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주 교토여행때문에 빨리 쓰긴 해야해서 두서없이 느낀 감흥대로 주절주절 써내려 나간거라 이새끼가 뭔 소리를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도 양해부탁합니다.
1권을 읽으면서 무언가 서사는 진행되지만 이 과정들이 무엇을 질문하는지가 정말 설명되지 않았다. 그 덕에 한 달 동안 계속 읽다가 멈추다가 읽다가 멈추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던 기억이 있다. 2권이 눈마새 권 수 중에서 가장 부피가 클때부터 무언가가 있겠지 했지만 큰 기대가 없었다. 이영도 작가의 인장이라고 말해보고 싶을 정도로 정말 기나긴 한 인물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역사를 아낌없이 페이지를 할애해서 쓰는 묘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이영도잖아. 기대 반 걱정스런 기우 반을 안고 2권을 모두 다 읽었다. 내 걱정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그리고 2권을 다 읽고 확신할 수 있었다. 눈마새는 앞으로 아버지의 자리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것이다.
2권의 부제인 레콘이 전면으로 드러난 건 아니지만 아무튼 레콘의 소설 속 신화가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당겨오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전개될 나가가 숨겨온 계획의 모든 것과 연관이 되어있으며, 이를 대항하는 자리에 구출대와 사모 페이가 합류한다. 유로도로에서 하인샤 대사원에 이르는 기나긴 서사를 통과하는 동안 미스터리의 자리에 가있던 케이건 드라카가 점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사모 페이와 륜 페이는 점점 나가의 규율 아래서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답게 성숙해지고 있다. 이 사람들의 주변에 소문들을 쫒아 수많은 인간들이 득시글대기 시작한다. 완전히 반대편에서는 나가가 본격적으로 세계를 향해 계획을 성공적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중이다. 최대한 서사를 정리해보려고 했지만 디테일이 굉장히 많아서 쉽게 정리되지 않는 2권이다. 그건 아마 이영도 작가도 그걸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뭇가지처럼 온 사방으로 뻗어있는 인물들의 서사에서 유념히 봐야할 점은 모두가 비어있는 왕의 자리에 가려고 필사적이라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해 모든 책임을 한 명도 빠짐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모 페이가 륜을 죽이기 위해 한계선을 건너가 북부까지 도착하면서까지 쇼자인테쉬크톨을 주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륜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쇼자인테쉬크톨에 떠넘기고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희생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눈마새는 한 시도 빠짐없이 이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는 중이다.
놀랍게도 그 질문에 보란듯이 실행으로 보여 주는 것은 사모 페이였다. 쇼자인테쉬크톨에 책임을 떠넘기는 '척' 하던 사모 페이는 륜 페이에게 죽음과 가까운 죽음을 맞이하며 자기 자신이 희생의 자리로 가게 된다. 어쩌면 사모 페이는 륜 페이를 시험해보고자 그 기나긴 여정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벌 정도다. 그리고 그것이 눈마새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희생이다. 그렇기에 사모 페이의 희생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장면이며, 이는 몇 번이고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약 350페이지가 더 남아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것이다. 여기서부터 눈마새가 갑자기 굉장해지기 시작한다. 바로 뒤에 그 희생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을 배치함으로써 감상주의를 철저하게 배재한점이다. 구출대와 하인샤 대사원은 나가의 계획에 완전히 속아 실패한다. 이를 완벽하게 계획한 군령자이자 수호자인 갈로텍을 눈마새는 그의 욕망만을 서술하지, 그의 내면을 단 한 순간도 서술하지 않는다. 눈마새는 이런 태도가 있다. 안타고니스트의 자리에 있는 인물의 내면을 알 방도가 없을 뿐더러, 알아서도 안된다.
다시 희생의 테마로 되돌아가자. 사모 페이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사모 페이가 의식을 되찾을수 있는 전개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사모 페이의 왕위 즉위식은 아예 불가능한 장면이다. 사모 페이가 의식을 되찾자 죽은 유령들이 다시 돌아와 구출대와 사모 페이를 비롯한 하인샤 대사원의 인물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한 자리에 모인 인물들을 모두 연결하는 핵심적인 인물은 말 할 것도 없이 요스비. 2권에서 밝혀진 바로는 요스비는 륜의 아버지이자 케이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질문. 요스비는 어떤 희생을 통해 두 사람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자리에 가있는가. 이에 대한 내용은 2권이 설명을 단편적으로 해줄뿐 아직 정확한 답을 얻기는 힘들다. 질문이 잘못된 것일까. 잘못된 질문은 그 질문을 교정시켜야한다. 우선 주퀘도의 할머니가 주퀘도에게 남긴 구전의 기록에서 주목할 점은 나가의 사회에서 남편의 역할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기 아버지의 역할도 함께 사라졌다는 점이다. 남편의 자리와 아버지의 자리가 함께 작동하는 세계. 나가의 사회는 유교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의 자리에서 한 자리가 비자, 가족이라는 집단이 순식간에 부서진 상황. 가족이라는 자리를 가문이 대체함으로써 나가 사회는 철저하게 유교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자리로 갈 수 있는 희생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퇴색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저 반대편 인간의 세계는 왕의 자리가 비어있다. 다시, 왕의 자리에 가기위해 수많은 인물들이 필사적이다 못해 미쳐버리고,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해 책임을 타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양쪽을 오가는 두 세계의 작동방식에서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책임의 윤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희생이 그것이다. 그래서 2권은 내내 이 세계의 참담함을 설명하는 대신 눈마새의 첫문장으로 끊임없이 되돌리고 되돌리고 또 되돌리기를 반복한다.
'하늘을 불사르던 용의 노여움도 잊혀지고
왕자들의 석비도 사토 속에 묻혀버린
그리고 그런 것들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생존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에
한 남자가 사막을 걷고 있었다.'
천박한 농담이 되버린 생존의 문제. 그러므로 이 첫 문장은 눈마새를 읽는 내내 다시 되돌아가 여러 번이고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눈마새의 세계는 그런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 서술하는 희생의 가치가 그렇게 귀한 것이며, 이는 결국 아버지의 자리에 남을수 있는 유일한 가치로써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요스비를 경유하여 질문을 정식화 시켜보자. 아버지의 자리는 무엇을 통해 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소설은 희생이라는 직접적인 말 대신 시적인 표현이 담긴 한 문장으로 다 설명한다. 눈물을 마신다. 이 문장은 어떤 상징도, 기호도, 비유도, 알레고리도 아니다. 케이건 드라카가 유일하게 설명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 문장의 의미를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알려고 하지만 소설조차도 이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를 분명 함의하고 있는 문장 그 자체. 이영도 작가는 28살의 나이에 희생이라는 단어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행위가 주는 감흥을 느껴볼 수 있는 문장을 찾아낸 것이다. 이영도 작가라는 인간이 어디까지 나아간건지 감도 안 잡힐 따름이다. 그저 굉장할 뿐이다.
곧 나가에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나가의 여신은 육체에 감금당했다. 여신을 구출하기 위해 구출대가 다시 결성된다. 요스비가 유령처럼 나타나 셋이 하나를 상대해야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구출대는 세 명의 신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설 것이다. 이때 희생의 자리로 가는 인물은 누가 될 것인가. 케이건 드라카는 도데체 어떤 삶을 살아온 인간인가. 그의 700년에 걸친, 희생의 자리에 기지 못하여 죄의식에 빠져 이를 탈출하지 못해 계속 아들의 자리로 남은 그의 삶이 앞으로 있을 눈마새의 운명을 설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케이건 드라카는 어떻게 그 트라우마를 통과해 나갈 것인가. 그리고 그 지점이 건드리고 있는 부분이 어쩌면 한국적인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의 전개가 나는 흥미진진할 뿐이다.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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