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녀 츠즈이 씨 - 경악스럽지만 부러운

<동인녀 츠즈이 씨>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경악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가 오타쿠라고는 생각하지만, 어떤 한 작품을 미친 듯이 좋아하고 그것만 판다기보다는 그 시간에 여러 작품을 찍먹하며 넓고 얕게 아는 씹덕이라는 자기인지가 있었기에 동인녀 츠즈이 씨처럼 오타쿠 문화를 소비하는 방법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최애의 키를 벽에 표시해놓고 그걸 올라다보며 이 정도 키 차이구나... 하면서 감탄한다든지, 캐릭터 테마로 랩 배틀을 한다든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기상천외한 덕질을 하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 내가 할 엄두는 전혀 낼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경악이 서서히 가시고 츠즈이 씨라는 인물에게 적응하자 다음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츠즈이 씨는 거의 모든 씹덕 생활을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한다. 대표적으로 m양이 있고, 오카자키씨나 조프다, 혹은 타치바나 등의 동성 친구들과 이런저런 행사를 함께하곤 한다. bl커플에서 어느 쪽이 공이고 어느 쪽이 수인지 토론한다든가, 어떤 커플링이 더 어울리는지 논쟁하는 건 간단한 수준이고, 좀 견디기 힘든 수준으로 가면 서로의 크리스마스 남자친구 망상을 정식으로 발표하듯 공유하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며 든 생각은, 단순히 친구들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만 해도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는 거였다.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하다 보면 할 말이 무척 많아지는데, 정작 애니메이션을 누군가와 함께 보는 건 시공간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판갤에 감상을 적게 되는 것이고. 근데 만약 츠즈이 씨처럼 씹덕 생활을 한다면 분명 판갤은 그만두게 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츠즈이 씨 중간중간 '씹덕이 마주하는 현실'이 나올 때마다 공감되는 것도 있고, 두려워지는 것도 있었다. 일단 츠즈이 씨는 숨덕, 흔히 표면적으로는 덕질을 숨기는 사람이다. 나도 책장에 피규어가 굉장히 늘어나긴 했지만 아무튼 가족들에게는 숨덕을 표방하는 중이기에 츠즈이 씨의 경험에 십분 공감하는 점도 많았다. 감정의 변화 원인이 씹덕 생활일 때 주변 사람이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냐/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한 것도 무척 공감됐다. 한편 작중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에피소드인데, '빈곤한 어휘력으로 인한 애니 감상의 한계'가 보일 때마다 일종의 경각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 역시 나름대로 판갤에서 수려한 필력으로 어떤 애니나 만화, 혹은 소설의 감상문을 쓰는 판갤러들을 동경하게 되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었고, 저렇게 써 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기에. 츠즈이 씨에게 공감하면서도 품위 있는 씹덕 생활을 위해 문화적 소양과 어휘력을 쌓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Otaku Culture 고수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