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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받고싶어서 본인 최고로 돈 많이 벌엇던 소설 올려봄앱에서 작성

goza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7.14 12: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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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 초원에서 일어날법한 일





초원 사람들이 하나이듯이 하늘도 하나고 태양도 하나다. 하나인 태양은 하지에 만물을 살리는 힘을 모두 쏟아내고 동지가 되면 죽어가지만 사흘만에 다시 부활한다. 태양의 부활을 기다리는 사흘동안 초원 사람들은 축제를 연다. 짧아진 해가 영영의 죽음이 아니라 사흘 뒤의 부활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축제의 이름은 동지 축제라고 한다.

초원의 겨울은 길고 추우며 건조하다. 테무게가 뿜어낸 하얀 입김이 하얀 하늘에 서렸다. 칸의 막내아들인 그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다 가졌다. 모든 부족에서 가장 빼어난 말을 탔고, 모든 부족에서 가장 훌륭한 활을 쏘았고, 모든 부족에서 가장 살찐 양을 먹었다. 그의 몸을 감싼 값진 금 장신구도 그랬다. 그는 부족한 것이 없었고, 올해의 동지 축제에서 칸의 후계자로 선포될 것이다. 그러려면 업적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축제의 꽃인 승마 경주에서 우승을 하는 것 같은 업적이.

바얀테무르는 초원에서 제일가는 사냥꾼이고 기수이다. 물론 그는 승마 경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승마 경주는 아직 정수리를 밀지 않은 자들, 그러니까 어린아이들과 여자들만이 참여하는 행사다. 그런 그가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테무게는 지난 며칠간 바얀테무르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테무게는 바얀테무르를 설득하느라 쿠차에서 온 슬슬(瑟瑟) 목걸이와 반지를 다섯 개나 줘야 했다.

"초원의 사나이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 바얀테무르?"

"당연하외다, 아기씨."

"망할. 아기씨 소리는 그만 둬. 나도 이번이 마지막 경주라고. 내년이면 정수리를 민단 말야."

바얀테무르는 네 쪽으로 갈라진 입을 쩍 벌리고 껄껄 웃었다.

"제게 '그런' 부탁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아직 아기씨라는 증거올시다."

그가 낸 커다란 웃음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까봐, 놀라서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말은 테무게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바얀테무르는 말에서 떨어질 뻔 한 테무게를 붙잡았다. 바얀테무르의 네 갈래 난 입이 또 다시 쩍 벌어지고 테무게를 놀리는 말들을 쏟아냈다. '말에서 떨어지는 걸 보니 아기씨 맞소이다.' 그래도 남에게 들키지 않은 게 다행이었으니 테무게는 순순히 고맙다고 말했다.

"그럼, 아기씨 분부 받잡겠소."

테무게는 밭은 기침을 뱉으며 바얀테무르가 일으킨 흙먼지를 손으로 걷어냈다. 바얀테무르는 하필이면 사란차차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얀테무르!"

테무게의 부름에 바얀테무르는 능글맞게 웃으며 안장 위에 올라서서 몸을 돌렸다. 꽤 멀었지만 그의 입 모양을 테무게는 똑똑히 보였다.

'뭐라 말하시려구요?'

테무게는 뱃속까지 빨아들인 바람을 머금은 채 굳었다.

'설마 사란차차르가 어쩌구 하는 말씀을 하시려구?'

그랬다가는 목걸이 반지가 아까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초원에서 쫓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테무게는 하아 하는 소리가 온 초원에 들리도록 한숨을 쉬고는 손사래를 쳐 바얀테무르를 쫓아냈다. 저 능글맞은 사냥꾼이 저만큼이나 담이 굵을줄은 몰랐다. 하지만 바얀테무르가 사냥감을 놓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네 발 달린 것이든, 날개 달린 것이든, 두 발 달린 것이든.

'저 놈이 시킨 일은 틀림없이 하는 놈이니까.'

바얀테무르와 사란차차르가 이야기를 나누는 꼴이 보였다. 둘은 가까이 달라붙어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바얀테무르가 주위를 살펴보며 옷자락을 풀어 넓게 펼치곤 사란차차르의 모습을 가렸다. 테무게는 모자를 들추고 정수리를 벅벅 긁었다. 동지 축제만 끝나면 정수리가 가려울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자 쓴 정수리만큼이나 거슬리는 사란차차르 년도 다시는 그를 거스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묻은 기름을 안장에 문질러 닦았다. 추위에 곱은 손이 딱딱한 안장에 쓸리자 견딜 수 없이 따가웠다. 그는 손에 대고 입김을 불었다. 그 때 그의 아버지 칸이 게르 밖으로 나왔다.

"경주에 나설 자들은 모두 말을 몰고 나와 칸 앞에 서라!"

그는 손을 불며 발로 말의 뱃가죽을 살짝 걷어찼다. 초원에서도 가장 훌륭한 씨를 받은 말은 투레질 한 번 안 하고 잔등에 태운 자의 뜻대로 움직였다.

"약속은 있지 않으셨겠지, 테무게 아기씨?"

"……초원의 사나이는 약속을 어기지 않아, 사란차차르."

사란차차르, 언제나 테무게의 비교 대상이 됐던 계집이었다. 그녀가 말을 몰아 테무게에게 다가와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 초원의 찬 바람에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사란차차르는 당차게도 말했다.

"정수리도 안 민 게 사나이라니, 아기씨께서 농담을 좀 할 줄 아시네요."

"닥쳐! 절대로 이번 경주에서는 기필코 널 이겨서 널 내 종으로 삼을 테다!"

"꼭 작년 이 때에도 그 말을 들었는데."

태연한 말투로 비꼬는 사란차차르와 달리 테무게는 이를 꽉 악물고 손을 말아쥐었다. 사란차차르는 따지고 보면 테무게의 아랫사람이었다. 10년쯤 전에 압둘인가 하는 서역 상인이 데려온 걸 칸이 영특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맡아 길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지나치게 영특했다. 테무게는 언제나 칸의 게르에서 같이 자란 사란차차르와 비교당했다. 초원의 역사도 한 번 들으면 잊지 않았고 걸음마를 뗀 것도, 말을 처음 탄 것도 테무게보다 빨랐다. 주위 사람들은 아직 어려서 그런 것 뿐이고 나이가 들어 장성하면 더 나아질테니 고민하지 말라고 했지만, 테무게보다 더 정확하게 화살을 쏘아날리는 사란차차르의 활이 더 강하기까지 하다는 건 여러 모로 그의 자존심을 긁는 일이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자국을 남기는 것도 모르고 테무게는 으르렁대며 말했다.

"그 때랑은 달라! 나도 이제 많이 컸다고! 계집애 주제에……."

"그래? 나도 작년보다 아주 많이 컸는데."

사란차차르는 어깨를 쭉 펴고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조물락거렸다. 테무게는 사란차차르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소리를 빽 질렀다.

"천한 계집!"

사란차차르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실소였지만 테무게는 그녀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런 채 그가 말을 이었다.

"널 지어미삼을 사내가 누구일지는 몰라도, 정말 불쌍할 뿐이구나!"

"하."

테무게는 열불이 난 채로 말을 더 빨리 몰았다. 곧 경주는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사란차차르도 다시는 그에게 대들지 못 할 것이다. 아무리 울타리 안에서 말을 잘 몰고 과녁에 활을 잘 쏜다고 해도 계집아이 혼자서 사냥꾼 세 명을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테무게는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어디 한 번 실전에서도 그러는지 두고 보자."

*

경주는 이틀 밤 사흘 낮에 걸쳐 열린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른들은 축제 경주는 어른이 사흘 낮을 꼬박 달려도 다 달리기 힘든 평원을 달린다고 했다. 바람을 피할 언덕도 없고 목을 축일 물도 없다. 가진 것은 참가자가 탄 말과 옷 한 벌 뿐이다. 작년에도 경주에 참여해 2등을 차지했던 테무게도 경주가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보다도 훨씬 힘들었다.

"눈이라니."

초원의 겨울은 춥지만 메마르다. 동지절에 눈이 내리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말 발목이 눈밭에 빠질 정도로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는 방향도 알 수가 없었다. 별은 빛을 잃었고 테무게의 뽀얀 숨결은 털모자에 달라붙어 서리로 내렸다. 애초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 초원이라 눈을 피할 곳도 없었지만 그런 게 있었대도 경주에서 이기려면 쉴 틈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테무게는 역정을 냈다. 고개를 까닥이며 갈팡질팡하는 말의 옆구리를 그의 발이 세게 걷어찼다. 말머리가 번쩍 들리고 걸음이 빨라졌지만 말과 테무게의 숨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봤자 이 눈밭에서 그 소리 들을 사람 따위 없겠지만.'

"아기씨."

"헉!"

누군가가 테무게의 어깨를 툭 쳤다. 그는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어 소리 낸 자의 턱에 들이밀었다. 수염 한 올 없이 맨질한 턱 위로 네 갈래 입술이 보였다.

"아무리 준마를 탔어도 전장에서는 그렇게 말을 험하게 걷어차면 안 되오. 언제나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라고 그리 일렀는데."

테무게는 턱을 덜덜 떨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바얀테무르였나."

"허허, 거 참. 칸의 후계자 될 분이 축제 경주에 칼을 들고 오시다뇨."

"가져오라는 물건이나 내 놔."

바얀테무르는 어깨 위로 손을 뻗었다.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말발굽 소리와 함께 활집을 든 손이 튀어나왔다. 테무게는 말 없이 바얀테무르에게서 활과 활집, 화살, 화살집을 받아들고 그것들을 어깨에 찼다.

"헌데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니 활은 제대로 쏠 수나 있겠습니까?"

"더 가까이서 쏘면 돼."

"아기씨께는 활보다는 이런 게 더 필요하시지 않겠소?"

바얀테무르가 안장 주머니에서 펄럭거리는 두툼한 것을 꺼냈다. 울긋불긋한 물을 들인 털옷이었다.

"이놈, 이 테무게를 놀리는 데에 재미가 들었느냐. 내년이면 어른이 된다는데."

"아기씨께서 입는 옷을 가져왔다가는 단박에 들킬 테고, 그러면 아기씨 몸에 맞는 털옷은 계집아이 옷 말고 없지 않소?"

테무게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계집 옷은 입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얼어 죽을 테지만."

사실이 그랬다. 아무리 좋은 비단옷이라도 눈 오는 날 입고 있다가는 젖은 눈이 살갗까지 스며들어 얼어죽기 딱 좋았다. 팔짱을 끼고 목을 움츠리고 팔을 문지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테무게는 추위 탓인지 수치심 탓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억지로 내밀어 옷을 낚아챘다.

"내년에 머리를 민다지만 아직은 아니잖소? 어릴 때 할 일은 닥치는 대로 해 두는 게 좋소이다, 아기씨."

"몇 번이나 하는 말인데, 그 아기씨 소리도 그만 두라고!"

테무게의 투정에도 불구하고 바얀테무르는 껄껄 웃을 뿐이었다. 웃는 데서 그치면 좋았으련만 말을 몰아가는 동안 바얀테무르는 테무게를 쉴 새 없이 놀려댔다.

"어이쿠, 두고 온 물건이 있소이다."

"또 가져올 게 있었나?"

"이 바얀테무르가 사냥만 하는 사나이다 보니, 분이랑 입술연지랑 귀걸이 같은 걸 챙겨오질 못했소이다, 아기씨."

*

"얼른 떠나자구, 바얀테무르!"

"거 참, 아침에 눈 뜨면 목은 좀 축여야 하지 않소?"

바얀테무르가 눈뭉치를 들고 손에서 비볐다. 테무게는 이러는 동안에도 사란차차르는 멀어지고 있다고 고삐를 휘두르며 재촉했지만 바얀테무르는 묵묵히 손에서 눈을 녹인 뒤 입 안에 집어넣었다.

"재촉하려면 아기씨야말로 서두르십시오. 앞으로 한 밤 두 날을 말을 달려야 하는데, 물 한 모금 안 마시려는 참이오? 얼른 눈 녹이는 게 좋을 거외다."

"필요 없다! 나는 작년에도 2등을 한 사람이라구!"

바얀테무르는 새 눈덩이를 집어 비비면서 테무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럼 아기씨보다 백 배, 천 배는 돌아다닌 사람 말을 들으시오."

눈이 대충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하자 그는 테무게의 얼굴에 눈덩이를 문질렀다. 테무게는 한참을 버둥거렸지만 네 배는 족히 무거운 사내의 품에서 한참을 벗어나지 못하고 바얀테무르가 먹이는 눈을 다 받아먹었다. 푸하, 하고 참았던 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자 네 쪽으로 갈라진 입을 쩍 벌리고 허허 웃는 바얀테무르의 얼굴이 보였다.

"……가자. 바얀테무르."

"물론이오, 아기씨."

바얀테무르는 성큼성큼 걸어가 자기 말에 올라탔다. 그가 데려온 다른 사냥꾼 두 명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바라보다 테무게가 또 다시 소리를 지른 뒤에야 엄살을 피우며 말에 올랐다. 결국 바얀테무르의 말대로 됐다. 맨 나중에 말에 오른 것은 테무게였다.

밤새 내린 눈이 쌓인 위로 말 발자국이 찍혀나갔다. 바얀테무르가 테무게를 불렀다.

"그래 아기씨는 발자국 읽는 법은 아시오?"

"초원 사나이가 열 두 살이나 됐는데 모를 리가 있겠어?"

"아직은 열 한 살이시오. 동지절을 쇠어야 열 두 살이 되시구."

바얀테무르는 껄껄 웃으며 테무게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말을 몰았다. 그는 말 발자국, 야생마 발자국, 사슴, 토끼, 늑대의 발자국을 아냐고 물었고 테무게는 막힘 없이 척척 대답했다.

"그럼 아기씨께서 사란차차르가 타고 나간 말 발자국을 찾아보시오."

"뭐? 어떻게 발자국만 보고 어느 말인지를 안단 말이냐?"

"아니, 어찌 초원 사나이가 열 두 살이 되도록 그걸 못 알아볼 수가 있습니까?"

칸의 막내아들을 마음껏 놀리며 바얀테무르는 말마다 다른 발자국 읽는 법을 가르쳤다. 무거운 사람을 태운 말은 발자국이 깊게 찍히고, 발이 무거워져 간격이 좁아지고, 가벼운 사람을 태우면 그 반대요, 성격이 급한 말은 앞발이 다 나가기도 전에 뒷발을 내밀려 해서 위치가 제멋대로 찍히며, 좋은 기수가 타면 말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 같은 속도로 걸어도 다리가 멀리 나간다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저게 사란차차르의 말 발자국이로군."

바얀테무르가 테무게가 가리킨 방향을 살펴보자 그 말대로 말 발자국이 찍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그 발자국들을 살펴보고서는 그는 껄껄 웃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아기씨. 얕게 파인 데다 길고 곧게 쭉쭉 뻗은 것을 보니 차분하고 가벼우며 좋은 기수를 태운 발자국이군요. 발굽 모양도 사란차차르가 타는 말과 꼭 맞습니다."

테무게는 잠시 우쭐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핫 하는 소리를 내고 바얀테무르에게 말했다.

"또 머리 쓰다듬으려고 하진 말게, 바얀테무르."

"알겠소이다."

둘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바얀테무르의 부하 중 하나가 다가왔다. 사란차차르를 개울가에서 찾았으니 덮치면 될 거라는 말에 테무게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두 명의 사냥꾼이 두 갈래로 나뉘어 사란차차르의 길을 막고 동시에 세 방향에서 덮치기로 하고 테무게가 말했다.

"말을 죽이면 충분하지만 여의치 않거든 사란차차르 저 년을 죽여도 된다."

사냥꾼 둘과 바얀테무르는 서로를 쳐다보고 씩 웃고 각기 말을 몰아 나갔다.

"아기씨."

사냥꾼들이 자리 잡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얀테무르가 물었다.

"뭔가?"

"어째서 사란차차르를 그리 미워하시오?"

"저 년이 하는 짓을 보게. 내가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나. 계집 주제에. 나보다 힘도 세고 총명하고 용감한 게 견딜 수 없어."

"그것 뿐이오?"

테무게는 눈썹을 찌푸렸다.

"천한 계집 주제에, 우리 아버지 칸에게 얹혀 사는 주제에 나보다 뛰어나다고 나를 무시하는 꼴이 보기 싫네."

"그것 뿐이오?"

"……다 말해야 하나?"

"아기씨같이 장차 사람을 다스릴 자가 고작 그런 까닭으로 사람을 그리 미워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테무게는 아프지도 않은 사람이 끙끙 하는 앓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다 아파왔다.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명령하신 겁니까? 아기씨께는 조금 실망했소."

바얀테무르의 눈빛은 싸늘했다. 테무게는 허둥대며 아무렇게나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그런 게 아니다! 사, 사란차차르 때문에, 아버지 칸께서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지도 않아! 만날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하시고! 그래서 사이좋게 지내려고 그 귀한 사탕을 줘도 콧방귀만 뀌고! 만날 활쏘기 연습하고 오면, 나, 나하고 똑같이 쏜 주제에 손이 미끄러졌다고 핑계나 대고!"

"허어."

바얀테무르는 얼굴이 빨개진 테무게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조금씩 웃음소리는 커져만 갔다. 테무게는 뭐가 그리 웃기냐고 따지며 그에게 말을 몰아가 그의 정강이를 마구 걷어찼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내 괜히 걱정한 것 같구려. 아기씨는 여전히 아기씨올시다."

하지만 바얀테무르는 가까이 다가온 테무게의 모자 쓴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마구 문질러 댔다. 테무게가 바얀테무르의 손을 떨쳐내려고 발버둥치며 그만 하라고 소리치려고 할 때 명적 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제서야 테무게는 바얀테무르의 손에서 떨어질 수가 있었다. 바얀테무르는 허리춤에 매달아 둔 활집에서 활을 꺼낸 뒤 테무게에게 말했다.

"갑시다, 아기씨."

테무게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얀테무르와 마찬가지로 활을 뽑아들었다. 바얀테무르가 명적을 시위에 매기는 동안 그는 언덕 위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사란차차르는 부스스한 머리를 빗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순간 명적 두 발이 하늘로 솟구치며 비명을 질렀다.

*

사란차차르는 그런 상황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옷깃을 단단하게 여몄다. 해가 들어 그럭저럭 날이 풀렸지만 여전히 추웠다. 그리고 온 세상을 뒤덮은 눈 때문에 해가 천정에 닿을 때면 지금보다 더 추워질지도 몰랐다. 말도 그녀도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는 힘껏 말을 달릴 일만 남았다. 꼭 테무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아니더라도 늑장을 부리다가는 어중이떠중이들에게 추월당할지도 모른다.

'그래선 안 될 일이지.'

그녀는 서둘러 잠자리를 정리하고 말잔등에 안장을 얹었다. 등자에 발을 걸고 안장에 올라서려 할 때 날카롭게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매?"

매가 날아다닐 철은 지났는데, 하고 생각하며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니 화살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눈 한 번 감았다 뜰 시간을 사이에 두고 명적이 연달아 두 번 울렸다. 그리고 명적 소리가 난 쪽에서 말 탄 사내 셋과 조랑말을 타고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그녀 또래즘 돼 보이는 자가 나타났다.

"테무게?"

그녀는 놀라 소리쳤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그 쪽을 향해 말을 몰아가려 했지만 네 명의 기수로부터는 영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네 발의 화살이 그녀가 탄 말의 발치에 꽂히고 나서야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삐를 잡아당겼다.

"쫓아라! 쫓아!"

"허, 허! 다리를 노려라!"

사란차차르는 열심히 안장 다래를 걷어차며 말을 달렸지만 처음부터 상대가 될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리 말을 잘 탄다고 해도 아직 열 한 살이었고, 조랑말이 아니라 진짜 전마를 몰기에는 힘에 부쳤다. 그에 반해 저들은 장정 세 명이었고 말도 커다란 전마인데다가 활까지 들고 있었다. 한 마장도 못 달리는 짧은 시간동안 그녀의 귓가를 스친 화살만 해도 세 발은 넘었다.

"테무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닥쳐, 이 천것 같으니!"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 더러운 수를 쓰는구나!"

"아기씨도, 사란차차르도, 함부로 입을, 열지 마시오! 혀 깨뭅니다!"

사란차차르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자기를 죽이려 달려들며 활을 쏘는 자가 혀 깨물 일을 걱정해 준다니. 그 순간 그녀가 탄 말이 비명을 질렀다. 사란차차르는 황급히 고개를 잠깐 뒤로 돌렸다. 엉덩이에는 길쭉한 화살이 한 대 박혀 있었다. 말발굽이 땅을 딛을 때마다 낭창낭창한 화살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왜 가는 살을 가져왔나, 바얀테무르!"

"입 다물라고 했소, 아기씨!"

이번에는 화살이 말의 귓가를 스쳤다. 말이 놀라 대가리를 틀고 왼쪽으로 향하려는 것을 고삐를 세게 잡아끌어 막았다. 그녀의 왼쪽에서 달리는 기수는 칼을 뽑아들고 그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왼쪽 기수가 칼을 번쩍 들어 내려치려 하는 찰나에 그녀는 고삐를 잡아끌며 발로 말의 배를 걷어찼다. 그녀의 말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와중에도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고, 왼쪽 기수는 헛손질을 하고 오른쪽으로 벗어났다. 그녀는 말을 왼쪽으로 왼쪽으로 몰아갔다.

"저 년이……!"

테무게의 짧은 신음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가 쏜 화살이 말 엉덩이에 꽂혔다. 하지만 어린 소년이 다룰만한 가벼운 활로 쏜 화살로는 말을 죽일 수 없었다. 말은 다시 발놀림을 빨리 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바얀테무르와 다른 두 기수가 쏘는 화살이 몇 발이고 날아들었다. 이제까지는 화살을 쏘는 기수가 둘이었지만 왼쪽에 있던 기수의 칼을 피하는 바람에 이제부터는 세 발씩 날아올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앞을 스쳐지나간 그 기수는 아주 가까운 데에서 화살을 쏠 수 있다.

"쳇!"

사란차차르는 혀를 한 번 차고 안장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오른발을 등자에서 배고 몸을 왼쪽으로 크게 기울였다. 말을 방패삼아 달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화살 세 발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하나는 말의 오른쪽 옆구리에, 다른 하나는 오른쪽 엉덩이에 꽂혔다. 그리고 가장 강한 세 번째 화살은 말의 뒤통수를 꿰뚫고 왼쪽 눈으로 튀어나왔다. 말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크윽……!"

바닥을 몇 바퀴 굴렀지만 다행히도 목뼈 대신 손목뼈만 부러지고 끝났다. 사란차차르는 인상을 쓰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렸다. 하지만 성인 장정도 조랑말보다 느린데 어린 소녀인 그녀가 전마를 따돌릴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두 명의 기수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뒤에서는 바얀테무르와 테무게가 다가왔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테무게?"

"사란차차르, 니가 언제나 주제를 모르고 날뛰었으니까!"

테무게가 사란차차르를 들이받을듯 말을 몰아 달려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말발굽에 짓밟히기 직전에 그는 칼을 뽑아들고 그녀의 목에 들이댔다.

"기분이 어때, 사란차차르? 아무리 잘난 너라고 해도 막상 이런 꼴이 되니 말이야!"

"정신이 나갔나 보구나, 테무게. 동지절 경주에 남의 도움을 받아? 그것도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만 칼을 턱 밑에 대고도 그녀는 당당했다. 부러진 손목이 아파 찡그리고 있을지언정 눈으로 똑똑히 테무게를 노려보고 있었다. 테무게는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칼을 더욱 깊이 들이밀었다. 사란차차르는 간단히 몸을 젖혔다.

"흥, 기분 나쁘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살려주려고 했는데."

"이런 비겁한 짓으로 이기려고 했던 거야? 정말 실망이다. 사내답지 못해. 거기다가 옷까지 계집애 옷을 입고 있어."

"닥쳐!"

"거기다가, 준비를 해 와도. 칸께서 주신 칼로 날 죽이려고 했어? 거기 묻은 피는 어쩌려고 한 거지? 누가 봐도 네가 한 짓이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을 걸."

사란차차르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테무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니가 웃을 상황이 아니란 건 알 거야.'하고 말하고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바얀테무르가 말을 몰아 앞으로 나왔다.

"이 일을 맡기려고 바얀테무르에게 슬슬 목걸이랑 반지를 다섯 개나 줬어."

그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른 처리하라고 바얀테무르를 재촉했다. 하지만 바얀테무르의 손은 칼자루를 쥐기는 커녕 팔짱을 끼고만 있었다. 테무게가 연신 바얀테무르를 재촉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 목걸이랑 반지? 이거 말이지?"

사란차차르가 길고 새까만 머리카락을 옷 밖으로 빼내고 그 밑에서 노랗게 반짝이는 것을 꺼내 손으로 흔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두 개의 금목걸이 끝에는 녹색으로 반짝이는 각진 보석이 하나씩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테무게는 놀랐다. 그리고 목걸이를 흔드는 손가락에도 똑같은 보석이 박힌 반지가 끼여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라고 말았다.

"그걸 왜 니가 갖고 있는 거지?"

"바얀테무르 아저씨가 나한테 줬으니까."

테무게가 바얀테무르를 노려봤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주먹으로 입을 가린 채 헛기침을 하며.

"어떻게 된 거야, 바얀테무르?"

"아직도 모르겠어? 아저씨는 내 편이야. 니가 더러운 짓을 하려는 걸 나한테 일러바치고, 이 자리에서 널 죽이려고 하는 거지."

테무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저, 정말이야, 바얀테무르? 저 계집애가 하는 말이 진짜냐고?"

"당연히 진짜야. 그렇지 않으면 왜 이게 나한테 있겠어?"

"거짓말…… 바얀테무르! 초원 사나이는 약속을 지켜야 돼! 왜……."

"너는 사나이도 아니고 그냥 비겁한 꼬맹이니까. 동지절 경주를 남의 도움을 받아 이기려고 하고, 널 이길 사람을 죽이려고 더러운 일을 꾸민, 초원에서 살 자격도 없는 비겁한 꼬맹이니까!"

"거 참."

두 아이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바얀테무르가 끼어들었다. 테무게야 자기를 죽이려고 그러는 줄 알았기에 이상할 게 없었지만 사란차차르까지도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아기씨. 사란차차르 말 그대로올시다. 동지절 경주는 남의 도움을 받아 이겨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거기다가 그냥 먹을 거나 옷 얻어오는 것도 아니고 방해하려고 하다니. 애초에 사란차차르를 죽일 생각 같은 건 하나도 없었소이다."

그의 말에 테무게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그는 울기 직전의 표정을 지었다. 사란차차르는 테무게의 표정에 움츠렸던 게 언제냐는 양 기가 살았다.

"울어라, 계집애 같으니! 울어! 흥, 비겁한 꼬맹이 같으니라고!"

"사란차차르, 너도."

그리고 역시나 기가 살았던 게 언제였냐는 양, 그녀는 바얀테무르가 자신을 부르자 목을 두 어깨 사이에 파묻었다.

"어제 아기씨 말 전해줬더니 펑펑 울던 게 기억나지 않는가보구나. 뭐랬더라? 테무게가 그럴 리 없다고 했었나?"

"그, 그 이야기는 영원히 비밀로 해 주겠다고 했잖아요! 초원 사나이잖아!"

그 광경을 말 없이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두 기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테무게는 사냥꾼 주제에 칸의 후계자를 모욕한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고 사란차차르도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바얀테무르는 그런 두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짧지 않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걸리려 할 때 바얀테무르가 말했다.

"아기씨."

"응?"

"간밤에 사란차차르가 이 바얀테무르한테 무슨 부탁을 했는지 아시오?"

"아저씨! 그 얘기까지 하면 어떡해요!"

이번에는 사란차차르가 울상을 지을 차례였다. 테무게는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짓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테무게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바얀테무르가 할 말보다는 저게 진짜 그 사란차차르가 맞는지가 더 궁금했다.

"죽일 생각은 꿈에도 없다고 그러니 사란차차르가 내게 이리 말하더이다. 그럼 꼭 이기게 해 달라고. 그래 나는 아기씨한테 무슨 명령을 할 참이오? 물었지. 그랬더니 세상에."

바얀테무르는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사란차차르는 얼굴을 가린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테무게가 '뭐라고 했는데? 응? 바얀테무르? 뭐라고 했어?' 하고 연거푸 묻자 바얀테무르는 끅끅 하고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세상에, 하느님. 자기를 색시로 데려가게 할 거랍디다."

"색시?"

"난 몰라! 아저씨, 그걸……."

"괜찮아, 사란차차르."

"뭐가 괜찮아요! 다 끝이야! 칸께서 나 같은 천것한테 테무게를 장가보낼 리가 없잖아요!"

바얀테무르가 말에서 내리자 땅이 쿵 하고 울렸다. 쿵 쿵 소리를 내며 바얀테무르가 쪼그리고 앉은 사란차차르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덥석 움켜쥐었다. 사란차차르의 빨개진 눈이 바얀테무르에게 말했다. 그는 쪼그려 앉아 사란차차르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했지만 거의 무릎을 꿇을 정도까지 허리를 숙여도 사란차차르의 눈은 그의 허리에도 닿지 못했다. 바얀테무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아기씨가 칸의 후계자라도 그 비싼 목걸이 반지를 멋대로 너에게 줄 수 있었겠느냐?"

"네?"

"그 목걸이, 카툰께서 차고 계셨던 걸 본 적 없니?"

바얀테무르의 말에 사란차차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벌떡 일어나서 ‘정말요? 정말요? 하고 팔짝팔짝 날뛰다 허리에 찰싹 붙어서 연신 고맙다고 소리를 질러 대는 사란차차르를 떼어놓느라 바얀테무르는 애를 먹었다.

"울다가 웃으면 똥꼬에 털 난다."

테무게는 둘이 하는 이야기를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얀테무르에게 물었다.

"그치만 바얀테무르, 사란차차르는 만날 내가 사탕 줘도 사탕만 낼름 집어먹고 고맙다는 얘기도 안 했는데? 칸께서 상냥하게 대해주래서 상냥하게 대하면 계집애 같다고 놀렸어. 사란차차르가 왜 나한테 시집오고 싶어한다는 거야?"

"그런 건 직접 들으소서."

바얀테무르가 테무게의 겉옷을 벗겨 사란차차르에게 입혔다. 그리고 사란차차르를 자기 말에 태웠다. 그녀만큼이나 어리둥절해 하는 테무게도 자신이 타고 온 말 안장에 앉히고 그는 두 사람의 다리 길이에 맞게 등자끈을 조정했다. 뒤통수에 대고 무슨 짓이냐고 묻는 테무게에게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계집 옷을 입고 돌아갈 참입니까?"

"그거 말고, 왜 나를, 어, 사란차차르랑 같이 태우는 건데?"

"사란차차르 말이 죽었으니까요."

바얀테무르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등자끈을 줄이고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도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내 말 타면 되잖아?"

"아무리 가벼워도 조랑말로는 두 사람 태우기 힘들 거외다. 그리고 경주 중인 거 잊었소? 내 말은 하루에 삼천 리도 달린답니다."

반대쪽 등자끈도 사란차차르에게 딱 맞게 줄어들었다. 바얀테무르는 등자를 사란차차르의 발에 끼워주고 성큼성큼 걸어가 테무게가 타고 온 말에 올랐다. 바얀테무르 같은 거한이 올라타자 조랑말이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며 비틀거렸다. 그의 두 발은 등자에 맞기는 커녕 땅에 끌릴 정도였다. 바얀테무르는 호탕하게 웃었다. 말 대가리를 한 대 후려치고 아예 두 다리로 땅을 짚고 걷듯이 말을 몰았다.

"하하하, 조랑말 타기는 머리털 밀고 30년 만이다."

바얀테무르가 손짓하자 그가 데려온 사냥꾼들이 말을 몰아 뒤를 따랐다. 테무게는 당황하며 그들을 불렀지만 그 셋은 이랴 이랴 하며 과장되게 소리치며 말을 몰았고, 바얀테무르의 두 부하는 괜히 그의 주위를 빙빙 돌며 말발굽 소리를 한층 크게 울렸다. 높지 않은 언덕을 넘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지만 테무게는 그쪽에서 눈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새하얀 언덕을 바라보는 테무게의 뒤에서 사란차차르가 말을 걸었다.

"뭐 해? 얼른 고삐 안 잡고."

"자리 바꿔! 왜 니가 내 뒤에 타는데?"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아기씨보다 큰 걸."

사란차차르는 털옷 앞섶을 풀고 옷자락으로 테무게를 감싸고 그의 손에 고삐를 쥐여줬다. 테무게가 바락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사란차차르가 먼저 말했다.

"뼈 부러져서 난 고삐 못 잡기도 하고."

테무게는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대며 고삐를 잡았다. 사란차차르가 부러지지 않은 오른팔로 테무게의 허리를 꽉 붙잡고 얼굴을 그의 어깨 위에 얹었다. 테무게는 뺨을 간질이며 펄럭이는 그녀의 기다란 머리카락 너머로 빨간 살갗을 보고 고개를 더 돌렸다.

"많이 추워?"

미소를 지으려고 치켜올라가던 입꼬리가 팍 주저앉았다.

"그럼 이 겨울에 덥겠냐?"

사란차차르는 그렇게 내뱉고 말다래를 휙 걷어찼다. 말이 앞발을 치켜들고 허공에 휘두르는 통에 테무게는 뒤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새까만 전마에서 그가 굴러떨어지지 않게끔 사란차차르는 그의 허리를 더욱 단단하게 붙잡았다. 이렇게 빠른 말을 탔으니 어쩌면 밤새 쉬지 않고 달린다면 사흘째 해가 뜨기도 전에 결승점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

그리고, 그 정도로 빠르진 않았지만 테무게와 사란차차르는 동쪽 하늘에 새빨간 해가 반쯤 튀어나왔을 때 결승점에 닿았다. 이렇게까지 돼서야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닐 테지만, 올해 동지절 경주의 우승자도 사란차차르였다. 그녀는 결승점도 코앞이니 잠시 쉬자고 테무게를 꼬드기고는 말에서 내려 말 앞발을 꽁꽁 묶고는 결승점으로 내달렸다. 겨우 매듭을 풀고 사란차차르 다음에야 결승점에 들어온 테무게에게 소원을 말했을 때, 그 자리에 나온 테무게의 부모 칸과 카툰 부부는 며느리감 하나는 잘 뒀다고 웃으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테무게를 놀렸다. 테무게는 이상하게도 놀림받으면서도 화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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