장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 하쨩에 타 있는 것이 스태프 쯤이나 되는줄로 알았다. 팔을 휘적휘적 하길래 긴테나 인형 등을 뿌리는건가 생각하고 있던 찰나. 아수라쨩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 하쨩에 타 있는 인물이 마이크를 쥐고 손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인식한 순간 나는 눈물이 흘렀다. 내 바로 직선거리 10미터에 아도가 있었다. 얼굴에 검은 면사포를 쓴 것으로 보였다. 정말 잠시였지만, 아도와 정말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수많은 펜라이트 중 하나로 보이겠지만, 이 인사가 전해지기를 바라며. 나를 보았을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의 마음은 분명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고 또 기쁜 마음으로 앵콜을 즐겼다. 진짜 마지막으로 불가해까지 부른 후 공연은 막을 내렸다. 불가해를 들으며 계속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아직 남은 공연이 많았기에. 웃으며 돔을 나올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도쿄돔의 명물. 나갈 때의 강풍을 경험하며 인파에 휩쓸려 자연스레 돔을 떠났다. 첫날의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숙소로 가는 길에 아도 노래를 틀어주며 호객하는 야키니쿠집이 있길래 홀린 듯 들어갔다. 주문을 받으며 잠시 스몰톡을 했는데, 직원들은 한국인이 이 가게에 오는 일이 흔치 않은데 아도를 보러 일본까지 왔다니 대단하다고 했다. 가격에 깜짝 놀랐으나 아도 굿즈를 입고 들어온 주제에 한 판만 시키고 도망치기엔 갤주 체면이 서질 않으니 조금 더 시키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2일차오전의 남는 시간에 다이바 라운드 원에서 굿즈도 사고 피규어를 뽑았다. 내가 게임을 드럽게 못한 덕분에 돈은 녹아내렸고 손이 덜덜 떨렸다. 결국 직원이 6번쯤 문을 열고 자세를 고쳐준 덕분에 뽑을 수 있었다. 1만엔을 넘기고 나니 이젠 좀 뽑으라는 듯이 말 그대로 툭 치면 떨어질 위치까지 옮겨주었다... 자세히 얼마나 썼는지는 모르는 편이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 돔에 입성했다. 오늘의 자리는 A석. 이번에는 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흔히 말하는 하느님 석에 앉았다. 어찌 이렇게 극단적일수가. 아레나 석에 앉은 아붕이들보다 돔 뚜껑이 더 가까웠다...일단 자리에 앉아 공연을 기다렸다. 그러던 와중 내 옆자리에 사람이 앉았는데,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딸아이를 데리고 온 애아빠였다. 나는 어제 주변이 목석이었던 것이 아쉽기도 했고 현장까지 온 김에 최대한 즐기겠다는 생각으로 말을 걸어 보았다. 부녀는 같이 아도의 팬이라고 했고 콘서트에 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히바나때가 처음이었고, 어제도 왔었다고 하니 좋았겠다는 반응이었다. 난 무심코 스포하지 않도록 입조심해야겠다 생각했다. 펜라이트를 안 가지고 있길래 딸 아이에게 내가 들고 있던 하룬이라도 빌려주겠다 했으나 사양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아도를 보기 위해서 여행을 왔다 하니 적잖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한술 더 떠서 군인이라는 말 까지 듣더니 고생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등의 말을 해줬다. 일본인에게 들을 줄은 상상도 못한 말이라 놀라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불이 꺼지고 2일차 공연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주변의 분위기. 음향세팅. 갤주의 컨디션 등 모든것이 어제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느꼈다. 특히나 주변이 아주 열심히 호응하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 옆자리 애아빠는 펜라이트 불빛을 보더니 살걸 그랬다며 잠시 후회했으나 맨몸으로도 흐느적거리는 춤을 춰 가며 열심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A석은 라이트팬이 많다 보니 펜라이트가 없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박수를 굉장히 찰지게 쳤다. 락스타처럼 박수 호응이 중요한 무대에서 나는 엄청난 뽕에 취할 수 있었다. 내 앞자리에 조용히 호응만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혜성열차가 나오는 순간 갑자기 엣?!!! 하는 반응을 보이더니 "아도ㅡㅡㅡㅡ!!! 아리가또ㅡㅡㅡ!!!!" 하며 엄청난 사자후를 갈기는게 아닌가. 나는 이때까지도 혜성열차라는 곡을 잘 몰랐으나 본토 오타쿠들에게 무언가 굉장히 소중한 곡이구나 생각했다. 신곡 아이아이아는 첫날에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으나 (못했다고 하는것이 적절할 것이다) 2일차부터는 슬금슬금 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처음에 곡이 난해하다 싶었으나 갤주의 차력쇼를 즐기기에는 아주 좋은 곡이라 생각한다. 이번 자리는 아주 높기는 했으나 중앙에 가까웠기에, 갤주의 춤도 잘 보였고 무대 연출도 다 보였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것은 이바라가 나올 때 아레나 석의 펜라이트로 Ado 타이포를 그려낸 것이다. 중앙에 크게 Ado가 써지고, S석에서는 Ado 타이포가 차라락 흘러지나갔다. 그 와중에 터지는 긴테. 굉장히 아름다웠다. 원래도 이바라는 좋아하는 곡이었으나, 이젠 이바라를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 현장의 라이브, 그 풍경. 정말 끝내줬다. 2일차 MC는 다행히? 갤주가 울지 않았다. 그리고 앉으라는 명령조에서 부탁으로 바뀌었다.('스왓테 쿠다사이'로 기억한다.) 이런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가 하루라도 놓치기 싫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이 MC가 굉장히 감동이었는지 옆자리 부녀가, 특히 딸 쪽이 많이 울었다. 이후에 찾아온 앵콜에서는 둘이 아주 무아지경이 되어서 아도를 외쳤다. 하쨩이 나타날때 놀라는 그 반응이 아주 맛있었다. 하쨩에 타 있는 아도를 향해 아주 열심히 아도ㅡㅡㅡㅡ!!! 외치는 것이 원래라면 겐멘이라며 눈살을 찌푸릴 일이었지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하쨩의 스시 보다도 위에 있었기에, 어제만큼 가까이서 보지는 못했으나 어제 이상으로 뜨거운 인사를 보냈다. 2일차 공연에 더없는 만족감을 느끼며 돔을 나섰다. 아직 교세라가 남았지만, 오늘은 꼭 돔에 남아서 그 여운을 즐기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긴테 나눔도 받고, 브로치 나눔도 받았다. 정말 감사하다. 내게는 히바나부터 이어져온 작은 소망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응원봉을 빙 둘러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우연히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에서 보았던 사진인데 너무 예뻐서 나도 꼭 찍고싶다고 생각했다. 이런건 하고 싶은 사람이 행동해야 하는 법. 어차피 다들 같은 아도민에 여운에 젖어있을게 뻔하니 거절당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즉시 행동에 나섰다. 나는 주변에 단체로 사진 찍고있는 일본인 그룹에게 말을 걸었다. "아노 스미마셍... 펜라이토오 빙구 마왓테 샤신 톳테미타인데스가 잇쇼니 도데스까?"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게 제대로 된 문장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했다. 그렇게 사람을 모아 사진을 찍으니 정말 예뻤다. 교세라에서도 해야지, 앞으로 모든 콘서트에서 해야지. 그렇게 다짐했다. 내친김에 단체샷도 찍고 싶어서 현장에서 만난 한국 아붕이 몇과 다른 일본 그룹, 프랑스 그룹과 접선하여 단체샷마저 성사시켰다. 다들 좋은 사진을 건졌다며 주먹인사도 하고 행복하게 웃으며 사진 찍었다. 도파민이 최대치로 돌아버린 나는 그 현장을 지휘했었다. 내가 뱉는 말이 한국언지 일본언지 분간도 안 갈 지경이었으나 소통은 원활히 되었고 잘 진행되었다. 그때의 감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깊은 여운을 뒤로 한 채. 나는 부대로 복귀했다. 이제 교세라를 준비할 시간이다. 중간 굿즈 결산. 블레 사느라 돈을 아주 탈탈 털었다. 오사카 교세라로 떠나기 전. 내게 아주 중요한 성과가 있었다. 까딱하면 시제석에서 공연을 볼 뻔 했으나.(물론 못 보는 것보단 훨씬 좋은 일이지만) 다행히 양일 SS석을 양도받을 수 있었다. 아갤이 정말 유익하다.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남긴다... 그렇게 표도 받았겠다, 오사카로 기쁜 마음으로 떠났다. 오사카는 7일 정도 길게 예정을 잡았기에, 관광을 많이 했으나 줄이겠다. 갤주 관련 여정만 잠시 담자면 신오사카 신칸센역 앞의 광고. 우메다 타와레에 있던 광언 LP...지금은 후퇴하지만 다음 일본에 갈 때면 반드시 구해오겠노라 다짐했다. 교세라돔 1일차 교세라돔의 첫 인상은 뭔가...공장 같았다. 이게 돔...? 싶은 몬생긴 외형에 신기해 하면서 아도로자 굿즈 부스로 향했다. 내 첫 인형을 갖게 된 순간. 사진 찍을 맛이 나는 듯 하다. 교세라는 도쿄와 달리 전광판을 현수막으로 대체한 모습이었다. 이건 이것 나름의 멋이 있어서 좋았다. 바람에 펄럭이는 아도 깃발..크으 이날은 이미 웬만한 굿즈들은 됴쿄에서 구했기 때문에, 열심히 교환을 하러 다녔다. 결국 시크릿 키링은 얻지 못했지만 가챠뽑기에서 나오는 티켓을 교환으로 겨우 구했다. 가챠가 진짜 폭망해 버려 교환만이 답이었다. 4연 팔찌에는 제대로 석나갔다. 이번에도 고퀄 코스어가 굉장히 많았다. 뭔가 너무 예쁘다 보니 사진 부탁하기도 겁이 났는데, 용기내어 말을 걸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다시 찾아온 공연시간. 이날 내 옆자리엔 커플이 앉았고, 역대급 노잼팟이 결성되었다. 주변에 대화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특출나게 콜을 잘 넣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공연에만 집중한 날이었다. 확실히 SS석이 무척 가깝고 또 중앙이었다. 내 지난날 도쿄에서 아쉽게 느꼈던 음압도 역시 거리가 문제였다. 아레나로 오니 아주 빵빵한 음압에 귀가 만족스러웠다. 이 날부터 언마구가 내게 꽂히기 시작했다. 예전에 리듬겜을 하다 잠시 들은 적 있는 듯 하긴 하나, 잘 모르던 노래였다. 그러나 세번째 듣다보니 이거 맛있는데? 하며 스며들더니. 아레나석에서 외치는 워어어 콜에 제대로 취향 저격당했다. 다시 찾아온 MC 오늘 아도는 도쿄 1일차 이상으로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울고있었다. 내용도 큰 틀은 비슷했으나 조금은 달랐다.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머리가 원망스럽다... 아무튼 그렇게 울고 나서도 이바라를 멋지게 불러버린 아도였다. 이번엔 긴테를 잡을 수 있을까 싶었으나 터지는 순간 직감했다. 절대 여기까지 올 일 없으리라고. 긴테가 터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자 고개를 들었으나, 엥? 싶었다. 내 머리 위는 개뿔 근처까지도 오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다. 이윽고 나타나는 하쨩. 지난 도쿄에서 아수라쨩 콜을 제대로 못 넣은 것이 걸려 아주 제대로 준비해 왔다. 그러나 나오는 노래는 아수라쨩이 아니었다. 원! 투! 원투쓰리포! 프리덤이 나와버리다니. 제발 프리덤 프리덤 나와다오 하며 빌었었지만 나는 그걸 듣고도 당장에 프리덤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개쩌는 도파민에 취해 콜만 외치는 좀비가 하나 있었을 뿐. 심장때 했었다는 1분짜리 콜 프리덤은 아니었으나 무척 좋았다. 그렇게 교세라 1일차는 막을 내렸다. 2일차 이날은 반드시 긴테를 얻겠다는 마인드로 오전에 미리 타와레에 가서 긴테 홀더를 샀다. 나중에 오면 아뚜기 떼가 쓸고 지나갈 것이 뻔하다. 다시 들어온 돔.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 날의 주변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옆자리에 한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잠시 대화해도 좋겠냐며 정중히 말을 걸어 오셨다. 나는 기쁘게 수락하여 공연 시작 직전까지 거진 1시간을 떠들었다. 그정도로 프리토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놀랐다. 한 5분쯤 대화한 이후에 혹시 한국인이냐며 먼저 물어보기는 했다. 내가 티나냐고 묻자 발음이 한국인 특유의 발음이라 알았다고 했다. 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60세라고 했다. 내가 20세라 하자 세배라며 웃으셨다. 혼자 아도를 보러 일본까지 왔다는 사실에 역시나 놀라워 했다. 학생이냐 묻길래 군인이라 답했더니 또 놀라셨다. 사실 이쯤되면 나도 반응을 즐겼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예상치 못하게도 군복무를 하는 것에 대한 사과를 건내셨다.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였다. 이런건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라 놀랐다. 나는 지금 군에 있는 것은 북쪽 때문이지 일본의 탓은 아니라고 답했다. 오히려 지금의 일본은 친구라고.(정치적 의도 X 군사적 주적 및 동맹 개념.) 그러자 표정이 한결 밝아 보였다. 뭔가 아도로 하나되는 세계평화 같은 느낌도 나서 기분이 오묘하고 좋았다. 뭐 아무튼 군인이 여기까지 오는건 큰일이었겠다 등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가 한국인이 여길 오기 위해선 일본 전화번호가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을 때엔 로치케의 악랄함에 현지인도 혀를 내둘렀다. 그 악랄함에 대해 말해줄 수록 내게 대단하다고 연신 말해주었다. 이 모든 감탄을 모든 원정 아붕이들에게 전한다. 이 연장선으로 일본인이 부럽다, 아도 보유국이니까. 라고 이야기 꺼냈더니 하긴 한국에는 아도가 없으니까 ww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래도 다른 아티스트가 있지 않냐 물었지만 물론 훌륭한 아티스트가 많지만 내게는 Ado가 최고다 라고 답했다. 할아버지 역시 공감했다. 이후로도 아도의 대단함에 대해, 한국에서도 얼마나 아도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떠들었고 몇번의 숭배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훌쩍 지나, 마지막 공연의 막이 올랐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할아버지가 엄청난 목청으로 환호하는게 아닌가. 내가 들어본 목소리 중 가장 큰 목소리에 속했다. 전생에 사무라이였나? 그래서 나한테 사과한건가? 싶은 헛생각도 들 정도였다. 주변은 전례없는 열기로 가득했다. 그 뜨거운 응원에 땀마저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이 날, 모두가 뜨겁게 불태웠고, 가장 뜨거운 공연이었다. 나는 그 열기 속에서 너무나 행복했다. 쇼의 콜파트 리벨리온과 역광의 펜라 돌리기 웃세와의 콜파트 아이아이아의 콜파트 락스타의 박수 언마구의 워어어 프리덤의 워어-! 킷토 코스터의 쿠라쿠라리 모든 호응들이 역대급이었다. 나는 콜을 외치면서도 울음이 터질것만 같았다. 이 전율은 현장에 오지 않으면 절대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나를 이곳까지 갈 수 있게 해준 모든 아붕이들에게 감사하다. 그 개쩌는 공연을 마무리하며 아도가 다음은 닛산에서 보자고 말했을 때. 내 주변은 에? 어디? 어디서 보자고? 이런 상황이었다. 제대로 들은 한명이 닛산이라고 알려주자 모두가 환호했다. 나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반드시 닛산에 간다. 돔을 나서며, 긴테 나눔을 받기위해 뛰었다. 나와 할아버지에게 긴테를 나눠준 아붕이이게 깊은 감사를.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고 작별했다. 다음 목표는 펜라 사진 찍기. 이번에도 사람이 가장 많은 중앙에서 뭉칠만한 그룹을 물색해 말을 걸었다. 두 그룹 정도를 뭉쳐 함께했다. 역시나 너무나 아름답다. 이젠 노하우도 생긴듯 하다. 닛산에서도 이 원을 그릴 수 있길 바란다. 아쉽게도 단체샷은 찍을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아 패스했다. 최후의 만찬으로 갤주정식을 먹어주고 귀국했다. 내 군생활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은 갤주 덕이 아주 크다. 남들이 그렇게 찡찡거리던 병장을 그야말로 녹여버렸으니.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신세한탄만 하다 보낼 수도 있었던 군생활을 아주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주었다. 난 누구보다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 정말이지 다시한번 군인 신분에 히바나와 요다카 4일 전부 갈 수 있던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적같은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아도를 응원하리라 마음먹었다. 이 모자란 뉴비 아붕이를 이끌어준 선배 아붕이들과 멋지게 활동을 이어가는 우리의 별 Ado에게 깊은 사랑과 감사를 담아 글을 마친다. 이 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 dc official App
작성자 : VI0LET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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