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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윈대] 1만시간을 채우다(1)

멍애(외교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0.19 10: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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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윈대 : 1만 시간이 됐다.

고등학생 시절, 수능으로 바빠야 할 우리의 커리큘럼에는 이상한 시간이 있었다. 수요일 7교시에 위치한 명사강의라는 시간이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

한 번은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세일즈맨이 왔는데, 계단을 오르는 세일즈맨을 보며 내 친구는 옆에서 엔더맨이라고 말했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누군가가 쌓아놓은 집의 블록을 슬쩍 빼가는 녀석 말이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맞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팔다리는 기묘할 정도로 길었고, 얼굴은 홀쭉 패여 있었으니까. 스티븐 잡스나 워랜 버핏 같은 이미지를 기대했건만, 그런 건 없었다. 췌장암으로 죽기 직전의 스티븐 잡스도 저 사람보다는 생기가 있었을 것 같다.

세일즈맨? 차라리 장의사가 더 어올리지 않을까? 게다가 둘은 모두 양복을 입고 다닌다는 공통점도 있다. 연단에 올라선 세일즈맨은 별 거 아니라는 듯 가방을 옆에 척, 내려놓았다. 맨 앞에 앉은 나는 그 가방에 프라다라고 써진 걸 똑똑히 보았으며, 휴대폰에 검색한 결과 그 가방이 760만원짜리라는 것 또한 알게 됐다.

명품이라고 해서 꼭 멋진 건 아니군. 저 가방을 봐, 문방구에서 55천원 주고 산 것 같잖아.’ 난 그렇게 생각했고, 이 생각은 내 인생에서 한 생각 중 가장 쓸모 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적어도, 명품에 대한 환상은 죄다 깨졌으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학생 여러분.”

그 남자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그 목소리마저 실망스럽다고 느꼈다. 어쩌면 저렇게 다 실망스러울 수 있지?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나는 기묘한 경험 속으로 빠져들었다.

뭐랄까, 그것은... ‘실망감과 기대감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 남자가 얼마나 더 실망스러워질지, 저 남자가 얼마나 더 개판을 칠지. 기묘하게도 나는 그의 실망스러움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남자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가 오늘 말씀드릴 것은... 1만 시간의 법칙입니다.”

뭐든지 1만 시간을 노력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세일즈맨은 마치 무언가를 팔 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 광경을 참으로 기묘하다고 느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내가 그에게 무엇을 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

손 대지 마.”

나는 다 낡아빠진 빈폴 가방을 들어올렸다.

내 거라고.”

이 자식은 무슨 빈폴을 프라다 다루듯이 하네.”

옆에서 친구가 낄낄거렸다.

그거 네가 고등학교 때 들고 다니던 거 아니냐? 15년 된 가방.”

엄마가 사 준 거야.”

누가 들으면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겠어.”

친구라는 말은 취소다. 개자식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저리 꺼져.”

말 안해도 그럴 거야.”

친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잠시 후, 골목 너머로 한 남자가 등장했다. 누가 봐도 아직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당근마켓인가요?”

.”

기타 파시는 거고요?”
물론이죠.”

친구가 씩 웃으며 기타를 내밀었다. 학생 녀석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기타를 위아래로 훑었다.

... 여기 줄 감는 부분이 좀 닳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에요. 원래 그런 거예요.”

친구가 설명했다.

스트랩 라인은 살짝 닳아 있는 편이 오히려 마찰계수가 늘어나거든요. 오히려 연습할 때 도움이 돼요.”

... 정말요?”

음악 잘 모르시는구나.”

스트랩 라인? 마찰계수?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다.

이 개자식이 되는대로 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살게요. 이십오만 원 맞죠?”

아뇨, 이십일만 원만 내세요.”

이 말은 당연히 개자식이 아니라 내가 한 말이다.

싱글벙글 웃는 녀석을 보니 왠지 배알이 뒤틀린 것이다.

줄 감는 부분 하자 있는 거 맞아요.”

...”

그러자 학생 녀석의 눈이 변했다.

그러면 저, , 다음에 살게요.”

잠깐만요!”

개자식의 말과 다르게, 학생녀석은 그대로 우다다 달려 도망가 버렸다.

뭐 하는 짓이야?”
뭐가.”

어떻게 잡은 호구인데.”

개자식이 따져물었다. 어깨가 1cm정도 위로 치솟았다. 팔다리가 유달리 길쭉한 이 친구와 내가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까? 아마 십중팔구는 박살이 날 테다.

미래형으로 쓸 필요는 없었다. 나는 실제로 박살이 났다.

개새끼.”

개자식은 나에게 침을 퉤, 뱉고 갈 길을 가 버렸다.

개새끼가 누군데? 개자식이야말로 개새끼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린 아이에게 기타를 속여 팔고, 그 어린아이가 기타를 치다 어른이 되고, 서른 세 살이 되고, 또 다른 아이에게 기타를 넘겨 주고...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치미는 광경이 아닌가.

씨발놈.”

나는 다시 연습실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오늘의 연습 할당량은 5시간 21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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