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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배울 게 많은 경기였다

오프닝은 필리도어. (상대 레이팅 1202)

여러 선택이 있겠지만, 내가 선호하는 건 바로 d4를 치는 라인이다.

흑은 나이트 전개를 하며 기다릴 수도 있고, 바로 폰을 교환해 익스체인지 바리에이션으로 진입할 수 있다.

여기선 후자였다.

폰 교환 이후 나이트로 되잡으며 백이 중앙을 세게 가져가는 형태.

흑도 전개에 뒤질 수 없으니 나이트나 비숍을 빼내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상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를 뒀다

Qe2?!

초반부터 마이너피스 전개는 등한시하고 퀸과 킹을 한 선에 놔두는 저 자신감 넘치는 오프닝 초강수.

당장에라도 응징하고 싶지만 우선 기물 전개부터 하자.

퀸에게 공격받는 e폰부터 지키기 위해 나이트를 올렸다

c6.

상대는 또 기물 전개를 무시하고 폰을 움직였다.

이건 반드시 응징해야한다!

저걸 어떻게 조지지?

캐슬링부터 하자.

룩을 빨리 빼내서 퀸과 킹이 몸을 맞대고 있는 e파일에 강한 압박을 주면 상대가 쉽사리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캐슬링 길을 열기 위해 밝은 비숍부터 빼냈다.

엔진 기준으로는 부정확한 수였다.

컴퓨터는 Bf4를 추천하는데, 상대방이 c폰을 미는 바람에 d폰이 약점폰이 되었으니 어두운 비숍을 전개해서 그 지점을 공략하고,

또 이후에 퀸까지 전개해서 퀸사이드 캐슬링을 하는 등 강력한 공격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같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도록 하자

상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h6?!

놀랍게도 또! 폰을 올렸다.

크르릉 못참겠다 캐슬링만 끝나면 넌 뒤졌다

Nf6. 상대는 이제야 나이트를 올리지만, 이미 늦었다

중앙에 조화롭게 모여 있는 내 기물들을 보라

그에 반해 상대는 전개된 기물이 사실상 나이트 하나뿐이다

전개가 이렇게 차이가 날 땐 뭐다?

센터를 열어젖혀라!

호기로운 e5. 컴퓨터는 실수라고 한다.

dxe5 이후 폰 하나를 공짜로 내줬고, 또 취약한 e파일을 이제 폰으로 지킬 수 있게 되어 흑이 제법 할 만한 상황인 것이다

내가 지닌 이점을 스스로 날려먹은 셈.

엔진 추천수는 f4로, 그냥 중앙이나 세게 먹는 게 낫다고 한다.

그치만 나에게도 나름 생각이 있었다.

Re1. 강력한 핀 때문에 상대 e폰은 나이트를 먹지 못한다. 더불어 이상한 수를 두면 즉시 갬빗한 폰을 회수할 예정.

상대는 Nbd7로 폰을 지키지만,

Nf3로 폰에 추가적인 압박을 가한다.

상대는 사실상 e폰을 끝까지 지켜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폰 지키는 걸 포기하고 Nf5를 뒀다. 비숍-나이트를 교환하겠다는 건가?

어느 쪽이건 폰을 줬으니 잡아야겠다.

룩으로 잡을지 나이트로 잡을지 고민하다가 퀸을 공격해 템포를 가져가야겠다 싶어서 룩으로 잡았다.

Rxe5 이후 Be6가 사실상 강제진행.

엔진 평가로는 룩이 아니라 나이트로 잡는 게 훨씬 나았다고 한다.

어차피 전개해야 했던 밝은 비숍인데 사실상 상대의 전개를 도와준 셈이 되어서 별로 안 좋은 듯

덕분에 상대 룩이 내 퀸을 공격할 준비를 마친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일단 비숍-나이트 교환을 피하기도 할 겸 밝은 비숍을 움직였다

Bc4. 내 비숍을 지키면서 핀에 걸린 상대 비숍을 공격하는 수.

상대는 Ncd7로 내 룩을 공격했다.

별 거 없는 듯하다. 그냥 살짝만 빠져주자.

Re2 이후 상대는 캐슬링을 했다.

아하, Nbd7이 룩 공격뿐 아니라 킹의 이동 경로를 보호해서 퀸사이드 캐슬링을 하겠단 의도까지 있었구나.

덕분에 이제 상대는 나이트를 움직이며 디스커버드 어택이 가능해졌다.

다만 당장 위험한가? 하면 그건 아니다.

상대 나이트가 움직이면서 공격할 수 있는 건 c4 비숍뿐인데, 그러면 Bxe6 사잇수가 있기 때문.

아직 한 수 정도는 여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또다시 공격적인 수를 뒀다.

Bf4. 강력한 어두운 칸 대각선을 장악해서 상대 킹을 가두겠다는 생각.

그러나 실수다.

상대가 Nh5를 하면 간단하게 막히기 때문. 비숍은 무조건 도망가야 하고, 나는 템포를 뺏기게 된다.

이런 손쉬운 대응도 못보다니....

다행인 점은 상대도 못봤다는 거다.

Qc5. 이제 상대 비숍은 핀에서 풀렸고, 내 비숍은 공격당하고 있다.

교환하도록 하자.

Bxe6 fxe6.

이러면 상대 폰이 보호가 없다!

오예! 원폰업! 별거 없는 것 같은데?

가 아니었다.

상대에게 전술이 있었다.

바로 Qf5 포크!

룩과 비숍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전에 둔 Bf4가 여러모로 큰 실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물을 보호받지 않는 위치에 옮길 때에는 항상 조심하도록 하자....

하지만 Qf5 대신 g5. 정말 다행스럽게도 상대는 또 못봤다.

Bg3로 비숍을 안전하게 대피시키자, 상대는 공격을 시작한다.

Nb6. 퀸이 공격당하므로 피해주자.

Qe2. 상대는 조심해야 한다.

d7 나이트가 b5로 이동한 탓에 이제 상대 f6 나이트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않고 있다.

눈치 못 채면 바로 룩에게 잡힐 예정.

알고 있을까?

Bg7. 비숍으로 나이트를 지킨다. 알고 있었구나.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몹시 유리한 상황이다.

엔진 최선수는 Ne5. 이후 Nf7까지 이동하면 상대 d8 룩에 가하는 압박 때문에 몹시 유리하다고 한다.

대충 이런 느낌. 양쪽 룩에 가하는 압박이 심해서 상대는 룩-나이트 교환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는 놓쳤다.

대신 내가 둔 수는 Re7.

맞다. 또 실수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좋은 수라고 생각했다.

룩이 g7과 c7, 두 지점을 동시에 공략하고 있기 때문.

비숍을 살리려고 하면 룩이 g7에 침투하며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다. 반대로 g7을 막으면 비숍이 잡힌다.

때문에 상대가 대응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약 1분간 고민한 끝에 나온 Ne8. g7과 c7 지점을 전부 지키는 수다.

저걸 보고 '와...왜케 잘 막음?' 하고 감탄했는데, 알고 보니 저것도 실수였다.

훨씬 쉽고 간편하고 강력한 Rd7 옆선 수비가 있었기 때문!

이래도 내가 유리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지만, 공격의 템포가 죽으면서 훨씬 지지부진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상대는 Ne8?을 뒀고, 나는 e8 나이트를 새로운 타깃 삼기로 결정했다.

Rd1. e8 나이트를 지키는 상대 d8 룩을 위협한다.

룩 교환이 일어나고 나면 상대 나이트를 지키는 기물은 단 하나, 공격 기물은 둘. 나이트가 비숍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나이트가 도망가면 대신 비숍을 뜯긴다.

내가 확정적으로 기물 이득을 보는 상황.

문제는 그렇다고 룩 교환을 피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것.

결국 상대는 교환을 받아들였다.

Rxd1+.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퀸으로 잡으면 안 된다는 거다.

퀸으로 잡으면 룩-퀸 배터리가 망가져 내가 쌓아놓은 빌드업이 전부 무너지고 만다.

나이트를 뒤에 쳐박아두는게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나이트로 잡자.

비숍-나이트 룩포크 상황.

Bf6.

상대는 비숍을 살리는 선택을 했다.

그럼 나이트를 내놔야지!

Rxe8+ Rxe8 Qxe8+ 체크!

결국은 내가 나이트 하나를 앞서게 되었고, 상대 킹을 향한 공격도 몹시 강력하다.

돌고 돌아 결국은 처음 계획했던 'e파일 압박' 전략의 성공으로 이득을 보게 된 셈.

하지만 내가 상대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썼기 때문에 아직 방심할 수는 없다.

킹이 도망칠 곳이 없기 때문에 상대는 Bd8로 막는 것이 강제.

이어서 Qe6+ 체크! 상대는 이번에도 나이트로 막는 게 강제다.

이렇게 상대 기물들을 한곳에 수동적으로 몰아 둔 뒤에야 고민을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공략하지?

시간이 3분밖에 안 남아서 제일 간단하면서 세 보이는 수를 골랐다

Ne5. 핀에 걸린 나이트를 공략하며 체크메이트 위협을 만든다.

상대는 대응하려면 퀸으로 나이트를 지켜야 하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퀸 교환 각이 나온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변수가 될 만한 퀸의 존재를 어떻게든 없애고 싶었다.

때문에 Qd4로 막자마자 그냥 퀸을 박아버렸다.

Qxd7+, 퀸 교환에 나이트 교환까지 확정!

엔진은 내게 더 좋은 기회가 있었다고 하지만,

시간도 없겠다 나이트 하나 앞서는 유리한 엔딩으로 바로 들어가는 게 무조건 좋다고 봤다

실제로도 상대는 엔딩때 뭐 못하고 폰 계속 뜯기다가 결국 나이트 포크 당하고 기권함.

복기하며 느낀 점은....

두면서 '어라? 내가 분명 오프닝 되게 유리하게 가져갔다고 생각했는데...생각보다 힘드네. 상대가 1202점치고 되게 잘한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계속해서 실수하면서 내 이점을 스스로 깎아먹는거였음;;;

상대가 기물 전개 안한다고 너무 급하게 폰 민 것도 아쉬웠고, 상대 대응 생각 안하고 무작정 공격적인 수 두다가 블런더도 나오고

실수가 너무 많았다

이번에는 상대가 다 놓쳐서 덕분에 이겼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란 법은 없다

항상 신중하게 상대 대응 생각하며 두도록 하자

복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