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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단편 쓰다보니 재밌어서 벌써 1편 끝내버린 ㄷ

몰?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5.05 16:55:26
조회 62 추천 0 댓글 10

  휴대전화는 빼앗겼고 수중에는 오천 원이 전부였다. 가지고 나온 거라고는 이제 아무도 쓰지 않는 MP3와 이어폰 하나뿐. 귓가에서는 김사월 노래의 아름다운 가사가, '너는 지금 잠들어 있겠지만/너와 함께 닿는 모래를 생각해'* 하는 가사가 흘렀다. 연우는 그녀의 몽환적인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오로지 죽음에 대해서만, 그 가장 단단하고도 뚜렷한 절망에 대해서만 생각해야 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남자로서의 낮고 속삭이는 미성도, 그/녀가 법적으로 남성인 까닭이던 성기도.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에게 매달려 살아가던 어머니의 사랑도.


 어째서 이렇게 되어야만 했던 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인생이 끝장나버린 이유를 고민해봐도 짐작이 가는 점은 전혀 없었다. 성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주기적인 호르몬 투여와 복잡한 외과수술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트랜스 여성의 질은 내장을 빼내서 만든 것이라는 소문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도 났다. 자세한 건 모른다지만 지금 자신에게 달린 여성기가 인공적이지 않다는 것만은 연우도 알았다.


  아니, 애초에 외과수술을 의심하는 것자체가 말이 안 됐다. 외모야 원래부터 곱다느니 기생오라비 같다느니 하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갑자기 키가 10센티미터 이상은 줄었고 머리는 등허리에 닿을 만큼 자랐다. 그/녀가 아는 한 어떤 21세기 기술로도 하룻밤 잠든 사이에 머리카락을 장발로 만들거나 뼈를 깎아 키를 줄이는 건 불가능했다. 평소에 신이나 악마를 믿지는 않았지만 이번 한 번만큼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인정해야 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여자가 된 건 분명히 신의 장난 혹은 악마의 저주일 것이다.


  무작정 올라탔던 버스에서 내린 연우는 고개를 숙인 채 PC방을 찾았다. 곧 색유리 한 면이 깨진 '레전드 PC방'이라는 로고가 눈에 띄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전설적이라면 전설적인데, 넋두리한 연우는 남은 오천 원을 모두 PC방 요금으로 털어넣었다. 대책 없는 짓이었지만 어차피 오천 원이란 돈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도 알만한 나이였기 때문에 지금 가진 것중 무엇이 가장 비싼지 정도는 알았다. 가랑이 사이에 달려버린 흉물스러운 것, 그것의 가격은 오천 원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쌀 것이다. 어리고 예쁘고 취약한 여학생과 자고 싶어하는 남자는 세상 어디에나 있으니까.


  13번 좌석에 앉은 연우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로그인을 했다. 그러고서 크롬 브라우저의 새하얀 시작 탭만을 쳐다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미래와 죽음과 매춘이라는 세 단어를 번갈아가면서 떠올렸다. 자기가 가진 가치 있는 게 성기뿐이라면, 그럼 그 비싼 걸 어떻게든 팔아야만 하는 걸까? 랜덤채팅에서 랜덤남자를 만나는 방식으로라도? 신분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태로 폭행과 학대의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지만 동시에 죽고 싶지 않았다. 술에 취한 아빠한테 매일 맞고 지냈을 때조차도 연우는 언제나 살아남는 것만을 생각했다. 눈을 감고 모든 아픔이 지나가는 걸 그저 견뎌내면서. 비굴하고 역겨울지라도 일단은 살아야 한다고 믿으면서. 그러니까 여자가 되어버렸다 해도 결국에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죽고 싶을 때도 살아남는 방법을 생각해야만 하는 건.


  연우는 가장 먼저 검색창에 대한민국 국적법을 입력했다. 세상에 내던져진 여자가 홀로 국적취득을 할 방법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로는 후견인 혹은 가족의 증명을 필요로했고 그/녀 스스로 신분을 증명할 수단은 없는 듯했다. 신분증명이 안 된다면 청소년 쉼터 따위에 입소하거나 학생인권 운동가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대부분의 공식적인 구제제도는 명확한 신원을 요구했으니까. 좌절감이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고 눈물이 터져나와서는 숨죽인 통곡으로 되었다.


  여자인 지인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어릴 적부터의 여성공포증으로 인해 연우에게는 그 흔한 여자 사람 친구조차 없었다. 얼굴이 고운 편이라 여자애들에게 인기는 꽤 있는 편이었지만 그/녀 쪽에서 먼저 모든 관심을 밀어내며 살았다. 그때문에 일방적인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될 때가 많았고, 그럴수록 그/녀는 더더욱 여자들이 두려워졌다. 지금에와서 돌이켜보면 안심하고 연락가능한 여사친 한 명은 만들어 뒀어야 했는데, 후회는 언제 해도 늦은 것이기 때문에 후회였다.


  겨우 눈물을 진정시키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진혁이 형이었다. 전에 하던 밴드에서 키보드를 담당하던 키카 크고 잘생긴 형. 솔직히 뒷소문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일 순위로 생각이 났다. 박진혁이란 남자는 요컨대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여자를 돈으로 사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선을 넘지는 않는 남자.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대부분의 면에서 착실하고 윤리적인 남자. 그말인 즉 그는 지금의 연우에게 가장 필요한 남자이기도 했다.


  자신의 디스코드 계정으로 접속한 연우는 진혁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자기가 지금 집을 나왔는데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형밖에 없다고. 오랜만에 연락해서 이런 부탁이나 해서 미안한데 제발 한 번만 도와달라고. 의외로 답장은 금방 왔고 진혁은 선뜻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이어서 돈이라도 몇 푼 부쳐줄까, 하는 제안이 왔지만 그/녀는 의미 없다고 대답했다. 체크카드고 뭐고 다 뺏긴 채 겨우 MP3 하나만 건져서 가출한 상태라고. 지금 수중에 돈 한 푼 없으니 형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대로 아사할 지경이라고.


  얼굴이 새파래진 이모지를 보낸 진혁은 지금 있는 장소를 불러보라고 했다. 어떻게 부모가 돼서 애를 그렇게 쫓아내냐고, 그런 인간말종들은 부모 자격도 없다고 자기 일처럼 분노하면서. 연우는 예성동 레전드 PC방에 있다고 답한 뒤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진혁의 성격이라면 별다른 일정이 없는 한 당장 차를 몰고 여기까지 올 것이다. 그러면 그 앞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자기는 진짜 연우고 오늘 눈을 떠보니 여자가 되어 있었다고? 정을 생각해서 당분간만 형이 돌봐 달라고? 하지만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게 진혁의 지론이었고 어쩌면, 아니 당연하다는 듯 그는 돌봐주는 대가로 몸을 요구해올 거였다. 트랜스젠더든 뭐든 예쁘기만 하면 괜찮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으니까. 그/녀는 진혁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와 섹스하는 상상을 했다가 구토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한 시간쯤 지나서 진혁은 PC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우는 사용종료 버튼을 누르고 일어나 진혁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자기한테 인사하는 건줄 몰랐는지 멀뚱히 있다가 연우가 계속해서 낑낑거리자 그제서야 그/녀쪽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형! 진혁이 형! 나야, 연우."


  "?"


  "나, 지금 꼴이 이런 건 사정이 있는데, 그게......."


  "어, 자세히 보니까 연우랑 닮긴 했는데... 여장이라도 한 거냐? 대체 차림새가 그게 뭔데."


  "형, 농담 아니니까 진지하게 들어줘. 그게....... 그러니까 나 오늘 여자가 됐어."


  "...? 여자가, 됐다고? 무슨 트랜스젠더라거나......."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진짜 이상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런 거 아냐. 오늘 자고 일어났더니 이렇게 돼 있었어. 하루 아침에."


  당연하게도 진혁은 연우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긴 그/녀가 진혁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그랬을 것이다. 오랜만에 연락온 동생이 느닷없이 여자가 됐다는 소리를 한다면. 외모만 살짝 닮았을 뿐 체격도 몸매도 목소리도 아예 달라져 있다면.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게 말이나 되냐? 이거 뭐 몰카? 그런 건가? 너 연우 동생이야?"


  "아, 아니야. 형, 제발. 나 연우 맞다니까. 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눈 떠보니까 이렇게 돼 있었어."


  "눈 떠보니까 그랬다고? 이상한 수술 같은 거 당한 게 아니라?"


  "응.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집에서도 쫓겨났고......."


  진혁은 말을 받으려다 말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잠깐 침묵이 지나간 뒤에 그의 선언이 짤막하게 덧붙여졌다. 여전히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최소한 눈 앞에 있는 게 연우 네가 맞든 아니든 일단 데려가겠다고. 연우는 살짝 움츠러든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어, 왜?"


  "솔직히 믿기냐 안 믿기냐 하면 안 믿기는데, 말씨름한다고 버릴 시간이 없네. 형이 좀 바쁜 사람이라서."


  "바쁘다니? 약속이라도 있어?"


  "어. 거래처랑 회식이 잡혀 있는데 너 데리러 온다고 잠깐 들렀다. 집에 내려다 주고 바로 가려 했지."


  "아......."


  더 묻지 않고 일단 거둬주겠다는 진혁의 마음이 고마웠다. 게다가 부족한 시간까지 쪼개 가며 가출청소년 하나를 데리러 왔다니.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처럼 순수하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였다. 그는 연우가 남자인 채 그대로라도 몇 달쯤은 자기 집에서 재워줬을 위인이었으니.


  한편으로는 진혁이라는 남자의 성격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많은 여자들과 책임 없는 사랑을 나누고 가끔은 모르는 여자의 성을 사는 남자였다. 보편적인 기준에서 도덕적이냐 도덕적이지 못하냐를 나누면 당연히 후자에 들어갈 사람이었지. 그런 남자가 자기 주변은 순수한 호의로 대하며 의리를 철저히 지킨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정말 나이스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게 가끔씩은 불가해하게 느껴졌다.


  "뭐 하고 있냐. 빨리 가자."


  "어, 응......."


  연우는 PC방을 나가서 진혁이 몰고 온 차의 조수석에 탔다. 자세한 기종까지는 알지 못하는 E 클래스의 벤츠. 안전벨트를 매고 다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의식하며 앉자 그가 말했다.


  "너 진짜 연우 맞냐? 아무리 봐도 여자애가 다 됐는데."


  "...맞아. 애초에 남자일 때도 형은 나보고 여자 같다고 항상 놀렸잖아."


  "아니, 그렇다고 정말로 여자애가 돼서 연락할 줄은 몰랐지."


  대화를 하면서 진혁은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었다. 차가 좋아서 그런지 엔진음이 그렇게 시끄럽지조차 않았다. 사이드를 풀고 기어를 넣은 뒤 액셀을 밟으면 차는 도심을 부드럽게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연우는 가로수길이 스쳐가는 풍경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거래처라면?"


  "아, 너한텐 이야기한 적 없던가? 형이 대학 동기들이랑 1년 전에 스타트업 하나 열었잖아. 거기 거래처 어르신들이랑 술 먹어야 해."


  "어? 웬 스타트업? 형 어차피 집에 돈 많잖아. 평생 음악 하면서 놀고 먹기로 했던 거 아니었어?"


  "야, 그것도 대학생 때까지나 그런 생각을 하지. 너도 나이 먹어 봐라. 돈이 얼마나 있든 사람이 번듯한 직장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래?"


  "...뭐, 사실은 세금 탓이 크지. 사람이 일을 안 하면 이 나라는 불로소득 딱지를 붙여서 이것저것 다 뜯어가려 들어요."


  그 뒤로도 진혁은 연우에게 이것저것 사소한 것들을 물었다. 아버지란 작자는 요새 좀 멀쩡한지, 갑자기 성별이 바뀌기 전에 이상한 전조는 없었는지, 그게 무슨 악명 높은 희귀병 같은 게 아닌지 따위의. 연우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답하면서도 하룻밤에 신체구조가 뒤바뀌는 질병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식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현상이기 때문에 자기가 갈 곳이 없어졌다고도.


  그간의 해후를 푸는 동안 차는 진혁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바쁘다는 말이 허세가 아니었는지 그는 연우에게 로비와 현관 비밀번호까지 알려주고 곧바로 떠났다. 휴대폰도 없으니 까먹으면 노숙자 된다는 농담을 덧붙이면서. 그/녀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8층으로 혼자 올라갔다.


  집은 연식이 오래됐지만 그렇다고 매매가까지 저렴한 곳은 아니었다. 서울 도심의 부동산은 구식의 낮은 평대라 해도 웬만한 신축 아파트보다 비쌌고, 이십대에 이런 집을 자가로 둔 진혁의 집안도 충분히 알 만했다. 밴드를 하지 않았다면 연우 같은 인종과는 평생 마주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미묘한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연우는 공짜로 세들어 사는 사람의 몫을 하기로 했다. 우선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작은 쓰레기들을 줍고 빗자루를 찾아 바닥을 쓸었다. 그다음 소파 팔걸이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옷들을 반듯하게 접어서 한 곳에 두었다. 괜히 옷장에 넣으면 진혁이 찾지 못할 테니까 일단 접어만 두기로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들어 있는 건 대부분 레토르트였고 신선식품은 아랫칸에 든 양파와 대파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누렇게 변한 부분이 많아서 대체 식사를 어떻게 하는지가 걱정스러웠다. 돈도 많으면서 밥먹는데는 안 쓰고 다 유흥에 낭비하는 건지, 아니면 밖에서 먹는 게 입에 맞아서 요리라곤 안 하는 건지.


  대충 집안일을 끝내두고 한숨 붙였다 일어나자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여전히 지친 채였고 피곤했지만 잠이 더 오지는 않았다. 머릿속이 말끔해지며 미래에 대한 불안이 구체적으로 올라와서 도저히 더 잘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야 진혁에게 신세를 진다지만 평생 남에게 빌붙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혁은 새벽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술에 잔뜩 취한 걸로 봐서는 아마도 대리운전을 불렀을 것이다. 연우가 달려나가 어서 오라는 인사를 하자 그는 피식 웃었다.


  "씨발, 회식하고 오니까 여자가 맞이해주는 건 좋은데, 그게 연우 너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뭣같네."


  술이 들어간 탓인지 진혁의 말투는 평소보다 좀 더 격해져 있었다. 살짝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해준 연우는 불안해하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자기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알기는 어려웠고 그/녀는 웅얼거리듯이 이야기했다.


  "...응. 형한텐 내가 여자로 보이겠지. 내가 봐도 그러니까."


  "야, 너 그게 무슨 말이냐."


  "어?"


  "지랄하지 말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 형이 씨발 난잡하다고 욕은 먹어도 갈데 없는 애새끼 사정 이용해먹을 정도로 말종은 아니야."


  그렇게 말한 진혁은 정말로 소파에 누워 코를 골면서 자기 시작했다. 연우는 그의 자는 얼굴을 잠깐 보다가 안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침대의 시트는 부드럽고 이불은 따뜻했지만 역시 잠이 더 오지는 않았다.





왜 이거 쓰는 거 일케 재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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