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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랑만봐) <카인> 감상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6 10:14:47
조회 76 추천 0 댓글 5


생각보단 실망스러운 소설이었다. 예전에 사라마구 이야기를 하다가 이 글이 마음에 들었다고 추천을 받아 담아두고 있다가 읽었는데, 잘 모르겠다. <카인>은 한 줄로 어느 정도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좀 더 인간다운 눈으로 본 구약 속 세상에서 여호와의 불합리함을 느낀 카인이 여러 사건에 개입하며 점차 신에 대한 증오심을 품다가 마지막에 참다 못해 여호와의 일을 방해하는 이야기다. 아마 마지막 결말이 마음에 들어서 그나마 여태까지의 점수를 막판에 만회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좋냐고 하면 아니다. 그러기엔 이 글은 너무 작위적이고, 꼭 사라마구가 쓴 게 아니었대도 기대 이하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카인>은 마치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카인이라는 한 인물에 담아낸 것처럼 쓴 글이다. 구약 성경이 묘사하는 시대에 대한 비웃음을 담아 좀 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세상 속에서 여호와는 악하다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덕스러운 존재로 드러난다. 카인의 불평은 늘 천사의 입을 통해 "신께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는 말로 요약되며, 시공간을 초월해 구약 속에서 카인이 마주하는 여러 사건들은 점차 신에 대한 카인의 불만과 분노를 강화시킨다. 자식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아브라함이나, 여리고를 포함해 온갖 도시를 무너뜨리고 학살하게 만든 여호수아나,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류를 거듭 멸하는 것까지.


그럼에도 마지막 결말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신을 죽이지 못해" 아벨을 죽였다고 표현한 것처럼 카인은 여호와의 기획 자체를 무너뜨리고 싶어 한다. 고의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그리 한 것은 아니다. 대홍수를 대비해 방주를 짓는 노아의 앞에 오게 된 카인은 이를 짓는 과정과 홍수 속 방주 안에서 여전히 반복되는 부조리와 불합리를 마주하고 도대체 여호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똑같은 인류를 데리고 죄를 저질렀다며 멸했다가 다시 교배시키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 그가 내린 결론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명을 내려 그가 만든 인간의 수를 가득 늘릴 수 있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을 대하고 죽인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포함한 인류가 신의 놀이말이 되지 않고자, 방주 안에 있는 최후의 인류를 하나씩 차례로 죽이다가, 노아를 마지막으로 전부 죽인 뒤 대홍수 이후 신과 독대한다.


그는 정해진 운명을 부수고자 한다. 그리고 이는, 시공간을 초월해 앞뒤로 움직이며 이 모든 사건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저 언제 우리 앞에 나타나느냐에 대한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카인> 속 인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카인이 이삭을 아브라함의 손에서 구해낸 이후, 그는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고자 하는 과거의 아브라함을 만나게 된다. 아브라함은 카인을 알지 못하며, 아브라함과 함께하던 여호와 역시 카인을 딱히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성서 속에 적힌 내용들은 카인의 개입과는 완전히 무관하게,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선택받은 후손들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계보를 완전히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구약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선택이자, 이 무의미하게 고통받는 삶을 멈추는 반출생주의적 도약일 테다.


<카인>은 그러나, 처음 이야기했듯 아쉬운 점이 많은 글이다. 사라마구 본인이 기독교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다가 최후의 나날에 그 생각을 정리한 것이 <카인>과 그 전작 <예수복음>일지도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카인>을 보면 너무 얄팍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구약을 분석하는 데에는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종교적으로 구약과 신약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맞는가-그러니까, 구약의 여호와가 정말로 신약의 키리오스인가-라든가, 구약의 다소 비합리적일 정도로 보이는 일화들이 어떤 식으로 과잉 형성된 것인가-욥기는 과연 처음부터 정말로 이 정도로 과하게 그려진 이야기일까-등등. 비슷하게 <신은 성서를 쓰지 않았다> 같은 책은 아예 당대 사회상을 바탕으로 이 텍스트들이 어떻게 쓰여졌을 것이고 구약의 맹목적인 금기들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을지를 상상해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소설이 분석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의도한 것을 보여주기에는 역시 너무 얄팍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물론 <카인>의 글이 완전히 무매력인 건 아니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구약을 다시 쓰겠다는 사라마구의 의도는 사라마구의 특징적인 문체에서 빛을 발하는데, 서술도 대사도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한데 뭉쳐져 섞여 있는 이 글 속에서 사라마구는 어떨 때는 카인의 목소리로, 어떨 때는 여호와의 목소리로, 또 어떨 때는 자신의 목소리로 이 상황의 불합리함과 기이함을 생각해보라고 제시한다. 전쟁을 위해 태양을 멈춰달라는 여호수와의 부탁에 여호와가 상사의 무리하고 무식한 부탁을 들은 유능한 기술자처럼 대응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나, 여호와가 카인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은 인간적인 묘사 속에서 무언가 비인간적인, 초월적인 요소가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는 길길이 날뛰기도 하고, 답답해하다가 납득하기도 하지만, 무언가, 자신이 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주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카인>은 영 애매하다. 사라마구의 글 중에선 <눈먼 자들의 도시>가 가장 유명하지만, 최고작은 <수도원의 비망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수도원>에서 보여준 환상적이면서 정치적인 갈등이 <카인>에서는 이 단순하고 노골적인 주제를 위해서만 편의주의적으로 복무하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까운 일이다. <예수복음>을 나중에 읽어보긴 할까, 싶지만, <카인>을 생각하면 이것도 결국 약간 뻔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되어서 아직 그리 내키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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