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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ㅇㄷ) 소설이 원래 역사를 잡아먹는 과정
역사는 인류의 기억이다. 그러나 한 개인의 기억이 어떤 외부 요인으로 인해 실제와는 다르게 왜곡되는 일이 있듯이 때때로 역사 또한 기록 아닌 누군가의 창작물로 사회의 기억이 왜곡되버리는 경우가 존재한다. 물론 이 분야 원탑 오브 원탑은 단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일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위촉오 시대의 이야기에 대해 '사실 정사에서는...'이라는 소릴 하면 정사충이란 비아냥을 듣는 지경까지 와있다. 여러 이유에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않으려 할 뿐, 한국에도 여럿 역사의 왜곡이 존재하지만 오늘은 흔히 '양만춘'이라 불리는 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단도직입적으로 당 태종의 침공을 막아낸 안시성의 성주는 양만춘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알 수 없다 . 그의 이름은 역사에서 잊혀졌으며 그에 대해 기록한 삼국사기에조차도 '역사에서 그 이름을 잃어버리니 심히 애석하다' 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안시성 성주에 대한 기억은 당대...는 아니고 그 시대에 그나마 가까운 시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희미했다. 물론 안시성의 굳건했던 성벽마저도 세월 속에 사라지고 말았는데 아무리 대단한 위업을 세운 명장이더라도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이름이 잊힐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시성 성주를 양만춘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해군에선 그 이름을 딴 양만춘함이라는 함선이 2014년에 취역해 오늘날에도 버젓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체 이 양만춘이란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알려진 건 조선 중후기에 와서이다. 삼국사기가 쓰인 고려시대까지만해도 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조선 후기 현종 시대에 와서 갑자기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퍼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송시열과 함께 노론을 이끈 송준길의 '동춘선생별집' 이라는 문집에서 시작한다. 시간을 돌려 이 시대로 가보자 "요새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 사이에서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소문이 도는데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거냐?" "아 그거요? 윤근수라는 양반이 중국인에게 듣고 기록했다고하던데요?" 송준길에 따르면 그 또한 기록을 옮겨 적은 것이며 윤근수라는 사람이 중국인에게 들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시간을 50년 앞으로 돌려 윤근수의 시대로 가보자 윤근수는 1616년에 죽은 조선 중기 문인으로 그가 쓴 월정문집에 안시성 성주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다. '(중략)임진왜란 뒤에 명나라 장수로 온 자 중에 오종도가 있었는데, 그가 내게 말하길 안시성주 성명은 양만춘으로 태종동정기에 써있다' '얼마 전 감사 이시발을 만났는데 그 또한 일찍이 당서연의를 보니 안시성주는 양만춘이다라고 하였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이야발ㅋㅋ 아무튼... 우리는 이 태종동정기와 당서연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당서연의는 연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593년 웅종곡이라는 명나라인이 쓴 소설이다. 당 태종 이세민의 일대기를 각색한 그 시대 역사 소설인 것이다. 그리고 태종동정기는 이 당서연의의 한 부분을 오종도가 인용하면서 나온 이야기다.그러니까 오늘날로 치면 야인시대를 감명 깊게 본 미국인이 한국인 대붕이한테 야인시대에서 본 한국의 근대를 설명해주고 한국인 대붕이는 실제로 김두한이 미군과의 협상에서 4달러 임금을 받아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다만 윤근수는 그 출처가 소설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안시성주의 이름을 알 방법이 없었는데 명나라 '소설'에서 비로소 양만춘이라 한다 덕분에 그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이 어찌 천고의 통쾌함이 아니겠는가' 라고 써서 보냈다. 역사에 왜곡과 거짓이 섞여 드는 건 보통 이런 패턴으로 시작된다. 물론 그 시대에도 역사학자들은 존재했고 이런 웃지 못할 헤프닝에 의문을 품는 지식인들 또한 여럿 있었다. 북학파였던 이덕무는 이에 대해 '세간에선 안시성주를 양만춘이라 하는데 그 출처인 윤근수의 기록에선 이미 당서연의라는 소설에서 나온 이름이라 밝히고 있으니 그 설은 신뢰할 수 없다' 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쓴 이규경 또한 이 양만춘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랬다 18세기 지식인들은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그저 허구의 창작이라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실제 역사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부활한 건 조선을 넘어 대한제국마저 망해가던 시대였다. 나라의 존립이 바람 앞에 등불과도 같던 시기 지식인들은 역사적 사실 같은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개화파 지식인이자 대한제국 내부대신을 지낸 유길준은 '을지공의 지략에는 수양제가 울고 가고 양만춘의 용맹에는 당 태종이 혼이 났다 자주 독립 이러하니 어느 누가 걸을 손가' 라는 민족의 각성을 부르짖는 시를 썼다. 대한제국이 망하기 1년전 1909년, 대한제국매일신보 또한 '안시성 중 양만춘도 백만병이 에워싸서 무수 곤란 겪을 적에 토성 굳게 쌓아가며 굴복 않고 지켜내니 당병 절로 물러가니 인내 소치 아닌가, 슬프도다 우리 동포 약육강식 이 시대에 희망점을 앞에 두고 용진심을 더하여서 인내력에 실력 얹어 자강불식 나아가면 어려울것 없으니라' 라며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양만춘설을 예토전생해낸다. 그렇게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한민족의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되었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름 잊힌 안시성주를 양만춘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며 그 잘못된 이름을 붙인 함선까지 만들어 그를 기릴 정도이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카다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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