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본다. 대학을 간다.


재수삼수해서 좋은 밥벌이가 보장될런지는 모르지만,

학적에 고졸로 낙인 찍힌 불가촉 천민이 될 수는 없다.

요즈음 학원가는 아예 재수가 트렌드인 판.

어느정도 먹고살만하고 집안에서도 그러기를 바라므로

미래를 위해 오늘의 시간을 묻어본다.

그렇게 학교에 간다.


취업을 한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밥벌이와 직결된 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누구나 아는 진리.

직업 적성과 흥미는 초봉과 안정성 앞에서 지워지므로,

취업 준비가 일이년. 삐끗해버리면 오래 눕는다.

결국 대다수가 입을 옷은 허름한 먼지투성이의 옷.

운이 좋아 아주 번쩍번쩍한 옷을 입게되었다 한들,

맞지 않는 사람, 맞지 않는 일은 오래 수행하기 어렵다.

사옥에서 떨어져 내리거나, 사회에서 떨어져 내리거나.

오늘도 결정하지 못 한 마음.

그렇게 회사에 간다.


결혼을 한다. 아니, 연애는 한다.

그렇다. 연애는 한다. 아니, 사실 연애도 하지 못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가능성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으므로,

서로가 일구어온 밭의 비옥도나 형질이 아닌,

그 밭에서 나온 경작물의 양을 바라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은 마르고, 허기는 져오므로.


연인들은 밭이 아니라 창고가 그득한 사람을 찾아 떠난다.

기저에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고, 오로지 행복을 위함이니.

몸이 가벼운 사람은 깃털같이 가벼운 연애를,

어깨가 무거운 사람은 지극하게 무거운 결혼을 한다.

결혼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은퇴는 하지 못 한다.

바라는 것은 없었고, 일생은 갈아넣었다.

이미 몸은 한계에 달했지만, 내려놓을 수가 없다.

슬하를 내려다보면 아직 아무도 준비가 안 되어있으니까.

내가 무너진다는 것은 가정이 내려앉는다는 것이니까.

나이가 들면 잠도 깊지 않아 새벽에 몸을 일으킨다.

걱정때문일런가, 나이때문일런가.


모두가 실패를 두려워 하여,

모두가 실패하게 된 꼴이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