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듄 1권 감상인가 뭔가 애매한 글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2 19:59:10
조회 56 추천 0 댓글 0
														


a04424ad2c06782ab47e5a67ee91766dc28ff1ecd6acc4cabf10dbc75bd5d721e639d1fbb8a56b655176a3bd2dee1fa9


<듄 시리즈>를 처음으로 읽었던 건 꽤나 예전인데, 도서관 한구석 서가에 완전히 빛바랜 표지의 책들이 열 권 넘게 꽂혀 있었다. 찾아보니 이 판본으로 나왔던 건 2001년이라 그 정도로까지 낡을 이유는 없었겠지만, 표지 품질이 그리 좋지 않았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읽었던 <듄>은 여태 읽었던 다른 판타지나 SF와는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는데, 아동용 판타지 소설이 으레 그렇듯 가볍고 직관적인 글과는 달리 거의 예언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런 인상은 <듄>의 특이한 서술 방식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잊혀진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기이하게 권수가 많은 전집 탓에 더욱 강화됐지 않을까. 이런 전집에 대한 인상은 이후 마찬가지로 도서관에서 잊혀지거나 대여점에서 버려진 수많은 얇고 권수 많은 장르 소설을 보며 상당히 희석되었지만, 정작 <듄>에 대한 인상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랬던 인상은 <듄> 영화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조금 달라졌는데, 막연히 <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이 생각보다도 할리우드 친화적이라는 느낌으로 변했던 탓이다. 영화 <듄>의 애매한 구성과 별개로, <듄: 파트 2>는 거의 우격다짐 수준으로 소설 작중 사건들의 결과만을 재조립해 빠르게 달려나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스토리라인이나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 및 각성, 러브라인 등의 요소가 매우 뚜렷하다. 덕분에 이 삼부작이 SF/판타지 영화에서 아마 꽤나 오래 회자되겠거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지만, <반지의 제왕>이 오래 언급될 만한 단순하게 재밌는 부분들을 <듄: 파트 2> 역시 그럭저럭 잘 짚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 사실 이건 <듄> 원작과는 좀 다른 방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듄> 1권을 다시 읽으며 그런 생각이 좀 강해졌다.



어쩔 수 없지만, 블록버스터는 복잡한 심리를 싫어한다. <듄>은 우주로 뻗어나간 인류 문명이 중세 유럽에 걸맞을 정도로 파편화되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로 인해 한정된 역할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강조하는 운명론적인 글이다. 주인공 폴에게 있어 비범한 예측 및 전투 능력, 사랑, 각성 등은 사실 큰 문제는 아니라-마치 파편적인 예언서처럼-빠르게,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지나가버리며, 대신 그가 주로 느끼는 것은 자신이 이미 그 '무언가'가 되어버렸다는 체감이다. 폴은 어머니가 자신을 이렇게 되도록 낳은 것을 줄곧 싫어하며, 스파이스에 노출된 이후 줄곧 멘다트 이상의 냉혹한 예측력을 보인다. 그리고 그의 갈등은 대체로 그의 안에서 시작해 안에서 끝난다. 이런 주인공은 모두의 공감을 사기 힘들다. 



덕분에 많은 것들이 영화에서 외주로 맡겨졌다. 사막에서의 생활과 리더쉽을 프레멘에게, 전투 능력과 인간적인 매력을 챠니에게, 악마적인 긴장감을 어머니와 뱃속의 여동생에게. 이렇게 해체되고 나니 비로소 인간적으로 갈등하며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다가 비로소 굴복하는 익숙한 영웅상이 나온다. 나쁜 건 아니다. <듄>의 글쓰기는 사실 어떤 점에서는 조악하다고 느낄 때도 종종 있는데, 예언적/운명적 면모를 과시하고자 늘 미래의 일이 현재의 일과 겹쳐져 서술되며 서서히 현실에 잠식되는 것과 투박하게 서사적 재미를 위해 미래를 되짚는 회상이 구분되지 않을 때가 있고, 의도하지 않은 구애를 한 것처럼 되는 이문화 이성 교류 간 클리셰처럼 상당히 전형적인 요소들도 꽤나 많다. <듄>은 어쨌든, 장르에서 허용되는 유치한 요소들을 굳이 꺼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쓴 소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참 아쉬운 것은 역시 영화가 복잡한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폴이 느끼는 운명에 대한 부담감은, 기실 작중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요 인물이 공유하는 감정이다. 제시카는 레토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황제는 자신의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으며, 퀴사츠 헤더락이 될 수 있었을 후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극적으로 꾸민 페이드 로타 정도를 제외하면-전부 잘려 나갔다. 베네 게세리트와 멘타트가 이루는 두 종류 지식의 대립도 사라졌고, 아라키스의 가치는 황제와 그 무력과는 그리 큰 상관 없는 스파이스로 말끔하게 요약된다. 실제로 <듄>의 가장 큰 매력은 반영웅주의와 사막 행성의 세계관 뿐 아니라, 그 끔찍할 정도로 개인적 여유를 두지 않는 범세대적 음모와 계획이 전우주에서 펼쳐진다는 데에 있기 때문에 좀 더 아쉽다. (그런 영향을 받은 작품을 한두 개만 꼽지 못할 정도로) 물론, 그런 <듄>을 영화화하는 데에 늘 실패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자미스에 대한 비중이 늘어난 건 영화 <듄>의 특기할 만한 점이다. 폴이라는 개인의 갈등이 다소 인간적인 차원으로 축소된 영화 <듄>에서 자미스는 프레멘 중 유일하게, 어쩌면 작중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폴의 퀴사츠 헤더락스러운 면모를 목격하지 않고 감화되지도 않은 사람이다. 폴을 떠나가는 챠니조차 그가 무언가 가공할 만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으며, 거니 할렉이 더 이상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원작 <듄>에서도 느낀 단절감이다. 영화 <듄> 속 폴은 약간 자학적이게도, 유일하게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자신의 상상 속 친구로 삼아 스스로를 위로하는 셈이다. (그건, 솔직히 블록버스터에 어울리는 흠은 아닌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점이기도 해서, 괜찮은 것 같다)



별개로, <듄>에서 보이는 중동 문화권 풍습이 영화에서는 상당수 잘려나간 것도 주목할 만하다. 프랭크 허버트는 실제 중동 문화를 토대로 물에 대한 집착 뿐 아니라 사회 구조 및 풍습을 아라키스와 프레멘에게 접목시켰는데, 폴이 자미스를 죽인 후 그의 아내와 자식을 말 그대로 취하는 것이 영화에서는 아예 사라졌다. 어쩌면 이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고 현대 영화 관람자의 감수성에 맞게 바꿨겠지만, 의도야 어쨌든 그런 종류의 빈 자리는 무앗딥 신화를 믿지 않는 비-미신적 프레멘을 서서히 감화시키고 광신도로 끌어들이는 영웅주의적인 서사로 대신 메꿔졌다. <듄>의 주제를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점이지만, 예전 영화 <듄: 파트 2> 감상에 썼듯 그런 아이러니한 점이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조만간 <듄 2>도 읽어볼 계획인데, 이쪽은 영화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 보다 더 <듄>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글이라 기대가 크다. 같은 글을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어볼 때의 감상은 늘 달라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아마 비평은 그런 간극을 어떻게든 없애는 과정이겠거니 싶지만)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5903297 카인을 생각하면 로리밥 담론이 또 스믈스믈 올라오게되는데 [11] 猫郞,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9 40 0
5903296 이번주에 구입할 러시듀얼 카드들ㄷ [2] ㅋㅁ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8 26 0
5903295 진지하게 가발 벗은 모습 어때요? [1] 판갤러(223.38) 17:38 28 0
5903294 스포)근데 로빈 배포광추 얻을라면 대체 얼마나 밀어야되는거임?ㅜ [5] 빵케이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8 40 0
5903293 레헤가 ㄹㅇ 알바를 매수했구나 [4]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8 39 0
5903292 ai짤에 점 하나 찍으면 [4] 에포캣³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8 37 0
5903291 내 인생이 제일 비참하고 불쌍한데 왜 기회가 안오는지 모르겠음 ㅇㅇ(118.235) 17:38 8 0
5903290 아줌마 제발 [4] 어사일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8 56 0
5903289 더워서 비오길 바랬는데 [2] 반룡은학원에간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8 19 0
5903288 아니 아수라 왤캐쌤? [6] 유동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7 50 0
5903286 님들 원신 스타레일 명조같은 겜 더 없음? [9] 갈릭소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7 42 0
5903285 ㄹㅇ이말딸짤이요즘본짤중제일좋아 [7] 레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7 70 0
5903284 오늘의 저녁인데스웅 [4] 글먹분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7 35 0
5903283 크이거죠 [2] 금분세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7 33 0
5903282 노벨 ai 걍 단시간 딸깍으로 하는 그런 용도는 아니네 Milli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7 27 0
5903281 ol 라이덴 짤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4] 지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7 38 0
5903278 수녀가만든물 [2] ㄹㅋㄹㅋ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6 28 0
5903277 늦은받짤써맛 [4] 해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6 32 0
5903276 매니저한테 자기옷입고 자수하라한건 김성모만화를 너무많이본거아니냐 [3] 래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5 53 0
5903275 본인 군대에서 부조리만들고싶었던적 한번있음 [3] 아니야왜냐하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5 45 0
5903273 님들님들 왜 전자책에 ‘절판’이라는 개념이 있나요? [4] 퓌닉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5 55 0
5903272 주인님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2] 회복의개같은노예카츠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5 40 0
5903271 곤부지메인가 한다고 생선 주물럭거렸더니 비린내 나 [5] olbersi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5 20 0
5903270 비오는거소리기분좋네 [5] 금분세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5 34 0
5903269 명조 생각할수록화나네 [2] 반룡은학원에간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4 27 0
5903268 아브아 베타키 남는 사람있나? 오른서폿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4 8 0
5903267 나란 인간은 근데 플레이리스트가 업뎃이 거의 안되네... [2] (모리어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4 7 0
5903266 이 응디짤 딱 원하는대로 뽑혀서 눈물흘림 [3] 김우무문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4 40 0
5903264 스타레일 한국어번역한새끼들 ㄹㅇ 뭐지 [4] 빵케이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3 45 0
5903263 30대 남자 명품지갑 어디브랜드가 괜찮음? ㅇㅇ(59.18) 17:33 8 0
5903262 노벨 ai 아무 이미지나 삽입해도 됨? [4] Milli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3 37 0
5903261 저녁 뭐먹지 [2] STG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2 12 0
5903260 김호중 ㄹㅇ 경찰을 개좆1밥으로 봤노 ㅋㅋㅋㅋㅋㅋㅋㅋ [1] (모리어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2 64 0
5903258 하데스2 해본 사람 있냐 [4] 지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2 17 0
5903256 구멍쑤셔도안열려씨발뭐임 [15] 회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1 105 0
5903255 내 동기중에서 성격 지랄맞은 새 하나있었거든 [10] 양지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1 54 0
5903254 그녀석이좋아할거같은짤 [6] 혜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30 58 0
5903253 중국인이 그린 세리나 순애 만와.man [4] 무명소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9 66 0
5903252 비오는데 밖에서 군청일화 들으니까 좋네 STG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9 6 0
5903251 스타벅스 종이 빨대 근데 좀 바뀐거 같기도 ㄷ [4] (모리어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9 17 0
5903250 몰루 미니패스 무드등만 팔았어도 갔을텐데 도도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9 12 0
5903249 머야 망겜칼작가 작년에 연중한거 리멬해서 공모전왔네 [10] 어사일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9 43 0
5903248 메탈리카 라이브 분위기 개ㅈ되네 ㅋㅋㅋㅋ [3] 엘레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9 32 0
5903247 오늘의저녁은아주아주맛있는 [4] 기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8 16 0
5903246 금요일에 우연히 김호중 콘서트장 지나가는데 좆대더라 [1] 24생공김정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8 40 0
5903245 이짤좀 학대ㄷ [8] 반룡은학원에간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8 54 0
5903244 개졷롤 솔랭방송 ON [1] 이와쿠라레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8 14 0
5903243 붕괴스타레일x워해머40k 그림먼저본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7 10 0
5903242 회복 살아있냐....? [4] 회복의개같은노예카츠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7 35 0
5903240 김호중이 승리보다 잘나가는게 아니면 동기가 설명이 안되는데 [1] 래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27 46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