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마스터플랜의 망령

ㅇㅇ(210.100) 2025.07.20 20:46:34
조회 177 추천 0 댓글 0

1972년 7월15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11층짜리 서른세 동의 아파트가 들어선 주거단지를 폭파하여 철거시킨 일이 일어났다. 2차 대전 전쟁영웅의 이름을 따 “프루이트 이고”라고 부르며, 새 시대 새로운 주거를 목표로 1955년에 지은 이 단지는, 가장 좋은 삶터로 평가되어 여러 건축상까지 받았던 바 있었다. 

그러나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천편일률적 공간이 갖는 무미건조함으로 인해 그 속의 공공공간이 무법지대로 변하면서, 각종 폭력과 마약, 강간, 살인 등의 흉악범죄가 창궐하게 되었고, 흑백간의 주민갈등까지 유발하여, 이 주거단지는 도시에서 가장 절망스럽고 공포스러운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불과 17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시범죄의 온상이 된 이곳을 주정부는 폭파로 청산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건축가 챨스 젱크스는, 이 날은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한 날이라고 기록하였다.



모더니즘은 19세기말, 시대적 가치를 상실하여 세기말의 위기에 몰린 사회가 퇴폐와 향락에 이끌리며 문화가 퇴행하던 시절,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을 꿈꾼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찾은 시대정신이었다. 그들은 전통적 양식과 역사적 관습에 억눌린 인간의 이성을 회복시키고 합리적 가치를 최선으로 내세우며 우리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좋은 제품의 대량공급을 목표하며 통계에 근거하여 찾은 표준화라는 방식은 그들의 유용한 수단이었고, 사물을 조직화하고 환경을 체계화하며 수요와 공급을 정량화하는 방식은 그들이 목표하는 사회의 구성원이였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에 대한 과신이 문제였다. 도시를 예를 들면, 땅을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등으로 칠해 상업지역 주거지역 공업지역으로 나눠서 차등하였고, 도로는 도로의 폭과 속도를 제한하며 서열화하고, 도심과 부도심 변두리로 전체를 나누며 계급적으로 만든 도시계획을 과학적 합리라고 신봉하였다. 심지어는 오래 살았던 동네마저 이 도시계획도를 들이대며 재개발하였으니, 이게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viewimage.php?id=3fa8c32fe4c733b46f&no=24b0d769e1d32ca73de883fa11d02831b8cb9d3d20aacaf16d808940f2913b33aad79aad3b7cfa3a58e870327ff27e4d7c0163ae06be273ce4883dfa4bbde013fdbe911981




특히 세계대전 직후 세계의 도시가 개발의 열망에 휩싸이면서, 이 마스터플랜은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져 전세계 방방곳곳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표준적 평면을 가진 집단화된 아파트들, 통계에 의거한 공공시설의 획일적 배분, 빠른 통행만을 우기는 교통계획, 직선화된 길, 각종 주의 표식 등, 어느새 공동체는 사라지고 각 부분의 적절한 배분을 중요시하는 집합체만 남는 도시가 양산 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신도시가 만들어지자, 프랑스 철학자 르페브르는, “이렇게 철저히 프로그램화된 거주기계에서는 모험도 낭만도 없으며, 우리 모두를 구획하고 분리하여 서로에게 멀어지게 한다.” 며 질타했다. 실상 도시의 범죄는 전통적 도시에서 보다 훨씬 증가하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계층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갔다. 모두가 급조된 환경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그 프루이트 이고 주거단지가 폭파되어 사라진 것이다. 모더니즘이 20세기의 유일한 시대정신이라고 믿었던 건축가와 도시학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마스터플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건축시장은 정부의 엄청난 지원을 받는 건설회사가 이끌어왔다. 서울 도시개발 기폭제가 된 강남개발은 정치권력과 건설자본이 그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정도로 그 유착은 공고하였다. 공사만 아니라 기획도 하고 분양도 같이 하게 된 건설회사는 선분양이라는 특혜적 제도까지 받아 그림만으로도 아파트를 분양하며 이득을 챙겼다. 한번 만든 집의 도면은 파일로 저장하여 다음 번에 똑같이 써도 아무 탈이 없었으니 건축설계를 연구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는 아파트단지를 회사이름으로 썼다. 삼성아파트, 현대아파트, 우성아파트…… 수천 명이 모여 사는 마을의 이름이 건설회사인데도 우리는 이를 항의하기는커녕 선망하기까지 했다. 건설회사 전성시대의 거침돌이던 분양가 제한마저 풀리자 넉넉해진 공사비를 확보하게 된 그들은 닭장 같은 건축공간을 해소하기 보다는 기존 것과 똑 같은 공간에 비싼 재료로 치장하며 레미안, 힐스테이트 등의 요상한 이름으로 바꾸고 더욱 비싼 값으로 선분양하였다. 건축설계? 있으나마나 한 그 절차는 건축허가를 받기 위한 요식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요즘, 아예 설계까지 자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법령개정까지 요구하고 있다.



우리 건축법에 규정된 건축의 정의는 ‘건축이란 건축물을 신축 증축 개축 재축하거나 건축물을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이다. 이렇게 허무한 표현이라니…… 그러나, 건축을 건설과 분리시켜, 국토교통부 같은 곳이 아니라 문화부산하 문화유산부로 소속하게 한 프랑스는 1977년에 제정한 건축법에 건축을 이렇게 정의한다.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 건축적 창조성, 건물의 품격, 주변환경과의 조화, 자연적 도시적 경관 및 건축유산의 존중은 공공적 관심사이다.’ 프랑스에게 건축은 문화지만 우리에게는 부동산이라고 법에도 규정했으니 우리네 건축이 어느 나라엔들 앞서겠는가? 





viewimage.php?id=20a4c332e0c021&no=24b0d769e1d32ca73ce880fa11d02831314381a88393e0627f820a8131e3c5db90d5083f29ad9c6c2b36a5ebc8421e999ca1210c39c8eb1f11127bd4f0486ff4809642






모더니즘과 마스터플랜이 간과한 것은 인간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가치였다. 그들은 모든 인간을 집단으로 파악하고자 했으며 개체의 다양성을 묵과하였다. 뿐만 아니라 모든 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장소성을 무시하였고, 그 역사적 맥락과 자연적 환경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래서 산이 있으면 깎고 계곡이 있으면 매웠으며 산악이든 평지든, 대륙이든 섬이든, 모든 곳에 똑 같은 조감도를 걸어 미래를 단호히 예견했지만 결국 모두 거짓이었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데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하루의 계획을 조리 있게 짠다고 해도 수시로 마음이 바뀔 수 있으며, 선과 악을 머리 속에 아무리 구별해도 우리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그 혼돈의 와중에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모든 땅은 얼마나 다 다른가. 기후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며, 생태와 주변이 부분마다 다르고 무엇보다 살아온 역사가 다 다르다. 그 다 다른 땅을 똑 같은 도형과 무늬로 뒤덮으며 한 가지 삶을 강요한 그 마스터플랜의 방법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했다. 어쩌면, 기후변화나 사회의 갈등과 분쟁 등,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재앙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사회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은 마스터플랜의 망령으로 인한 결과 아닌가.



바야흐로 서양에서는 이제,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의 삶을 존중하며 오히려 비움을 그리고, 자연과 화해하는 나눔을 그리는 데, 우리의 이 땅에서는 이미 폐기된 마스터플랜의 망령에 사로잡혀, 비움과 나눔이 가득했던 우리의 정겨운 옛 도시와 아름다운 산하를 유효기간이 훨씬 지난 표준도면으로 여전히 난도질 하고 있는 것이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대박 날 것 같아서 내 꿈에 나와줬으면 하는 스타는? 운영자 25/11/17 - -
AD 겨울가전 SALE! 쿨한 겨울 HOT세일 운영자 25/11/12 - -
2878535 나님은 너희가 인생이란 숲속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나침반이양⭐+ [12] ♥꽃보다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64 0
2878533 주변 사람들이 늙어가는게 눈에 보여 넘 슬프당.. [3] ♥꽃보다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72 0
2878532 중국산 칠판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45 0
2878531 한남들 숨결이 피부에 닿을때 [5] 개멍청한유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46 0
2878528 방금 집에왔어요 [3] 루도그담당(58.239) 08.05 127 0
2878527 좆기로 갈 생각 마라 [4] 밀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272 0
2878525 국비 it [3] 프갤러(220.86) 08.05 280 0
2878524 내 인생은 왜 이리 힘든가요 [5] 개멍청한유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60 0
2878523 PL이 업무 이것도 모르냐는데 [4] 개멍청한유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79 0
2878517 너무 배부르다 [3] 개멍청한유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37 0
2878516 MSSQL은 마소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봐야지 ㅆㅇㅆ(124.216) 08.05 166 0
2878515 나님 쉬야하구 쿨쿨⭐+ [1] ♥꽃보다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45 0
2878514 원종이는 감옥생활조차 서정적일듯.. [3] ♥꽃보다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78 0
2878513 한화시스템 부캠 어떰? 프갤러(183.102) 08.05 191 0
2878512 mssql는 진짜 개구린거같은데 [16] 밀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233 0
2878511 내가 느끼는게 이제 내가 코드짜는거 의미가 없다 [2] ㅆㅇㅆ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57 0
2878508 얄코 js 강의 어때? [2] 프갤러(121.176) 08.05 161 0
2878507 커서는 업데이트 할때마다 좆병신같은 버그 하나씩 생기네 프갤러(59.6) 08.05 87 0
2878506 llm으로 레퍼런스적은 프레임워크 쓰면 밀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93 0
2878503 자바 독학은 자바의 정석 보면되노? [1] 프갤러(223.39) 08.05 202 0
2878500 나님 주무시기전 소통⭐+ 질문 받음 [3] ♥꽃보다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29 0
2878497 llm은 딱 학부2학년수준이 한계인듯 [2] 공기역학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71 0
2878496 나님 왤케 낭만적일깡? [1] ♥꽃보다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24 0
2878494 Perl 인생 40 년 갈아 넣었습니다. 프갤러(59.16) 08.05 147 0
2878491 ❤✨☀⭐⚡☘⛩나님 시작합니당⛩☘⚡⭐☀✨❤ ♥꽃보다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04 0
2878490 ㅇㅇ 프갤러(211.235) 08.05 83 0
2878489 꼰대의 우분투 일침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41 0
2878486 러스트를 해봤자 오히려 이득보다 해가 많은데 왜하냐니깐 딴소리하네 타이밍뒷통수한방(1.213) 08.05 202 5
2878485 좇센은 러스트보다 자바가 더 잘버는데 왜 러스트 도배를하는걸까 ㅋㅋㅋㅋㅋ 타이밍뒷통수한방(1.213) 08.05 190 3
2878484 유닉스 다큐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51 0
2878483 집에서 GPU를 만들었어요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27 0
2878482 직업은 다른건데 취미로 개발하는 사람들 있냐 [1] 프갤러(222.100) 08.05 201 0
2878481 아무튼 러스트 공부 한번 해보십쇼. 지능 향상에 도움이 될겁니다. [1] 프갤러(211.234) 08.05 137 0
2878480 일베충 없애는 법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33 0
2878479 아 자바 고액 연봉자의 진실 하나 빠진게 있군요 프갤러(211.234) 08.05 207 0
2878476 자바충 병신들이 업계 망쳐놓은거 생각하면 솔직히 비질란테 해야 프갤러(211.234) 08.05 133 0
2878475 자바 고액연봉자의 진실을 알려드릴까요? 프갤러(61.74) 08.05 244 0
2878474 근데 러스트 한국에서 어느회사가씀? [3] 밀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71 0
2878472 물론 러스트만 잘한다고 돈 쓸어담진 못합니다. 프갤러(27.162) 08.05 141 0
2878471 러스트 빡 고수들은 돈 쓸어담고 있습니다. 자능아랑 비교 ㄴㄴ하세요. 프갤러(27.162) 08.05 124 0
2878470 애널의달성 2.2/2/ ♥꽃보다냥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15 0
2878469 코틀린 서적 추천점 [1] 프갤러(223.39) 08.05 153 0
2878468 여자친구랑 캠핑 가면 재밌나요? 발명도둑잡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32 0
2878466 러스트해봤자 자바보다 연봉 아래인데 왜함 ㅋㅋㅋㅋㅋㅋ 타이밍뒷통수한방(1.213) 08.05 154 4
2878465 뭐 괜찮습니다. 어차피 러스트를 할만한 선택받은자는 10퍼 미만 프갤러(27.170) 08.05 121 0
2878464 솔직히 러스트 뭐가 어렵다는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프갤러(27.170) 08.05 110 0
2878462 ada는 러스트 배울 지능이 없는 저능아들의 도피처일 뿐입니다. 프갤러(27.170) 08.05 116 0
2878458 애들이 LLM 코딩의 기본은 퍼사드 패턴인 걸 모르노 ㅆㅇㅆ(124.216) 08.05 143 0
2878454 좌파 우파라는게 정상적인 헌법위에서나 성립하지 ㅆㅇㅆ(124.216) 08.05 92 0
2878452 tc는 원징을 말하는거아니냐? 밀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37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