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론의 돼지 - 이문열
에로스란 무엇인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우리가 성욕의 노예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다들 조금씩 성욕의 노예이다. 물론 단순히 자위행위를 일삼는다거나,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다. 성욕은 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번식 따위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일이다. 사실, 성욕은 카타르시스, 즉 배설에 관한 욕구이다. 그렇지 않은가. 성욕을 해소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 사정과 배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배설'이 단순히 신체적인 활동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감정의 배설 또한 성욕의 표현이다. 특히 분노, 경멸,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온갖 사회의 박해를 돌파하고 내면을 온전히 배설할 때의 쾌감은 더욱 커진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에서, 우리는 수 많은 인간군상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본질적으로 같다. 모두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에서 억눌리는 성욕들은 배설하고자 하는 가련한 영혼일 뿐이다. 검은 각반의 사내들은 제대병들에게, 지배욕과 빗나간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은 제대병들에게서 '수금'을 진행하며, 원시의 남성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약탈을 통한 고대 경제의 기반은 이와 같은 초기의 남성성이었고, 그것을 강조함으로써 인간 본성 속의 권력에 대한 갈망을 표출한다. 물론 검은 각반들만 성욕의 노예인 것은 아니다. 제대병들 역시도 검은 각반들에게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욕망을 표출한 제대병은 이른바 '백골섬' 출신의 제대병이다. 그는 검은 각반들에게 주먹을 날리고 자신의 의지를 배설한다. 일순간, 그는 객차 내의 영웅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어떤 숭고한 의지와 목적에 의해 행한 것이 아니다. 그는 폭력과 저항의 욕구에 굴복했을 뿐이다. 결국, 그는 더 나은 욕구 배설의 기회가 생기자마자 자리를 함께하자는 검은 각반의 요청과 객차를 떠난다. 그 다음으로는 깡마른 제대병이 나선다. 그는 정의에 대한 욕망이다. 사회와 질서를 신봉하는 자이고, 불의와 부정을 참지 못하여 객기를 부리는 자이다. 그의 욕구는 첫 번째 제대병보다는 내면적인 곳에서 나온다. 그는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다. 그는 아마 그 나름의 자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법과 자유의지의 수호자이자, 타락한 사회에게 경종을 울리는 묵시록의 기수라는 자아를 가지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대병과 검은 각반의 욕망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충돌한다. 결국, 깡마른 제대병의 자아는 힘의 논리 위에서 무너지고, 그는 자신의 성욕을 배설하지 못한 채 순교한다.
물론 그의 순교가 쓸모없었던 것은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제대병이 등장한 것이다. 그는 집단의 논리에 호소한다. 대중의 시선에 호소한다. 다수와 소수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를 역설하는 객차 내의 상황을 부정하려 한다. 결국, 새롭게 탄생한 논리 아래, 검은 각반들은 굴복하고 짓밟힌다. 객차 안의, 웅크리고 있던 100명의 욕망이 눈을 뜨기 시작한다. 검은 각반들은 유리조각을 들고 저항하려 해보지만, 한 번 잠에서 깨어난 분노라는 에로스는 멈추지 않는다. 웃통을 벗은 제대병의 피는, 오히려 분노의 배설에 박차를 가한다. 이와 같은 아수라장에서도 가만히 있는 사람은 단둘이다. 턱밑까지 에로스가 가득 차 있지만,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주인공과 객차 안의 상황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홍 동덕'이다. '홍 동덕'은 거세되어 버린 개이고 돼지이다. 3년간의 군대 생활은 '홍 동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빼앗겨도 저항하지 않으며, 분노와 복수라는 가장 원초적인 에로스조차 느낄 수 없도록 거세시킨 듯하다. 그에 반해 주인공은 에로스를 느낄 수 있고, 그것을 표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대학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상식과 현명함이라는 자아에 도취되어있고, 문명인이라면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는 폭력을 통해서는 에로스를 분출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자의 자아에게 얽매여, 해탈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홍 동덕'을 따라 할 뿐이었다. 냉소적인 주인공은 에로스마저 마음껏 표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혐오를 느끼지만, 이내 '필론의 돼지'라는 우화를 떠올리며 합리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거세된 돼지인 '홍 동덕'의 모습이, 주인공보다 더욱 현명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난 나 고딩때 글이 참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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