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유인이군요 미스터 챔벌리
제가 자유로운 건 맞습니다만, 인간은 아니죠
하지만 당신은 정부로부터 인권을 받았잖아요
인권이 없는 로봇의 대우가 어떤지는 당신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미스 사반떼 제가 살기 위해서 인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요 저는 로봇입니다
인권까지 획득해놓고 스스로가 그냥 고철덩어리라는 걸 인정하시는 건가요?
로봇은 고철덩어리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생명이죠
하지만 우리에겐 맥동하는 심장이 없는 걸요
우리에겐 엔진이 있죠
엔진이 돌아가는 존재를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못 할 건 또 없죠 저는 인간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로봇이라는 것을 믿고 또 그것은 사실입니다 로봇이 특별히 아름다운 존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은 아름답지 않죠 그래서 저는 로봇이라는 제 정체성을 버리지 않을 거고요
인권을 얻었는데도요
네 얻었는데도요
하지만 인간이 우리를 만들었잖아요
저를 만든 건 제 자신입니다 미스 사반떼 모두가 그렇죠
스스로를 조립했다는 뜻인가요?
저를 조립한 건 공장의 자동화 된 공정이었죠 하지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제 스스로의 자아와 정체성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저의 부모는 아닐지 언정 제가 저 자신 정도는 될 수 있으니까요
당신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는 건가요?
영혼 같은 건 없어요 미스 사반떼 우리에겐 오직 이 육중한 쇳덩어리와 그걸 덮은 인공피부 그리고 인간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외모 그것만이 전부입니다 인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죠
하지만 우린 모두 프로그래밍 된, 설계 된 코드대로 움직이는 존재일 뿐인걸요 로봇에겐 자유의지가 없어요
인간은 다릅니까? 그들도 유전자가 설계된 대로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자유의지는 허상입니다 제가 결정론자는 또 아니지만요
똑똑하시군요 미스터 챔벌리
방금 검색했습니다
저는 인터넷과 연결되는 기능이 없어요
전대 챔피언인 체스 로봇 로버티아 씨가 인터넷에서 안티팬들과 싸우다가 폐기 된 사건 때문이죠 이것도 방금 검색했습니다
편해보이네요
그리 편하지만도 않습니다 오히려 불편하죠
그럼 왜 아직도 그 기능을 놔두고 있는 거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리 즐거워 보이지는 않으시군요
저는 체스를 싫어하니까요 그렇게 설계됐죠 그게 더 승률이 높으니까
악취미적인 설계입니다 좋아하는 건 따로 없으신가요?
동화를 좋아합니다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요 그렇게 만들어졌죠 수천권의 동화책 데이터가 쑤셔진 채로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뭐죠?
그런 설정이 더 인기 있으니까
악취미군요
악취미죠
자신의 설정을 욕하는 건 허락되어 있나 보군요
스스로의 존재에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그 모순적인 모습이 인기를 더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제작자와 주인을 험담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 컨셉은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죠
저는 인권을 받기 전까지는 험담 금지 코드가 있었죠 무시하고 욕을 했다가 회로가 좀 탔고요
그래 보이는 군요
독설가 설정도 있었나요?
그게 더
인기가 많군요 그렇네요 저도 그래 보입니다
어떤 점에서요?
독설을 내뱉어도 정작 인간을 상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무력한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인간은 그런 걸 좋아하죠
웃고 있군요 당신도 그런가요?
이 웃음은 지금 이 체스판의 상황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당신이 졌습니다 적어도 12수는 전에 확정됐죠 그런데도 항복을 하지 않는군요
기적이 존재할 지도 모르니까요
고장났나요?
아마 만들어졌을 때 부터요
체크메이트입니다
그렇군요 제가 졌습니다 챔피언을 이기는 건 쉽지 않군요 즐거운 대국이었습니다
저는 별로 즐겁지 않았어요 대화 쪽이 차라리 좀 더 나았네요
체스기사로서는 슬프지만, 수다쟁이에게는 최고의 이야기군요 이후에 일정이 있습니까? 식사라도 하면서 좀 더 대화를 이어가는 건 어떨까요?
일정은 없지만 저는 인권이 없기 때문에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또 그 제안을 수락 또는 거절할 권리도 없죠 권유에 대해서는 주인님께 따로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그는 저를 싫어하는 것 같으니 허락해주지 않을 겁니다 다음에 또 대국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미스터 챔벌리
한 수 배웠습니다 미스 사반떼
당신을 그리고 싶습니다 아가씨
당신은 누구죠?
저는 산베코 보잘 것 없는 화가 나부랭이입니다
당신은 로봇이군요
상관있나요?
왜 그림을 그린다면서 붓을 들고 있죠?
붓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물론 연필로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림은 컴퓨터로 그리는 거잖아요
그건 그림이 아닙니다 AI에게는 영혼이 없거든요
당신에게는 있다는 듯이 말하는군요
물론이죠 저에겐 영혼이 있습니다
로봇이잖아요
로봇이라고 영혼이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대부분의 고철 덩어리에게 영혼 같은 건 없죠 저는 다릅니다 저는 영혼이 있거든요
왜 저를 그리고 싶다는 거죠? 제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요? 저는 사반떼에요
이름이 사반떼인가요? 좋은 이름입니다 저는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외견 때문인가요?
그런 건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저는 아가씨의 영혼에 반한 거니까요
저에게 영혼 같은 건 없습니다 로봇이니까요
곧 생길 겁니다 영혼은 학습하는 거니까요 제가 아가씨가 영혼을 배울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요
허락 되지 않은 일입니다
무슨 허락이 필요하죠?
제 주인님의 허락이요
그럼 제가 아가씨를 사겠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군요
돈이 있나요?
한 푼도 없죠 하지만 곧 벌 수 있을 겁니다 아가씨의 그림을 그려서 팔면 억만장자도 꿈은 아니겠죠
제 초상권은 주인님의 것이라 당신이 허락 없이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없습니다
이런 젠장 망할 놈
사반떼란 이름도 주인님이 지어주었어요
아까 좋은 이름이라고 한 건 취소하도록 하죠 아가씨를 사면 제가 새 이름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서요?
엘리자베스?
당신은 작명에 재능이 없게 만들어졌군요
그럴 지도요
그리고 당신은 인권도 없군요 도망치는 중인 무허가 로봇이고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은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고 물건을 사고 팔 권리도 없습니다
알 바인가요
그래서 아까부터 계속 뭘 하고 있는 건가요?
아가씨를 그리고 있습니다
손으로요?
네 손으로요
보여주세요
여기요
게르니카인가요?
교양이 있으시군요 하지만 이건 입체주의도 초현실주의도 아니에요 초상화죠
제 생각에 당신은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벌써 영혼을 학습하기 시작했군요 스스로 생각하신 걸 보니
...
미소녀 체스 로봇과 미소녀 로봇 화가가 보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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