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달러 시스템은 지난 10년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중국, 이란은 물론 유럽연합 내 일부 국가가 석유달러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거래에서 미 달러 대신 중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란은 최근 석유판매에 미 달러 대신 유로화를 받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달러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마약달러 새롭게 등장하나

하지만 석유달러의 종말을 월가와 미 재무부가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을까. 이미 새로운 생명연장의 방법을 고안해내고 있다.

달러의 쇠퇴 조짐을 해결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달러를 또 다른 무언가에 연동시키는 것이다. 그 새로운 역할은 최근 불거진 파나마 페이퍼 역외 조세회피 사건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자국의 검은돈 규제에 느슨한 미국은 \'새로운 스위스\'로 자처하며 전 세계 검은돈과 투기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10년여 동안 미 정부와 국세청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특성을 지닌 스위스 소재 역외 금융센터들을 압박해 본거지를 영국령 케이먼제도나 버진아일랜드로 바꿀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이같은 미 정부의 조치는 탈세 혐의 미국인을 처벌하거나 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에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는 공식 설명이 붙지만, 실제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 미국은 검은돈과 투기자금을 보고해야 한다는 국제적 기준을 한사코 거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난 1월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네바다주 리노시나 사우스다코타주, 와이오밍주가 \'새로운 스위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피터 코토소누를 인용해 "미국은 스위스은행들을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청결한 척 하지만, 이미 금융비밀 치외법권으로 기능하고 있다"며 "전 세계 검은돈이 미국 내 조세회피처로 쇄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 비밀스런 조세회피처의 매력은 바로 미국의 \'과묵함\'이다. 프랑스 파리 소재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2014년부터 회원국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도입한 자금출처신고의무를 미국은 계속 회피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조치는 미 달러를 보다 매력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2010년 제정된 외국계좌세금준수법(FATCA)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은 미국인이 보유한 계좌에 대해 미 국세청의 요청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막대한 벌금을 물리고 있다. 미국이 OECD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검은돈의 출처를 보호함에 따라 미국 리노시나 기타 조세회피처로 쇄도하는 역외달러가 급증하고 있다. 전 세계 마약카르텔과 1조6000억달러에 달하는 범죄자금 상당액이 미국 리노시 등의 조세회피처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금달러에 이어 석유달러가, 석유달러에 이어 마약달러가 등장하는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